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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회]
콰콰콰!
경기와 경기가 부딪치는 순간 백용후가 움직였다.
순간 그의 눈은 예리하게 비무대 위를 훑고 있었따. 이미 무대 위에 남아있던 하무위의 신형은 모두 사라지고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그가 바로 진짜였다.
"무식한 놈이군."
하무위가 질렸다는 얼굴로 예의 보법을 펼쳤다.
보통 여러 명의 환영이 나타나면 누구나 약간은 망설이기 마련인데 상대는 무식하게도 그 모두를 박살낸 것이다.
쉬익!
다시 하무위의 몸에서 검기가 터져 나왔다.예리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검기는 하무위를 향해 바람을 가르며 날아왔다.
조금 전에 날렸던 검강으로 인해 내력의 수급이 원활하지 않자 대신 검기를 날린 것이다.
이어 그는 다시 예의 환술을 펼치며 무대 위를 누볐다. 그러자 다시 무대 위에 수십의 하무위가 만들어졌다. 이어 그들이 다시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정말 반복학습이 필요한 놈이군. 그딴 환술은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백용후가 싸늘히 중얼거렸다.
그에겐 결코 같은 수법이 두 번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 상대는 그 사실을 모른다. 그렇다면 친절하게 다시 교육시켜주는 수밖에.
"챠핫!"
퍼버버벅!
백용후가 다시 벼락처럼 양손을 교차했다. 그러자 흐릿한 권영이 하무위가 날린 권기를 흔적도 없이 날려버리며 사방으로 몰아쳤다.
콰콰콰!
온몸을 태풍처럼 몰아치는 백용후의 권기에 하무위의 신형이 태풍을 만난 낙엽조각마냥 그렇게 휘청거렸다.
스스스ㅡ!
그러나 하무위의 신형은 이내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분명 비무대 위에는 몸을 숨길 만한 공간이 전혀 없는데 마치 안개가 아침햇살에 사그라지듯 그렇게 주위 풍경에 동화가 된 것이다.
신황이 그 모습을 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백무귀의 은신술은 제아무리 고수라 할지라도 찾아내기가 쉽지 않지."
"후후... 만약 우리 가문이 아니었다면 그렇겠지."
옆에서 신원이 신황의말에 토를 달았다.
이미 전장에서 수차례 맞부딪친 사이다. 때문에 명왕권에는 백무귀의 기척을 잡아낼 수 있는 기술이 만들어진 상태였다.
자신이라면 어떻게 할까?
신황의 입이 나직하게 열렸다.
'잡아낼 수 없다면......'
백용후가 외쳤다.
"...모조리 부숴 버린다."
콰콰콰콰!
패천권의 이초식인 지중뢰가 펼쳐졌다.
백용후는 사라진 하무위의 흔적을 추적할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자신의 취향이 아니었다.
파파팡!
순간 사방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검강이 백무광을 향해 몰아쳤다. 하무위가 은신하고 있다 지중뢰의 기운이 몰아치자 기겁을 하며 검강을 날린 것이다.
콰콰쾅!
지중뢰의 기운과 검강이 부딪치며 폭발을 일으켰다.
쿠오오~!
사방으로 몰아치는 광폭한 기운.
"크아아~!"
그사이에서 누군가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뒤로 훨훨 날아가는 하무위의 신형. 비록 검강이 강했지만 백용후의 지중뢰에 비하면 손색이 있었다. 때문에 정면으로 격돌하자 그만 지독한 내상을 입고 만 것이다.
"잔재주 따위는 필요 없다. 중요한 것은 오직 본신의 힘뿐."
백용후가 차갑게 말을 내뱉으며 하무위를 향해 몸을 날렸다. 이미 그의 주먹에는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기운이 몰리고 있었다.
말없이 날아가는 하무위의 몸에 백용후의 주먹이 작렬할 찰나, 하무위의 눈이 부릅떠졌다.
번쩍!
"이 순간을 기다렸다, 백용후."
"너?"
푸휙!
순간 백용후의 주먹이 하무위의 아랫배를 파고 들어갔다. 그러자 하무위가 양손으로 백용후의 팔목을 잡았다.
"크크! 죽기... 위해 키워진 나도 가...련한 인생이지만, 너의 인생 역시 그리 순탄치는 못...하구나."
"뭐?"
의미심장한 하무위의 말. 그러나 이미 하무위의 생명력은 다 탄 촛불처럼 그렇게 꺼져가고 있었다.
이어 그의 아랫배에서 백용후의 주먹을 타고 올라오는 녹색의 기운.
"내 죽...음으로 천마환위이혼대법(天魔換位異魂大法)이 완성..될 지니......"
"그게 무슨 말이냐? 천마환위이혼대법이라니?"
"크ㅡ헉!"
순간 하무위가 격렬하게 토혈을 했다. 그러자 선명하게 보이는 녹색의 피.
이어 하무위가 눈을 까뒤집으며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도대체 이들이 왜?'
천마환위이혼대법.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대법이다. 마교의 교주로써 수많은 마공대법과 사술에 대해 통달한 그가 들어본 적조차 없는 대법이라니.
순간 백용후가 자신도 모르게 발작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런 그의 눈에 백무광의 차분한 눈이 들어왔다.
으득!
백용후의 입에서 이 가는 소리가 소름끼치게 터져 나왔다.
그때 제갈문이 비무대 위로 올라왔다.
"하하하! 백 대협의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혈영신도는 백 대협의 것이 되었군요."
"너......"
"자... 여러분, 승자는 백용후 대협입니다."
제갈문이 백용후의 승리를 선언했다. 그 순간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ㅡ!"
"우와아!"
그런 제갈문의 모습에 백용후의 눈이 사나워졌다. 무슨 도깨비놀음인지 모르지만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그때 서종도의 전음이 들려왔다.
'참으십시오, 교주님. 여기에서 화를 참지 못하시면 전면젼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희가 불리합니다.'
'으...음!'
서종도의 전음을 듣는 순간 백용후는 온몸의 피가 싸늘히 식는 것을 느꼈다.
적재적절하게 서종도가 전음으로 그의 정신을 일깨우지 않았다면 그는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본색을 드러내고 말았을 것이다.
'순간의 화로 대업(大業)을 그르치는 우를 범하지 마십시오, 교주님!'
'후... 이제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숙부님.'
이어 들려오는 전음에 백용후는 본래의 얼굴표정을 회복하고 대답했다.
그 순간에도 제갈문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이제 맹주께서 백대협에게 이번 비무대회에 걸린 상품인 혈영신도를 넘겨주겠습니다."
순간 군웅들의 눈에 탐욕의 빛이 떠올랐다.
이제까지 감히 꿈도 꿔보지 못했던 신도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간다고 하니 탐심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대회의 승자라는 명예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조금 전까지 순수하게 대회의 승자를 위해 축하의 환호성을 터트렸지만,
막상 혈연신도라는 희대의 무기가 그렇지 않아도 무공이 고강한 백용후에게 넘어가자 속이 쓰려왔다. 그것이 대부분의 군웅들의 마음이었다.
백무광이 혈영신도를 가지고 관람대에서 비무대로 내려왔다.
군웅들의 눈이 백무광이 들고 있는 혈영신도에 집중됐다. 그들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욕심이 드러나 있었다.
비무대 주위에 기이한 열기가 가득 찼다. 그러나 백무광은 그에 상관없이 고고히 걸음을 옮겼다.
마침내 백무광과 백용후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섰다. 한 사람은 무림맹주이고, 한 사람은 마교의 교주이다.
그리고 그들이 속한 두 단체 모두 당금 무림 최강의 힘을 자랑하고 있었다.
백용후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의 얼굴 바로 앞에 아버지의 얼굴이 있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비무를 끝내서인지 얼굴이 무척 상기되어 있군. 축하하네! 자네가 승자이네. 그리고 이제 혈영신도 역시 자네의 것이네."
"고맙소! 그런데 한 가지만 물어보도 되겠소?"
"뭐든지!"
백용후의 말에 백무광이 흔쾌히 대답했다.
"얼굴이 무척이나 갑갑하게 느껴지는구려."
"후후, 날이 더워서 그렇게 보이겠지. 어쨌든 축하하네."
"고맙소!"
"내일 자네를 위한 연회가 열릴 것이네. 오늘 하루는 푹 쉬고 내일 저녁에 보세."
"기대하겠소, 내일 저녁을......"
"실망하지 않을 거네. 분.명.히!"
백무광은 유난히도 마지막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파파팟!
순간 그들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들은 미소를 지으며 단상에서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다분히 군웅들을 의식한 모습이었다.
"와아아ㅡ!"
다시 함성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사람들은 백용후의 이릉을 연호하며 환호를 보냈다. 그에 백용후는 미소를 짓고 중인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보였다.
그러나 곡선을 그리고 있는 그의 눈가와 달리 그의 눈동자는 한없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기대해도 좋을 거야, 내일 저녁......'
백용후는 등을 돌리고 사라지는 백무광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손에는 미약한 진동을 흘리고 있는 혈영신도가 잡혀 있었다.
웅웅웅!
백용후의 손에서 나직한 울음을 토하고 있는 혈영신도.
마치 오래 전에 헤어졌던 애인이 다시 해후한 듯 그렇게 반갑게 울고 있었다. 그러나 백용후는 미처 그런 느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마지막 대결의 여운은 오래도록 남아 군웅들을 지배했다.
"휴우... 정말 대단하군. 그와 싸운 사람 중 살아남은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도대체 무슨 권이기에 그런 위력이 나올까? 난 이제까지 저런 권이 있다는 이야기는 결코 들어본 적이 없어."
"하여간 요즘 나오는 젊은 고수들은 정말 무섭군. 명왕도 그렇고, 이번 대회의 승자도 그렇고 말이야."
