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롤파 호수를 끼고 끝도 없이 갈것 같더니만, 길이 호수쪽으로 나있다. 사진엔 완만해 보이지만 아주 가파른 내리막이다.
얼마나 내려왔는 지, 잠깐 뒤돌아서 보니, 오늘 종일 나란히 했던 주변 산군의 봉우리가 벌써 잘 안보인다. 대신 초롤파 호수가 바짝 다가와 보인다.
저기 어딘가가 카북인가?? 오늘도 골레처럼 이름만 있고, 아무것도 없는 호수 주변 어디에 캠프를 치는건 아닐까....??
오늘의 목적지 카북이 가까워 온다는 것보다는 왠지 이 설국을 떠난다는 것이 더 섭하여 자꾸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게 된다.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니, 너덜 바위를 덮은 하얀 설원은 동글 동글 울룩 불룩한 것이 마치 모굴스키장 같다. 장엄하다기 보다는 왠지 귀여운 느낌이 든다. ㅎㅎ
이제 로왈링 산군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호수쪽을 향한 내리막으로 들어서니 어느새 온몸에 한기가 달려든다. 해가 가려졌다고 이렇게 금새 추위를 느끼다니... 벗었던 쟈켓을 꺼내입고,깍아지른 듯한 내리막 길에 온 힘을 기울이며 조심 조심 내리막을 걸었다.
4발 아이젠이라도 한 이풀은 그래도 쉽게 이 내리막을 내려간다.
아이젠이 없어 절절매며 내려가고 있는 내앞에 갑자기 푸리가 나타났다.
아!! 맞았구나~ 이곳 어딘가가 카북인 거야~ 역시 예상대로 허허벌판 어딘가에 캠프를 치나보네~
푸리는 내 배낭을 매더니, 쏜살같이 미끄러운 내리막을 내려갔다. 차암 귀신들이구먼~ 눈쌓인 험준한 콩마라, 촐라, 렌조라 패스를 내려갈때 알아봤지~
역시 깊은 계곡쪽이라 카북으로 가는 길의 눈은 꽝 꽝 얼어있어 마치 평지를 걷듯 걷기가 수월했다. 푸리는 순식간에 저 만치 가고 있다.
아~ 여기 어딘줄 알았더니, 아닌가 보네~
한참을 더 걸었다. 그런데 저 만치 앞에 뭔가가 있었다. 뭐지?? 뗑보처럼 그 사이에 롯지라도 생겼나??
나는 힘차게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멀리서 누군가가 손을 흔든다. 나는 해발 5,755m의 타시랍차 라 패스를 넘고 험준한 드로람 바오 빙하와 트라카딩 빙하를 건넌 장한 트래커답게 의기양양 두 손을 번쩍 치켜들고 그들에게 답례하는 환호인사를 했다. 당연히 우리 식구인 줄 알았는데.... 맞닥드려 보니, 다른 팀의 외국인과 그의 가이드였다.
이미 우리아이들에게 4-pass를 했다는 소식을 들은 그들은 나를 보더니,두 주먹을 불끈 쥐며 'strong woman'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다음엔 에베레스트를 오르라고.... 불가능하다고 했더니, 충분히 가능하다나~~~
흐으~~~ 부추기지 말아욧!! 이 단순한 아지매...그거 믿으면 어쩌라구요~~~ ㅋㅋ
카북엔 롯지는 없었고, 가게가 하나 있었다. 그래도 허허벌판이 아니고, 따듯한 온기가 있는 가게가 있어서 얼마나 좋은 지....
안에는 활활 장작불이 타고 있었고, 우리와는 반대로 타시랍차라로 들어가는 스페인 트래커 3명이 있었다. 그들은 초오유(8,201m) 정상을 등정한 산악인이라고 한다.
헐!! 8,201m의 초오유를 등정했다고???
몸이 더 식기전에 쟈켓안에 패딩을 더 챙겨입고 쿡이 끓여주는 따끈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있자니 얼마나 좋은 지....
커피를 들고 밖으로 나와 벌써 쳐져있는 우리의 캠프사이트를 구경했다. 마치 산사태라도 난 듯 흩어져 있는 커다란 바윗돌을 바람막이 삼아 그 사이로 텐트를 쳐놨다. 우리말고도 외국인들 사이트까지 쳐져 있으니 왠지 더 그럴듯해 보인다. ㅋㅋ
그때 사진을 찍느라고 늦었는 지, 저 만치에서 이풀이 보인다.
나 역시 손을 흔들며 해발 5,755m 험준한 타시랍차 라를 넘은 대단한 아지매-이풀을 환영했다. 내 곁에 선 외국팀 가이드도 열심히 또 손을 흔든다.
늦은 점심으로 현지 네팔 라면을 먹었다. 뭐..신라면이야 하겠냐만 우리 처럼 24일 동안 이런 생활을 해보면 알것이다.
뭐든 먹을거는 맛따지지 않고 다 먹는다는 거..... ㅋㅋ
텐트속에 들어가서 짐을 풀고는 크래커에 치즈를 얹어서 부족함을 채웠다.
매트를 불어 깔고 침낭도 펴 잠자리를 마련해놓고, 내일 입을 옷가지와 짐을 대충 정리해 놓고는 가게로 다시 들어갔다.
저녁을 먹은 뒤, 우리팀이나 스페인 팀이나 모두 잠들기 직전까지 따듯한 가게 안에 있었다.
그들은 저만치 넓직한 탁자에 앉아 포커를 하고 우린 난로(?)>..아니 아궁이곁에 옹기 종기 모여앉아 이야기 꽃을 피웠다.
손끝과 얼굴에 닿는 따뜻한 느낌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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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스페인 팀이 일어났다. 이제 우리도 일어나야겠다. 아무래도 대장님과 포터,쿡들은 험준한 타시랍차를 넘은 기념으로 뚱바를 한 잔 할 모양이다.
밖으로 나오니, 칠흙같이 까만 밤 풍광이 기막히다.
우리가 걸은 그 길 양옆으로 거대한 설산이 딱 버티고 있어 마치 홍해 바다가 쫘악 갈라지듯이 하늘이 쫘악 갈라진 느낌....
그 갈라진 틈새로 주먹만한 별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정말 기막힌 풍광이 아닐 수 없다.
좌악 갈라진 검은 하늘 사이로 보석처럼 박혀 반짝이는 .....
아!! 기막히군!! 탄성이 절로 일었다.
한바탕 천국에서 벌인 우주쇼를 보고는 피곤하여 텐트로 들어갔다. 오늘 밤도 완전 무장... 털모자,털양말,극한용 브린제 내의에 우모바지,히말라야 패딩까지 입고 침낭위엔 결로를 조금이나마 막아보려고 두개의 고어텍스 쟈켓을 덮었다. 그림처럼 잠자지 않는 한 고어텍 쟈켓이 얌전히 덮어있을 지....ㅎㅎ
드보르작//루살카 1막 '달의 노래' Mesiku na nebi hlubokem |
출처: 아름다운 날들 원문보기 글쓴이: 베가
첫댓글 글과 사진만으로도 제가 여기를 갔다온듯한 느낌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댓글중 하나입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