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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 속에 숨어있는 이야기 : ㄷ~ㅁ
ㄷ
다북쑥도 삼밭에 나면 곧아진다.
줄기가 곧지 못한 다북쑥도 줄기가 곧은 삼밭에 나면 같이 곧아지듯, 보고 배우는 환경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옛날에 한 부부가 늦둥이를 낳았는데 그 아들이 얼마나 귀여운지, 아버지란 사람이 아들한테 “너 웃목에 가서 엄마 때리고 오너라.” 하고 시켜서 아이가 제 엄마를 때리고 오면 잘한다고 깔깔
웃고, 어미도 또한 아들한테 “너 아랫목에 가서 아버지를 때리고 오너라.”하고 시켜서 아이가 제 아버지를 때리고 오면 좋다고 웃었다.
아이는 그것을 본보기로 알고 자랐는데, 아버지가 죽은 다음에도 나무를 해오거나 밭에서 김을 매고 오거나 집에 돌아오면 제 어머니를 때리고 보는 게 일이었다.
어려서는 어린애의 매라서 귀엽게 받았지만, 나이 열댓 살이 돼서도 제 어머니를 때리니, 어머니가 고통을 견딜 수가 없어서 그러면 안 된다고 타일러도 아들은 듣지 않았다.
어려서 배운 버릇 때문에 아들은 툭하면 때리고 어미는 걸핏하면 매를 맞고 사는 지옥 같은 생활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아들이 십리쯤 떨어져 있는 효촌이란 마을의 유명한 효자 경증군 댁에 심부름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거기 가서 경증군이 하는 행동을 가만히 살펴보니까, 저녁에 어머니 이불을 펴드리고 아침에 문안 인사드리는 것과, 부모에게 음식을 드리는 것과, 부모의 뜻을 받들어서 움직이는 것, 하나하나가 자기가 어머니에게 대하는 것하고는 전혀 다르거든, 이 아들은 그날 밤 효자의 행동거지를 배워가지고 다음날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니에게 “저는 어려서 부모를 때리는 것을 효도로 알았는데, 어제 경증군 댁에 가서 부모에게 효행을 하는 것을 보니까 제 효하고는 전혀 달랐습니다. 어머니,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울며 빌었다.
그리고는 그날부터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극진한 효를 드렸다.
이 사람의 이름이 양수척인데 양수척의 효자비는 청주에서 서쪽으로 이십리 쯤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다.
다시 보니 수원 나그네.
인조 왕이 민정 시찰을 위해 변복을 하고 남대문을 나와 수원 근처의 어느 담배 밭 옆을 지나가는데 담배 잎이 잘 가꾸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때 소나기가 쏟아졌다가 그쳤는데, 담배 밭의 주인인 농부가 밭에 나와서 소나기에 맞아서 부러진 담배 잎을 한 잎 한 잎 정성스럽게 세우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인조가 담배 밭주인에게 다가가 “나는 지나가는 나그네인데 거기 부서진 담배 잎 좀 주시면 안 되겠소? 마침 담배가 궁해서 말려 피우려 하오” 하자, 농부는 화를 벌컥 내며 “지나가는 나그네면 갈 길이나 부지런히 갈 것이지 남의 담배를 달라 말라 하시오. 감히 이 담배가 어떤 담배인지 알기나 하고 그러 슈” 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인조는 다시 농부에게 “도대체 그 담배가 어떤 담배인데 그러시오” 하자, “이 담배는 가을에 임금님께 진상할 담배라오. 감히 당신 같은 나그네에게 줄 담배는 아니니 가던 길이나 가보쇼” 하고, 담배 밭의 농부는 평복을 입은 인조에게 크게 핀잔을 주었다.
농부에게 혼이 난 인조는 궁으로 돌아왔고, 시간이 지나 어느덧 가을이 되어 전국 각지에서 갖가지 진상품을 임금께 드리려고 궁궐로 왔는데, 인조 왕은 충심으로 올리는 백성들의 진상품을 받고는 농민들을 모아서 고맙다고 치하를 한 후, 수원에서 담배를 진상한 농부 한사람을 지목해서 가지 말고 남아 있으라며 어명을 내렸다.
수원의 담배 밭주인은 영문을 몰라 마음이 바짝 조려서 ‘아이쿠, 이거 뭐가 잘못됐구나! 이젠 죽었다’ 하고 벌벌 떨면서 죄인처럼 고개도 못들고 있는데, 조금 뒤에 당상 위에 선 인조 왕이 “수원에서 담배를 가지고 온 농부는 머리를 들고 나를 보라” 하시는 것이었다.
너무나 놀란 수원의 담배 밭 농사꾼은 겁먹은 얼굴을 겨우 들었다.
그런데 가만히 쳐다보니 어디서 본 얼굴인데, ‘어디서 봤더라’ 하고 한참을 생각중인데, 인조가 수원 농민에게 “나를 잘 보거라, 지나간 여름 소나기 오던 날에 너의 담배 밭에서 부서진 담배 잎을 얻으려던 그 사람이니라.” 하시니, 농민은 그때 사 기억이 나서 “아~, 다시 보니 수원나그네 시네유” 하였다.
농부는 왕을 몰라 봤다는 마음에 멋 적고 황송해서 벌벌 떨고 있는데, “그대는 참으로 기특하도다.
부러진 담배 잎 하나라도 그렇게 아끼고 가꾸니 모든 농민들이 그대와 같다면야 이 나라가 얼마나 부유하겠는가?” 하고, 앞으로도 농사를 잘 지으라면서 후한 상도 주었다.
이때부터 보통 사람이나 별 볼일 없는 사람 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참 좋은 사람이거나 훌륭하고 대단한 사람, 실력 있는 사람 등을 말할 때 ‘알고 보니 수원 나그네’ 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를 잘 봐 놔라 내가 보통사람 인줄 아냐 훗날 알게 될 거야” 등의 비유로도 쓰였다.
하지만 이후엔 멀리서 보고 혹시 하다가 가까이 가보니 과연 알고 있는 사람일 경우에 쓰이는 말이 되었다.
‘누구인지 모르고 대하다가 다시 보니 낯이 익고 아는 사람으로 처음엔 누군지 몰라보았으나 깨달아 알고 보니 알던 사람’ 이라는 말, 또는 ‘나의 낯을 잘 익혀 두라 내가 장차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될 거야’ 등으로 쓰인다.
또 다르게는 정조왕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정조가 화성의 아버지 묘소인 장능을 향해 갈 때 화성 앞에 이르러 고개를 내려 갈 때는 “왜 이렇게 걸음이 느리냐 빨리 좀 가자.” 하고 재촉을 하였는데, 고개만 내려가면 금방 장능에 이르렀기 때문에 아버지의 묘소에 빨리 가보고 싶은 마음에서 그랬다.
그리고 반대로 장능에서 돌아오는 길에 고개를 오를 때는 오르막인데도 “왜 이리 걸음이 빠르냐, 제발 좀 천천히 가자” 하고 군사들을 호령하였는데, 이번에는 이 고개를 넘으면 화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고개를 지지대(遲遲臺―)고개라 불렀다고 한다.
아무튼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이 지극했던 정조는 수시로 사도세자가 묻힌 능으로 행차를 했는데,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아서 어느 날엔 미복차림으로 변복을 하고 아무도 모르게 장능이 있는 화성으로 암행을 하였다.
그 때 밭에서 일하던 농부를 만났는데 정조는 평소 사도세자에 대해 백성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그 농부에게 확인을 해보고 싶어서 장능을 가리키며, “저곳이 어떤 곳인가” 하고 물었더니 농부가 대답하길, “저곳은 뒤주대왕의 애기능이오”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뒤주 속에서 억울하게 죽지만 않았어도 왕이 되었을 사도세자의 능이라서 뒤주대왕이라 했고, 애기능이라 한 것은 왕이 못 되셨으니 그렇게 부른 것이오” 라고 하였다.
정조는 대신들의 반대로 사도세자를 추존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이 농부가 자신의 아버지를 가리켜 뒤주대왕이라며 ‘왕’이라고 지칭하자, 내심 크게 기뻤다.
