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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교과서 이것만은 바꿔야!㉛
스스로 미개했음을 인정하는 ‘개화’라니?
우리 근대사에 등장하는 ‘개화’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지혜가 열려 새로운 사상, 문물, 제도 따위를 가지게 됨’, ‘인지가 열려 나아가 사회의 사상, 풍속 따위가 좋은 방향으로 흐름’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 반드시 나쁜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일제가 1905년 을사조약을 체결할 때 “너희들은 미개하여 우리가 보호해주어야 한다.”면서 외교권을 강제로 박탈한 조약을 체결하면서 ‘을사보호조약’이라고 하였다니 일제의 외교권 박탈의 빌미였던 ‘미개’와 연결될 때는 의미가 달라진다. 실제로 1970년대 경까지 을사보호조약이라고 가르쳤다.
교육부에서 사용한 ‘개화’의 의미는 사회과 교육과정 38쪽에서 ‘개항 전후의 국내외 상황, 개화 정책의 추진’, 43쪽의 ‘개항 이후 개화 정책 추진과 그 과정에서 나타난 갈등’, 98쪽의 ‘문호 개방 및 개화사상과 위정척사 사상’ 등에서 보듯이 개혁과 신문물 수용, 개항 등과 연결되고 있다. 교과서 편수자료(Ⅱ) 편수용어에서는 ‘개화파’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한자로는 ‘開化派’라 쓴다고 나온다. 중학교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 21쪽에서는 “개항 후 추진된 개화 전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한편 개화 정책 추진 과정에서 나타난 척사와 개화 등 여러 대응방식에 대해 이해…위정 척사 운동은 이후 의병 운동 및 독립운동으로 연결되었음을 유의하여, 개화정책과 더불어 균형 있게 서술한다.…갑오개혁은 개항 이후 개화ㆍ개혁정책의 연장선에서 주체적으로 추진되었으나 일본의 내정 간섭을 받았다는 점에도 유의한다.”고 하여 명확하지는 않지만 척사–의병–독립운동으로 연결시키고, 개항–개화 정책–갑신정변-갑오개혁–일본의 내정 간섭으로 연결시키면서도 균형 있게 기술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고교 한국사 집필기준도 이와 유사하면서 보다 자세하게 서술하라는 지침을 내리고 있다.
이에 따라 만들어진 교과서를 보면, 『초등학교 사회 5-2』에서는 “개항 후 조선에서는 일본과 중국에 사신을 보내 근대 문물을 배워 오게 하였다. 그러나 개화에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의 입장이 여전히 대립하여 임오군란과 갑신정변과 같은 충복이 일어났다.”고 하여 개화를 근대화의 개념으로 기술하고 있고, “개화파들은 일본의 힘을 빌려 자신들의 주장을 이루고자…개화파들은 정변을 일으켰다(갑신정변). 개화파들은 ‘청나라 세력을 몰아내고’ 사회 제도를 고치기 위한 정책을 발표하는 등 개혁을 서둘렀다.”고 하여 청나라 세력을 몰아내는 개혁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도 기술한다.
『중학교 역사(하)』에서는 ‘ 정부와 개화파가 추진한 개화 정책’(49쪽), ‘청이 내정 간섭이 심해지자, 개화파는 개화의 방법과 방향을 둘러싸고 온건 개화파의 급진 개화파로 나누어졌다.’(50쪽), ‘대한제국의 근대화 정책’(56쪽) 등 ‘개화’라는 말의 의미를 주로 근대화 쪽으로 기술하고 있다. 또 『고교 한국사』에서는 ‘서양문물의 도입을 찬성하는 세력(개화파)과 반대하는 세력(위정척사파)’(141쪽)의 형성 과정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여 개화=서양문물 도입의 개념을 나타낸다. 그러면서 151쪽에는 일본을 등에 업고 일어난 갑신정변에 대해 상술하고 그 주역들의 사진까지 게재하고 있다. 균형을 잃고 그들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다.
이상의 내용으로 보아 교육부와 비상교육 편집진에서는 ‘개화’를 개방화 내지 근대화 정도의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조선왕조실록』고종 32년조에서도 “새롭게 개화(開化)해나가는 것은 사실 백성들을 위한 데서 나온 것”이라고 하여 ‘새로운 문물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개화라고 한 것과 맥이 통한다.
문제는 왜 그러한 내용에 개방, 근대화 개혁, 서구화 등의 용어를 쓰지 않고 ‘개화’라는 용어를 쓰는가 하는 것이다. 같은 시기의 아시아 여러 나라의 역사를 서술할 때는 ‘개항’이라 하고 우리의 정책에만 ‘개화 정책’이라는 말을 사용했고, 개항기의 건축물, 양복, 서양음식, 근대교육, 무역 등 경제ㆍ사회적 변화에는 개화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특히 시기적으로 그 이전이나 이후의 이와 비슷한 정책에 ‘개화’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1880~1890년을 전후한 시기, 일본의 간섭이 강하던 과정에서만 ‘개화’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 일본은 1905년 우리가 미개하므로 보호해줘야 한다면서 ‘을사보호조약(?)’을 강제 체결했고, 1910년에 우리의 국권을 침탈했다. 급진개화파들은 ‘청나라 세력을 몰아내면서 일본 세력으로부터는 도움’을 받았다니 ‘개화’라는 용어에는 일본의 입김이 크게 작용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으며, 일본이 말한 ‘우리가 미개함’을 스스로 인정하는 게 된다. 만약 그런 급진 개화파가 일으켰던 갑신정변이 성공적으로 이어졌다면 우리 국권 침탈이 훨씬 더 빨리 왔을 같은 생각이 들어 오싹해진다.
그런데 교육부는 그런 급진개화파들을 선구자로 둔갑시켜 사진까지 게재하고 있는 교과서를 인정하고 있다. 지역적으로 다른 나라의 역사에서도, 시기적으로 그 이전, 이후 현재까지도 사용되는 용어라면 문제가 없다. 일본과의 관계가 전혀 없다면 또 봐줄 수 있다. 왜 그 시기, 우리나라에만 그 용어가 쓰여야 하는지를 교육부에서 철저히 점검하여 그런 ‘수상한’ 용어는 하루빨리 고쳐야 한다.
- 국사찾기협의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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