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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87-14일째. 여성 여럿 울리는 순례길
2차 여행 14일째.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에 느긋하게 잠에서 일어난 달형제는 자신이 너무 늦게 일어난 것이 아닌가 하고 같이 잠을 잔 동료에게 시선을 돌린다. 상대방은 언제 일어났는지 성경을 보고 있다.
‘음… 저분은 카톨릭 분이신데 성경을 자주 보시네. 지난 번 숙소에서도 항상 성경을 보고 계시더만. 저런 모습은 보고 배워야 하는데… 어찌 난 순례길에서 이리 성경이 안읽혀지는지 몰라.’
“굿모닝~”
달형제의 인사에 상대방도 인사를 전한다.
“내려가서 아침 먹어야죠.”
같이 부엌으로 내려가니 할머니는 이미 아침 준비를 다 끝내놓으셨다. 빵 굽는 고소한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어제 밤 그리 잘 먹고도 금방 배가 고파지는 식탐 달형제다.
“굿모닝. 어제 저녁 아주 맛있게 먹었어요. 너무나 훌륭한 식사였어요. 감사 드립니다.”
“우리집에서라도 잘 먹어야죠. 앉으세요. 아침도 많이 드세요.”
특별한 빵에 다양한 종류의 잼과 밀크커피가 준비되어 있다. 달형제가 아침으로 무엇을 마시는지 잘 기억하고 계시는 할머니시다.
“제가 그 동안 빵을 많이 먹었는데 여기처럼 맛있는 빵은 없어요. 정말 특별한 맛이에요.”
“잼, 꿀 뿐만이 아니라 빵도 유기농으로 만든 걸 특별히 주문한 거라서 그래요.”
특별한 재료로 만든 특별한 음식을 너무나 잘 먹는 두 사람을 위해 몇 번이고 빵을 구워내 주시는 할머니시다.
‘아… 예수님… 이런 대접을 받으며 순례한다는 것이 참… 정말 그 만큼 거룩해져야 하는데 말입니다…’
아침 식사를 배불리 한 두 사람은 위층에서 짐을 정리하고 내려온다. 적어도 10유로는 기부해야지 했던 달형제는 마침 전대에 10유로 지폐와 잔 돈이 있어 몽땅 긁어 챙긴다. 대략 20유로는 되는 듯 싶다. 그리고 할머니가 안보이는 사이에 두 사람은 큼직한 기부금함 문을 열고 그 위에 살며시 기부금을 각각 놓는다.
이제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이다. 작별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달형제라 할지라도 이렇게 특별한 친절을 받고 갈 때는 아쉬움도 특별하게 남는다.
“어쩌면 내년에 또 여기 순례하러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뜻하심이 있으면 또 보내주시겠지요. 다음에 뵐 때까지 꼭 건강하게 계세요.”
“그래요. 건강하게 산티아고까지 가고 다음에 오면 꼭 또 들르세요.”
“알았어요. 정말 꼭 건강하게 계셔야 되요. 그래야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깐.”
꼭 껴안으며 석별의 정을 나눈 달형제는 뒤로 돌아 나오며 또 다시 하루 일정을 시작한다.
“달, 여기도 예전과는 상당히 변화가 있네요. 예전에는 사립 알베르게가 이렇게 많지 않았었는데.”
조금은 늦은 아침 길을 달형제와 나란히 걸으며 쓰레기 순례자가 말한다.
“그래요? 아스팔트를 새롭게 깐 것은 알겠는데요.’”
길 바뀐 것만큼은 누구보다 예민하게 아는 달형제가 편안한 아스팔트 길을 상당한 속도로 상대방과 보조를 맞춰 걸으며 대답을 한다.
“여기에 알베르게가 몇 개 생겨 가지고 서로 싸움이 일어났어요. 순례자들이 많이 머무는 동네가 아니니까 경쟁이 치열해진 거죠. 지금은 경기까지 안좋으니까 곧 몇 개는 문을 닫을 거에요. 돈을 위해서 알베르게를 운영하면 그렇게 되는데 요즘 많은 알베르게들이 그래요. 돈을 벌기 위해서 운영하죠.”
“그만큼 요즘 먹고 살기 힘들어진 세상이 된거겠죠. 에이그… 젊은 사람들은 어쩌나.. 자, 그건 그렇고 여기서부터는 먼저 가세요. 저는 이제부터는 더 천천히 갈테니까요.”
