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58)
생일
그는 돌 속에서 눈을 뜬다 사방은 고요하고 그의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머리맡에 놓인 시계를 본다 그는 작은 소리로 묻는다 “이젠 지나갔겠지?” 아직, 아직…… 이라고 시계가 재잘거린다 그렇다면 더 자야 한다는 건가? 그는 배가 고프다 그는 잠이 오지 않는다 흔들리는 컵 속의 물처럼 그는 움칠거린다, 갑자기 구둣발 같은 것이 그의 목을 밟아 누른다 그는 소리를 질러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이윽고 그는 비틀어진 닭 모가지처럼 축 늘어진다 커다란 손 하나가 들어와, 침 흘리는 그의 머리맡에 깎은 배와 사과와 가래떡을 놓는다 그의 이마에 고여 있던 땀방울이 조금씩 굴러내린다 “병신 하나 줄었군……” 나란히 서서 그들은 오줌을 누고 몸을 부르르 떤다 오늘은 그의 생일이다
- 이성복(1952- ), 『어둠 속의 시: 1976-1985』, 열화당,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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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이성복 시인의 시를 소개합니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남해 금산」 전문, 『남해 금산』, 문학과지성사, 1986) 이 시는 시인이 연도별로 분류해서 편집한 시집 속에서 1980년에 위치해 있습니다. 1980년이라면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인 『남해 금산』에 수록된 시와 같은 시기에 쓴 시라는 이야기입니다. 첫 시집인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문학과지성사, 1980)의 「자서」에서 첫 시집의 시들은 “대개 78년ㆍ79년에 쓴 것들을 묶었다”고 하고, 두 번째 시집의 자서에서는 “대체로 지난 육 년 사이 씌어진 것들을 다시 묶”는다고 시인은 밝히고 있으니 위 시는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의 첫해에 쓴 시라는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시 속의 화자의 모습이 낯설지요. 요즘 젊은 세대라면 되려 더 낯설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건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배경으로 깔고 있는 장면과 흡사하다는 느낌이 들어서입니다. 대부분 웹 소설과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에서의 주인공들은 시공간을 뛰어넘어서 종횡무진합니다. 우리는 이 시공간을 뛰어넘은 역할 연기에 열연한 배우들 중 스타로 떠올랐거나 스타로 굳어진 배우들을 바로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최근에도 변우석이라는 새로운 스타의 탄생에 온통 시끌벅적합니다. 다만 이 시의 화자의 모습에서 종횡무진을 떠올릴 수는 없습니다. 종횡무진은커녕 거의 정중동입니다. “지하철 타고 가다가 너의 눈이 한 번 희번득하더니 그게 영원이다.//희번득의 영원한 확장.//네가 문밖으로 튕겨져 나왔나 보다. 네가 죽나 보다.//너는 죽으면서도 생각한다. 너는 죽으면서도 듣는다.//아이구 이 여자가 왜 이래? 지나간다. 사람들./너는 쓰러진 쓰레기다. 쓰레기는 못 본 척하는 것.”(김혜순(1955-), 「출근: 하루」 앞부분, 『죽음의 자서전』, 2016, 문학실험실) 김혜순 시인은 죽음을 제재로 쓴 시집의 첫 시를 임사체험으로 엽니다. 임사체험은 말 그대로 체험이어서 혼이 잠깐 나갔다가 되돌아오지요. 그러나 이성복 시인의 시에서의 화자는 되돌아오는 분위기를 느낄 수가 없습니다. 이 시를 쓴 시기는 1980년입니다. “제 생각에는 시인은 두 종류가 있는데, 생사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시인과 그렇지 않은 시인입니다. 단순히 자연과 인생을 노래할 뿐 적극적으로 생사 문제를 내비치지 않는 시인이 있는가 하면, 겉으로는 같은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이나 생사 문제에 목숨을 걸고 나아가는 시인이 있습니다. 저에게 생사 문제는 양보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대담 「예술, 탈속과 환속 사이」 중에서, 『끝나지 않는 대화: 시는 가장 낮은 곳에 머문다』, 열화당, 2014, 251-252쪽) 장면을 세 번 바꾸며 전개되는 이 시의 이야기는, 그럼 비유일까요. “모든 좋은 시는 작품 전체가 그 자체로 비유이기 때문에 굳이 비유를 쓸 필요가 없다는 말도 가능합니다. 소월의 시를 생각해 보십시오. 「초혼」 같은 것은 끔찍하게 잘 쓴 시인데, 거기에는 비유가 없습니다. 진술이건 묘사건 어조건 그것이 정합성을 갖게 되면 그것 자체로 하나의 비유가 되는데, 그렇다면 비유 안에 다시 비유를 쓸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대담 「불가능에 대한 불가능한 사랑」 중에서, 앞의 책 222쪽) 저는 이 시를 ‘실제 정황’으로 읽었습니다. 초현실이 아닙니다. 정황입니다.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지난주에 소개한 시 「그 여름의 끝」의 이 장면을 한주 내내 생각했습니다. 제 고향 집 마당 입구에도 제 선친 묘소에도 목백일홍이 있었으나 그 떨어진 꽃잎들을 보면서 저는 한 번도 “피”를 떠올린 적이 없습니다. 이 정황은 오늘 소개한 시가 실린 시집의 같은 해에 쓴 다른 시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깻잎 위에도 피 냄새가 지나갔다”(「깻잎 위에도 피 냄새가 지나갔다」 일부). “깻잎”과 “피 냄새”가 한 문장에 자리 잡았습니다. 제 상상 속에서의 깻잎은 “산그늘 내린 밭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한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김준태(1949-), 「참깨를 털면서」 일부, 『참깨를 털면서』, 창작과비평사, 1977)는 실제에 머무르고 있을 뿐인데 시적 화자는 이 “깻잎”에서 “피 냄새”를 맡고 있습니다. “깻잎 위에도 피 냄새가 지나갔다”. 시제로도 쓴 이 문장을 시인은 이 시의 마지막 장인 4장의 첫 행과 마지막 행에 적고 있는데, 그 앞 3장의 마지막 행은 이렇습니다. “그리고 열흘이 되기 전에 우리는 진압되었다”. 이유 없는 허무에 빠져 “장난처럼” 절망에 빠져들었지만,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그 절망에서 빠져나오는 건 내적인 요인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외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건 제가 떠올리는 정황 때문입니다. 해가 1980년이니까요. 제게 있어 “돌 속에서 눈을” 뜬, “오늘”이 “생일”인 “그”는, “아직”까지도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시적 상상은 현실을 떠나 있는 듯 보이지만 시도 정황도 여전히 현실에 묶인 채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20240807)
※ 덧붙여: ‘葆光의 수요 시 산책’을 2주 쉽니다.
첫댓글 <생일>을 맞고, <남해 금산>을 올랐는데, 내려 오는 길에 <나무 백일홍>을 만나 피빛으로 선연하네요!
2주간 잊혀지지 않을 여행 잘 다녀오십시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