"그건 그래."
사람들은 신병쟁탈전이 벌어졌던 광장을 벗어나며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했다.
신황 형제와 홍염화, 무이도 자리를 일어섰다.
그들이 일어서 자리를 나서자 팽주형이 다가왔다. 그의 얼굴은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어떻게 보셨습니까?"
"글쎄요!"
신황은 말꼬리를 흐렸다.
그의 청력으로도 하무위가 마지막에 무슨 말을 했는지 듣지를 못했다. 분명히 두 사람이 무슨 대화를 했는데 말이다.
만약 그들이 무슨 대화를 했는지 알았다면 무언가 실마리라도 잡았을 텐데.
그는 무척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이제 팽가는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저희는 오늘 저녁 이곳을 나갈 생각입니다."
"그렇게 빨리 말입니까?"
"소기의 목적도 달성했고, 아무래도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문파의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팽주형은 지금 무림맹의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무림맹을 떠나야 한다면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무이도......"
"무이는 신 대협이 돌봐주시기 바랍니다. 제 생각 같아서는 같이 데리고 가고 싶지만,
아버지가 무공을 쓰지 못하시니 혹 무슨 일이 있다면 가문의 식구들을 지키는 것도 힘에 부칠 것 같습니다.
차라리 무이는 신 대협 곁에 있는 것이 더 안전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차후에 무이를 저희 집에 데려다 주시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그리 하십시오."
신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혼자였다면 차라리 팽가에 있는 것이 안전한 것이나, 지금 그의 곁에는 동생이 있다.
신원과 자신이 함께라면 무이가 위험할 일은 없을 것이다. 세상에 그들의 주위만큼 안전한 곳이 또 어디 있을까!
팽주형이 무이에게 다가왔다.
"미안하구나! 내 능력이 부족해 너를 같이 데려가지 못하는구나. 하지만 다음에는 이런 일이 절대 없을 것이다. 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너를 지켜주마."
"네! 알겠어요. 아...빠도 몸조심하세요."
"그래!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네 백부의 곁에 있거라.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곳이 네 백부의 품이니까."
"네!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팽주형은 애틋한 눈으로 무이를 바라보며 머리를 만져 주었다.
그이 손에는 숨길 수 없는 부정이 진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 마음을 알기에 무이는 팽주형의 품에 깊숙이 안겼다.
팽주형은 한참 무이의 몸을 안아 주었다. 그리고 몇 번 토닥이다 얼굴을 보며 말했다.
"일단 할아버지에게 가서 인사를 드리자. 관수와도 작별인사를 해야 하고......"
그는 이어 신황에게도 말했다.
"제가 잠시 데려가겠습니다. 그래도 되겠지요?"
"그러십시오."
"그럼!"
신황이 허락하자 팽주형은 무이를 데리고 그들이 머무는 별채를 향했다. 멀어져가는 두 사람을 보면서 신원이 말했다.
"현명한 사람이네."
"이제 전장의 냄새를 어느 정도 맡을 수 있게 된 거겠지."
이곳엔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한 냄새가 풍겼다.
칠대동안 전쟁터에서 전전해온 핏줄은 신황과 신원에게 싸움터의 냄새를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그리고 팽주형은 그와는 반대로 최근에 험한 싸움을 수차례 겪다보니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곳에 감도는 불길한 공기를 말이다.
하지만 당장 자신들의 안위마저 자신할 수 없기에 이곳을 나가기를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탁월한 결정이었다.
신원이 무림맹을 둘러보며 순박한 얼굴을 찡그렸다.
"확실히 기분 나쁜 곳이야. 이곳 전체가 말이야."
"기다려보면 알게 되겠지. 가자."
"그래!"
두 형제는 그렇게 자신들의 숙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신황 형제가 사라진 자리, 은색의 귀면탈을 걸친 남자가 기척도 없이 나타났다. 그는 바로 백무귀의 우두머리로 백무광의 명령을 받고 신황 형제를 조사하는 남자였다.
"분명... 그의 후예가 틀림없다."
그의 눈빛이 차갑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미 신원에 의해 죽은 시신을 철저히 해부한 그였다.
신원에 의해 당한 시신들은 대부분 철저히 육체가 망자겨 있었다. 외형적인 부분도 그랬지만 내부는 더욱 처참했다.
내부의 장기중 제대로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시신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백무광도 그랬지만 그 역시 그런 흔적이 남는 권을 기억하고 있었다.
"명왕권... 저주 받은 권(拳)."
스륵륵!
그가 다시 신기루처럼 모습을 감췄다.
팽가는 은밀히 무림맹을 빠져 나갔다.
다른 사람들이 신병쟁탈전의 여운을 즐기며 술자리에 빠져 있을 때 그들은 이곳을 벗어났다.
신황과 무이는 밖으로 나가는 팽가 식구들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무이는 신황의 손가락을 꼭 잡았다.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무사히 돌아가겠죠?"
"그래! 무사할 거다."
신황은 무이의 조그만 손을 더욱 따스하게 감싸주었다. 그러자 무이가 신황의 손가락을 더욱 꽉 쥐었다.
"들어가자. 바람이 차갑구나."
"네!"
신황은 무이와 손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이렇게 둘이 걷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았다.
신황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너도 어느 정도 느끼겠지만 이곳은 그야말고 복마전이나 틀림없다. 아마 오래지 않아 이곳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 것이다."
무이가 신황을 올려다봤다.
신황의 동생인 신원은 덩치가 크다. 무이가 본 사람들 중에서 그보다 큰 사람은 없다. 하지만 무이의 눈에는 신황이 세상에서 제일 커보였다.
아무리 신원이 덩치가 크다 하더라도 어찌 신황에 비할까? 아마 신원이 지금보다 더 커져도 무이의 눈에는 여전히 신황이 세상에서 제일 큰 사람일 것이다.
"이곳은 가장 위험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욱 배울 것이 많다.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무이 네가 더 이상 날 따라다니면서 배울 것은 없을 것이다."
신황은 이곳을 무이의 최후의 교육장이라 생각했다. 이제 더 이상 자신이 무이를 데리고 다닌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모든 것을 가르쳐야했다.
무이는 신황의 말을 알아들었다.
다른 이들이 자식을 과보호 할 때 신황은 오히려 과격한 방식을 택했다. 그것이 자신이 친딸이 아니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무이는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혼자서도 꿋꿋이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게 하기위한 신황 나름대로의 배려라는 것을 이미 오래 전부터 느끼고 있는 것이다.
무이가 문득 입을 열었다.
"백부님."
"응!"
"고마워요!"
"뭐가 말이냐?"
"그냥 모두가 다요. 고마워요!"
신황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나요......"
"음!"
"나중에 백부님 같은 남자하고 결혼할 거예요. 백부님처럼 굳센 남자하고요."
"나 같은 남자는 여자에게 별로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한다. 그러니 너는 널 자신의 몸보다 아껴줄 남자를 만나거라."
신황의 말에 무이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에요. 백부님은 훌륭해요."
"고맙구나!"
"그리고 한 가지 말할 게 있는데......"
무이가 말을 망설였다. 그러자 신황이 웃으며 말했다.
"뭐냐? 말해 보거라."
"염화 언니한테 잘해주셨으면 해요. 제가 보기에 염화 언니는 정말 괜찮거든요. 항상 백부님만 생각하고... 그러니 언니한테 조금만 더 잘해주세요."
"후후!"
신황이 웃음을 지으며 무이의 머리를 몇 번 문질러 헝클어 주었다.
"염화 언니는 백부님을 정말 많이 좋아해요. 그러니까......"
"알고 있다. 내가 조금 더 신경 쓰마."
"정말요?"
"내가 언제 거짓말을 하더냐?"
"아니요! 백부님은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신황의 말에 무이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이가 아는 신황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또한 한 번 말을 하면 절대 어기는 법이 없었다.
신황과 무이는 그렇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별채로 돌아왔다.
별채 한쪽에는 신원이 거대한 나무 위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홍염화가 심심한지 의자에 앉아 발을 휘휘 내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홍염화는 신황과 무이가 돌아오자 반가운 얼굴로 일어나며 무이에게 말했다.
"왜 이렇게 늦게 오는 거야? 혼자서 심심했잖아."
"헤헤~ 백부님하고 이야기를 하느라고요. 미안해요!"
"아니야! 왔으니까 됐지. 그런데 신가가하고 무슨 말을 그렇게 오래 한 거야?"
홍염화의 말에 무이가 신황의 얼굴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에 홍염화의 얼굴에 서린 궁금증이 더욱 커져갔다.
"으...음!"
"뭔데?"
"음! 비밀이에요."
"에! 그런 게 어디 있어? 뭐야? 말해봐!"
"킥! 비밀이라니까요."
무이가 별채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홍염화가 소리치며 달려갔다.
"뭔데? 정말 이럴 거야?"
"비밀은 말하면 안 되잖아요."
무이의 목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왔다.
"나한테만 말하라니까."
신황의 입가에 절로 웃음이 어렸다.
"훗!"
그때 나무 위에 있던 신원이 풀썩 뛰어 내려왔다.
"다들 간 거야?"
"그래!"
"아까부터 느꼈던 건데... 이 주위 좀 분주해졌네."
"그렇구나!"
신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게 아니라 주위의 공기가 이전과는 다르게 매우 빠르게 돌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느낌도......
"무이도 같이 보내지 그랬어. 자칫하면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데......"
"내가 지킨다. 그것은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정말 그 아이를 아끼는구나."
"너도 딸이라 생각해라. 그렇게 생각하고 지켜라."
신황의 말에 신원이 그 커다란 주먹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신황이 마주 주먹을 내밀어 부딪쳤다.
쿵ㅡ!
"그렇게 생각할게. 그런 각오로 지킬게."
"그래!"