그리고 농부의 신상을 캐물었는데 그는 과거를 본 적이 있는 실력 있는 선비였지만 불운하여 번번이 낙방 했다고 하였다.
그러자 변복(變服)을 한 정조가 “내가 알기로 이번에 곧 과거가 있다던데 당신도 꼭 과거를 보시지요.” 라고 했다.
정조의 이 말에 농부는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또 떨어질 게 뻔하니 나하곤 상관없는 일이라오” 하고 관심이 없었다.
정조는 그 농부에게 계속 설득하고 권고하여 겨우 마음을 돌려놓고는 환궁하자마자 곧장 과거시험의 영을 내렸다.
이에 과거시험을 보게 된 선비가 시제를 받으니 바로 사나흘 전에 있었던 어떤 나그네와 나눴던 대화에 대한 내용을 쓰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급제를 하게 된 농부였던 선비가 왕을 뵙자, 그 나그네 선비가 바로 정조왕이었다.
달아나면 쌀밥 줄게
삼십육계 줄행랑이 최고다, 살려면 무조건 달아나라.
옛날에 홍문관 교리로 있던 이장곤이 연산군에게 미움을 받아 거제도로 귀양을 갔는데 금방 사약이 내릴 것 같아 사약을 먹고 죽느니 차라리 물에 빠져 죽으려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오래 전에 친구 정희량이 ‘자살할 생각이 나거든 뜯어보라’고 한 종이봉투가 생각나서 염랑을 끌러 조그만 종이봉투를 꺼냈다.
그 봉투를 떼고 보니 봉투 속에 또 봉투가 있어서 그 속 봉투를 떼고 보니, 속 봉투 속에 또 봉투가 있는데, 그 셋째 봉투 위에 ‘거제배소개탁’ 이라고 씌어 있었다.
이 교리가 놀라서 “이 사람이 귀신인가? 내가 거제로 귀양 올 것을 어찌 알았지?” 하고 급히 셋째 봉투를 뜯으니 그 속에서 종이쪽 하나가 떨어졌다.
그 종이쪽지에는 ‘주위상책 북방 길’ 이라고 씌어 있었다.
북방 길로 달아나는 게 상책이라는 뜻이다.
이 교리는 종이쪽을 정신없이 들여 보다가 홀연히 깨닫고 밤배를 타고 거제를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북쪽길만 바라보고 걸식을 하며 산 길로 산 길로 함흥까지 도망쳤다.
그는 거기서 백정의 딸과 혼인하여 숨어 지내다가 중종 반정 때 세상에 나왔다고 한다.
담살이가 주인마누라 속곳 베 걱정한다.
머슴이나 하인 노릇을 하는 주제에 당치도 않는 걱정을 하고 있다는 뜻으로 빗댄 말이다.
그러나 속을 어찌 알랴. 남자 하인이면 몰래 음심을 품고 있거나 이미 내통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걱정을 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이웃집 과부 아이 난데 미역 걱정한다’ 는 것처럼, 남들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담살이 : 1. ‘식모살이’의 전라도 사투리.
2. ‘더부살이’, 또는 ‘머슴살이’의 북한말.
담양갈 놈, 삼수 갑산에 가는 한이 있어도.
귀양의 정식 명칭은 유형(流刑)으로 유배(流配), 정배, 부처, 안치, 정속, 충군, 천사, 사변, 병예, 투비 등 당양하게 불렸다. 간단하게는 배, 적, 방, 찬, 사 등의 용어로도 쓰였다.
고려시대에 제도화된 형벌 다섯가지 중에 유형은 두 번째로 무거운 형벌이었다. 가장 가벼운 경범죄를 다스리는 형벌로 가는 나무 따위로 때리는 태형, 굵은 나무로 좀 더 심하게 때리는 장형, 강제 노역에 종사케 하는 도형, 그 다음이 유형이며, 최고형은 당연 사형이었다.
하지만 이 유형은 상류계층에게만 적용되었고, 오늘날의 보석제도와 같이 돈을 내고 형벌을 면하는 속형이 가능하였으므로 정치적 형벌로 많이 이용되었다.
따라서 이런 귀양제도는 형벌제도이면서 정치행위이기도 하여서, 실제 죄를 지어서 유형을 가기도 하지만 죄가 없어도 정치 행위를 금지시키기 위해 보내지기도 했다.
고려 때의 이런 5형제도의 기본 골격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유형은 크게 2가지로 나뉘는데 관리가 죄를 지었을 때 직위를 박탈하고 고향으로 돌려보냈던, 방축향리(放逐鄕里), 방귀전리(放歸田里), 본향안치(本鄕安置)로 이때 고향은 꼭 자기가 태어났던 곳뿐 아니라 거기에 버금가는 곳도 고향으로 간주 하였다. 다음은 고향이 아닌 외딴 섬이나 벽지인 산골 등의 험난한 곳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고려시대엔 주로 고향으로 간 반면에 조선 시대엔 고향과 상관없는 험난한 곳으로 보내것이 유배의 주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유배지로는 함경도 지역(삼수, 갑산, 홍원, 북청, 단천, 명천, 회령, 온성, 종성, 무산), 평안도(창성, 벽동, 구성, 숙천, 영변, 철산, 가산, 위원, 곽산, 초산, 영원), 황해도(옹진), 강원도(양구, 강릉, 평해, 삼척), 경기도(강화도), 충청도(단양, 면천, 제천, 청주, 서산), 경상도(성주, 칠원, 언양, 장기, 상주, 울진, 영덕, 신녕, 단성, 광양, 진해, 하동, 용안, 사천, 거제도), 전라도(담양, 창평, 광양, 진산, 무주, 무안, 낙안, 강진현의 신지도와 고금도, 영암군의 임자도와 추자도, 나주목의 지도, 진도군의 금갑도, 홍양현의 녹도, 여도), 제주도 등이었다.
삼수와 갑산은 귀양지 중에서도 험지로서 귀양살이를 하다가 호랑이 테 물려죽은 사람이 많았다는 야사와 함께 풍토병도 심한 곳이었다.
삼수군은 함경남도 북서단에 위치한 해발 1000m 이상의 고원지대이며, 갑산은 함경북도 북동부에 있는 군으로 역시 높고 험한 산으로 되어 있다. 반면에 담양은 전라남도에 위치하며 영산강의 상류로 정치적으로는 배제된 곳이지만 대나무가 많고 산물도 넉넉한 편이어서 그런대로 살만은 하지만 정치인으로서는 활동할 수 없는 유배지는 분명하다. 따라서 담양갈 놈은 유배갈 놈으로, 삼수 감산을 가더라도 하는 것은 끝까지 가더라도라는 막다른 결과까지를 말하는 비유가 된 것이다.
당나귀가 양반 행세를 하려 든다.
양반을 태우고 다니는 당나귀가 양반 행세를 하려 들듯이, 밑에 놈이 높은 사람의 배경을 믿고 위세하려 든다.
옛날에 짐만 싣던 당나귀가 하루는 양반을 태우고 장에 나갔더니 많은 사람이 절을 했다.
당나귀는 제가 잘나서 절을 하는 줄 알고 다음날 마부가 짐을 실으려 하자 안 싣겠다고 버티다가 오지게 뚜들겨 맞았다고 한다.
대대 곱사등이
대대로 곱사로 내려오는 집안을 말하며, 그 아버지나 그 아들이나 똑같다는 뜻이다.
옛날에 아버지가 아들 형제를 데리고 산소에 성묘하러 가다가 꿩의 꼬리털 하나를 주웠다.
그 꼬리가 아롱아롱하고 보기가 좋으니까 작은 놈이 “이것이 이렇게 좋을 적에는 필경 토끼 꼬리겠지요?”하고 물었다.
그러니까 큰 놈이 “쪼그만 토깽이가 어떻게 이렇게 긴 꼬리를 갖고 있겠냐? 긴 것을 보니 노루 꼬리가 틀림없구먼.” 했다.
아들 형제가 하는 얘기를 듣고 있던 애비가 “얘들아, 내가 죽으면 너희들은 아무것도 몰라서 남한테 우세(부끄러움)하겠다. 내 가르쳐주마, 이 길고 아롱아롱한 걸 봐라. 호랭이 꼬리가 분명하다”고 하더란다.
