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 주돈이 철학
3주 차 강의에서는 주돈이 철학에 대해 배웠습니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주돈이라는 인물이 어떠한 사람이고,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등 기본적인 정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주돈이라는 인물은 철학사에서 바라보면 신유학이 대표적인 철학자 주돈이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고 영향력의 크기가 컸던 사람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주돈이는 황실의 이름이 같게 되면 쓸 수가 없었기에 원래는 돈실이었지만 북송 제5대 황제인 영종의 옛 이름이었던 조종실이라는 이름을 피하여 돈이로 이름을 고쳤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정의 스승이자 주희의 형이상학 체계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며 관련 저서는 태극도설, 통서, 애련설 등이 있다는 점 또한 새롭게 알 수 있었습니다.
주돈이는 어린 시절부터 학문과 덕행이 뛰어났지만 스승에게 학문이나 기술 따위를 배워서 이어받은 유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남의 두 정 선생이 일찍이 주돈이에게 학문을 전수받아 공자와 맹자 이래로 전해지지 않았던 정통을 얻었습니다.
주돈이는 공자와 안회의 즐거움을 지적하여 음풍농월의 흥취를 드러냈습니다. 여기서 음풍농월이라는 것의 명확한 의미가 궁금해졌습니다. 음풍농월의 사전적 의미는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대상으로 시를 짓고 흥취를 자아내어 들겁게 노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음풍농월에 대해 흥과 취미를 드러내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교수님께서는 한 송이의 꽃이 담긴 사진 자료를 보여주셨습니다. 사진 속 꽃은 다름 아닌 연꽃이었습니다. 연꽃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꽃이 아름답게 피었다는 생각과 함께 주돈이 철학 강의를 시작하며 교수님께서 주돈이라는 인물을 소개해 주실 때 가장 먼저 하셨던 말씀인 주돈이는 연꽃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으로 알려졌다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주돈이가 연꽃을 좋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제가 떠올린 답변은 연꽃의 아름다움 이었습니다. 스스로 답변을 예상하며 과연 주돈이는 왜 연꽃을 사랑하고 아꼈는지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연꽃을 자세히 바라보면 연꽃의 아래쪽 부분은 진흙을 비롯한 다양한 물질들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더러운 것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물 위의 꽃잎 부분이 활짝 피게 되면 보기에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결국 연꽃은 지저분한 것 같지만 아름다운 꽃이 피며 결말을 맺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주돈이가 연꽃을 사랑하였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단순히 연꽃이 아름답기 때문에 연꽃을 좋아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이러한 저의 생각은 연꽃의 윗부분만을 보고 내린 결론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깊이 있게 사고해야 함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부분이 재미있게 느껴져 주돈이가 연을 사랑하여 군자에 비긴 송나라의 주돈이가 지은 글인 ’애련설’ 이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나 홀로 연을 사랑하노니
연꽃은 진흙에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予獨愛蓮之出헓於泥而不染)
맑은 물에 씻겼으나 요염하지 않고
(濯淸漣而不妖)
속은 비고 밖은 곧으며
(中通外直)
덩굴은 뻗지 않고 가지도 치지 아니하며
(不蔓不枝)
향기는 멀리서 더욱 맑고
(香遠益淸)
물 가운데 꼿꼿이 서 있어
(亭亭靜植)
멀리서 바라볼 수 있으나 함부로 매만질 수는 없구나
(可遠觀而不可褻玩焉)
이러한 점에서 세상 사람들은 모란을 사랑하였지만 주돈이는 오직 연꽃을 사랑하였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고 주돈이의 연꽃에 대한 인식과 사랑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태극도설에 대해 배울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호위기근이 강조된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호위기근이라는 것은 서로 그 뿌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의미를 처음 들었을 때에는 바로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 저번 학기에 중국 고대철학 강의에서 배웠던 주역을 예로 들어보자면 주역에서 음과 양에 대해 다루는 점 일 것 같습니다. 즉 음과 양은 항상 따로가 아닌 같은 존재로 함께 서로 그 뿌리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과 연관시켜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주돈이도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음과 양은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그 뿌리가 된다는 입장을 강조하였습니다. 즉 이원론적 사고가 아닌 유기체적인 사고가 발달되었음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태극도설이 동아시아 철학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이론과 역할을 하게 됩니다. 특히 미래에 교사라는 꿈을 꾸고 있는 저에게는 이러한 태극도설이 임용고시에 출제될 정도로 중요하다는 점을 알고 태극도설의 이론에대해 더욱 깊게 탐구해 봐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통서에 대한 부분을 배울 수 있었는데 통서이지만 사실 내용은 주역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점을 알게 되어 전학기에 중국 고대철학에서 배웠던 주역이 흐름상 계속해서 연관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주돈이의 이론에서는 ‘성’ 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성은 성실한 사람과 반대로 성실하지 않은 사람은 차이가 크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즉 성실함을 갖춘 성실한 사람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의 성이 바로 통서의 원형이정으로 대표되는 하늘의 길과 인의예지로 대표되는 사람의 길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초기 유가사상의 영향을 받고 주돈이가 이러한 성을 우주론과 가치론의 측면에서 규명한 후 바람직한 인간의 모습을 상징함을 의미합니다.