“그래요. 또 어디선가 우리 만날 겁니다. 당신 소식에 대해서는 금방 알 수 있으니까요.”
“하하하~ 그런가요? 그럼 제가 당신 가까이 있다는 소문 들리면 찾아 오세요.”
작별 인사를 하고 특별히 기분 좋은 아침의 신선함을 만끽하며 걸어가는 달형제다.
‘여행, 순례의 참 즐거움은 역시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거야. 하나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 분들을 붙여주셔서 저의 지친 심신에 이렇게 기운을 넣어주십니다. 정말 최고의 대접을 받고 최고의 기부를 했어요. 할렐루야~’
익숙한 길이 이어지고 곧 바위로 수놓아져 있는 언덕길을 오르니 저 멀리 언덕 아래로 부르고스가 보인다. 딱 맞게 먹으며 쉬는 타이밍이라 적당한 곳을 찾으려 하는데 뒤 쪽에서 중년의 한국인 부부로 보이시는 분들이 오신다.
바위 투성이의 언덕길
‘오~ 중년분들. 반가와라.’
젊은 청년들보다 이런 분들이 더 반가운 달형제다. 만나기 드물기 때문이기도 하고 속 깊은 얘기를 할 수 있기도 해서 그렇다. 1차 여행 때 같았으면 떡고물을 바라는 것이 있어서 이기도 했겠지만 워낙 풍성하게 부어주시는 2차 여행 때는 그런 마음이 거의 사라졌다.
“안녕하세요.”
일단 혹시나 해서 한국 인사말을 던져 본다. 역시나 한국말로 대답하신다.
“아, 안녕하세요. 한국 분이시군요.”
“네. 두 분 이런 도보 순례 여행을 하시고 참 대단하십니다.”
“아 뭐 그런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맨발로 걸으시나요?”
“하하하. 네. 그렇게 됐습니다. 혹시 크리스찬이세요? 저는 개신교입니다만.”
“네. 우리도 개신교에요. 그런데 왜 맨발로…”
“오~ 개신교시군요. 그러면 말씀 나누기 편하겠네요. 예수님을 사랑해서 맨발로 걷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런 길을 맨발로…”
“두 분 좀 쉬었다 가시지요? 저쪽으로 가면 쉴 만한 곳이 있습니다.”
세 사람은 자리를 이동해서 부르고스가 저 멀리 보이는 전망좋은 그늘 자리를 잡는다. 달형제가 매트리스를 깔고 그 위에 다 같이 앉는다
.
저 언덕 아래 지평선 자락이 부르고스 대도시
“언제부터 이렇게 걷고 계십니까?”
남편 순례자가 호기심을 가지고 물어보기 시작한다.
“글쎄 그것이 참 말씀 드리기가…. 실은 프랑스에서부터 산티아고까지 이미 40여일에 걸쳐 순례를 끝냈는데 예수님께서 다시 한 번 하라고 해서 그러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 두 달이 넘어 가네요.”
“전부 맨발로 걸으셨어요?”
“뭐… 사명이니까요.”
달형제의 옆 자리에 앉으신 부인 순례자께서 갑자기 눈물을 흘리신다. 그 이유를 아주 잘 아는 달형제가 웃으며 말을 한다.
“제가 이렇게 좀 불쌍히 보여도 저 아주 행복합니다. 아시잖아요. 예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인지~.”
“네. 알지요.”
그러면서도 계속 눈물을 흘리시면서 말씀하신다.
‘쩝… 눈물 흘리실 만도 하것다. 옷은 이렇게 찢어져 어깨가 드러나지, 다리는 시꺼멓고 먼지 투성이니…’
“여보, 가방에서 먹을 것 좀 꺼내세요. 이 분 배고프시겠어요.”
부인의 말씀에 배낭에서 과일과 빵을 꺼내며 달형제에게 권하는 남편 분이시다.
“형제님 아침 안드셨죠? 우리는 아까 식당에서 뭣 좀 먹고 왔거든요. 이것 좀 드세요.”
“아침 너무나도 잘 먹었어요. 그리고 마침 저도 간식 먹으려는 참이긴 했는데 저도 먹을 것 있어요.”
“형제님 가지고 계신 것은 나중에 드시고 지금은 이것 드세요.”
“감사합니다. 두 분과 같은 선한 순례자분들 덕에 제가 그 동안 죽지 않고 살아서 여기까지 왔네요.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서 산티아고까지 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또 눈물을 흘리시는 부인 순례자시다. 이 와중에도 주신 음식을 맛있게 먹는 달형제는 상대방을 위로하는 말로 활짝 웃으며 말을 잇는다.