대신 집 송아지 백정 무서운 줄 모른다.
윗사람의 배경을 믿고 함부로 까불지만 언잰가는 혼날 날이 있다는 말이다.
광해군 때 어느 재상의 하인 중에 돌쇠라는 망나니가 있었는데, 성미가 거칠고 교만한데다가 술버릇이 지나쳐 툭하면 싸움을 걸고 아무나 함부로 때렸다.
그러나 재상의 권세가 무서워 감히 돌쇠를 건드릴 사람이 없었다.
안하무인으로 놀던 돌쇠는 어느 날 광해군의 호위 무관인 강익이라는 사람에게 행패를 부리다가 단 한방에 맞아 죽었다.
강익은 재상을 찾아가 “댁의 하인이 하도 무례해서 죽였습니다.” 하고 사과했다.
재상은 처음엔 놀랐지만 사내다운 솔직한 성격을 보고 강익을 용서해주었다고 한다.
대학을 가르칠라.
혼내줄까 보다고 겁주는 말이다.
옛날에 불학무식한 한 농사꾼이 글을 배우고 싶어서 훈장에게 대학을 배웠다.
그렇지만 의관을 바로 하고 하루 종일 꿇어앉아 무슨 소린지도 모르는 얘기를 듣고 있자니까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하도 혼이 난 나머지 다시는 글을 안 배우겠다고 맹세했지만 논밭을 갈다가 소가 말을 잘 안 들을 때마다 “이놈의 소, 대학을 가르칠라!” 하고 호통을 쳤다.
* 대학(大學) : 책 이름으로 유교 경전인 사서(四書)의 하나이다. 공자의 유서(遺書)라는 설과 자사 또는 증자의 저서라는 설이 있다.
원래 ‘예기’의 한 편(篇)이었던 것을 송나라의 사마광이 처음으로 따로 떼어서 ‘대학광의(大學廣義)’를 만들고, 그 후 주자(朱子)의 교정으로 현재의 형태로 되었으며, 명명덕(明明德)ㆍ지지선(止至善)ㆍ신민(新民)의 세 강령을 세우고, 그에 이르는 여덟 조목의 수양 순서를 들어서 해설하였다.
돈에 침 뱉는 놈 없다.
세상에 돈 주어서 싫다고 하는 놈 없다.
옛날에 농사꾼 하나가 뒤가 급하여 문묘 안에 들어가서 똥을 누다가 수직하던 양반에게 들켜서
볼기를 맞게 되었는데, 마침 가진 돈이 있어 바쳤더니 양반은 때리기는커녕 “오냐, 급하거든 내일도 와서 보거라.” 하더란다.
덤불이 커야 도깨비가 난다.
덩치가 커야 그 속에서 좋은 게 난다.
이중환은 우리 땅덩어리가 작은 것을 한탄하여 택리지에 이렇게 썼다.
“우리나라는 천리 되는 물이 없고, 백리 되는 들판이 없어 거인이 태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서융, 북적, 동호, 여진 등 중국에 들어가서 황제 노릇을 하지 못한 종족이 없지만, 유독 우리 민족만은 그런 일이 없다.” 라고 했다.
도갓집 강아지 같다.
도가(都家)는 동업자들이 모여서 계를 하거나 장사에 대한 논의를 하던 집이다. 따라서 ‘도갓집’은 '도가'와 같은 말로서 동업자 가운데 우두머리의 집을 도갓집으로 삼는데, 그 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 집에 사는 강아지는 좋은 사람을 만나면 맛있는 것도 얻어먹고 사랑도 받지만, 심술궂은 사람이나 화난 사람을 만나면 발길에 차이기도 한다. 이런 환경에서 살다 보면 자구책이 생기게 마련이고, 자연 단련이 되어 눈치가 빨라질 수밖에 없다. 또한 도가를 도매상이라고도 하며, 술도가는 술도매상을 말하는데, 이 곳 역시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곳으로, 이런 집의 강아지는 이해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도갓집 강아지는 수많은 사람을 대하기 때문에 사람의 기분을 잘 알아채고 눈치가 매우 빠르듯이, 무척 영리하고 눈치가 빠른 사람을 빗댄 말이다.
* 눈치가 빠르기는 도갓집 강아지.
도둑놈이 제 말에 잡힌다.
가만히 있으면 될 걸 나는 절대로 도둑질을 안했다는 식의 말을 해서 잡힌다.
옛날에 한 농부가 남의 소를 빌어다가 먹였는데, 이 소가 쌍둥이 송아지를 낳았다.
농부는 송아지 한 마리를 주인 모르게 떼어먹을 생각이 나서 “지난밤에 당신네 소가 새끼 하나를 낳았소.” 하고 말했다.
소 주인은 이 말을 듣고 소는 원래 새끼를 하나씩 낳는 것인데 특별히 하나 낳았다고 하는 것이 수상해서 “우리 소는 원래 둘씩 낳는 소인데 어째 하나밖에 안 낳았나?” 하고 물었다.
농부는 그만 부끄러워서 쌍둥이를 낳았다고 고백하더란다.
도둑맞고 죄 된다.
도둑을 맞으면 공연히 이 사람 저 사람을 의심하게 된다는 뜻이다.
옛날에 한 부자가 있었는데 한번은 장마가 져서 토담이 허물어졌다.
이때 아들과 이웃집 사람이 허물어진 담을 빨리 고치지 않으면 도둑이 들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런데 그날 밤 과연 도둑이 들어 재물을 훔쳐갔다. 그러자 부자는 아들에게는 선견지명이 있다고 칭찬하면서도 이웃에 대해서는 수상하다고 의심을 하더란다.
도로 아미타불
애써 한 일이 허사가 되었다.
옛날에 한 사내가 노새를 끌고 가다가 얼음이 얇게 얼은 강을 건너게 되었다.
얼음이 깨질까봐 입에서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무사히 강을 건너고 나니 마음에 없던 아미타불을 찾은 게 원통해서 죽겠다.
“네에미, 떡할 놈의 아미타불이다.” 큰 소리를 치고 돌아보니 아뿔사, 손에 쥐고 있는 건 고삐뿐이고 어찌된 셈인지 노새는 아직도 강 저쪽에 있는 것이 아닌가.
사내는 별수 없이 도로 강을 건너가면서 빌었다.
“도로 아미타불. 도로 아미타불.”....
독장수 구구는 독만 깨뜨린다.
허황한 계산은 자신만 망친다.
옛날에 독장수로 처음 나선 사내가 있었다.
큰 항아리 작은 항아리를 지게에 잔뜩 지고 시장으로 갈까 하다가 너무 사람이 많으면 쑥스러울 것 같아서 사람이 별로 안 다니는 산길에다 지게를 받쳐 놓고 있자니 잠이 솔솔 온다.
꼬박꼬박 졸면서 상상의 날개를 폈다.
만원짜리 독을 2만원에 팔고, 2만원짜리를 4만원에 팔고, 4만원짜리를 8만원에 팔고, 팔고, 팔고 하다 보니 문득 억이 넘고 10억이 넘었다.
그래 10억이 생기면 뭐를 하지?
우선 고래등 같은 집을 한 채 짓고,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부자라면 첩이 하나쯤 있어야지. 암! 이쁜 첩을 하나 둬야지, 그렇지만 마누라하고 첩이 싸우면 어떡하지? 그럴 때는 이년들을 그냥 팍! 하고 발로 차는 시늉을 하다가 지게 다리를 차는 바람에 독이 와르르 무너져 다 깨져버렸다고 한다.
돈 주고 못살 것은 지개(志槪)라.
부자들은 세상에 모든 것이 돈으로 다 되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는 말이다.
옛날에 큰 부자가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부자를 보고 굽신굽신 했지만, 유독 한 가난뱅이만은 부자를 보고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부자는 기분이 나빠서 “내 재산 십분지 이를 줄테니 절 해라.” 라고 했다.
가난뱅이는 “천만에 말씀, 내가 그깟 돈으로 고개를 숙여?” 하며 절을 하지 않았다.
부자는 재산 반을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가난뱅이는 “재산을 반씩 나누면 내가 당신과 동등한 위치가 되는데, 내가 왜 고개를 숙여?” 하며 요지부동이었다.