순간 신황의 눈빛이 스산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 뒤를 이어 신원의 순박한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갔다.
이어 신원이 손을 허공으로 뻗었다. 그러자 나뭇가지 하나가 꺾이며 그의 손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는 잠시 나뭇가지를 바라보다 그것을 무이가 들어간 별채의 앞쪽을 향해 던졌다. 그러자 나뭇가지가 한 지점에 깊숙이 박혔다.
스스스ㅡ!
이어 별채에 지욱이 운무가 퍼져 나갔다.
이미 신원은 이 별채를 중심으로 술법을 펼쳐놓았다. 그리고 그것은 방금 전에 던진 나뭇가지 하나로 완성이 되었다.
그것은 신원이 조선 땅에 있는 은자에게 얻은 기문둔갑술(奇門遁甲術) 중 하나로 중원의 진법과는 그 원리가 확연히 틀렸다.
때문에 중원의 유명한 진법가라 할지라도 단시간에 해제를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순간 별채 주위에 지독한 살기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신황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 별채를 둘러싼 담장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괴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 마교인가?"
신황이 중얼거렸다.
그이 눈에는 검은 옷을 걸친 흑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백무와 흑우의 싸움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그 당시는 누가 무림맹 소속이고, 누가 마교의 소속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백무귀가 무림맹 소속이니, 남은 하나는 마교의 소속인 것이 당연했다.
"백형이 움직인 것인가? 아니면......"
신황은 고개를 저었다. 부질없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눈앞에 적이 있다. 적을 물리치는 것이 우선이다. 생각은 그 뒤에 해도 늦지 않았다.
"네가 명왕이란 애송이냐? 애송이 주제에 명호는 거창한 것을 쓰는군."
이죽거리면서 다가오는 남자. 그는 생사여수 감여몽이었다.
그토록 서종도가 주의를 하라 일렀지만 감여몽의 마음은 아직 나이 서른 정도밖에 안 된 애송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순간 신황의 눈이 한없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의 눈은 마치 지옥의 무저갱을 들여다보는 듯 차갑고 어두웠다.
순간 서종도가 자신도 모르게 흠칫했다. 사람의 눈빛이 그렇게 무거울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오늘 처음 알았다.
그는 자신이 순간적으로 위축되었던 사실이 부끄러운 듯 다시 대갈을 터트리려 했다.
"애...송이 놈이."
그때 나선 사람이 도패 마장소였다.
"진정해라, 아우!"
그의 눈에는 흥미로운 기색이 가득했다.
솔직히 신황을 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의 명성이 과장된 거라 생각했다. 대륙십강 자체를 그리 크게 생각하지 않는 그이다.
그는 솔직히 마교의 십대장로라면 대륙십강을 능히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때문에 신황이 젊은 나이에 대륙십강에 들어갔어도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대면하고 보니까 서종도가 왜 그렇게 신황을 높게 평가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난 아직까지 자네 같은 나이에 그런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본적이 없네. 하지만 그런 눈을 가지고 있는 남자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충분히 알고 있지."
"그래서?"
"후후... 난 최선을 다할 것이네. 그리고 내 아우들도 최선을 다할 것이야. 그러니 완벽을 기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움직여도 자네는 너무 원망을 하지 말게나."
여유롭게 말을 하는 마장소. 그러나 그의 말속에 숨겨진 뜻마저 여유롭지는 않았다. 합공을 하겠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도패 마장소. 그의 무서운 점은 그의 무공 때문만이 아니다. 필요하다면 합공마저 마다않을 정도의 철두철미한 성품 때문이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던 수단이라도 정당화 시킬 수 있는 인물. 그가 바로 마장소였다.
그는 신황이 위험하다고 봤다.
물론 혼자서 싸워도 밀린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완벽을 기하기 위해 합공을 하겠다고 공헌한 것이다.
신황은 앞으로 펼쳐질 싸움이 그리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상대에게서 풍기는 기운도 기운이지만 그들이 싸움에 임하는 태도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그때 혈선자 사요령이 신원을 향해 나서며 말했다.
"호호, 거기 덩치 큰 도련님은 내 몫이야. 우리 한번 찐하게 어울려 보자구."
"나이 든 할망구가 별말을 다 하는군."
"뭐?"
"껍질이 아무리 젊다고 해도 안까지 그렇지는 않은 것 같은데. 너무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게 아닌가? 난 총각이라구. 아줌마가 감히 노려볼 만한 사람이 아니야."
신원의 빈정거림에 사요령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자신을 빈정거렸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의 외모를 넘어 본질을 꿰뚫어 본다는 것은 신원의 경지가 그야말고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흐흐! 아무래도 오늘 화끈하게 몸 좀 풀어볼 것 같군. 아무래도 사매의 미염공도 저 산 만한 덩치를 가진 곰 같은 놈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 같군."
철포화상 맹도륜이 사요령의 곁에 나란히 했다.
맹도륜 역시 남들보다 큰 덩치를 자랑했지만 이렇게 신원의 앞에 마주서게 되니 머리 하나는 족히 작아보였다.
그가 언제 이렇게 남을 올려다봐야 했을까? 그는 자신이 고개를 이렇게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신원에 대한 살심이 무럭무럭 솟아올랐다.
어이가 없었지만 그것이 맹도륜이 신원에게 살심을 품는 이유였다. 단지 자신보다 신원의 덩치가 크다는 것이 말이다.
신원이 그런 맹도륜을 보며 말했다.
"마치 자라 같은 늙은이군. 몸통은 커다란데 손발이 그리 짧으니 어디 제대로 휘두르기나 하겠나?"
"흐흐! 네가 정녕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능력이 된다면 얼마든지. 그런데 좀 지겹군. 이렇게 말을 오래하니 말이야.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나, 늙은이?."
"이놈! 쳐랏!"
순간 맹도륜이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담장 위에 있던 흑우들이 신원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황은 곁눈질로 신원을 바라보다 곧 자신의 앞에 있는 도패 마장소와 생사여수 감여몽을 바라보았다.
둘은 합공을 하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등 뒤로 호교마장 다섯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신황을 옥죄어 오는 지독한 살기, 마장소와 감여몽을 제외하더라도 강호의 절정고수로 손색이 없는 호교마장이 다섯이다.
문득 오늘의 싸움이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정말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군.'
최악의 상황이다.
그런데도 그는 웃음이 났다. 최악의 상황인데 웃음이 나다니..
남들이 보면 두려움에 질려 미쳤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신황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할 말이었다.
그것은 신황의 입에서 나온 말로 증명이 됐다.
"이제야... 이제야 겨우 할 마음이 드는군."
그가 싸움에서 진정으로 최선을 다해본 적이 얼마나 됐을까?
항상 무언가 미지근한 것을 느꼈는데 오늘에서야 겨우 진짜 해 볼 마음이 생겼다.
신황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도패 마장소의 마음은 그리 편치 않았다.
'이놈, 진짜다! 우사가 그토록 이자를 경계했는지 이유를 몰랐는데, 오늘 그 이유를 알겠구나. 오늘 제거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환이 될 자다.'
최악의 상황에서 투지를 불태울 수 있는 자는 언제나 위험한 법이다. 이런 자이기에 서종도가 그토록 신황을 제거하자고 한 것이다.
결심이 서자 살심이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그의 살기를 느낀 호교마장들이 먼저 마장소와 감여몽의 앞으로 나섰다.
예전 팽가에서 신황과 싸운 팽만유도 호교마장 중 하나로 내정되었던 자다. 그만큼 호교마장 개개인의 신분은 범상치 않았다.
중원 각처에는 그런 호교마장이 일흔두 명이 있었다. 중원 땅이 워낙 넓다보니그들은 서로 간에 만날 일도 없었고 신분조차 몰랐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에서야 서로의 얼굴을 처음 볼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려 진면목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들 모두는 이름만 대면 중원 무림의 누구라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얼굴을 가린 것이다.
그런 남자 다섯이 신황을 둘러싸자 엄청난 압박감이 그의 전신을 짓눌렀다.
스르릉!
그들이 일제히 도를 뽑아들었다. 그것은 호교마장에게만 주어지는 탈백마도(脫魄魔刀)였다.
신황의 입가에 웃음이 서렸다. 마치 하늘에 떠있는 별들처럼 차가운 웃음이 말이다.
촤ㅡ아ㅡ앙!
순간 월영갑이 발동되며 그의 장포가 일어섰다.
고슴도치처럼 변한 그의 모습을 보며 호교마장이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그리고 다시 마장소와 감여몽이 기회를 노렸다.
"훗ㅡ!"
짧은 웃음과 함께 신황이 대지를 박찼다.
그 순간 호교마장들이 일제히 신황을 향해 도를 휘둘렀다.
파파팟!
거칠게 일어난 도파(刀波)가 신황의 전신을 예리하게 노리고 쏟아졌다.
탁!
그 순간 신황이 허공으로 몸을 솟구쳤다.
쉬쉬쉭!
이어 그의 몸에서 발출되는 월영인.
반월처럼 생긴 월영인이 쏘아져 오자 호교마장들은 일제히 몸을 날려 그것을 피했다. 그리고 탈백마도의 절초를 쏟아 붓기 시작했다.
콰콰콰!
거칠게 대기가 요동을 쳤다.
그 속에서 신황의 입가에 떠오른 하얀 미소가 얼굴전체로 번져갔다.
콰ㅡ앙!
한줄기 폭음이 거칠게 울려 퍼졌다. 뒤이어 흑우 중 한 명이 뒤로 훨훨 날아 바닥에 거칠게 나뒹굴었다.
그의 가슴은 움푹 함몰돼 있었고, 하체는 철저하게 짓이겨져 있었다.
신원의 일전격에 당한 흔적이었다.
'죽을 때까지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복장만 틀리지 백무귀의 그것과 다름이 없지 않은가!'
