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길리 복합낚시공원
낚시를 좋아하는 강태공들에게 인기가 높은 낚시 명소다
공원은 어민 소득증대와 관광 활성화를 위해 120역원의 예산이 투입되어
2015년에 준공 되었으며
확 트인 해안 데크 산책로와 조경공원, 야경이 아름다운 경관조명 등대
부유식 낚시터 바다에 떠있는 펜션, 카페 등
여러 부대시설과 편의시설이 조성되어 가족단위 방문객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신생대 화산활동으로 생긴 화산암이
파도와 풍화작용으로 인해
갯바위가 기이한 형태로 변했다고 한다
장길리 낚시 공원 해상펜션
장길리 앞바다에 있는 갯바위로 예전 배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었지만
2013년에 교폭 4.5m, 길이 170m의 데크 교량이 조성되어
걸어서 갈 수 있게 된 곳이다
보릿돌교와 연결된 큰 갯바위가
'안보릿돌', 조금 더 먼바다에 위치한 작은 갯바위가 '바깥보릿돌'로
낚시꾼들에게는 천혜의 포인트로 알려져 왔다
보릿돌의 이름과 관련한 유래로
'보릿고개를 면하게 해 주었다'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지만
'섬 두 개가 각자 따로 떨어져 있다’는 의미에서 보릿돌이 됐다는 주장도 있다
보릿돌
갯바위 모양이 보리같다고해서 보리암(麥岩) 또는 보릿돌이라고 했다
이 마을사람들은 옛날 보릿고개를 넘어야 할때마다
이 바다 아래에서 미역이 많이 나
어려운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되돌아 나간다
올라 가 볼려고 했는데
군사보호구역으로
미리 허락을 받아야 올라 갈 수 있는 전망대라고 한다
장길리복합낚시공원을 내려오니
해안가로 해파랑길 시그널이 달려 있어 해안가로 간다
이 해안가에서 사진을 찍다가 두발이 파도에 그만....
이때부터 젖은 상태로 걸었다는~~ㅎㅎ
고래 형상의 이 바위섬은
화산암이 파도에 의해 침식된
해식애(海蝕崖) 단애로 이루어져 있는 암반 섬으로
위쪽에는 소나무들이 자리를 잡고 오랜 풍파를 견뎌오고 있다
뒤돌아 보고
하정리해변
하정리(河亭里)
구룡포읍 소재지 남쪽 약 10리 되는 곳인
북쪽의 병포리와 남쪽의 장길리 사이에
해안선을 따라 길게 형성된 마을로
옛 하성과 송정을 합쳐 하정리라 부르게 되었다
5개의 자연부락이
1리(임물), 2리(하성, 태끼, 솔머리), 3리(당사포)로 구분되어 있다
하정1리인 임물(臨勿)은
1700년경 한씨와 편씨가 개척한 마을로
예로부터 물과 인심이 좋고
많은 인물이 배출될 것 같다고 하여 임물이라 했다 한다
갈매기들이 파도가 거세게 치니
모두 마을쪽을 보고 있다
쉬고 있는 갈매기들을
날려 보겠다고 소리도 질러 보곤 하는데 날지 않더니
옆에 어떤 여자분이 손뼉을 치니 날아 오른다
아~~ 이때 알았다 손뼉을 쳐야 갈매기들이 난다는 것을......
그래서 조금 진행을 하니 갈매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소리로 해 보니 날지 않아 손뼉을 쳐 보았다
성공~~~~힘차게 날아 오른다
도로에 올라서니 이런 바위가 있다고해서
조금 벗어나 가 보니.....
살모사가 기어 가는 것처럼....