부자는 할 수 없이 전 재산을 다 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가난한 사람은 “그러면 내가 부자니까 당신이 고개를 숙여야지!” 하더란다.
* 지계(志槪) : 지조와 기개.
돌아가는 길이 질러가는 길이다
막히면 애써 뚫으려 하지 말고 돌아가라. 그게 빠르다.
옛날에 한 글방에서 선생이 아이들의 재간을 보려고 “너희들 누구든지 방안에 있는 나를 밖으로 나가게 하면 상을 주겠다.” 고 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선생을 나가게 하려고 벼라별 말을 다 했으나, 서생은 도무지 나가지 않았다.
그러자 한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밖으로 나가게 할 수는 없어도 밖에 있는 선생님을 안으로 들어오게 할 수는 있어요.”
선생은 “그래? 그럼 밖에 있는 나를 안으로 들어오게 해봐라.” 하며 밖으로 나갔다.
그러니까 아이는 “선생님, 선생님은 밖으로 나갔습니다. 밖으로 나갔어요.” 하고 웃었다.
선생은 아이의 재간에 감탄하고 상을 주었다고 한다.
돌절구도 밑 빠질 날이 있다.
돌중에서도 단단한 돌을 깎아서 만드는 게 돌절구다.
그런 절구라도 오랫동안 절구질(공이로 절구를 내려치는 것)을 하다보면 밑구멍이 닳아서 구멍이 날 수도 있듯이, 의지나 도의심이 강한 사람이라도 실수할 때가 있고, 예의염치에 밝은 사람이라도 바람을 피울 때가 있다는 말이다.
사람이 제 딴에는 옳게 살겠다고 결심을 굳게 하여 때로는 도덕군자나 요조숙녀로 살아 보지만, 생의 허무감 때문에 갑자기 가치관이 바뀌어 잠시 타락도 하게 된다.
말 그대로 가을바람에 새털 같은 인간이라 완벽히 산다는 건 언감생심이요.
허물이 있는 건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이다.
동냥은 못 줄망정 쪽박은 깨지 마라.
도와주지는 못 할망정 방해는 하지 마라.
우리나라 어느 곳을 가든지 장자 못이란 늪이 있고 거기에 얽힌 전설도 비슷하다.
옛날에 한 장자(부자)가 살았다.
이 사람은 몹시 인색해서 제 것이라곤 아무것도 남에게 주는 법이 없었다.
하루는 스님이 동냥을 왔는데 그때 마침 장자는 쇠두엄을 치고 있었다.
스님이 동냥을 달라고 하니까 장자는 “아나! 이것이나 받아라.” 하면서 두엄을 쇠스랑에 떠서 중의 바리때에 담아줬다.
스님은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집을 나갔다.
그때 이 집 며느리가 이 광경을 보고 하도 안타가워서 가만히 쌀을 떠서 스님한테 주었다.
그러니까 스님은 며느리 더러 뒤를 돌아보지 말고 무조건 따라오라고 했다.
며느리는 스님을 따라가는데 갑자기 벼락 치는 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 돌아보니 집이 있던
자리는 물이 차서 큰 늪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며느리는 돌아보지 말라고 했는데, 돌아보아서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장자 못 위의 산에는 반드시 며느리 바위가 있다.
동풍에 여문 다래 떨어지듯 한다.
다래는 익으면 땅에 떨어지는데, 다래가 익는 시기에 동풍이 잘 분다.
동풍이 불면 안 그래도 잘 떨어지는 다래가 전부 땅에 떨어지는 것처럼, 어떤 것이 쉽게 떨어져 나간다는 말이다.
* 우리나라에서 북풍은 지리적으로 높은 북쪽에서 부는 바람이라 해서 샛바람이라 하고, 동풍은 해가 뜨는 동쪽인 날의 시작, 즉 새로운 바람이라 해서 샛바람이라 불렸으며, 이 둘을 합친 북동풍은 당연히 높새바람이다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위도가 높아서 햋 볕이 잘 들도록 대부분 남향인데, 이로 말미암아 남쪽에서 집 쪽으로 마주보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바람이라 한 것이 단순화되어 마파람이 되었고, 서풍은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서쪽의 순 우리말인 하늬에다 붙여서 하늬바람이라 했다.
그리고 남도 지역에서 가을에 부는 바람을 갈(가을)바람이라 한다.
두더지 혼인
분에 넘치는 상대를 고르다가 결국 자기 수준에 맞는 상대와 혼인 하는 것을 말한다.
옛날에 한 두더지가 세상에서 제일 높고 센 가문과 결혼하려고 해에게 청혼했다.
그러나 해는 세상에서 제일 센 거는 내가 아니다.
난 구름만 만나면 빛을 잃으니 구름이 제일 세다며 사양했다.
그래서 두더지는 구름에게 청혼했다.
그러나 구름은 난 바람만 불면 날아가 버리니 바람이 제일 세다며 사양했다.
두더지는 바람을 찾아갔다.
그러나 바람도 내가 아무리 세게 불어도 은진미륵은 끄떡도 않으니 은진미륵이 제일 세다며 사양했다.
두더지는 은진미륵한테 갔다.
그러나 은진미륵은 나는 바람도 무섭지 않고 다 무섭지 않지만 오직 내 발 밑을 파는 두더지가 제일 무섭다며 사양했다.
그 말을 듣고 두더지는 “천하에 우리보다 높은 것이 없구나” 하면서 결국 같은 두더지에게 청혼하더란다.
딸은 이쁜 도둑
딸은 시집갈 때도 많이 가져가지만 시집간 뒤에도 기회만 닿으면 친정에서 뭐든지 가져가니 도둑이요, 그래도 이쁜 도둑이라는 말이다.
옛날에 시집간 딸이 친정에 다니러 와보니 어느 방죽 안에 천하명당 자리가 났다며 조상 묘를 이장하려 하고 있었다.
딸은 “친정은 그러지 않아도 잘 사는데 우리 시집은 못 사니 그 묘 자리를 주세요.” 하고 간청했으나, 친정아버지는 거절했다.
그러나 딸은 밤에 몰래 묘 자리로 파 놓은 곳에 가서 신고 간 나막신에다 물을 퍼서 지곽 안에 근근하게 물을 채워 놓았다.
다음날 친정아버지가 묘 자리를 가보니 물이 흥근하게 괴어 있어서 명당자리는 못 되는가보다 하고 다른 데다 묘를 썼다.
그 후 딸은 시집의 조상 묘를 거기다 썼는데, 시집은 차츰차츰 잘 살게 되고 친정은 점점 못살게 되었다.
그 후 친정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았지만 자기 딸이 한 노릇이라 그냥 내버려두었다 한다.
때리면 우는 척이라도 해라.
충고를 해주면 제발 듣는 척이라도 해라는 말이다.
옛날에 황천왕동이란 사람이 봉산 고을 이방의 사위가 되어서 장인의 덕으로 장교자리를 하나 얻어 구실을 다니는데, 마침 호환이 나서 호랑이 잡으러 갈 사람을 뽑게 되었다.
이방은 사위에게 호랑이 사냥은 위험하니까 병탈하고 가지 말라고 일러놓고는 수교에게도 자기 사위를 뽑지 말라고 부탁을 해두었다.
수교가 장청에 앉아 사냥갈 장교를 뽑는데, 물론 이방의 사위 황천왕동이가 첫 손가락에 뽑히나 이방의 부탁을 받은 청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부터 뽑고 나중에 와서 이면 수습으로 “황천왕동이!” 하고 이름은 부르면서도 병탈하기를 기다렸더니, 황천왕동이가 “네.” 하고 대답한 뒤에 다른 말이 없었다.
수교가 이방의 부탁을 무시하기가 어려워서 “자넨 무슨 병이 있다던데?” 하고 물으니 천왕동이는 “아니요.” 하고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무슨 병이 있다고 자네 장인이 말씀하시데 그려.” 그러자 황천왕동이는 “꾀병하구 호랑이 사냥 나가지 말라고 말씀합디다.” 라고 했다.