자신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도는 흑우를 보며 신원이 재빠르게 생각을 굴렸다.
'설마 백무귀의 비전이 무림맹뿐만 아니라 마교에도 유출되었단 말인가?'
백무귀를 조련시키는 방법은 오직 귀원사에만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삼십 년 전의 사건을 기점으로 완벽하게 사라졌다.
그런데 오늘 무림맹에서 또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마교의 소유로...
스스스ㅡ!
섣부르게 다가가던 한 명의 흑우가 신원에게 당하자 나머지 흑우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그들의 기척이 완벽히 사라지며 주위의 어둠과 동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분명 두 눈을 뻔히 뜨고 있었지만 신원의 앞에서 그들은 완벽하게 어둠과 동화되었다. 그리고 기척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흐흐! 놈, 당황스러울 것이다."
"호호호! 흑우의 은신술은 우리도 파악해내기 힘들지. 놈, 아마 혼란스러울 것이다."
명도륜과 사요령은 흑우에게 둘러싸인 채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신원을 비웃었다.
오직 별빛에만 의지해야하는 이런 칠흑 같은 밤에 흑우의 은신술을 파악하는 것은 그들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때문에 신원 역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쉬ㅡ익!
갑자기 어둠을 가르고 은빛 칼날이 모습을 드러내며 신원의 목을 노렸다. 순식간에 허깨비처럼 나타난 칼날을 신원은 몸을 급히 뒤로 젖혀 피했다.
하지만 워낙 창졸지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완벽하게 피하지 못했기에 신원의 뺨에 한줄기 혈흔이 남고 말았다.
신원이 다시 칼날의 주인을 찾았을 때는 이미 시커먼 어둠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다시 완벽하게 동화된 것이다.
신원은 뺨에 남은 혈흔을 만지며 중얼거렸다.
"백무귀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겠지. 어차피 비슷한 놈들이니까."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한 가지 기술을 떠올렸다.
전쟁터에서 백무귀들을 상대하기 위해 만드어진 기술. 그것이 바로 명왕망(冥王網)이었다.
스스스!
신원의 몸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그물처럼 그의 주위로 퍼지기 시작했다.
예전에 명왕권의 권사들은 전장에서 귀원사의 백무귀들을 상대로 격전을 벌였다.
난전(亂戰) 속에서 접근을 해오는 백무귀들, 그들과의 싸움은 고전의 연속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에 섞여서 접근을 해오는데 바로 곁에 다가오기 전에는 흔적을 발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기술이 바로 명왕망이다.
전신의 기를 모공으로 뿜어내 마치 거미줄처럼 촉각에 예민한 그물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흔적도 없고, 기척도 없다.
하지만 거미의 거미줄처럼 명왕망에 닿은 것들의 정보는 순식간에 신원의 손끝에 전달된다.
지금 이 순간 신원은 먹이가 걸리길 기다리는 거미나 마찬가지였다. 독이 오른 이빨을 숨긴.
신원이 눈을 감았다. 그리곤 손끝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출-렁!
그리고 잠시 후 명왕망에 무언가 느껴졌다.
쉬ㅡ익!
순간 신원의 팔꿈치가 맹렬하게 허공을 갈랐다.
콰드득!
이어 팔꿈치에 느껴지는 강렬한 타격감과 무언가 격렬하게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은밀히 접근하던 흑우 한 명이 제대로 걸린 것이다.
신원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다시 그의 반대쪽 팔이 허공을 갈랐다.
우지끈!
흑우의 갈비뼈 한쪽이 통째로 주저앉았다. 신원은 흑우의 부러진 갈비뼈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흑우의 신형을 들어 올려 전면을 막았다.
푸화학!
순간 그의 얼굴로 피가 튀었다. 동시에 그가 들어 올렸던 흑우의 몸이 두 동강이 나며 시퍼렇게 날이 서린 칼날이 나타났다. 또 다른 흑우가 접근을 한 것이다.
신원은 자신의 얼굴로 거침없이 다가오는 칼날을 그 커다란 손으로 덥석 잡았다.
비록 칼에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고, 시퍼렇게 도기까지 빛을 발하고 있었지만 신원의 손에는 상처가 나지 않았다. 그 역시 손에 기를 운용했기 때문이다.
휙!
신원은 손에 잡힌 칼을 거침없이 잡아당겼다. 그러자 그 엄청난 힘을 이기지 못하고 흑우가 딸려왔다.
콰득!
신원은 자유로운 한 손으로 딸려온 흑우의 목을 잡았다. 그리고 손에 힘을 가했다.
"커ㅡ헉!"
이제껏 비명이라곤 지른 적이 없던 흑우의 입이 떡 벌어지며 자신도 모르게 바람 빠지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뿌드득!
신원의 손에 힘이 가해지면서 흑우의 목이 보기 흉하게 모로 꺾였다.
"백무귀도 좋고, 흑우도 좋아. 모조리 죽여줄 테니까."
신원이 손에 들었던 흑우의 시체를 한쪽으로 던지며 차갑게 말했다.
"저...놈!"
"아무래도 우리도 끼어야 할 것 같군요. 덩치는 곰 같은 녀석이 여간한 게 아니에요."
맹도륜과 사요령이 신원의 모습을 보며 무겁게 대화를 나눴다.
어떤 수를 쓰는지 모르지만 신원은 정확히 흑우의 기척을 잡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가차 없이 손을 쓰고 있었다.
이 상태로 간다면 흑우가 몰살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렇게 된다면 불리해지는 것은 자신들이었다. 그 전에 끝내야 했다.
그들이 전권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그들의 눈에 커다란 덩치를 바람처럼 경쾌하게 움직이는 신원이 들어왔다.
콰콰콰!
신황의 머리 위로 한줄기 경력이 휩쓸고 지나갔다.
호교마장(護敎魔將)들이 펼친 화혼인(禍混印)이라는 수법이었다.
신황의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렸다 서서히 제자리를 찾았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들의 공격에 다시 그의 머리가 격렬하게 휘날리기 시작했다.
신황은 최소한 동작으로 호교마장들의 공격을 피하며 그들의 허점을 예리하게 살폈다.
그러나 다섯 명이서 완벽하게 호흡을 맞춘 듯 그들의 공격에 허점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도패 마장소와 생사여수 감여몽은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다.
다섯 사람이 빈틈없이 움직이는데 괜히 그들이 끼었다가는 파탄이 나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자신들이 끼어들 시점을 노렸다.
꾸욱!
신황의 주먹에 힘줄이 툭툭 튀어나왔다.
"허점이 없다고? 완벽하단 말이지! 그거 재미있군."
그가 걸음을 내딛었다.
순간 그를 노리고 다섯 줄기의 도파가 몰아쳤다.
쩌엉!
쩌ㅡ어ㅡ엉!
신황의 팔다리에 격중 하는 도인(刀刃), 그러나 월영갑에 막혀 신황의 몸에 상처를 입히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충격만큼은 고스란히 신황의 몸에 전달됐다.
파파팟!
지근거리에서 다시 몰아치는 다섯 줄기의 충격파. 서로간의 도가 거치적거릴 만도 하건만 그들은 교묘히 서로의 궤적을 피해 신황을 공격했다.
종횡으로 움직이며 마치 거미줄처럼 압박해오는 다섯 개의 도. 그것은 마치 죽음의 수레바퀴가 조여 오는 것과도 같았다.
두근두근!
심장이 거칠게 뛰며 전신에 급격하게 혈액을 공급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의 숨소리가 마치 누군가 바로 귀 옆에서 숨을 몰아쉬듯 생생하게 느껴졌다.
신황의 집중력이 최고조에 일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전장의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휘ㅡ익!
신황이 자신을 향해 조여 오는 죽음의 바퀴로 스스로 몸을 던졌다. 이어 그의 몸이 회전을 하며 대여섯 개의 월영인이 발출되었다.
사방으로 소용돌이치며 날아가는 반월모양의 검기.
호교마장들은 월영인을 피하는 대신 탈백마도의 절초 중 하나인 구주참(九州斬)을 펼쳤다. 다섯 명의 남자가 한마음으로 동시에 펼치는 초식.
비록 하나하나는 신황의 월영인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다섯이 모이자 오히려 신황을 압도하는 위력을 보였다.
콰콰콰쾅!
사방으로 터져나가는 검기의 파편.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죽음의 수레바퀴 같은 호교마장들의 연환공격. 거기엔 어떤 파탄도 없었다. 그만큼 그들의 공격은 무서웠다.
그러나 신황은 어떤 주저함도 없이 그들에게 몸을 날렸다. 그의 몸 위로 거친 도기가 몰아쳤다.
쒸에ㅡ엑!
퍼버버벅!
월영갑 위로 사정없이 도기가 작렬했다. 그 충격으로 신황의 몸에서 가죽 북 두드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신황은 온몸에서 느껴지는 충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신황의 얼굴은 생각보다 편안했다. 자신의 예상대로 월영갑이 대부분의 충격을 해소해 준 덕분이다.
비록 온몸이 지독한 통증으로 고통을 호소했지만 상관없었다.
신황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쉬익!
그의 오른손이 허공을 갈랐다.
목표가 된 호교마장이 급히 도를 들어 그의 월영갑을 막았다.
그러자 틈을 노려 다른 네 명의 호교마장이 일제히 신황의 몸에 탈백마도를 찔렀다.
그러나 신황은 그들의 공격을 피하는 대신 월영갑에 더욱 공력을 집중시켰다.
파바바박!
네 줄기 소성과 함께 신황의 몸에 네 개의 도가 작렬했다.
비록 월영갑을 극성으로 끌어올렸지만 네 줄기 도파는 그런 신황의 방어막을 헤치며 몸에 깊숙이 틀어박히고 말았다.
