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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수 통기타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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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크랩 "패티 김"의 노래에 얽힌 사연들..
벽강 추천 0 조회 153 17.10.31 14:5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패티 김"의 노래에 얽힌 사연들..


패티김은 자신이 부른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물으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9월의 노래>를 꼽는다.
길옥윤 작사?작곡으로 다른 노래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가사를 새삼 적는 이유는 그 심오하고 절절한 내용을 다시 한 번 반추해보기 위해서다.
길옥윤과 박춘석의 멜로디가 격조 높고 착착 감겨드는 것은 그들이 이 나라 최고 작곡가였으니 응당 그러하더라도,
가사마저 어느 시인의 명시보다 감동적이고 은유의 깊이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그저 우리에게 내린 축복이랄 밖에.
패티김이 어떤 가수도 추종할 수 없는 돌올突兀한 경지에 이른 데는 가사가 지닌 이러한 높은 품격도 일조한 것이다.


구월이 오는 소리 다시 들으면 꽃잎이 피는 소리 꽃잎이 지는 소리
가로수의 나뭇잎은 무성해도 우리들의 마음엔 낙엽은 지고
쓸쓸한 거리를 지나노라면 어디선가 부르는 듯 당신 생각뿐


구월이 오는 소리 다시 들으면 사랑이 오는 소리 사랑이 가는 소리
남겨진 한마디가 또다시 생각나 그리움에 젖어도 낙엽은 지고
사랑을 할 때면 그 누구라도 쓸쓸한 거리에서 만나고싶은 것


길옥윤이 작곡하여 패티김에게 건네준 노래에는 대개 사연이 있다.
가장 흔한 이유는 주색잡기에 빠져 길옥윤이 며칠씩 외박한 뒤 건네준 곡이다.
길옥윤은 며칠 만에 들어와도 절대 말로 사과하는 법은 없었다.


패티김 역시 말 한 마디 없이 지내다보면 얼마 뒤 제자를 시켜 슬그머니 악보를 한 장 건넨다.
<사랑하는 당신이><그대 없이는 못 살아><사랑이란 두 글자><연인의 길> 등이 그렇게 탄생되었다.
<9월의 노래>에는 그런 특별한 사유는 없지만 가사가 너무 애절하여 부를 때마다 눈물에 잠긴다.


다음으로 좋아하는 노래는 박춘석이 작곡한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이다.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 겨울은 아직 멀리 있는데
사랑할수록 깊어가는 슬픔의 눈물은 향기로운 꿈이었나
당신의 눈물이 생각날 때 기억에 남아있는 꿈들이
눈을 감으면 수많은 별이 되어 어둔 밤하늘에 흘러가리
아 그대 곁에 잠들고 싶어라 날개를 접은 철새처럼


눈물로 쓰여진 그 편지는 눈물로 다시 지우렵니다.
내 가슴에 봄은 멀리 있지만 내 사랑 꽃이 되고싶어라
아 그대 곁에 잠들고 싶어라 날개를 접은 철새처럼
눈물로 쓰여진 그 편지는 눈물로 다시 지우렵니다
내 가슴에 봄은 멀리 있지만 내 사랑 꽃이 되고싶어라


이 노래는 1983년 부산 공연 때 작곡되었다. 박춘석은 공연이 끝난 뒤 밤을 새워 이 곡을 지었다.
다음날 새벽바람에 박춘석은 패티김의 방으로 전화를 넣어 즉시 로비로 내려오라 일렀다.
패티김이 내려가자 피아노 앞에 앉아서 기다리던 박춘석은 말없이 멜로디를 들려주었다.
전주를 듣는 순간 패티김의 온 몸에 전율이 왔다. 이어 박춘석은 즉석에서 가사를 붙여 노래를 불렀다.
박춘석은 노래도 썩 감미롭게 잘하는 편이었다.
패티김은 자신도 몰래 눈물을 흘리며 박춘석의 연주와 노래에 흠뻑 빠져들었다.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박춘석은 악보를 정리하여 패티김에게 녹음을 시켰고, 음반이 출시되자 초유의 히트를 기록했다.