천황동이의 이 말에 동무 장교들은 허리를 잡고 웃고, 수교도 억지로 웃음을 참느라고 입을 빼물었다고 한다.
떡국이 농간한다.
옛날 우리나라에서 떡국은 나이를 한살 먹을 때마다 먹는 것으로 나이 먹은 값을 한다고 여겼다.
신라와 백제가 싸울 때 얘기다.
경주 북쪽에 부산성이라는 신라군의 산성이 있는데, 이 산성은 절벽을 이용해서 쌓은 성이라 백제군이 아무리 공격해도 함락되지 않았다.
그런데 바람 불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밤 신라군 앞에 어떤 할머니가 나타나 울면서, 큰아들 들자고와 작은아들 다자고가 신라군에 뽑혀 싸움터에 나간지가 일 년이 넘었는데 보고 싶어 죽겠으니 좀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군사들은 불쌍해서 할머니를 성 안으로 들여보내서 찾아보라고 했다.
할머니는 군사들 있는 데로 돌아다니면서 “들자고야, 들자고야!”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할머니는 밤새 ‘들자고야’ 를 부르며 돌아다니다가 날이 히끄므레하게 새며 신라군들이 다 잠들자, “다자고야, 다자고야!” 하고 외쳤다.
이 소리를 듣고 백제군은 물밀듯이 들어와 성을 함락시키고 말았다.
‘들자고야’는 신라군이 아직 덜 자고 있다는 신호로, 다자고야는 신라군들이 다 잔다는 신호였다.
그래서 이 고장 사람들은 아직도 그 할머니를 앙큼할미라고 부른다고 한다.
떡 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김치국 부터 마신다.
상대편에서는 전혀 관심도 안 두는데 혼자 일이 다 된 것처럼 나부댄다.
양녕대군은 태조의 첫째 아들로 일찍이 세자에 책봉되었지만, 아버지 태종이 세째 왕자인 충녕대군(나중의 세종대왕)에게 왕위를 전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는 세자 자리에서 물러나려고 일부러 미친 체하고 해괴한 짓을 했다.
그러자 둘째인 효녕대군은 세자 자리가 자기한테 올 것이라 지레 짐작하고 부왕한테 잘 보이려고 몸가짐이며 말씨를 각별히 조심하고 글도 열심히 공부했다.
양녕은 효녕이 떡 줄 놈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치국부터 마시는 짓을 하는 것이 아니꼬와서 하루는 효녕을 걷어차면서 “충녕을 모르냐?” 고 했다.
효녕은 그 제서야 사태를 알아차리고 절에 들어가서 북만 쳤다고 한다.
ㅁ
마구 난 창 구멍
마구 뚫은 창구멍으로 아무 말이나 함부로 내뱉는 사람을 비유한다.
삼국지에 보면 예형이 조조와 그 휘하 장수들 앞에서 그들을 혹평하는 장면이 나온다.
“순욱은 조상이나 다니고, 순유는 무덤이나 지키고, 정욱은 관문이나 여닫고, 곽가는 글귀나 읊조리고, 장요는 북이나 치고, 허저는 마소나 먹이고, 악진은 조칙이나 읽고, 이전은 격문이나 띄우고, 여건은 칼이나 갈고, 만총은 술이나 먹고, 우금은 담이나 쌓고, 서황은 개나 잡을 사람이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조조는 격노했지만 자기 손으로 예형을 죽이기보다 유표한테 보내고, 유표는 또 황조한테 보냈다.
예형은 황조를 보고 “서낭당 귀신같다.” 고 하다가 결국 죽음을 당했다.
마방집이 망하려면 당나귀만 들어온다.
마방집이 망하려면 죽을 먹는 말은 들어오지 않고 날것만 먹는 당나귀만 들어온다는 뜻으로, 이익을 남길만한 손님은 오지 않고 이익이 남지 않는 반갑지 않은 사람만 찾아온다는 말로거, 본업과는 관계없는 잡것만 끼어들어 일이 잘 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마방집은 옛날에 장거리 여행을 할 때 말이나 나귀들이 쉬어 가는 집이다.
그런데 말과 나귀는 먹는 것이 다른데, 말은 마른 풀 등으로 쑨 죽을 먹이기 때문에 별로 돈이 많이 들이지 않고도 만들 수 있는데, 나귀는 싱싱한 생것을 먹기 때문에 생것의 가격이 비싸므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나귀를 안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나귀를 받아야 하고, 그때는 오히려 마방에 손해가 된다.
* 객주가 망하려니 짚단만 들어온다.
마음 한번 잘 먹으면 북두칠성이 굽어본다.
마음 한번 잘 먹으면 천지신명이 보살펴준다.
함경도에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옛날에 동해 바다 한 가운데 천자가 나고 왕이 나는 명당 바위가 있었는데, 심한 풍랑 때문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풍수쟁이는 헤엄 잘 치는 누루하치라는 여진족 아이에게 명당 바위 얘기를 하고 거기다 네 아버지와 내 아버지 묘를 쓸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누루하치는 “거기다 두 집 묘를 써서 한 집은 천자가 나고, 또 한 집은 왕이 난다면야 오죽 좋겠습니까?” 하며 자기가 헤엄쳐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풍수는 누루하치가 천자의 자리에다 제 아버지 묘를 쓸까봐서 거짓말을 했다.
원래는 오른쪽 바위에다 묘를 쓰면 천자가 나고 왼쪽 바위에다 묘를 쓰면 왕이 나오는데 그것을 반대로 말해준 것이다.
누루하치는 바위로 헤엄쳐 가서 묘를 쓰기 전에 생각했다.
‘내가 여기까지 온 공도 크지만 이런 큰 명당을 알아낸 사람은 풍수니까 그 사람의 공이 더 크다. 공이 큰 사람의 자손이 천자가 되는 것이 도리다. 그러니 저 사람 아버지의 뼈를 천자의 자리에 묻자.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왕의 자리에 쓰자. 우리 집안에서 왕이 나오는 것만 해도 큰
복이다.’ 이렇게 마음먹고 왼쪽에다 풍수 아버지의 뼈를 걸고, 오른쪽에다 제 아버지의 뼈를 걸어놓고 육지로 헤엄쳐왔다.
풍수는 기다리고 있다가 어떻게 묘를 썼느냐고 묻자, 누루하치가 대답했다.
“예, 어르신네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왼쪽이 천자가 나는 자리라고 해서 어르신 아버지 뼈를 왼쪽에 쓰고 제 아버지 뼈는 오른쪽에다 썼습니다.”
풍수는 이 말을 듣고 탄식했다.
“네가 마음 한번 잘 써서 천자를 낳겠구나.”
풍수는 이성계의 조상이라고 하는데, 그 후 이성계는 조선의 왕이 되고 누루하치의 자손은 청나라의 천자가 되었다고 한다.
만석중이 놀리듯 한다.
황진이가 만석중이를 놀리듯 마음대로 놀린다는 말이다.
개성의 지족선사는 30년 동안 면벽 수련을 쌓은 도승으로 재를 올릴 때마다 시주 쌀이 하도 많이 들어와서 만석중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황진이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여 하룻밤 만에 파계하고 말았다고 한다.
말이 고마우면 비지 사러갔다가 두부 사온다.
상대편 말이 고마우면 이쪽에서도 마음을 후하게 쓴다.
옛날에 미련한 수령들은 죄인을 꾸짖을 때 “이곳 인심이 극히 악하다. 그러니 너 같은 놈이 안 나오겠는가!” 했다.
그러면 백성들이 듣고 다 노여워했다고 한다.
이와 반면에 현명한 수령들은 “이곳 인심이 순박한데도 네가 그것을 어지럽히니 죄가 더욱 중하다.” 하고 꾸짖었다는데, 그러면 백성들이 다 좋아했다고 한다.
말은 보태고 떡은 뗀다.
말은 옮길수록 보태지고 떡은 돌릴수록 떼어먹히듯이, 긴요한 것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세종대왕이 여진족을 칠 계획을 세우기만 하면 서울에 볼모로 잡혀와 있는 여진족 자제들이 어느새 알고 대궐 앞에 몰려와서 통곡을 하는 바람에 번번히 계획이 무산되곤 했다.
언제나 기밀이 누설되는 것이다.