“저기… 제가 이렇게 순례하고 있어도 여기 산티아고 순례자들 중에서 가장 행복한 순례자일 겁니다. 저 만큼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는 순례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같이 즐거워하셔도 됩니다.”
“그래요. 요 샌드위치 빵은 아침 먹으며 식당에서 산 건데 형제님 가다가 배고플 때 드세요. 이럴 줄 알았으면 몇 개 더 살걸 그랬어요.”
“아닙니다. 이 걸로 충분합니다.”
뭔가 하나라도 더 먹이시려는 두 분의 정성에 새삼 한국 사람의 따뜻한 정서와 그리스도인간의 교감을 느끼는 달형제는 하나님께서 한국 사람들에게 참 좋은 것을 주셨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것만큼 선한 행위가 없으니.
대접에 대해 뭔가 보답이라도 해야겠다는 달형제는 순례길에서 경험한 몇 가지 노하우를 알려 드린다. 대도시에서 화살표 따라가는 법, 길 잃었을 때의 대처법, 메세타 지역을 통과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 등등.
한참을 먹고 얘기하니 이제 슬슬 또 길을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 자리를 정리하고는 세 사람은 서로에게 감사와 안부를 여러 번 전하고는 아쉬운 작별을 한다. 뒤에서 배웅하고 천천히 언덕길을 내려가는 달형제는 문득 웃음을 띄우며 즐거운 회상을 한다.
‘참… 여기 순례길에서 여자분들 여럿 울리는 구나…’
뜨거워진 햇빛을 즐겁게 걸어가며 그 동안 만났던 많은 분들 중 특별한 몇 분이 떠오른다.
‘특별하게 고마웠던 분들이었지~.’
곧 길은 두 갈래길로 갈라지고 달형제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지난 번과 같은 길을 택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왼쪽의 가고자 하는 길이 아스팔트 포장 도로이므로. 새로운 길로 가볼까 했으나 햇빛도 뜨겁고 몸도 피곤하고 해서 발바닥에 편한 길을 택한 것이다.
점점 달구워지는 아스팔트 길을 지팡이에 의지하며 제법 빠르게 걷는다. 한참을 걸으니 저 앞에 낯익은 얼굴의 순례자들이 바 앞의 탁자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다. 일본인 노부부 일행이다. 쉴 때가 됐는데 마침 잘됐다 싶어 인사를 하고 달형제도 건너편 탁자에 앉는다. 마침 탁자 옆에는 할머니 순례자 한 분이 앉아 계시는데 이 분을 3일 전 ‘그라뇬’에서 본 적이 있다.
“안녕하세요. 그라뇬에서 머무르셨었죠?”
“네. 안녕하세요.”
“몸 컨디션은 어때요? 괜찮으세요? 이렇게 더운 날에 순례하시는 것이 힘드실텐데. 혼자서 이런 여행을 하시다니 대단하세요.”
“아니에요. 저는 천천히 가니까 괜찮아요. 당신이 힘드시겠어요. 발 괜찮아요?”
“네. 보시다시피 멀쩡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항상 보호해주시고 인도해주시니까요.”
고개를 끄덕이시는 할머니는 가방에서 바나나 두 개를 꺼내어 달형제에게 건네준다.
“이거 드세요.”
“아닙니다. 저도 먹을 거 있어요.”
“과일이 무거워서 들고 가기 힘들어서 그래요. 드세요.”
“감사합니다. 당신을 위해서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어디서 오셨어요? 그리고 성함이..”
수첩에 이름을 적는 달형제는 속으로 생각한다.
‘하기사… 남들 다 먹고 있을 때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으니 불쌍해 보이기도 하것다.. 뭐.. 이렇게 해서 긍휼함을 일으키면 되는 거지… 사명 감당!’
받은 바나나 두 개를 그 자리에서 바로 먹어 버린 달형제는 다 먹고 나서 속으로 또 생각한다.
‘쩝… 이렇게 게걸스럽게 먹으면 더 불쌍해 보일텐데… 에참.. 이런 궁상 떨면 안되는데..’
괜히 멋쩍은 달형제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다.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할머니께 인사를 하고 일어서며 다른 순례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길을 다시 떠난다.
