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선례 남긴 삼성전자 노조
[경제포커스]
전수용 기자 2026. 5. 20.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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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거위 배 갈라 돈잔치
상상못할 로또 성과급으로
미래 세대 몫까지 도둑질
‘N% 성과급’ 전방위 확산
지난 4월 23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의 '투명하게 바꾸고, 상한폐지 실현하자-4/23 투쟁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기업 성장은 내일에 대한 투자와 오늘의 인내가 맞물린 결과다. 특히 기술 패권 경쟁이 기업은 물론 국가 존망을 가르는 반도체 산업에서 재투자는 미래 준비를 위한 유일한 생명줄이다. 삼성전자 노조가 최근 보인 행태는 이런 상식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노조는 영업이익의 15%(45조원)를 성과급 재원으로 명문화하고, 현재 연봉의 50%로 묶인 성과급 한도 폐지를 요구하며 한 달 가까이 국가 전략 산업을 볼모로 잡았다. 노조 주장대로라면 반도체 부문 직원은 1인당 약 6억원이라는 로또 성과급을 받는다. 2029년까지 영업이익 전망치를 보면 3년 동안 성과급만 20억원이 넘는다. 우리나라 근로자 대다수가 평생 모아도 안 될 금액이다.
삼성전자 노조가 국민적 비난에도 파업을 불사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도 있다. 깜깜이 성과급 산정 기준에 대한 불신과 불투명한 보상 체제, 회사의 일방적 성과급 상한 설정에 대한 불만이다. 과거 선배들이 ‘회사가 잘돼야 나도 잘된다’는 성장 우선 정서에 익숙했다면, 지금 젊은 직원들은 ‘나중에 보상해주겠다’는 약속보다 ‘당장 통장에 찍히는 숫자’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도 강경 투쟁의 한 원인으로 보인다.
버는 만큼 합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건 정당하다. 그럼에도 삼성전자 노조의 요구는 삼성이 하면 산업계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여러 나쁜 선례를 남겼다. 반도체는 실적 변동이 큰 사이클 산업이다. 영업이익의 N% 성과급이 굳어지면, 업황이 꺾였을 때 투자 여력부터 위축된다. 노조는 또 사실상 성과급 균등 분배를 주장하는데 이는 위험을 감수하고 성과를 낸 조직에 더 많은 보상을 해 동기를 부여하는 시장경제의 핵심 메커니즘에 반한다. 적자 사업부나 밤새워 기술을 개발한 사업부나 비슷한 보상을 받는다면 누가 혁신을 위해 뛰겠는가. 인재는 떠나고 남은 이들은 무임승차 심리에 빠져 조직이 하향 평준화될 게 뻔하다.
삼성전자 노조가 사상 최대 실적에 기반해 성과급을 요구할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실적은 지금 구성원의 노력으로만 이뤄진 게 아니다. 수십만 임직원의 헌신과 수십 년 누적된 기술력, 끊임없는 투자의 결실이다. 당장 성과급 잔치에 급급해 미래 R&D와 시설 투자에 써야 할 재원은 나 몰라라 하는 행태는 황금알을 독차지하려고 거위 배를 가르는 농부와 같다. 미래 세대 몫까지 빼앗는 도둑질이다.
파업을 무기로 경영 판단 영역인 성과급을 노사 협상 대상으로 삼은 것과 주주 몫인 영업이익을 성과급으로 우선해 나눠 달라는 요구도 나쁜 선례로 남게 됐다. 삼성전자 노조의 요구는 국내 산업계 전체에 도미노처럼 번지고 있다. 현대차·HD현대중공업·삼성바이오로직스·카카오 등 여러 기업에서 ‘영업이익의 N% 성과급’ 요구가 확산 중이다. 대규모 미래 투자가 필요한 기술 집약형 산업들이 모두 노조의 현금 잔치 요구에 직면하게 됐다.
일본 반도체는 1980년대 세계 시장을 이끌었다. 1989년 글로벌 반도체 매출 상위 10사 중 6사가 일본 기업이었다. 당시 일본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50%를 넘었다. 하지만 2022년에는 9%까지 추락했다.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매출 상위 10사 명단에 일본 기업은 하나도 없다. 수직 계열화에 안주해 로직·파운드리 전환에 실패한 사이, 한국·대만 기업이 막대한 투자로 그 자리를 메운 결과다. 지금도 글로벌 칩 전쟁이 치열하다. 대만의 TSMC는 쉬지 않고 앞서 달리고, 몰락한 인텔은 부활을 꿈꾸고,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한순간 삐끗하면 낭떠러지다. 기업이 생존해야 노동자도 있고, 내일의 투자가 있어야 오늘의 고용도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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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회장 ‘신의 한 수’
[오후여담]
2026. 5. 21. 11:47
이철호 논설고문
“자신 없으세요?” 2023년 1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사장단 워크숍에서 한 말이다. 당시 반도체 부문은 조(兆) 단위 적자를 내는 위기였다. 투자 축소가 불가피했다. 이미 SK하이닉스는 설비투자를 반 토막 내는 극약처방을 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 회장의 독려에 ‘50조 원 투자 유지’로 급선회했다. 돈이 달리자 자회사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 원을 빌리기까지 했다.
그 결과물이 평택 캠퍼스 P3와 P4, 미국 테일러 공장이다. 가장 먼저 투자가 집중된 P3의 주력 생산품은 고성능 DDR5 D램과 대용량 SSD(보조기억장치)다. AI 서버용 수요가 폭발하면서 지난 1분기 57조 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비밀병기다. 지금 태풍의 눈은 P4다. 당시 ‘셸 퍼스트’(Shell First) 전략에 따라 건물 골조라도 먼저 세워 놓은 공장이다. 지난해부터 차례로 생산 설비를 들여와 첨단 1c D램과 차세대 HBM4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 덕분에 지난해 말 D램 시장 1위를 되찾았고, 지금은 HBM 시장 선두 자리까지 노리고 있다.
현재 P4는 칩 생산을 늘리기 위해 ‘임시 사용’까지 할 정도다. 구역별로 미리 클린룸을 만든 뒤 선제적으로 핵심 설비를 반입해 장비 셋업과 시운전에 필요한 6개월의 물리적 시간을 줄이는 방식이다. 아예 P5부터는 ‘쌍둥이 팹’(Twin Fab) 전략을 동원하고 있다. 똑같은 라인을 만들어 복잡하고 소모적인 검증 절차를 생략하는 것이다. 이미 빅테크들과 3∼5년 단위의 장기 공급계약을 맺은 만큼 더 빨리 양산할수록 이익이 커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운명은 미 테일러 공장에 달렸다. 반도체법 보조금 협상으로 시간이 지체됐지만 올 하반기 시범 생산, 내년부터 본격 양산에 들어간다. 당초 4나노 공정을 계획했다가 2나노 이하의 첨단 공정을 채택해 첫 일감으로 테슬라의 차세대 AI 칩 계약을 따냈다. 지금은 엔비디아가 그록칩, 퀄컴은 차세대 스마트폰용 AP, 구글이 AI용 TPU 위탁생산을 맡기기 위해 앞다투어 문을 두드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HBM3 등 초기 AI 메모리 주도권을 SK하이닉스에 내주며 뼈아픈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러나 3년 전 위기 상황에서 과감하게 투자했다. 종합 반도체 기업으로 우뚝 설 토양을 구축한 셈이다. 돌아보면 ‘신의 한 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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