세종대왕은 화가 나서 기밀을 누설하는 자를 잡아내라고 황희 정승에게 엄명을 내렸다.
황희 정승이 가만히 생각해보니 임금이 발설하지 않으면 기밀이 샐 리가 없지만, 이걸 왕에게 고하여 그치게 해야 하지만 곧이곧대로 간언하면 임금이 무안해 할까봐 한 가지 꾀를 생각해냈다.
그래서 황희 정승이 집에서 뒷간에 다녀와서는 부인에게 넌지시 거짓말을 했다.
“이상도 하지? 뒷간엘 갔더니 똥은 안 나오고 내 똥구멍엣 파랑새 한 마리가 날아갔어.”
마누라는 입이 근질근질해서 몸종에게 살짝 말했다.
“아이고, 우스워라. 대감 똥구멍에서 파랑새 두어 마리가 날아갔대.”
몸종은 자기가 좋아하는 하인에게 말했다.
“얘, 너만 알고 있어. 대감 똥구멍에서 파랑새 서너 마리가 날아갔대.”
이렇게 해서 삽시간에 서울 장안에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는데, 말이 엄청나게 보태져서 세종대왕의 귀에 들어갈 때는 파랑새가 수천 마리로 늘어나 있었다.
드디어 세종대왕이 황희 정승을 불러서 웃으며, “경의 똥구멍에서 파랑새 수천 마리가 날아갔다며?” 하고 물었다.
황희 정승은 비로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세종대왕은 이에 크게 깨닫고 그 후로는 여진족 토벌계획을 가장 가까운 측근한테도 발설하지 않았다고 한다.
말이 씨 된다.
불길한 말을 하지 말라. 늘 말하던 것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
전국시대 진나라의 무왕은 “내 낙양을 한번만 볼 수 있으면 바로 죽어도 한이 없겠다.” 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는 결국 낙양을 점령하고 당시의 천자 나라인 주나라 황실의 상징인 무거운 솥을 들다가 솥을 놓치는 바람에 발목이 짤려서 죽었다.
말이란 아 다르고 어 다르다.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다.
옛날에 어떤 산골에 꿩 부부가 살았는데, 그해 겨울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먹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까투리가 앞산에 사는 쥐를 찾아갔다.
까투리는 쥐구멍 앞에서 “여보게, 고양이밥 쥐 서방 있나?” 하고 불렀다.
쥐는 고양이밥이라고 부른데 화가 나서 “왜 찾소?” 하고 퉁명스럽게 나왔다.
까투리가 “우리 집 꺽 생원이 콩 좀 얻어 오래서 왔지.” 하고 반말로 쭉 나가니까, 쥐는 “나 먹을 것도 없는데 남 줄 게 어디 있소?” 하며 콧방귀를 뀌고 들어가 버렸다.
까투리가 빈손으로 돌아오자 남편인 장끼가 다시 쥐를 찾아갔다.
장끼가 쥐구멍 앞에서 “쥐 생원님 계시우?” 하고 부르자, 쥐가 화가 덜 풀린 얼굴로 나와서 “아, 꺽 생원 왔나?” 하고는 “아까 임자네 여편네가 와서 말을 왜 고따우로 하는가? 내가 고양이밥이면 저는 매 밥이 아닌가?” 하고 말했다.
장끼는 “아, 오줌똥을 한데로 누는 계집의 말에 뭘 그리 분해 하시우? 용서하시구려.” 하고 싹싹 빌었다.
그러자 쥐는 기분이 풀어져서 장끼에게 콩 다섯 알을 주었다고 한다.
말 잘하고 징역 가랴.
말을 잘하면 어려운 처지에 빠지지 않는다.
연산군이 한강에서 호화로운 뱃놀이를 하는데 표공수라는 사람이 뱃놀이를 그만두는 게 어떠냐고 입바른 말을 했다.
연산군은 화가 나서 표공수를 물에 한참 집어넣었다가 꺼내놓고는 물속에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예, 굴원이를 보았습니다.”
“그래, 굴원이가 뭐라고 하더냐?”
“예 예, 굴원이가 소신보고 말하기를 자기는 옹졸한 임금을 만나서 할 수 없이 들어왔지만 그대는 명군을 모시고 있으면서 어째 물속에 들어왔느냐고 하옵더이다.” 라고 했다.
연산군은 이 말을 듣고 표공수를 더 이상 벌하지 않았다고 한다.
맥도 모르고 침통 흔든다.
일의 요령도 모르면서 아는 척 덤빈다.
우리 몸에는 기가 흐르는 14개의 큰 맥이 있는데 이것을 경락이라고 하고, 이 경락 가운데 기가 뭉쳤다 흩어지는 중요한 지점이 365개가 있는데 이것을 경혈이라고 한다.
침은 바로 이 경락 속의 경혈에다 놓는 것이다.
그러니 맥(경락)도 모르면서 침을 놓아주겠다고 침통을 흔들면 사람 잡기 딱 알맞다.
먹기는 아귀같이 먹고 일은 장승같이 한다.
먹기는 굶어죽은 귀신같이 먹고 일은 장승처럼 전혀 하지 않는다.
경부선 철도를 놓을 때 일본인 기술자들이 조선 사람을 부리는데, 웃개(성과급)로 주면 돈을 더 벌려고 죽을 둥 살 둥 일을 하고 일당으로 주면 하루만 때우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일을 했으므로 “조선 놈들, 웃개로 주면 죽을까봐 무섭고, 일당으로 주면 장승 될까봐 무섭다.” 며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먹자는 귀신은 먹여야 한다.
먹자고 달려드는 사람은 먹여야 하듯이, 해달라는 대로 해주자는 말이다.
옛날에 신임 사또가 부임하면 으레 백성들에게 소 잡는 일, 술 담그는 일을 엄하게 금했는데 이런 것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한다.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겠다는데 무슨 수로 말릴 것인가?
먹지 않는 종
이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뜻이다.
옛날에 한 사내가 양식 대기가 힘이 들어서 마누라를 쫓아내고 밥 안 먹는 여자를 새 마누라로 얻었다.
새 마누라는 입이 뱅어 입처럼 작아서 숟가락도 입에 안 들어갔기 때문에 밥 먹는 모습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양식은 자꾸만 없어져서 이거 참 이상하다 생각하고 하루는 나무하러 가는 척하고 숨어서 봤더니, 이 마누라는 몰래 밥을 해가지고 머리 뒷 뚜껑을 따고는 머리 속에 밥 덩어리를 꾹꾹 처넣더란다.
먼저 배 탄 놈이 나중 내린다.
먼저 배를 탄 사람은 안쪽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내릴 때는 나중에 내리듯이, 서두르지 말라는 말이다.
옛날에 경상도 사천에 사또로 부임해가는 일행이 서빙고에서 배를 탔다.
배가 막 떠날 즈음에 한 여자가 마지막으로 타는데 보니 장옷을 머리에 쓰지 않고 척척 개어서 타는 폼이 아무래도 술집 여자 같다.
사또가 심심하던 차에 수작을 걸었다.
“이 보오 마누라, 어디 살어?
“과천 승방동(지금의 사당동) 산다우.”
“그래, 뭐 하고 살지?”
“술장수 한다우.”
사또는 자기 짐작이 맞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서방 성이 뭐야?”
“백가올시다.”
“흠 백가라. 백 서방 거느릴 만하군.”
서방을 백 명이나 거느릴 만하다고 했으니 분명히 욕이라 여자가 은근히 뿔이 나서 사또 마누라가 탄 가마 문을 썩 들치며 한마디 했다.
“아씨 잘 생겼네. 사천 영감 모실 만하군.”
영감을 사천 명이나 갈아댈 만하다는 뜻이니 욕을 사십 배로 얻어먹은 셈이라, 사또는 ‘에구, 망신이구나!’ 하고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배가 동작 나루에 닿자 맨 나중에 탄 술집 여자가 맨 처음에 내리게 되었다.
여자는 내리면서 한 마디를 더 쏘아부쳤다.
“여보게, 사천 동생 잘 가게.”
사또는 화가 나서 물었다.
“왜 내가 동생이야?”