마을을 벗어나자 곧 길은 또 두 갈래 길로 나누어진다. 1차 여행 때는 이 갈래 길을 찾지 못하고 지나쳤지만 이번에는 갈래길에서 선택의 고민을 한다. 그리고는 다시 똑 같은 선택을 하는 달형제다. 순례길다운 비포장길보다는 포장길을. 1차 때와 똑 같은 길의 포장 도로를. 그리고 이 때부터 시작되는 기나긴 포장길의 여정이 시작된다.
변변한 그늘 하나 없는 포장길을 걷고 또 걸으며 뜨거운 햇빛과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을 만끽하며 지팡이에 의지하며 걸으니 그래도 어느새 대도시의 입구에 들어선다.
‘음.. 이번에는 생각보다 빨리 쉽게 아스팔트 길을 통과했네..’
그늘에 앉아 오전에 한국인 부부께 받은 보까디요(샌드위치빵)를 먹으며 한숨 돌리는 달형제는 오늘의 진짜 여정은 지금부터라는 생각을 갖는다.
‘그나마 아스팔트는 하얀선이 있어서 나았지. 지금부터는 따가운 블록 도로를 걸어야 하는데... 그나마 지팡이가 있어 수월하기는 하지만…’
한참을 쉰 후 다시 길을 나서는 달형제는 밟기 좋은 블록을 골라가며 도심 속으로 점점 들어간다. 가이드 북의 지도와 오늘 머물 알베르게 지도를 보며 전진해 나간다.
한참을 걸어도 지도 속의 위치가 안나오자 시민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가다 보니 겨우 지도 속의 위치가 확인 된다. 그러나 그 때부터 또 미로 찾기다. 숙소의 위치를 짚어가며 몇 번을 물어가노라니 드디어 성당 같은 건물이 보인다.
‘휴… 드디어 보인다. 알베르게 표시간판이... 하여튼 대도시에서 길 찾기란 것이…’
문 앞에 이르르니 문은 잠겨져 있고 옆에 초인종이 있다.
‘역시 도시 스타일이구나. 이래서 도시가 싫다니깐. 왜 문은 잠궈두고선....’
초인종을 누르니 스페인어가 들린다. 이에 스페인어로 대답하는 달형제다.
“페레그리노(순례자).”
이 말 밖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는 달형제다. 곧 문이 열린다. 여성 봉사자분으로 보이는 분이 나와서는 살짝 문에서 떨어져 있는 달형제를 바라보며 말을 건넨다.
“오! 맨발로 걸으시는 순례자.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네?”
“당신의 끄레덴시알을 우리가 가지고 있거든요.”
“아! 그래요? 벌써 끄레덴시알이 도착했나요?”
오늘 오전에 쓰레기 순례자와 헤어지고 혼자 걷고 있는데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 이틀 전 또산또스에서 같이 머물렀던 스페인 남자 순례자가 다가와서는 달형제에게 한가지 말을 전했다.
“달, 당신의 끄레덴시알이 지금 또산또스에 있는데 주인장 후안이 그걸 당신에게 전해주려고 당신이 오늘 어디에 머물지 알고 싶다는데요.”
“어? 그래요?”
하며 달형제는 자신의 배낭을 뒤져 본다. 역시나 없다. 그러고 보면 어제 저녁은 머물면서 숙소 등록이나 도장 찍는 것 같은 건 하지도 않았다. 워낙 친하다보니^^
“음. 오늘은 부르고스의 ‘에마우스’ 알베르게에서 머물거에요.”
“그럼 제가 지금 전화로 당신이 오늘 갈 곳을 알려드릴 테니 거기서 끄레덴시알을 받으세요.”
“그런데 어떻게 그 먼 곳에서 오늘 전달받죠?”
“주인장이 자전거 순례자에게 부탁한데요. 전해달라고.”
“아! 그렇군요. 자전거는 한 나절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니깐.”
이렇게 해서 끄레덴시알을 이곳 알베르게에서 받기로 했었는데 그 같은 사실을 전혀 생각치 못한 달형제는 진짜 자신의 끄레덴시알이 자신보다 먼저 와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어서 감탄이 연속적으로 나온다.
‘참 가지가지로 신세를 지는구나..’
안으로 들어간 달형제는 안내 테이블에 앉아 알베르게 이용 방법에 대해 설명을 듣는다. 성당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로서 숙박 이용료는 5유로, 저녁과 아침 식사는 기부제로 운영된다고 한다. 이에 10유로를 내놓는 달형제다.