살모사바위 전망대에서 바라 본 하정리 방파제
신기해서 다시 한번 담아 보고
되돌아 나오니
어디선가 맛나는 냄새가 진하게 난다
바로 앞에 게를 찌고 있다
먹고픈 마음 간절하였지만 갈길이 멀다는 핑계로 사진으로만 달랜다
하정2리버스승강장
하정2리
옛 하성(河城)과 솔머리, 태끼를 합친 마을로
하성은 마을의 생긴 모습이 성을 쌓아 둔 것 같아 붙여진 이름으로
진주 하씨가 개척하여 하씨들이 많이 살고 있으므로 하성이라 불렀다 한다
솔머리(松亭)는 마을의 생긴 모양이 쇠머리 같은 형상이며
그 머리에 해당하는 바닷가 언덕 위에
큰 소나무 정자가 숲을 이루고 있다 하여 '솔머리'로 불렸고
이 소나무 정자가 있는 언덕을
일송정이라하여 여기에 연유하여 송정이라고 하였다
태끼('토끼'의 경상도 방언)는 배가 닿는 포구에서부터
마을의 끝까지가 반달 형상을 하고 있는데다
마을 어귀의 지형이 돌출하여 토끼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것을 두고 사람들이 토끼가 동해에서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는 형국(玉兎望月形)이라 하여 '태끼'라 불렀다 한다
많이는 아니지만 계속 내리는 비에
바람도 불어대는 날씨지만
여전히 걷고 또 걷는다
병포마을로 들어선다
병포리(柄浦里)
구룡포만을 끼고 구룡포리와 마주 보는 곳에 위치하며
북쪽의 대보 방면으로 통하는 도로와
남쪽의 장기 방면으로 통하는 도로의 길목이기도 하다
자래골, 웃자래골, 남포리 등 3개의 자연부락이 행정구역상
각각 1, 2, 3리로 구분되어 있으며
병포1리인 자래골(柄里)은 마을 앞에 있는
큰 바위 형상이 자래('자라'의 방언)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병리의 병(자루 柄) 자는 자래골을
한자로 표기할 때 '자래'를 '자루'로 오해하여 잘못 적은 것이라고 한다
렌즈에 빗물이 묻어 닦으면서 찍어 보지만
그래도 물방울이......에고
병포방조제
안에까지 들어가지는 않고 사진으로만....
집들을 이렇게 해 놓은 이유는....????
갓길이 없어 위험함을 무릅쓰고 걷는다
구룡포항으로 들어선다
구룡포리(九龍浦里)
영일만을 형성하고 있는
범꼬리의 동쪽 해안선이 남쪽으로 내리 달리다가
응암산의 한줄기와 만나는 지점에서 활처럼 휘어져 구룡포만을 이루는데
이를 끼고 기다랗게 놓여 있는 읍소재지 마을이다
1923년에 방파제를 쌓고 부두를 만듦으로써
본격적인 항구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으며
예로부터 용두귀운(龍頭歸雲), 옥산반조(玉山返照)
주잠명월(珠岑明月), 항구장제(港口長堤) 유명조일(維溟朝日), 창주모연(滄珠暮煉)
우진화선(盂津畵船), 석문청풍(石門淸風)등 8가지를
구룡포팔경(八景)이라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진흥왕 때 장기 현령이
늦봄에 각 마을에 순시하다가
지금의 용주리를 지날 때 갑자기 폭풍우가 휘몰아치면서
바다에서 용 10마리가 승천하다가
그 중 1마리가 떨어져 죽자 바닷물이 붉게 물들면서
폭풍우가 그친 일이 있는데
9마리의 용이 승천한 포구라 하여 구룡포라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용두산 아래에 깊은 소(沼)가 있었는데
이 소(沼) 안에 살던 아홉 마리의 용이 동해 바다로 빠져나가면서
승천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구룡포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조용한 어촌마을이었다
어부 이외에는 가족의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바다에 나가는 정도였는데
일제강점기가 되자 구룡포는 최적의 어업기지로 떠올랐다
‘도가와 야사브로’라는 일본인 수산업자가
조선총독부를 설득해 구룡포에 축항을 제안한 것이다
큰 배가 정박할 곳이 생기자
수산업에 종사하던 가가와현과 오카야마현 등에서
일본인들이 대거 구룡포로 몰려왔다
그들은 큰 배로 대량 어획을 해서 부를 축적했고
어업과 선박업, 통조림 가공공장 등을 하며
일본인 집단 거주지를 만들었다
현재 구룡포 우체국 옆쪽
골목에서 볼 수 있는 ‘일본인 가옥거리’가 그것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100여 채 남아 있던
일본인 가옥은 현재 50채가량 남아 있으며
거리 곳곳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사진이 붙어 있어
현재 모습과 비교하며 둘러볼 수 있다
집 내부에는 다다미는 물론
일본 잡지로 도배한 방문, 후지산이 그려져 있는 유리창 등
일제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과메기 냉장/냉동 보관소
과메기 잡는 그물망인지...???