순간 복면 위로 드러난 그들의 눈 위로 희열의 빛이 떠올랐다.
자신들의 도가 틀어박힌 도를 타고 흘러내리는 신황의 피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순간 신황의 눈을 보지 못했다.
맨몸에 도가 박힌 고통에도 지독하게 차갑게 빛나는 그의 눈동자를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 뻗은 그의 손을 말이다.
주르륵!
그의 소매를 타고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그리고 철판처럼 일어선 그의 소맷자락은 목표가 되었던 호교마장의 입에 박혀 있었다.
피는 그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미 그 호교마장은 숨이 끊어진 채 신황의 팔 움직임에 맞춰 꼭두각시 인형처럼 흔들거리고 있었다.
신황의 입에서 거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날 상대하겠다고?"
순간 신황의 몸에 칼을 박아 넣었던 호교마장들의 얼굴에 곤혹스런 빛이 떠올랐다. 칼을 뽑으려 했지만 신황의 근육이 마치 족쇄처럼 칼을 조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에도 신황의 목소리는 계속해 흘러나왔다.
"날... 상대하려면......"
쉬이익!
순간 신황의 신형이 제자리에서 회전을 했다. 그러자 그의 몸에 박혀있던 탈백마도가 튕겨나가며 사방으로 피를 흩뿌렸다.
그와 동시에 은색의 선이 눈부시게 궤적을 그리며 신황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가 마침내 회전을 멈췄을 때 그의 몸에서 흘러내리던 피도 모두 멈춰 있었다.
신황이 그들 사이를 걸어 나가며 중얼거렸다.
"목숨을 걸어."
와르르!
순간 그토록 무시무시하던 기세를 자랑하던 호교마장들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그들의 목에는 하나같이 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깊은 자상이 새겨져 있었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말은 쉽지만 누구나 할 수는 없는 방법이다. 그것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모험을 할 수 있는 강단의 소유자만이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신황은 월영갑으로 몸을 최대한 보호한 채 호교마장의 칼에 자신의 몸을 내맡김으로써 아주 조그만 틈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승부의 고비 처에서 택한 그의 모험은 성공적이었다.
비록 그 대가로 몸에 네 개의 칼자국과 지독한 상처를 얻었지만, 어쨌거나 그 자신은 숨을 쉬며 살아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의 몸에 칼자국을 남긴 자들은 모두 바닥을 나뒹굴며 차가운 시체로 변해 있었다. 이 정도면 모험의 대가는 충분했다.
신황의 눈이 그를 바라보고 있는 도패 마장소와 생사여수 감여몽을 향했다. 그의 눈에는 고통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강한 상대를 그리워하는 끊임없는 투지만이 떠올라 있었다.
그의 몸에 상처가 하나 생길 때마다, 그의 손에 강한 상대가 하나씩 쓰러질 때마다 그의 무공은 진일보한다.
그것이 그의 삶이고 목적이다.
쿵ㅡ!
그가 한걸음 내딛었다. 지독한 살기와 패기가 흘러나왔다.
마장소와 감여몽의 눈이 서로를 향했다.
상대는 목숨을 걸고 있다. 상대가 목숨을 건다면 자신들도 목숨을 걸어야 했다.
"악귀와 싸우게 됐군. 아니... 명왕인가!"
스르릉!
마장소의 도집에서 푸른빛을 발하는 도가 뽑혀져 나왔다.
오늘날의 그를 있게 만들어준 마령도(魔靈刀)이다. 그래서 도법의 이름조차 단천마령도(斷天魔靈刀)였다.
감여몽의 손에서도 붉은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홍염화와 무이는 그들의 싸움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봤다.
비록 뿌연 안개에 휩싸여 있었지만, 안에서 밖을 보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때문에 그녀들은 신황 형제가 싸우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볼 수 있었다.
"...백부님."
무이의 손에 자신도 모르게 흥건히 땀이 배었다. 그리고 그것은 홍염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남자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그녀들은 안전한 곳에서 그저 응원을 할 수밖에 없다.
만화미인수(萬花美人手)와 자령도법(紫靈刀法)이라는 희대의 무공을 소유했지만 아직까지 완벽하게 익히지 못한 그녀들로서는 어떠한 도움도 될 수 없었다.
그것이 그녀들을 슬프게 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이.....
"난 왜 이렇게 힘이 없는 거죠? 나도 백부님을 도우고 싶은데......"
무이의 말에 홍염화가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네가 아무리 강해져도 신가가는 너의 손에 피가 묻는 것을 원하지 않을 거야. 그는 우리의 악업까지 모두 스스로 지고 걸어갈 생각일 테니까."
"알아요. 그래서 슬퍼요."
"나도 그렇단다."
홍염화의 눈가에도 어느덧 한 방울 눈물이 맺혔다.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는 세상의 모든 고난을 혼자의 어깨에 짊어지려는 남자다.
그는 주위의 사람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의 어깨에 모든 업을 짊어지려 한다. 그래서 더욱 처절하다.
홍염화가 말을 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의 뒷모습을 보아주는 것뿐. 그의 행적을 이 두 눈으로 똑똑히 새겨 넣는 것. 나는 그렇게 생각한단다."
"난 절대 백부님을 잊지 않을 거예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두 여인이 손을 꼭 잡았다.
그녀들이 보는 순간에도 신황 형제의 처절한 싸움은 이어지고 있었다.
두 여인은 그 모습을 자신들의 가슴 깊숙이 각인시켰다.
[60 회]
촤촤촹ㅡ!
형체는 보이지도 않는데 무기 부딪치는 소리가 전장을 가득 메웠다. 그것은 그들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고속으로 이동을 하며 싸우기 때문이다.
타타타타!
신황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손을 휘둘렀다.
월영갑을 발동시킨 채 월영인까지 두른 그의 양손은 세상에서 제일 날카로운 흉기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마장소와 감여몽도 녹록치 않은 인물들이었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절기를 끌어올려 신황의 공격에 대응했다.
어두운 밤하늘을 환하게 물들이는 찬연한 불꽃이 피었다 사라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때마다 어둠속에서도 무심한 빛을 뿌리는 신황의 눈이 보였다.
'어린 놈이 대단하구나. 내 나이 오십 때도 저런 눈빛을 가지지 못했다. 수많은 생사격전을 거친 나보다 더 냉정한 눈빛이라니...
기필코 놈을 죽여야 한다. 어떠한 희생을 치를지라도.....'
마장소는 마령도를 휘두르면서 생각했다.
자신과 수없이 손을 섞고 있는 신황. 일대 이의 대결인데도 우세를 점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그것은 신황이 마장소나 감여몽, 두 사람보다 강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쉬릭!
그가 잠시 상념에 잠긴 순간을 신황이 놓치지 않고 주먹을 찔러왔다. 이미 철판보다 단단하게 변한 신황의 소맷자락이 그의 목을 향해 거침없이 짓쳐왔다.
"이런!"
마장소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급히 마령도를 휘둘러 신황의 소맷자락을 쳐냈다.
까ㅡ앙!
쇳소리가 울려 퍼지며 신황의 신형이 뒤로 밀리는 듯했다. 그러나 그 순간 신황은 몸을 격렬하게 회전시키며 수면을 나는 제비처럼 신형을 낮게 가라앉혔다.
쉬이익!
그와 함께 지근거리에서 월영인이 발출됐다.
"헛ㅡ!"
까ㅡ앙!
그에 마장소는 기겁할 듯이 놀라며 마령도를 이용해 월영인을 튕겨냈다. 그러나 워낙 가까운 거리에서 발출된 것이라 충격이 만만치 않게 몸으로 전해졌다.
"크읏!"
마장소의 신형이 자신도 모르게 충격에 흔들렸다. 신황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쉬쉭!
그는 연이어 두 개의 월영인을 발출했다.
그리고 현월보를 펼치며 마장소의 뒤를 점유하려 시도했다. 만약 이대로 신황에게 뒤를 허용하게 되면 그 후환이 끊임없을 것이다.
"어딜!"
그 순간 마장소를 도와준 사람은 감여몽이었다.
그는 자신의 절기인 음양혈마수(陰陽血魔手) 중 쇄혼수(碎魂手)를 이용해 신황의 옆구리를 후려갈겼다.
그러나 신황은 그런 감여몽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파ㅡ앙!
"큭!"
순간 신황의 내장을 울린 충격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그리고 입가로 흘러내리는 한줄기 선혈. 그러나 신황은 멈추지 않았다.
신황의 발이 급격한 곡선을 그리더니 마장소의 목덜미를 향해 내리 찍었다.
비록 감여몽의 방해로 인해 제대로 힘을 싣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한 사람을 골로 보낼 위력은 충분했다.
쩌ㅡ어ㅡ엉!
"크읏!"
순간 마장소가 마령도로 겨우 신황의 공격을 막아내며 신음소리를 터트렸다.
손바닥이 찌릿찌릿하다. 그리고 등에 느껴지는 한줄기 식은땀.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공격이었다.
설마 감여몽의 공격을 그대로 몸으로 소화해내며 공격을 할 줄이야. 그것은 그 자신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수법이었다.
회심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신황의 신형이 제자리를 찾았다.
결정적인 호기를 놓쳤으면 그 어떤 실망의 표정이라도 나타나야 할 텐데 신황에겐 그런 것이 없었다.
쉬익!
그는 신형을 바로 잡자마자 무심한 눈빛을 빛내며 다시 달려들었다. 그것은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서 달려 나오는 악귀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ㅡ놈!"
순간 죽음의 고비에서 한발 벗어난 마장소가 대갈을 터트리며 자신의 절기인 단천마령도 중의 뇌절류(雷絶溜)를 펼쳐냈다.
콰콰콰!
순간 뇌전형상의 도강이 발출되며 신황을 향해 짓쳐들었다.