“달, 아닙니다. 당신은 10유로를 다 낼 필요 없습니다. 5유로만 내면 됩니다.”
“아닙니다. 저 돈 있습니다. 다행히도 오면서 기부금을 충분히 받았거든요.”
봉사자는 10유로를 받더니 기어이 5유로를 거슬려 준다.
“여기에는 한국인 신학생도 한 명 있어요. 이 따 만나 뵐 수 있을 거에요. 그리고 저를 따라오세요. 숙소 안내해 드릴께요.”
안내를 받아 침대를 배정 받은 후 짐을 풀고 씻고, 오랜 만에 빨래도 하고 푹 쉬는 달형제다. 발바닥이 항상 뜨거운데 오늘은 특별히 더 뜨겁다. 그럴 만도 하겠다. 그렇게 열 받은 아스팔트와 까칠까칠한 보도 블록을 그렇게 장시간 걸었으니. 게다가 요즘 베드버그가 한 참을 기승을 부려 가려움증까지 더해서 달형제의 신경을 자극한다.
‘은혜가 그렇게 부어지니 고난도 그만큼 더해서 부어지는 구나. 좋습니다. 예수님~ 이 발바닥의 따가움. 이 피부의 가려움.. 뭐 또 없습니까? 어차피 겪을 거 몽땅 주십시오.’
조금 쉬고 있으니 미사 시간이라고 알려온다.
‘미사고 뭐고 쉬고 싶은데.. 그러나 어쩌랴… 이렇게 신세지니 미사라도 참석해야지.’
몸을 일으켜 미사에 참석하고 나니 곧 저녁 시간이다. 피곤한 다리를 이끌고 부엌으로 가는 달형제다.
‘지는 신세를 조금이나마 갚으려면…’
음식이 다 되고 식탁 셋팅도 다되고 다들 자리에 앉으니 달형제의 옆으로 마침 한국인 신학생이 자리를 잡고 앉는다. 음식을 먹으며 이것저것 스페인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어 물어보는 기회를 갖는 달형제다.
“여기 스페인 사람들은 참 단순해서 좋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나라는 농업국가라서 그런지 사람들의 생각이 복잡하지가 않아요. 위계질서도 단순하구요. 신부라고 해서 성직자라고 해서 한국처럼 대우 받는거 없어요. 청소, 빨래 등 자기 할 일은 전부 자기가 해야 하는 거죠. 인간관계도 그래요. 거지들도 동냥할 때는 엎드리지만 동냥 끝나면 사람들하고 같이 어울려 놀아요.”
그러고는 달형제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물어본다.
“왜 맨발로 순례를 하세요?”
“예수님의 감화 때문에 그럽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그대로 따르는 거죠.”
“음… 그것 때문에 이렇게 순례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일어나는 감화는 마귀들이 잘 활용하는 것이라서. 반드시 위의 분들과 상의를 해야 하는데요.”
“그것이 개신교와 카톨릭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개신교는 조직에 의존하기 보다는 개인적인 영성에 따라 행동하는 경향이 있으니.”
“그럼 어떻게 선악간의 구별을 합니까?”
“저 개인적으로는 판단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주시는 감화가 더 힘들고, 더 가난한 길이고 더 낮은 자리로 가는 길이라면 그것은 선으로 판단합니다.”
“그래요… 그래도 혼자만의 판단은 틀릴 수 있으니 항상 조심하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식사를 다 마친 달형제는 양이 조금 부족한 듯한 느낌이지만 그래도 신세지는 판이니 이걸로 만족한다. 배가 차니 피곤이 밀려온다. 곧 잠자리에 들어간다. 그러나 잠자리도 결코 편하지만은 않다. 몸에서 전쟁이 일어난다. 발바닥의 뜨거움과 피부의 간지러움이 서로 우열을 가리고 있나보다.
가만 누워서 이 둘의 고통을 느껴보는 달형제는 피부의 간지러움이 좀 더 우세함을 느낀다. 발바닥의 뜨거움은 참을 만 한데 가려움은 자꾸 손이 간다. 그리고 뜨거움과 가려움이 겹치니 뜨거움이 가려움에 가려지는 경향이 있다. 즉 가려움 때문에 뜨거움이 덜 느껴지는 것이다.
‘이래서 받을 고통이 있다면 한꺼번에 받는 것이 속편하다니깐…’
이날 밤 가려움에 몇 번을 자다가 깨다가 반복하는 달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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