“저렇게 무식한 것이 어떻게 정사를 해? 같은 배에서 내가 먼저 나왔잖아!”
점잖은 체면에 쫓아가서 때려줄 수도 없고 사또는 말 한마디 잘못 걸었다가 술집 여자에게
개망신을 당했다고 한다.
멱 진 놈 섬 진 놈
여러 방면에서 모여든, 탐탁지 못한 사람들을 통틀어 낮잡아 이르는 말로서 어중이 떠중이라고도 한다.
어중이 떠중이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아니하며 태도가 분명하지 아니한 사람, 혹은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어 쓸모가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어중이’에 별 뜻이 없는 ‘떠중이’를 붙여서 만든 말이다.
‘어중이 떠중이’처럼 쓰는 속담에 ‘섬 진 놈 멱 진 놈’이라는 게 있다. 섬과 멱을 바꾸어 ‘멱 진 놈 섬 진 놈’이라고 한다. 여기에 나오는 ‘섬’은 곡식 따위를 담기 위해 짚으로 엮어 만든 그릇이고, ‘멱’은 다른 말로 ‘멱서리’라고도 하며, 짚으로 날을 촘촘히 결어서 만든 그릇의 하나로 주로 곡식을 담는 데 쓰는 그릇이다. 그리고 멱과 비슷한 것으로 ‘멱둥구미’라는 것도 있으며, 이것은 멱에 비해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
곡식을 담기 위해 짚으로 엮어 만들었다는 점에서 서로 비슷한 하지만, 멱에 비해 섬이 부피가 크다.
‘멱’이라는 말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지만, 섬은 ‘쌀 한 섬, 두 섬……’ 할 때처럼 부피의 단위를 나타내는 명칭으로 살아남아 있다.
장에 가는데 멱을 지고 나온 놈도 있고, 섬을 지고 나온 놈도 있듯이, 여러 종류의 사람이 모여든 상황을 빗대어 만든 말이 ‘멱진 몸, 섬 진 놈’ 이다.
멱이 되었건, 섬이 되었건 지금은 비닐이나 천으로 만든 부대에 밀려 거의 사라지고 말았으며, 짚으로 엮은 가마니가 있기도 했지만, 가마니는 ‘가마쓰’라는 일본말에서 온 것이다.
* 섬 진 놈 멱 진 놈.
명태 한 마리 물고 딴전 본다.
명태 한 마리 입에 물고 명태 장사를 하는 척 하며 다른 장사를 하듯, 벌려놓은 일보다 더 중히 여기는 딴 일이 있다는 뜻이다.
옛날에 한 사또가 부임하자마자 그 고장의 특산품인 비단을 사들여 손수 자로 쟀다.
시비들이 병풍 사이로 엿보고 “뜻밖에 오늘 우리가 일개 비단 장사를 섬기게 되었구나!” 하고 한탄하더란다.
* 전 : 가게
모르는 게 약
어설프게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게 약이란 뜻이다.
옛날에 유식한 사람 둘하고 무식쟁이 하나가 길을 가다가 메추리 한 마리를 잡았다.
그러나 구워서 먹으려고 보니 양이 너무 작아서 한 사람이라도 배불리 먹는 것이 낫겠다 싶어 ‘구’짜를 세 번 써서 먼저 글을 짓는 사람이 다 먹기로 했다.
유식한 사람 둘은 글을 짓겠다고 흥얼흥얼 하는데, 무식쟁이야 글을 모르니까 무조건 고기를 집어 와작와작 깨물어 먹으며 “글이구, 뭐구 먹구나 보자.” 하더란다.
못난 놈 잡아들이라면 없는 놈 잡아간다.
제 아무리 잘났더라도 돈이 없으면 못난 놈 취급을 받는다.
말 잘하는 장의가 초나라에서 가난하게 살 때 얘기다.
정승 소양이 산에 놀러갔다가 천하의 보물인 화씨지벽을 잃어버렸다.
그날 소양을 따라 간 사람이 백 명이 넘었지만 유독 장의만이 의심을 받았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가난하기 때문이었다.
장의가 죽도록 두들겨 맞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내에게 입을 벌리고는 “내 혀가 있소, 없소?” 하고 물은 것으로 유명하다.
명주옷은 사촌까지 덥다.
한 사람이 부귀하면 가까운 친척까지 덕을 본다.
영조 때 정상순은 평안감사로 지내는 2년 동안 한 번도 연광정에 오르지 않을 정도로 청렴했는데도 친지들 40여 호를 먹여 살렸다고 한다.
* 연광정 : 평양 대동강 가의 절벽 위에 있는 정자로, 얼마나 경치가 좋은지 명나라 사신 주지번이 천하제일강산이라는 여섯 글자를 제 손으로 써서 현판을 걸었다. 또 고려 때 시인 김황원이 시상이 막혀서 시를 끝내 짓지 못하고 통곡한 곳으로 유명하다.
못난이 열명의 꾀가 잘난이 한명의 꾀보다 낫다.
대중의 지혜가 뛰어난 개인의 지혜보다 낫다.
옛날에 어떤 할머니가 팥 밭을 매고 있는데 백호가 내려와서 잡아먹겠다고 했다.
할머니는 “나는 팥죽을 제일 좋아하니까 팥죽이나 쑤어 먹은 다음에 잡아먹어라.” 고 했다.
백호는 그렇게 하라며 잠시 물러갔다.
할머니는 집에 와서 팥죽을 한 가마 쑤어 놓고 먹으려고 하는데, 백호한테 잡혀 먹힐 거를 생각하니 슬퍼서 먹지 못하고 울고 있었다.
그때 막대기가 들어와서 왜 우느냐고 물었다.
백호가 날 잡아 먹으려고 해서 슬퍼서 운다고 했다.
그러니까 막대기가 “나 죽 한 사발 주면 못 잡아먹게 하지.” 하자, 할머니는 막대기에게 죽 한 사발을 주었다.
막대기는 죽을 다 먹고 샛문 위에 올라가 있었다.
그 다음에 멍석이 와서 죽 한 사발을 주었더니 멍석은 죽을 먹고 뜨락에 가서 펼쳐졌다.
그 다음에는 지게가 와서 죽을 먹고 뜨락에 가서 섰다.
그 다음에는 송곳이 와서 죽을 먹고 부엌 바닥에 섰다.
그 다음에 달걀이 와서 죽을 먹고 아궁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 다음에 자라가 와서 죽을 먹고 함지 안에 숨었다.
그 다음에는 개똥이 와서 죽을 먹고 부엌 바닥에 드러누웠다.
조금 지나서 백호가 와서 “어 추워. 어 추워.” 하며 부엌 아궁이로 가서 불을 쪼이려고 했다.
그랬더니 달걀이 탁 터져 나와서 범의 눈에 가 맞았거든, 백호가 깜짝 놀라서 부엌 바닥으로
물러나다가 그만 송곳에 찔렸다.
백호는 또 놀래서 바닥을 탁 짚으니까 개똥이 물큰하고 묻어서 “에이 티껍다 에이 티껍다.” 하면서 물에 씻으려고 함지에 손을 넣었다.
그러니까 자라가 손을 칵 물었단 말이야, 백호는 또 놀래서 샛 문턱에 앉으려 하니까 막대기가 내려와서 머리통을 마구 까는 바람에 그만 죽고 말았다.
백호가 죽으니까 멍석이 와서 뚜루루 말고 지게가 지고서 한강에 갖다 버렸다.
무식한 도깨비 부적을 모른다.
보통 도깨비는 부적을 보면 도망가지만 무식한 도깨비에겐 부적도 소용이 없듯이, 미련하고 답답한 놈은 사리를 모르기 때문에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말이다.
옛날에 미련한 사람이 어떤 산 밑에서 그럭저럭 살고 있었다.
그 산의 산신령이 미련한 놈이 거기 살고 있는 것이 못마땅해서 일부러 찾아가서 “저 산은 나쁜 산이라 당신이 여기서 살아봤자 돈도 못 모으고 다복스럽게 살지도 못하니 다른 곳으로 이사 가는 것이 어떻소?” 하고 떠 봤다.
그러나 미련한 놈은 “이 산이 나쁜 산이라면 아마도 이 산에 잇는 산신령이 나쁜 산신령일 거요.
