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역이 나쁜, 어두운 상념의 주인에게는,
수호령. 지도령들이 붙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그 육체를 지배하고 있는 의식이 악령의 세계로 통하고 말아서,
마음의 왕국을 그들에게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에 가까이 갈 수 없는 것이다.
그 사실은 그러나, 현상계에서의 수행 목적이기도 한 것이다.
깨달음은 사람 스스로의 일이다.
무자비하게 보이지만
이것이 신불의 자식으로서의 우리에게 주어진, 엄격함인 것이다.
올바른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반대로 그들은 들어갈 수 없다.
신불의 빛으로 뒤덮여, 수호령. 지도령에 의해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마음에 응어리가 없고,
항상 평안의 생활을 보낼 수 있다.
정법을 깨닫지 못하고, 영적 능력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기 자신을 잃지 말고,
신리에 적합한 올바른 마음으로 바르게 생활을 할 것을 권유한다.
스스로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하는 영능력자는,
마치 신불의 사자처럼 믿어버려서, 자만심에 빠져버린다.
또 예언이 적중하거나, 병을 고치거나 하면,
자기자신을 과신하여,
신자를 미끼로 하려고 계략을 세우거나 하게 된다.
그리고 교조다, 메시아다, 라고 스스로 자칭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타력본원을 강요하고 마는 사람이 많다.
일반 사람들은, 불가사의한 현상에 대해 무지하며 약하다.
그 때문에, 한번 믿으면, 맹신자. 광신자가 되고 마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마침내 타력으로 구원을 바라도록 되어간다.
마음이 순수한 동안은 기적도 일어난다.
하지만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할수록 평온을 잃어가고,
마음을 악령에게 팔아버리는 결과가 되어,
자신을 진흙탕 속에 빠트려 가게 된다.
불행의 원인은 그렇게 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이지만,
교조, 간부라고 칭하는 무리들은,
사람의 내면의 마음의 바른 자세를 볼 수 없기 때문에,
가난이나 병 등의 재해가 일어나면,
신앙 부족, 근행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안이하게 판단을 내려 신자를 호되게 꾸짖는다.
신자는 또 신불의 벌이 무섭다고 하여, 점점 더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교조를 한층 더 모시고,
신격화하여 스타를 만들어 가게 된다.
지도자들은, 겸허함을 잃어가고,
교조는 자신이 신(神)인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켜,
더욱더 잘못을 범하고 만다,
많은 신자가 희생이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대신전이나 대불전의 유례를 만들어 참배하게 한다.
그런 돈이 있다면,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구하는 것과,
진정한 복지 등에 사용하는 것이 선결되어야 할 것이다.
신불의 몸속에 살고 있는 인류가,
무슨 목적으로 막대한 돈을 써 건축물 따위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대신전이다.
진정한 신불은,
결코 그와 같은 명령을 인간에게 내리는 것이 아니다.
만약 건물이 있다면, 정법 유포의 장소라던가,
오락소, 양로원 등과 같은 사회복지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만이,
진정한 신의(神意)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인도의 시대에 있어서 정사(精舍)는,
신자를 희생한 것이 아니었다.
빈비사라, 가란다, 프타라마, 스닷타 이외의 많은 재벌이 기부한 것이며,
베르베나, 제타베나등 많은 정사는, 신리를 설파하는 장소이며,
또 수행자의 숙사였다.
형태를 만든 우상을 모셨던 곳은 하나도 없었다.
설법은, 대부분 교외나 시내 또는 마을의 광장에서 행해졌고
예수 그리스도나, 고타마싯타르타도 같은 방법으로 행하였으며
교단 자체가 자주적으로 만든 정사 따위는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하지만 현대의 잘못된 지도자도,
언제까지나 광신자나 맹신자로부터 달콤한 즙을 빨고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악의 씨앗은 한때의 독화(毒花)를 꽃피워도,
반드시 악의 열매에 의해 없어지기 때문이다.
최고 지도자들은 반병인(半病人)이 되어,
살아가면서 이 현상계에서 범한 죄를 보상할 때까지
지옥계에 머물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할 것이며,
신자는, 그 종교단체의 지도자 무리의 건강상태를 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만약 그 교조가, 자신의 병이 신자의 업을 받았다고 한다면,
실재계의 빛의 천사를 비롯하여, 신불도 반병인(半病人)일 것이다.
왜냐하면 현상계의 인류의 부조화의 상념이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신불에게 그런 것은 없다.
태양의 빛에 거울을 대면, 반사하는 것처럼
자기자신의 마음이 올바른 행위를 하고 있을 때는,
신불의 빛으로 뒤덮이기 때문에, 타인의 나쁜 상념을 받는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런 교조나 지도자가 있다고 하면,
자기반성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을 부정한다면,
그 사람은 뇌세포는 물론 의식까지
부조화한 세계의 영에게 벌레 먹힌 것이며,
정신병원에 입원해 의사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
독선의 교의를 버리고, 정법에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불교에서 말하는 이나리대명신이나 용신은,
저 세상에 생존해 있는 동물령의 지배자이다.
제천선신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일원이며,
많은 빛의 천사들이 이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이것도 수행 중의 큰 일로서,
상단계 빛의 지도령(보살)이 되기 위해서는,
동물령을 지도, 신리로 인도하는 사명을 달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보다 조화된 차원이 높은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이다.
동물령은, 만물의 영장인 인류와 달라서, 좀처럼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지배자의 눈을 피해,
현상계의 부조화한 사람들의 의식에 빙의하고 싶어 한다.
천사는 그것을 막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인간에 대한 동경도 있고,
또 육체를 가져 버리면, 좀처럼 마음의 눈을 가지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간의 부조화한 마음의 어두운 상념에 빙의하여
인간의 마음을 현혹시켜, 빙의령으로 된다고 하는 것이다.
부동명왕은, 실재계의 질서를 바르게 하는 역할과,
현상계에서 육체를 갖고 있는 올바른 마음의 사람들을
마(魔)로부터 지키는 사명을 갖는, 제천 선신의 한 사람이다.
부르는 이름은 불교의 그것이다.
안식과 평화로운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의 협력자이며,
마음이 더럽혀져 있는 사람들의 협력자는 아니다.
올바른 상념과 행위도, 부조화한 상념과 행위도,
육체를 지배하고 있는 의식의 의지에 의해 결정하는 것으로,
모두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의식의 세계는,
그 선악의 행위에 의해 엄격한 마음의 조화도의 단계가 있고,
저 세상의 세계로 연락되어 있다.
그 때문에, 올바른 마음의 지혜로부터 용솟음치는
신리의 모종을 사람들의 마음에 심어 가는 도중에는,
부조화한 사람들의 마음에 둥지를 틀고 있는
악령들의 영향을 받아 방해를 받는 것도 많다.
그러한 사마(邪魔)를 제거하는 것이 부동명왕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마음의 왕국을 확실히 지켜,
맹신과 광신을 버리고, 중도의 마음을 갖고,
반성과 올바른 명상의 안에서 신의 빛을 받아,
일체의 마(魔)에게 지배되지 않도록,
정법에 귀의한 올바른 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의 발견 - 과학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