신황은 멈추지 않았다. 대신 오른손을 자신의 눈앞으로 들어올렸다. 그러자 월영륜이 손바닥 위에 떠올랐다.
기이잉!
잠자리가 날갯짓하는 소리를 내는 월영륜. 신황은 월영륜을 도강에 던지고, 다시 월영인을 감여몽에게 발출했다.
쉬쉬쉭!
눈부신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는 월영륜과 월영인.
콰콰콰콰!
도강과 월영륜이 부딕치며 거센 후폭풍이 몰아쳤다. 그 와중에 감여몽은 음양혈마수의 절초인 참백수(斬魄手)를 펼쳐 신황의 월영인을 막아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감여몽과 마장소는 신황의 모습을 놓쳤다.
"어디?"
순간 신황을 찾아 눈을 빛내던 감여몽의 눈에 흠칫하는 빛이 떠올랐다. 어느새 궤도를 바꿔 그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산발을 한 채 붉게 충혈된 눈을 빛내며 달려오는 신황의 모습은 충분히 위압적이었다.
"젠장ㅡ!"
"아우!"
감여몽의 위기에 마장소가 참마혼의 초식을 펼쳐 신황의 등을 공격했다.
그러나 신황은 그런 마장소의 공격을 무시했다. 그는 월영갑을 극성으로 끌어올린 채 더욱 감여몽을 향해 속력을 높였다.
콰ㅡ앙!
그런 신황의 등판으로 마장소의 공격이 작렬했다.
순간 신황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월영갑으로 보호한다고 했는데도 지독한 고통이 온몸을 습격했다.
그러나 그는 비명을 지르는 대신 자신의 앞에 보이는 상대를 노려보았다. 그의 적이 눈앞에 있었다.
그 순간 감여몽의 음양혈마수 중 교마수(較魔手)가 발동되며 신황의 전면을 향해 터져 나왔다.
앞으로 훨훨 날아가는 신황. 그런 그를 노리고 날아오는 거대한 손의 그림자. 순간 신황의 몸이 교묘히 비틀리면서 감여몽의 공격을 피해냈다.
신황의 옷깃이 경력의 여파에 허공중에 흩날렸다.
순간 신황의 전면에서 십자형태의 빛 무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감여몽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내리 꽂혔다.
"감히!"
감여몽이 외마디 고함을 지르며 다시 음양혈마수를 펼치려 했다.
조금 전의 격돌로 신황의 월영인이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해소하지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쉬쉬쉭!
신황의 몸에서 나오는 십자형태의 빛 무리가 급격히 증가하며 중첩됐다. 그리고 그것은 차례로 감여몽이 펼친 절초와 격돌하기 시작했다.
콰콰콰쾅ㅡ!
"크아악!"
폭음이 터져 나오고 누군가의 비명과 함께 빛의 편린이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아우ㅡ!"
마장소가 급히 감여몽을 부르며 달려왔다.
불과 숨 두어 번 고를 시간에 다가온 마장소. 그러나 그가 가라앉은 폭발의 현장에서 본 것은 감여몽의 가슴에 소맷자락을 박아넣은 신황의 모습이었다.
십자가형태의 빛 무리를 막아내느라 자세가 흐트러진 감여몽의 빈틈을 신황이 놓치지 않은 것이다.
덕분에 몸은 엉망이 되었지만 그래도 감여몽을 죽일 수 있었다.
신화의 팔이 가슴 깊숙이 박힌 감여몽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이미 회색으로 변질되고 있었다.
기실 좀 전의 십자형태의 빛 무리는 월영인을 교차시켜 만들어낸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한두 개도 아닌 십여 개의 월영인을 한번에 만들어내느라 신황의 공력의 소모는 극심했다.
"후욱, 후욱!"
신황이 거친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이미 감여몽과 마장소의 공격을 두 번이나 몸으로 받아내었기에 그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비록 월영갑으로 충격을 최소한으로 줄였다지만 감여몽이나 마장소의 공격은 그 정도로 해소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털썩!
신황이 가슴에 박아 넣었던 소맷자락을 빼자 감여몽의 몸이 처절하게 무너져 내렸다.
신황이 선혈로 범벅된 손으로 입가를 문지르며 마장소를 향해 말했다.
"이제야... 둘이 싸워볼 수 있겠군."
"네놈!"
"제대로 해보자구."
선혈로 범벅이 되었으면서도 끝없이 투지를 불사르는 신황의 모습은 마장소의 노안을 당혹하게 하기 충분했다.
뿌드득.
그러나 마장소는 이빨을 거칠게 갈며 소리쳤다.
"내 아우를 죽인 죄, 결코 너 하나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으리라. 내 지옥의 악마가 되어서라도 반드시 네 녀석의 숨통을 끊을 것이다."
"그거...재미있군."
신황의 눈에 광기가 떠올랐다.
퍼버버벅!
신원의 몸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마치 성난 황소처럼 돌진하는 그의 어깨 위로 맹도륜의 공격이 작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청난 충격에도 불구하고 신원의 돌진은 멈추지 않았다.
칠 척이 훨씬 넘는 엄청난 거구가 움직이자 마치 거대한 바위가 굴러오는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신원의 돌진은 위협적이었다.
"정말 미친 곰이 따로 없군."
혈선자 사요령이 혈류편(血劉鞭)을 거둬들이며 질렸다는 얼굴을 했다.
방금 전에 그녀가 펼친 초식은 교탈천공(矯奪天空)이란 초식으로 한 번 격중당하면 살이 갈기갈기 찢길뿐더러, 뼈마저도 가루로 변하는 극악한 수법이었다.
때문에 같은 십대장로들조차 그녀의 혈류편을 꺼려했다. 그런데 신원은 사요령의 공력이 담긴 혈류편을 맨몸으로 받아낸 것이다.
이미 그녀와 맹도륜의 근처에 있던 흑우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처참하게 어육으로 짓이겨진 상태였다. 가공할 만한 신원의 몸통공격에 당한 흔적이었다.
비록 흑우의 은신술이 뛰어나긴 했지만 신원의 명왕망마저 속일 수는 없었다.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던 흑우들은 부나비처럼 신원에게 다가왔고,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
그 결과 이제 싸움은 신원과 맹도륜, 그리고 사요령의 일대 이의 대결로 압축됐다.
"이놈! 감히 내 앞에서 힘자랑을 하다니."
순간 철포화상 맹도륜의 대갈이 터져나왔다.
그의 절기가 적룡혼원신공(赤龍混元神功)이라는 무공이었다.
그것은 무기를 이용하는 무공이 아니라 강력한 강기를 바탕으로 펼치는 박투무공이었다.
맹도륜은 적룡혼원신공을 대성해 근접전에서는 당할 자가 없다고 소문난 자였다. 그런 그가 신원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겁을 집어먹을 이유가 없었다.
투두둑!
맹도륜의 옷이 뜯겨져 나갔다. 그가 숨을 들이쉬자 덩치가 크게 불어났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왜소한 체구였던 그가 신원과 비슷할 정도로 덩치가 커졌다.
"이놈!"
부ㅡ웅!
그의 주먹이 거칠게 허공을 갈랐다. 적룡혼원신공으로 온몸이 보호받고 있는 이상, 그의 주먹이 부수지 못할 것은 없었다.
콰아아ㅡ!
주먹이 들이닥치기도 전에 경기가 먼저 들이닥쳤다. 그러나 신원은 맹도륜의 주먹을 피하지 않았다.
"후퇴 따위는 없다. 물러서는 것도 없다.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부순다. 그것이 바로 명왕권이다."
신원이 광오하게 외치며 마주 주먹을 휘둘렀다.
대기가 비명을 지를 정도로 광폭한 지르기. 일전격이었다.
쩌ㅡ어ㅡ엉!
적룡혼원신공이 운용된 맹도륜의 주먹과 신원의 주먹이 허공에서 부딪치며 엄청난 파장을 만들어냈다.
뿌드득!
누군가의 주먹에서 뼈마디 어긋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반대쪽 주먹을 휘둘렀다.
콰드득!
다시 뼈와 뼈가 작렬했다.
"이놈이......"
맹도륜이 선혈이 낭자한 주먹을 보며 어이없는 얼굴을 했다.
분명 적룡혼원신공에 의해 보호받고 있는데도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신원의 주먹은 그야말로 깨끗했다. 그것이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콰ㅡ악!
그가 신원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러자 곧 그의 상체의 근육이 부풀어 오르며 힘줄이 도드라져 나왔다.
힘겨루기에 들어간 두 사람, 신원의 순박했던 얼굴은 이미 흉신악살로 변한 지 오래였다.
"감히... 나를 상대로 힘겨루기를 하잔 말이지?"
투두둑!
신원의 근육이 마치 갑옷처럼 부풀어 오르며 그의 옷이 여기저기 터져 나갔다.
그의 아버지인 신권영을 제외하고 아직까지 힘에 관해선 적수를 찾아보지 못한 그이다.
열두 살에 호랑이의 허리를 두 동강 내 죽였고, 열다섯 살에 곰을 때려죽였다. 그만큼 힘에 관한 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자부심을 가진 그였다.
"끄으응!"
"챠하핫!"
손을 마주잡은 두 사람의 입에서 마치 앓는 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본격적인 힘겨루기에 들어간 것이다.
콰ㅡ아ㅡ아!
두 사람이 힘겨루기에 들어가면서 그들의 주위로 거친 기운이 소용돌이치며 퍼져 나갔다.
"이런!"
그 모습에 사요령이 혀를 찼다.
잠시 망설이는 틈에 맹도륜이 독선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저렇게 붙어서 힘겨루기에 들어간 이상,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 상태에서 신원을 공격하면 그 충격이 그대로 맹도륜에게까지 전달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저렇게 강기가 줄기줄기 뻗치는데 근접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자살시도나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둘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그들의 주위를 맴도는 일뿐이었다.