다음으로는 박춘석이 지은 <가시나무새>를 좋아한다.


황혼이 밤을 불러 달이 떠도 고독에 떨고 있는 가시나무새
어둠이 안개처럼 흐르는 밤에 환상의 나래 펴네
그대 곁에 가고파도 날 수 없는 이 몸을
그대는 모르리라 가시나무새 전설을
가시나무새 가시나무새 나를 수 없네 나를 수 없네
서글픈 가시나무새


찬바람 이슬 내린 가지 위에 외롭게 떨고 있는 가시나무새
한숨이 서리되어 눈물 흘러도 님 찾아 나를 수 없네
그대 곁에 가고파도 나를 수 없는 이 몸을
그대는 모르리라 가시나무새 전설을
가시나무새 가시나무새 나를 수 없네 나를 수 없네
서글픈 가시나무새


가시나무새는 평생 울지 않다가 때가 되면 스스로 가시에 가슴을 찔려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아름답게 운다는 전설의 새다.
박춘석은 자신의 잃어버린 애절한 사랑을 그렇게 형상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처음으로 불러 패티김에게 유명세를 안겨준 <초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가슴속에 스며드는 고독이 몸부림칠 때’로 시작하는 가사가 실감될 리 없어서였으리라.
무대에서 가장 많이 불렀고 나이 들면서 가사의 의미가 조금씩 가슴을 울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은 들지 않는단다.


<빛과 그림자>는 길옥윤과 패티김이 친하게 지내던 한 부부 이야기다.
어느 날 그 친구의 부인이 집을 나간 뒤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부인이 정신질환을 앓아 알뜰살뜰 보살폈는데, 한순간의 실수로 혼자서 집 밖으로 나가버렸던 것이다.


사랑은 나의 행복 사랑은 나의 불행
사랑하는 내 마음은 빛과 그리고 그림자
그대 눈동자 태양처럼 빛날 때 나는 그대의 어두운 그림자
사랑은 나의 천국 사랑은 나의 지옥
사랑하는 내 마음은 빛과 그리고 그림자


작곡하는 길옥윤도 울었고 노래를 부르는 패티김도 울었다.
아내 잃은 남편의 애절한 순애보를 생각하면서....



<이별>은 길옥윤의 끝 모르는 주색잡기로 부부가 별거하고 있을 때 받은 곡이다.
어느 날 뉴욕에 머물던 길옥윤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패티, 내가 새 곡을 썼는데 들어볼래요..?”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냉정한 사람이지만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을 잊을 수는 없을거야
때로는 보고파지겠지 둥근 달을 쳐다보면은
그날 밤 그 언약을 생각하면서 지난날을 후회할거야
산을 넘고 멀리멀리 헤어졌건만
바다 건너 두 마음은 떨어졌지만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냉정한 사람이지만
그렇게 사랑했던 기억을 잊을 수는 없을거야


길옥윤은 특유의 나지막한 음성으로 <이별>을 불렀다.
별거 중에도 길옥윤은 패티김을 염두에 두고 계속 곡을 지어 넘겨주곤 했었다.
<이별>에는 이별을 아쉬워하는 통한과 패티김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길옥윤은 술과 결혼생활 중 하나를 택하라는 패티김의 마지막 경고에도 불구하고 끝내 술을 택했다.
어릴 때 큰집으로 양자를 보낸 부모를 두고 자신을 버렸다고 여기는 恨을 삭이지 못해서였다.
그 한은 결국 두 사람을 갈라놓았고, 길옥윤의 천재적 재능마저 황폐화시켜버렸다.


길옥윤이 보내온 악보에는 제목이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로 되어 있었다.
이에 패티김이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 이별로 고치면 어떻겠느냐’고 전화하여 길옥윤의 동의를 받아 음반을 발매했다.
노래가 나오자마자 패티김 생애에서 가장 큰 반향이 돌아왔다.