이런 것도 있고
대게로 유명한 곳답게....
선박에서 어로 작업 중인 어부를 형상화한 작품
구룡포항
1910년대까지만 해도 한적한 어항이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23년 방파제를 쌓고 부두를 만들면서
본격적인 항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그 후부터 지금까지 경북 지방 최대의 동해안 어업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2008년 현재 북방파제 약 600m, 남방파제 약 400m
물양장 약 600m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2008년 7월 노후된 물양장 시설(약 546m)을 개축하고
남방파제 월파방지시설 219m, 항만배후부지
약 1만 4,000㎡를 확보하는 공사를 4년에 걸쳐 완성하였으며
2011년까지 접안능력 13선석, 하역능력 33만 4,000t에 이르는 시설을 갖출 전망이다
구룡포항은 전국 최대의 대게 산지로 알려져 있는데
2007년 현재 구룡포항을 통해 생산·위판된 대게는 1,552t에 이르러
전국 대게 위판물량의 53%를 차지하고 있다
동해남부에서 조업하는 어선들의 집결지로서
수많은 어선들이 출항하고 회항하는 구룡포항은 한때 고래잡이로 유명했었으나
지금은 오징어잡이배와 대게잡이배가 포경선을 대신하고 있으며
과메기의 본고장답게 청어·정어리·꽁치 등을 잡는 어선도 많다
구룡포항은 호미곶에서 감포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다
들어 가 본다
다음에 여유를 갖고 둘러 보기로 하고 나간다
일본인 가옥거리 버스승강장을 지나
30m 더 진행하면
북방파제 주차장에 앞에 있는 안내판에서
13코스 끝지점이자 14코스 시작점에서 마무리를 하고
산악회버스 있는 곳으로 가니
기사님께서 따끈하게 어뭇국을 끓여 놓으셨다
근데 어뭇국이 뽀얀 것이 진한 곰탕 같으다.....??
그 이유는 트레킹 마무리 시간을 잘못 알고
한시간 이상을 더 끓이다보니(수제비도 같이 끓였기에..)
하지만 아주 맛났으며 보약을 먹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
좋지 않은 날씨로 쉽게 나설 수 없는 발걸음이었지만
약하게 종일 내린 비에 힘들지 않게 걸을 수 있었음이 감사한 날이며
어쩌면 두번 다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을
큰파도에 완전 빠졌던 회색빛 풍경을 넘치게 품은 날이었다
좋지 않은 날씨에 함께 하신 님...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다음 코스 때 뵙겠습니다
2023. 1. 15(일)
첫댓글 와하~~
대딘하십니다.
이 많은 기록을 올려주셔서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비오고 바람 불고
한손은 우산들고
도저히 카메라 초점을 잡을수 없었는데
역시 사진 전문가답게 멋지게 담을셨네요
자료정리를 너무 잘해줘서 고맙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비오면 비오는데로
운치 있었던 13코스였네요
자세한 설명과 더불어
많은 사진 올려주신 덕분에
잘 보았습니다
수고 많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