주르륵!
맹도륜의 이마 위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동시에 그의 이빨이 덜덜 떨렸다. 그에 비해 신원의 눈은 핏발이 선 채 무섭게 부릅떠져 있었다.
두 거한이 혼신의 힘을 다해 힘겨루기를 하는 모습은 어찌 보면 장엄하기까지 했다.
뚜두둑!
누군가의 몸에서 뼈마디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조금씩 승부의 무게추가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크으......!"
맹도륜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나왔다. 적룡혼원신공을 운용했는데도 밀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젖 먹는 힘까지 모두 끌어올렸는데도 점점 밀리는 것은 자신이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멈출 수도, 몸을 뺄 수도 없었다.
이것은 힘고 힘의 대결뿐만이 아니라 내공의 대결이기도 했기 때뭉니다. 이 대결에서 몸을 빼는 자는 그야말로 회복불능의 상처를 입고 만다.
그리고 설혹 이 상태로 죽더라도 그의 자존심이 그가 몸을 빼도록 용납하지 않았다.
뚜둑, 뚜두두둑!
점점 뼈마디 부딪치는 소리가 커져갔다. 그리고 맹도륜의 거대한 허리도 조금씩 뒤로 꺾이기 시작했다.
"크으......!"
맹도륜의 팔이 뒤로 젖혀졌다. 안감힘을 썼지만 신원의 팔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이미 신원의 힘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크아아ㅡ!"
마침내 맹도륜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완전히 팔이 뒤로 젖혀진 것이다.
그는 적룡혼원신공을 운용하며 다시 반격을 하고자 했지만 신원의 엄청난 힘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적룡혼원신공도 엄청났지만 명왕심결은 더했다. 피를 보아야만 직성이 풀리는무공, 그것이 바로 명왕권이었다.
빠직!
마침내 팔과 함께 허리를 조이기 시작한 신원의 이마가 맹도륜의 이마에 작렬했다. 금강두의 공격이었다.
맹도륜의 이마가 반쯤 함몰됐다.
"이야아앗!"
이어 신원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왔다. 그에 비례해 그의 전신에 근육들의 더욱 무섭게 부풀어 올랐다.
우두둑!
맹도륜의 척추가 어긋나는 소리가 요란하게 터져 나왔다.
"이놈, 오라버니를 놓지 못하겠느냐?"
맹도륜의 허리가 새우처럼 꺾여 들어가자 사요령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혈류편을 휘둘렀다.
내공을 겨루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은 금기였지만 더 이상 봐줄 형편이 아니었다.
이 상태로 그냥 둔다면 맹도륜의 허리는 완전히 스르러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쉬익!
등 뒤로 무섭게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신원은 맹도륜을 조이던 두 손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거세게 조였다.
파ㅡ아ㅡ앙!
신원의 등판에 사요령의 공격이 작렬했다. 그 덕분에 그의 몸이 십여 장이나 앞으로 주르륵 밀려갔다.
이미 그의 상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고, 그의 등판은 검은색으로 변색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엄청난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들였음에도 맹도륜을 조인 두 손을 풀지는 않았다.
"이...놈!"
사요령은 자신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나타난 끔찍한 광경에 그만 치를 떨고 말았다.
이미 맹도륜의 허리는 완전히 뒤로 꺾여 있었고, 갈비뼈는 통째로 으스러져 살갗을 뚫고 보기 흉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그제야 신원이 맹도륜을 조였던 팔을 풀었다. 그가 자신의 입가로 흘러내린 한줄기 선혈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만약 네가 다른 무공으로 덤볐으면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명왕권을 익히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힘과 그에 걸맞은 엄청난 체격이다.
그런 명왕권의 권사에게 힘으로 덤볐으니 이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수순일지도 몰랐다.
"네놈!"
사요령이 신원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녀의 눈은 증오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신원이 몸을 돌렸다. 등판이 아려왔다. 사요령에게 당한 상처때문이다.
"훅!"
백용후는 나직한 신음을 터트렸다.
갑자기 끓어오르는 살심 때문이었다. 요 며칠 지독한 살심이 그의 심신을 지배했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 싶고,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를 죽이고 싶은 욕구가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콰득!
그의 손안에서 물 잔이 산산이 부서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심마(心魔)인가?"
비록 마교의 권이지만 패천권은 광명정대한 무공이다. 때문에 심마가 들 만한 요인은 없다. 그런데도 심마가 계속 자신을 지배한다는 것이 이상했다.
'어디에서... 혹.......?'
백용후는 한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냈다.
신병쟁탈전에서 연이어 뒤집어 쓴 녹색의 피(綠血), 그것밖에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웅~ 웅~ 웅~!
백용후의 심란한 마음을 아는 것인지 방 한쪽에 놓인 혈영신도가 나직한 울음을 터트렸다. 그것이 백용후의 살심을 더욱 자극했다.
"백무광, 무슨 짓을 꾸미는 것이냐?"
그는 무림맹주 백무광의 얼굴을 떠올리며 증오를 불태웠다.
내일 저녁에 연회가 열리면 기회가 올 것이다. 그때까지는 치밀어 오르는 살심을 꾹 눌러 참아야 했다.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광폭한 살기와 싸우느라 백용후는 혼신의 힘을 다해야했다. 덕분에 그는 그의 숙부인 서종도가 자신 몰래 꾸민 일을 눈치 채지 못했다.
신황과 마장소의 신형이 교차했다.
그들의 얼굴은 땀과 피로 이미 범벅이 되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투기를 거두지 않았다.
이미 그들이 싸운 여파로 별채는 초토화 된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무림맹에서 누구하나 달려오지 않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이 정도의 소란이 일었으면 의당 근처에 있는 누구라도 알아차리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도 아무도 달려오지 않는 다는 것은, 마교에서 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완벽하게 차단했다는 말이기도 했다.
"헉...헉! 정말 대단하구나. 내 평생 너 같은 놈은 처음이다."
마장소가 거친 호흡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분명 자신보다 심한 상처를 입었고, 계속된 격전으로 심신이 지쳐있을 텐데도 신황은 지치지도 않는지 끊임없이 투지를 불태웠다. 그것이 그를 질리게 만들었다.
"후욱, 후욱!"
신황 역시 거친 호흡을 골랐다.
도패 마장소는 결코 쉬운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치밀했고, 또한 강했다.
더구나 신황이 감여몽을 상대로 어덯게 손을 쓰는지 미리 보았기에 그에 대한 대비도 철저히 했다. 수비위주로 무공을 펼치니 일시지간 파고들어갈 틈을 찾지 못했다.
뿌득!
신황의 입에서 이 가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직 여력이 있었다. 비록 상처를 입고 지쳐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 여력이 있었다. 아직 자신은 십 할의 모든 실력을 발휘한 게 아니다. 그렇다면 아직 더 싸울 수 있다.
팟ㅡ!
그가 대지를 박찼다.
혈인이 되어서도 지독한 투기를 내뿜으며 달려오는 신황의 모습에 마장소가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감여몽이 죽고, 맹도륜이 죽었다. 거기에다 흑우와 호교마장 다섯까지 잃었다. 오늘의 습격은 그야말로 대 실패였다.
무림맹에 들어온 마교의 정예 중 삼분의 일이 저 두 형제에게 몰살을 당한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었다. 지금 저자를 죽여야 했다.
마장소는 자신의 최고절기를 끌어올렸다.
"최후의 승부다. 이 한 수로 널 지옥으로 보내주마."
웅웅웅!
마장소의 마령도가 울음을 터트렸다.
지독한 혈향과 함께 패도적인 기운을 뽑아내는 마령도. 그것은 단천마령도의 최후 절초인 혼마세(混魔世)를 펼칠 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혼마세. 그것은 마장소를 십대장로 중 서열 세 번째에 오르게 한 절대의 초식이었다.
혼마세가 펼쳐지면 방원 십 장이 완벽하게 초토화되고 그 안의 생명체는 모두 말살되고 만다.
그러나 이 초식은 워낙 내공의 소모가 엄청난데다가 자칫하면 진원지기까지 손상될 수 있었기에 될 수 있으면 쓰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상황은 이것저것 가릴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이야아아ㅡ!"
마장소가 거칠게 기합을 터트리며 혼마세를 펼쳐냈다.
검은 기운이 물씬 일어나며 하나의 검은 고리를 형성했다. 그것은 도환(刀丸)이었다.
도강의 끝에 존재한다는 전설적인 경지. 이기어검(以氣馭劍)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입에서 전설로 회자되는 그 경지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마장소의 도 끝에서 일어나는 도환을 보며 신황이 눈을 더욱 스산하게 가라앉혔다. 그러나 마장소를 향해 돌진하는 속도를 줄이지는 않았다.
촤ㅡ아ㅡ앙!
월영갑이 발동되며 고슴도치처럼 일어섰다. 그러나 신황 본인도 월영갑이 도환을 막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막을 수 있는 것이라면 전설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콰아아아ㅡ!
대기가 거칠게 갈라지며 도환이 신황을 향해 날아왔다.
신황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의 눈은 도환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주위의 대기 흐름까지 잡아내고 있었다. 극도의 집중력이 발휘된 것이다.
그러나 신황이 택한 것은 의외로 정면대결이었다. 그의 주먹이 도환을 향해 날아갔다.
그 모습을 보며 마장소가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그는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미친 듯이 웃어젖혔다.
"크하핫! 어리석은 놈, 겨우 그 따위로 도환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냐?
그 정도로 막을 수 있다면, 내 모든 공력을 소모하여 도환을 펼치지도 않았다. 지옥으로 떨어지거라. 크하하핫!"
그의 광소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콰ㅡ아ㅡ앙!