그 나쁜 산신령을 쫓아내면 되지 않겠소?” 하고 엇자로 나왔다.
산신령이 하도 같잖아서 물었다.
“어떻게 산신령을 쫓아낸단 말이오?”
“이 산을 파내서 산을 없애버리면 산신령도 쫓겨날 것 아니오?”
“아니, 당신 혼자서 무슨 수로 산을 파내서 없앤단 말이오?”
“아, 그야 아침저녁으로 한 삽 한 삽 파내면 제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없어지지 않겠소?”
“아침저녁으로 파낸다 해도 당신 생전에 다 파낼 것 같소?”
“그야 내 평생에 못 다 파내면 아들이 파내고, 아들이 못 다 파내면 손자가 파내고, 손자가 못
다 파내면 증손자, 고손자, 대대로 파내면 이 산이 없어지지 별 수 있겠소?“
산신령은 기가 막혔지만, 이 미련한 놈이 정말 산을 다 파낼 것 같아서 그 산을 떠났다고 한다.
무식한 벗은 원수 못지않게 무섭다.
무식한 친구는 제 딴에는 잘해준다고 하는 일이 친구를 해치는 수가 많으므로 원수보다 더 무섭다.
옛날에 성급한 사람하고, 미련한 사람하고, 잊어버리기 잘 하는 사람하고, 이렇게 셋이 길을 가는데, 벌이 날아와 성급한 사람 머리를 쏘았다.
성급한 사람은 화가 나서 벌을 죽이겠다고 쫓아갔다.
벌은 고목나무 구멍으로 들어갔다.
이놈은 벌을 잡으려고 나무 구멍으로 머리를 틀어박았는데 구멍이 작아 더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오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머리가 꼭 박혀 빠지지를 않아서 발버둥을 쳤다.
미련한 놈은 이걸 보고 머리를 빼내주겠다고 잡아당겼는데, 얼마나 힘껏 잡아당겼는지 모가지가
떨어지고 몸뚱이만 나왔다.
잊기를 잘하는 놈이 이걸 보고는 “이 사람 아까 올 적부터 모가지가 없었는가?” 하더란다.
물이 깊어야 고기가 모인다.
속이 깊어야 사람들이 따른다.
중국의 춘추시대에 초나라의 장왕이 백관을 모아 놓고 연회를 베풀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 촛불이 꺼지자, 누군가 어둠 속에서 왕이 사랑하는 애첩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애첩은 그자의 갓끈을 끊어가지고 왕한테 달려가서 즉시 불을 밝혀 그자를 잡아달라고 했다.
그러나 왕은 “아직 불을 켜지 마라. 모든 대부는 갓 끈을 끊고 실컷 마시며 즐기자. 갓 끈을 끊지 않는 자는 내가 벌하리라.” 하고 말했다.
이리하여 그 자리에 참석했던 사람은 모두 갓 끈을 끊었다.
애첩을 끌어안았던 자는 물론이고 모든 대부가 왕의 도량에 감탄하고 더욱 왕을 따랐다고 한다.
물은 건너보아야 알고 사람은 지내보아야 안다.
물은 건너보아야 깊이를 알고, 사람은 오래 사귀어봐야 됨됨이를 안다.
옛날에 한 영감이 세 며느리를 보았는데, 며느리를 불러 놓고 삼년 후 자기 환갑 때 무엇을 해줄 거냐고 물었다.
큰며느리는 소를 잡아준다고 하고, 둘째며느리는 돼지를 잡아준다고 했다.
그러나 셋째며느리만은 “그때 가봐야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시아버지는 큰며느리와 둘째한테는 고마워했지만 셋째한테는 서운하게 생각했다.
그날부터 셋째며느리는 우선 달걀 하나를 사서 병아리를 만들고, 그 병아리를 키워서 큰 닭을 만들고, 그 닭이 낳은 병아리를 모두 키워서 돼지새끼를 만들고, 그 돼지를 키워서 송아지를 사고, 그 송아지를 키워서 큰 소를 만들었다.
그럭저럭 시아버지 환갑날이 닥쳐왔다.
큰며느리와 둘째는 그동안 아무것도 준비한 게 없었지만, 셋째는 큰 소 한 마리를 축하선물로 바쳤다고 한다.
물탄 꾀가 전꾀를 속이려 한다.
얕은꾀가 온전한 꾀를 속이려 든다.
제나라 안영이 초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초 영왕은 안영을 골리려고 한 꾀를 내어 제나라 출신 죄수를 결박 지어 전각 앞으로 지나가게 했다.
초 왕이 짐짓 물었다. “그 죄수는 어느 나라 출신이냐?”
무사가 대답했다. “예, 제나라 사람입니다.”
“무슨 죄를 저질렀느냐?”
“예, 도둑질을 했습니다.”
초 왕이 안영을 돌아보며 물었다. “제나라 사람은 다 도둑질하는 버릇이 있소?”
안영이 대답했다.
“강남의 귤을 강북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고 합니다. 기후와 토질이 다르기 때문이죠. 이와 마찬가지로 제나라 사람은 도둑질을 안 합니다만 초나라에만 오면 도둑질을 합니다. 기후와 토질이 다르기 때문이죠.”
초 왕은 부끄러워 “과인이 그대를 모욕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모욕을 당했구려.” 하며 안영을 예로써 대접했다고 한다.
미련한 놈이 범 잡는다.
영리한 사람은 이리 재고 저리 재느라 큰일을 못하지만, 미련한 사람은 멋도 모르고 큰일을 하는 수가 있다.
옛날에 어떤 총각이 개를 한 마리 기르고 있었는데, 이 개가 사나워서 동네 어떤 개하고 싸워도 지질 않았다.
그런데 하루는 이 개가 조그만 짐승한테 물려서 깨갱거렸다.
총각은 화가 나서 “저 놈의 개새끼 죽여버린다.” 하며 뛰쳐나가려고 했다.
이걸 본 총각의 어미가 “이 미욱재기(미련한 바보)야, 그건 개가 아니라 범의 새끼야.” 하고 말렸지만 총각은 “그러면 범을 죽여 버린다.” 하고 뛰쳐나가더니 범의 꼬랑지를 잡고는 공중에 휘휘 돌리다가 땅에다 태기를 쳐서 죽였다.
그리고는 범 가죽을 장에 갖다 팔아서 돈으로 바꿨다.
그러자 이 미욱재기는 돈 버는데 재미가 나서 다시 범을 잡으려고 깊은 산중의 범들이 모여 있는 데까지 갔다.
미욱재기는 어미 범을 보고 기뻐서 득달같이 잡으려고 달려들었으나, 오히려 큰 범에게 잡히고 말았다.
큰 범은 미욱재기를 씹어 먹으려 했으나, 다른 범들이 서로 뺏어 먹겠다고 달려들자 혼자 먹을 욕심으로 통째로 삼키고 말았다.
범의 뱃속에 들어간 미욱재기는 평소에 먹고 싶던 범의 간과 천엽을 보고는, 이게 웬 떡이냐며 주머니에서 창칼을 꺼내서 베어 먹었다.
큰 범은 아픔을 견딜 수 없어서 “야, 이놈들아, 너희들 때문에 사람을 통째로 삼켜서 배가 아파 죽겠다.” 하며 다른 범들을 물어 죽였다.
범들이 다 죽은 다음에 이 미욱재기는 범의 배를 째고 나와 죽은 범들의 가죽을 벗겨 팔아서 잘 먹고 잘 살았다고 한다.
미운 중놈이 고깔을 모로 쓰고 “이래도 밉소?” 한다.
밉다고 하니까 더 밉살스러운 짓을 한다.
옛날에 한 영감이 사돈네 집에 갔더니 저녁을 대접하는데 꽁보리밥에 반찬이라곤 된장 지진 것 한 가지 뿐이었다.
이 영감은 사돈이 미워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배가 고프니 할 수 없이 그 밥을 먹는데 반찬이라고는 하나뿐 이라 자연히 숟갈이 된장 쪽으로 가니까, 인색한 사돈은 오히려 “사돈께서는 된장을 무척 좋아하시는군요.” 하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