정리해 보자면 성은 반드시 꾸준해야 하고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성이 아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꾸준함과 성실함에 주목하여야 한다는 점이 강조된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고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것의 부정적 측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결국 성이라는 것은 약속을 잘 지키는 것, 자신의 감정 기복에 휩쓸리지 않는 것이 바로 성입니다. 이러한 성의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면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훗날 교사가 되었을 때 감정 기복이 심한 학생을 마주하게 된다면 이러한 성을 떠올려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전에 저 또한 성의 의미를 명확히 파악하여 성실함과 꾸준함, 그리고 감정을 스스로 잘 조절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여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주돈이는 성이 인간에게 적용될 때에는 인의예지의 성이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성이 마음속에서 발현될 때도 있고 발현되지 않을 때도 있으며 혹여 발현되더라도 선한 방향으로 드러날지 아니면 반대로 악한 방향으로 드러날지 모르기 때문에 드러나려고 할 찰나의 낌새를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즉 주돈이는 주역의 논리를 수용하여 밝은 성과 오묘한 신묘함과 그윽한 낌새를 하나의 논리구조로 파악하였습니다.
주돈이에 의하면 우리에게 갖추어진 성으로서의 성이 발현될 찰나의 낌새를 제대로 파악하여야 이상적 인간상이라고 할 수 있는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저도 이상적 인간상이 되기 위하여 성이 발현될 때 그 낌새를 제대로 파악하여야겠다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주돈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을 성인으로 여기는 초기 유학자들과는 달리 누구든지 배우고 노력하여 성을 완벽히 실현한다면 그 사람이 바로 성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이러한 점에서 주돈이의 입장이 더욱 흥미로워지고 공감이 갔습니다. ‘누구든지’에 초점을 맞추어 바라보았을 때 스스로 배우고 노력한다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요약해보자면 주돈이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속에는 성이 갖추어져 있고 이러한 성은 막 발현하려는 찰나의 상황에 영향을 받아 굳센 선, 부드러운 선, 굳센 악, 부드러운 악, 중 등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방심할 때 나타나는 사특한 욕심을 막고 세상의 평화가 유지되는 선한 사회를 이루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을 알게 된 후 낌새 즉 조짐과 기미를 잘 파악하여야 하고 이러한 낌새를 잘 알기 위해서는 성실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태도를 삶에 잘 적용시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성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인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반대로 소인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지혜로운 교사가 되고자 하는 목표가 있기에 지혜롭기 위해서는 낌새를 잘 알아 미리미리 대비하고 낌새를 잘 알기 위해서는 일단 나 자신이 성실해야 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서양 근세철학 시간에 데카르트에 대해 배우며 들었던 명석판명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데카르트로 치자면 명석판명하게 스스로의 삶을 올바르게 이끌어 가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시중이라는 말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시중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시중의 중이 가운데 중을 의미하는 것인지 궁금했는데 시중에서의 중은 가운데 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적중했다고 말할 때의 중으로 제대로 맞았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랑을 하더라도 때에 맞게 해야 하고 효도를 하더라도 때에 맞게 해야 하며 공부를 하더라도 때에 맞게 하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령 말하자면 아기가 울 때 아이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아기가 도대체 왜 우는지 모르지만 엄마는 아기의 울음소리만 들어도 아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지만 아기 엄마는 소리를 마치 눈으로 보는 듯이 알고 있습니다. 엄마는 그 소리를 보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관음을 의미합니다. 즉 상대와 자주 대화를 하면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중이라는 것은 때에 맞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고 때에 맞게 하는 것이 바로 성인들이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저도 무엇이든 때에 맞게 하도록 노력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주 대화하여 때에 맞게 상대가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3주 차 주돈이 철학의 토론 주제는 "맹자는 주돈이와 공통적으로 인간의 본성을 선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맹자는 인간의 선 함을 배움의 영역이 아닌 타고난 사단을 통해 발휘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반면에, 주돈 이는 누구든지 배우고 노력하여 ‘성(성실함)’을 완벽하게 실현한다면 곧 성인이 될 수 있다 고 말한다. 이들 중 누구의 입장을 지지하는가" 입니다
이러한 토론 주제에 대한 저의 입장은 주돈이의 입장을 지지합니다. 맹자는 인간의 선함에 대해 배움의 영역이 아닌 사단을 통해 발휘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는데 선이라는 것은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사회 속에서 섞여 살아가며 무엇이 선한 행동인지 등에 대해 후천적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저의 생각은 누구든지 배우고 노력하여 성을 완벽히 실현한다면 곧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 주돈이의 입장과 같다고 생각하여 주돈이 철학을 지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