이어 신황과 도환이 충돌하면서 엄청난 충격파가 대지를 휩쓸었다. 대기가 비명을 지르며 폭발의 장소에서 요동을 쳤고, 돌덩이가 허공을 날았다.
쉬잉!
그 순간 무언가 미세한 소리가 날카롭게 대기를 갈랐다. 그러나 마왕소는 자신만의 광기에 취해서 그 소리를 미쳐 듣지 못했다.
그러다 무언가 섬뜩한 느낌에 그는 자신의 목을 만졌다.
주르륵!
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검붉은 선혈.
"이...게."
그는 잠시 자신의 손을 멍하니 바라보다 앞을 바라봤다. 그러자 떨어지는 돌무더기와 먼지를 헤치며 나타나는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너...넌, 신...황. 어떻게?"
스르륵!
순간 그의 머리가 옆으로 미끄러져 내렸다. 때문에 그는 미처 말을 다 잇지 못했다.
혈인이 된 신황이 마장소를 보며 무심히 중얼거렸다.
"도환(刀丸)만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은 아니지."
도환과 충돌하려는 순간 신황은 자신의 장포를 금선탈각(金蟬脫殼)의 수법으로 빠져 나갔다.
월영갑이 발동 되어 철판같이 단단했던 장포는 당연히 도환과 격돌하며 폭발을 일으켰다.
그것은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또한 지독한 근거리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신황은 그야말로 목숨을 담보로 모험을 한 것이다.
비록 덕분에 등판이 걸레짝이 되다시피 했지만, 덕분에 폭발로 몸을 숨기고 월영륜을 날릴 수 있었다.
광소를 터트리던 마장소의 신경이 분산된 탓에 그의 공격은 훌륭히 성공했다.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기 전까지는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야."
그것은 자신에게 하는 다짐과도 같은 말이었다.
신황은 아직까지 대지에 굳건히 두 다리를 박고 서있는 마장소의 몸통을 한번 본 후 몸을 돌렸다.
그의 눈에 사요령과 격렬한 싸움을 하고 있는 신원의 모습이 들어왔다.
촤촤촤!
사요령이 혈류편을 흔들 때마다 막대한 충격이 신원에게 몰려왔다. 그녀의 혈류편은 원거리 공격뿐 아니라 근거리 공격에도 매우 유용한 병기였다.
때문에 신원이 일시지간 그녀의 근처로 접근하기가 용의하지 않았다.
"맹 오라버니를 죽인 죄, 오직 네놈의 목숨으로만 용서받을 것이다."
촤하학!
사요령의 외침과 함께 한줄기 고랑이 신원의 등 뒤에 길게 파였다.
살점이 한 움믐이나 떨어져 나갔는데도 신원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떠오르지 않았다.
쉬잉!
갑자기 사요령의 혈류편에 붉은 빛이 타올랐다.
'편강?'
신원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분명히 저 현상은 신병쟁탈전에서 서도문이 보여줬던 편강을 펼칠 때 일어나던 현상이기 때문이다.
순간 피투성이가 된 그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러나 사요령은 미처 신원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혈류편에 주입된 내력을 조절하는데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마침내 사요령의 채찍에 붉은 빛 무리가 찬연하게 맺혔다. 사요령은 거침없이 채찍에 맺힌 편강을 신원에게 날렸다.
쉬이익!
편강이 길게 곡선을 그리며 횡으로 날아왔다. 순간 신원이 편강을 향해 마치 황소처럼 돌진했다.
"미친놈!"
사요령이 신원의 모습을 보며 냉소를 터트렸다. 그녀의 눈에 비친 신원의 모습은 그야말로 자살을 택하려는 모습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원은 미친 것도, 삶에 지쳐 자살을 택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명왕권에 호신강기 따위는 없다. 대신 육체를 바위보다 더 단단하게 단련하는 방법을 택했다.
호신강기처럼 몸을 보호하는 수법에 치중하다 공격적인 성향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콰아아!
편강이 다가오자 갑자기 신원의 몸이 갑자기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휘어졌다. 이어 그의 주먹에 찬연한 빛이 타올랐다.
신원은 빛이 타오르는 주먹을 휘둘렀다.
콰ㅡ아ㅡ앙!
신원의 주먹과 편강이 격돌을 했다. 순간 편강과 그의 주먹이 팽팽하게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챠하핫!"
순간 신원이 기합을 내지르며 반대쪽 손을 편강에 박아 넣었다.
"끄으응~!"
그의 입에서 앓는 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그극!
이어 놀라운 모습이 펼쳐졌다.
그토록 위맹한 기세를 자랑하던 사요령의 편강이 신원의 두 손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발겨진 것이다.
신원은 편강을 찢어발긴 기세를 몰아 그대로 사요령을 향해 돌진을 했다.
두두두ㅡ!
대지가 그의 육중한 몸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그 위맹한 기세에 사요령이 이를 악다물며 다시 혈류편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 순간에 신원은 이미 그녀의 지척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콰ㅡ아ㅡ앙!
"끼아악!"
혈류편이 채 반도 휘두르기도 전에 신원의 강력한 몸통 공격이 사요령의 가냘픈 몸을 들이받았다.
그 엄청난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사요령은 뒤로 훨훨 날아가고 말았다.
신원은 뒤로 날아가는 사요령을 따라붙었다.
그가 솥뚜껑만 한 주먹을 쥐며 싸늘히 말했다.
"두 번 다시 그 따위 껍질로 젊은 남자를 유혹하지 못할 거야."
순간 사요령의 눈이 크게 떠졌다. 신원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안......"
퍼ㅡ억!
사요령의 말이 중간에서 잘려졌다. 대신 그녀의 얼굴에는 신원의 커다란 손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요령의 얼굴은 이미 반쯤 함몰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신원의 몸이 거칠게 회전을 하며 팔꿈치가 사요령의 몸통에 그대로 작렬했다.
콰아앙!
"크엑!"
아직 완벽하게 정신을 잃지 않은 사요령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갈비뼈가 송두리째 주저앉았기 때문이다.
"지옥으로 꺼지라구."
신원이 무너지는 사요령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두ㅡ웅!
한줄기 충격파가 사요령의 심장을 관통했다.
참공파였다.
털썩!
무너지는 사요령의 시신. 이미 그녀의 모습에서 조금 전의 젊고 아름다웠던 모습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보이는 것은 이제 백세에 가까울 것이라 짐작되는 노파의 처절한 시신뿐이었다.
"후...우!"
신원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무척이나 피곤했기 때문이다.
그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앞에는 신황이 있었다.
"수고했다."
"형도......"
그들이 손을 마주 잡았다.
신원은 잠시 숨을 고른 후 홍염화와 무이가 있는 별채에 건 술법을 해체하려 했다. 그러나 그가 문득 인상을 찡그렸다.
"무슨......"
신황이 말을 걸려다 멈췄다. 그 역시 이상한 점을 느꼈기 때문이다.
술법이 해체돼 있었다. 신원이 아니면 해체할 수 없는 술법이 무너져 있다는 것은 누군가 별채에 침입을 했다는 말이 된다.
그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콰ㅡ앙!
별채의 문이 신원의 주먹에 폭발하듯 부서져 나갔다.
그들은 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별채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홍염화도 무이도 그곳에는 없었다.
"이들이 제 발로 나갈 일은 없는데......"
"누군가 납치했다."
신황의 안색이 굳었다. 그리고 지독한 살기가 그의 몸 주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입을 열었다.
"설사 이들이 손쓸 틈도 없이 납치당했다 하더라도 그들의 곁에는 설아가 있는데......"
캬웅ㅡ!
그때 낯익은 소리가 들려왔다.
신황 형제가 고개를 들자 뚫린 지붕 위로 설아의 모습이 보였다.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는 설아, 그것은 설아가 그만큼 고전을 겪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적들은 신황 형제가 마교의 인물들과 싸우는 틈을 타 이곳에 걸린 술법을 강제로 해체하고 홍염화와 무이를 납치해간 것이다. 그리고 설아는 그 와중에 부상을 입은 것이고......
상황이 정리가 되자 신황의 눈이 다시 냉정을 되찾았다.
그는 우선 자신의 옷장으로 가 깨끗한 검은 장포 한 벌을 꺼내 몸에 걸쳤다. 그리고 예전에 초관염이 내상약으로 준 환약을 꺼내 자신이 몇 알 먹고 신원에게도 던져 주었다.
신원 역시 신황이 준 내상약이 범상치 않은 것임을 느끼고는 망설임 없이 복용했다. 그리고 두 형제는 동시에 운기에 들어갔다.
설아는 세로로 좁아진 눈동자로 두 형제가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의 입에 묻은 피를 혀로 닦아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마침내 두 형제의 운공이 끝났다. 신황이 먼저 눈을 뜨고, 곧 신원이 눈을 떴다. 그들은 잠시 호흡을 정리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황이 설아를 보며 말했다.
"추적할 수 있겠지?"
캬ㅡ웅!
설아가 나직이 울음을 터트렸다. 이어 어두운 야공으로 몸을 날렸다.
신황과 신원이 그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그때까지 어둠에 가려졌던 해가 어슴푸레 떠오르며 두 형제의 얼굴을 비췄다.
그들의 얼굴에는 짙은 살기가 흐르고 있었다.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어주지. 지옥에서......"
신황의 낮은 목소리가 바람에 흩날렸다.
그들이 향한 곳은 무림맹의 금지라는 혈뢰옥(血牢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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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잘봅니다..~~
감사합니다
어찌 되었을까요...
감사합니다
즐감요
감사합니다
잘 봤습니다.
고맙게 잘보고 있어요~~~
즐독
즐감
ㄳㄳ
잘봅니다
감사요
감사합니다
즐감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 ????????????????????
즐감하고 갑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 하고 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