전국 방방곡곡의 집이고 길거리고 온 종일 <이별>이 울려퍼졌다.
<이별>은 결과적으로 두 사람의 이혼기념곡이 되어버렸다.
<이별>이 한창 상종가를 치고 있을 때, 두 사람은 조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식적으로 이혼을 선언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랑하는 마리아>는 당초 조영남에게 준 곡이었으나 뚜렷한 이유도 없이 조영남이 차일피일하자 패티김이 출반했다.
<딜라일라>를 비롯하여 남의 노래로 먹고살다 보니 조영남은 Originality에 대한 애착이 없었던 것이다.
‘마리아 마리아 사랑하는 마리아’ 하고 다정하게 부르는 도입부를 보더라도 당초 남자가수를 염두에 두고 지은 가사다.


“얘, 그걸 왜 이제 와서 얘기하니? 미리 알았더라면 절대로 내가 안 불렀지.”
「그녀, 패티김」을 집필하기 위해 패티김을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조영남이 <사랑하는 마리아>가 자신에게 주어진 곡이었다는 내막을 얘기하자 패티김이 즉각 보인 반응이었다.
패티김은 그때까지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다른 얘기지만 <잊혀진 계절>도 비슷한 사연을 간직한 노래다.
서울음대 출신인 이범희가 선배 조영남을 염두에 두고 작곡하여 그에게 주었으나 오래도록 취입하지 않아 부득이 이용한테

넘겼던 것이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출반이 늦어지는 바람에 당초 가사의 ‘구월의 마지막 밤을’이라는 부분도 ‘시월의 마지막 밤을’로 고쳐 불러야 했다.
조영남은 지금도 10월이 되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잊혀진 계절>을 들으며 가슴을 친단다.
하긴 <사랑하는 마리아>나 <잊혀진 계절>보다 훨씬 더 소중한 두 여인도 놓쳐버린 ‘허당 조영남’ 아닌가.


<서울의 찬가>는 군사정권 특유의 관권 개입으로 탄생했다.
어느 날 서울시장 김현옥이 길옥윤과 패티김을 시청으로 불렀다.
모든 지원을 해줄테니 서울의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하나 만들어달라고.
노래가 나오자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기대를 몇 갑절 뛰어넘는 폭발적인 호응이 있었다.


서울시 산하 각급 공공기관에서는 새벽부터 확성기로 <서울의 찬가>를 틀어댔다.
주머니는 어느 때보다 두둑해졌지만 새벽잠을 깨우는 노래의 주인공이라는 이유로 욕도 많이 먹었다.
패티김은 길옥윤의 발인 때도 <이별>을 불러달라는 주문을 마다하고 진혼곡으로 <서울의 찬가>를 불렀다.


경쾌한 행진곡은 어떤 슬픈 장송곡보다 조문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서울의 찬가>는 현재 세종로공원에 노래비로 남아 있다.
관제官製가 다 그렇듯이 가사에는 별 감동이 없어 생략한다.


패티김의 노래도 금지곡으로 묶였던 게 있다.
<4월이 가면>과 <사랑하는 당신이>다.
이유는 표절.
누가 지은 무슨 노래를 표절했다는 소명疏明도 없이 공보처 어느 7급 공무원이 소일거리로 들이댄 잣대였다.
길옥윤이 행여 남의 곡을 흉내낼 분이던가. TV와 라디오 방송이 금지되었지만 패티김은 ‘고래?’ 하고 말았다.


공연 스케줄에 밀려 PD가 집으로 직접 찾아와 사정사정해야 TV에도 출연하는 정상 가수 아니던가.
사실 TV는 그 영향력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출연하는거지 공연이나 음반 판매수입에 비하면 출연료는 껌값이다.
무대에는 제약이 없었기 때문에 패티김은 공연 때마다 방송 금지된 두 곡을 불러 공감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2016/10/12 - 휘뚜루 -

구월의 노래 / 패티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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