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
바퀴벌레
유성대
동수는 이른 아침 싱크대 위를 잔걸음으로 도망가는 바퀴벌레를, 잽싸게 손바닥으로 내리쳐 때려잡고, 터진 배에서 나온 장기를 바라보며, 오늘은 잊지 말고 바퀴약을 사와야지 매번 다짐의 약속을 했다.
근무를 마친 동수는 정년퇴직이 두 달여 남은 퇴근길이었다.
출구전용 검색대에 근무중인 공항경찰대 청원경찰 권씨를 향해 갔다.
권씨는 뚱뚱하고 두꺼비상에 후덕하게 생긴 칠 십대 꼰대 백작 이였다.
상술 좋기로 유명한 유태인보다 상위의 인물이다.
부업 아닌 부업으로 약효가 좋기로 소문난 발기치료제를 식권 두 장과 물물교환해주는 수단가였다.
동수는 발기치료제를 중국산 가짜 약 인줄 알면서도, 처방전 없이 손쉽게 구할 수 있고, 낱 알로 숫자에 제한 없이 구입할 수 있어 좋았다.
동수 또한 구입한 약을 지인들에게 팔아먹는 그야말로 베니스의 상인중에 한 사람이었다.
남은 식권은 이월이 안되어 월말까지 모두 사용해야 했다.
식사이외에 사내매점과 회사소비조합에서 시중보다 비싼 생필품을 구입해야 했다.
동수는 소비조합에서 구입한 물건을 집까지 가져 가기도 불편하고 할인마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하는 것에 약간 불만이 있었다.
얼마 안 남은 정년퇴직까지 식권을 모두 가짜 약 구입에 사용할 계획을 잡았다.
동수는 금속탐지기 검색대를 통과하면서, 권씨에게 다가가가 ‘3알’이라는 입모양의 사인을 보냈다.
눈치 빠른 권씨는 가짜 약 3알과 식권6장을 빛의 속도로 교환했다.
권씨는 동수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잘 알지요?”
“약성분이 너무 강해서 네 등분해서 먹어야 돼요, 한 알 다 먹으면 혈압이 올라 심장마비로 죽을 수 있으니 명심해요?”
권씨는 약사인양 목소리를 힘주어 속삭이듯 재빨리 설명했다.
동수는 다 알고 있는 내용을 또 듣는다는 게 조금 지겨웠다.
가짜 약사라도, 약사로서 의무와 권리에 충실하는 권씨에게 미소로 답 했다.
동수는 곗돈을 탄 양 기분이 좋았다, 흐뭇한 입술은 꼬리를 올리고 움켜쥔 약을 재빨리 일회용 종이컵에 넣고는 입구를 접어 안주머니에 넣었다.
“수고하세요?”
권씨는 아무일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마지막출구 회전문을 향해가는 동수 등을 향해, 구씨의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충성!”
그 소리는 여자들에게 잘하고 충성하라는 구호로 들렸다.
동수는 걸음에 속도를 올리며 정차하고 있는 통근버스로 날라 갔다.
그 날밤
동수는 탁자에 앉아 종이컵 속에 고이 가져온 가짜 약 3알중 한 알을 꺼내 탐욕스런 눈으로 들여다보았다.
주황색 새끼 손톱만한 달걀형의 예쁜 여인이었다.
동수는 보낼 여자들을 상상해 가며 끝없는 욕망의 나라를 만들었다.
동수는 네 등분을 하려고 연장통에서 니퍼를 꺼내 왔다.
니퍼로 가짜 약을 꽉 쥐어 물고, 튀지 않게 고정하고는 손바닥으로
살며시 덮고, 있는 힘을 다해 눌렀다.
“뚝!”
소리가 나며
마법을 부릴 주황색 가짜 약은, 속비치는 실크드레스를 입은 선녀의 하얀 속살을 드러났다.
재주을 부릴 약이 동수 손에서 태어나는 순간 이였다.
튀지 않게 가린 손바닥 덕분에 두 동강이가 났지만, 오늘따라 아깝게
부스러기가 많이 생겼다.
동수는 큰 덩어리를 마저 잘라 세 토막으로 만들어 놓고, 아주 작은 비닐 주머니에 각각 넣어 세벌의 정장 안주머니에 넣었다.
혹시나 미끄러져 빠지지 않을까 단추를 꼭 잠갔다.
가짜 약은 한번 더 잘리면서 가루가 두배가 되었고, 사분의 일 정도가 아깝게 탁자위에 널려져 있었다.
동수는 훅 들려 마셔 먹을까 했다.
잠시
머뭇대던 동수는 자신의 처지를 들려다 보았다.
실탄은 불발탄이 많고, 점수판은 한 쪽이 낡아 떨어져 달랑 메 달려있고, 주인아줌마가 카운터에서 졸고 있는 텅 빈 사격장에서, 구닥다리 총을 들고 서 있는 자신이 초라했지만, 그래도 대견하게 살고 있다고 어거지 로 위로하며, 누가 뭐라해도 작은 자만심마저 버릴 수가 없었다.
동수는 쓴 맛을 알면서도 식탁 위 가짜 약 가루를 검지손가락으로 살짝 찍어 맛을 본다.
“아이 써!”
변함없이 썼다, 쓴 맛에 중독성을 즐기고 있었다.
너무 쓴 맛에 탁자 위 흰 가루가 보이는 순간 반사 운동으로 비짜루같은 손으로 쓸어 버렸다.
그리고 흩어져 남은 가루는 입으로
“후우”
불어 날려 버렸다.
하얀 가루는 날려가며 낙하했다.
설악산 계곡 선녀탕에 멱감으러 내려오는 선녀들의 모습이었다.
동수는 큰일을 치렀다는 듯, 피로감에 잠자리에 들었다.
“아! 바퀴 약 또 안 사왔네?”
중얼거리며 여인들의 나라로 갔다.
그날 밤
불이 꺼지고
동수내 집에서 세도 안 내고, 공짜로 살고 있는 바퀴벌레들이, 탁자 밑 주변에 한 마리 두 마리 모여들기 시작했다.
바퀴들은 스와핑을 하려고, 바닥에 널려 있는 가짜 약가루를 많이 먹겠다고, 난장판이 바퀴벌레판이 되었다.
수놈들 암컷까지 합세해 가짜 약 가루를 먹고는, 서너 시간이 흐른 뒤 발정이 시작되고, 짝짓기를 시작했다.
몇 날 몇 칠을 수도 없이 하고 또 하고 또 했다.
동수내 온 집안 구석구석 빈틈에는 알을 낳아 알천지가 되고, 부화가 되어 얼마 후 바퀴천국이 되었다.
먹성 좋은 바퀴벌레는 머리카락도 먹는 대단한 식성가라 물불을 가리지 않고 먹어 치었다.
동수는 퇴직을 했고 얼마 후
수 많은 알을 낳은 바퀴벌레들은 단백질이 필요했다.
동수는 인사불성 만취해 골아 떨어진 채 죽음보다 깊은 밤으로 들어갔다.
바퀴벌레들은 술 취해 잠들은 동수 곁으로 모여들었다.
’’사각”
“사각”
“시각”
“삭삭삭”
얼굴부터 시작해 발끝까지 몸전체를 싹 먹어 버렸다.
동수네 집안은 바퀴벌레로 바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