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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해저 깊은 곳에서 용암이 올라와 갯물을 펄펄 끓이는 바람에, 앗, 뜨거! 하며 바다 위로 불쑥 솟구친 거대한 문어 몇 마리와, 그 옆에 따라붙은 잔챙이들 여럿이 다리를 겯고 있는 것처럼이다. 해 뜨는 쪽 저만치에 홀로 떨어져 높이 솟은 문어의 머리가 ‘매봉산’이 되고, 그보다 두어 뼘 낮게 오른 문어 두 마리의 머리통이 ‘복산’과 ‘대선산’을 이룬다. 큰 문어의 다리들은 작은 문어들의 머리나 다리에 얹히며 이리 흐르고 저리 빠져 산등성이로 걸쳐진다. 작은 문어들은 군데군데에서 머리를 밀어 올려 올망졸망한 산봉우리를 만들고, 그것들의 다리들은 산자락이 되어 구불구불 흐늘흐늘 갯가로 빠져내린다. 큰 문어가 다리를 넓게 벌린 곳에는 문어 알 같은 마을들이 달려 있다. 볕 잘 드는 양지쪽이나, 너른 들이 펼쳐진 산자락, 개가 가까운 포구에는 약속이나 한 듯 초가를 인 집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문어는 다리 사이에 알을 낳아 주고, 사람들은 그 알을 뜯어먹으며 자신들의 살이를 이어간다.
대선산에서 뻗어오고 복산에서 흘러내린 문어의 굵은 다리가 만나 ‘큰재’를 만들고, 그 재는 섬을 동부(東部)와 서부(西部)로 가른다. 동부는 동쪽이 트여 있어 이슬받이가 이른 대신 재로 해서 해가 일찍 넘어가고, 서부는 재 때문에 갓밝이가 늦은 대신 서쪽이 열려 있어 해의 나절이 길다. 섬에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처음에는 너른 들이 있고 그 들에 볕이 잘 드는 동부가 섬의 중심이었으나, 점차 육지와의 연결이 중요해지고 그럼으로써 서부 쪽에 항이 생기자 섬의 중심이 그쪽으로 옮겨갔다.
읍에 갔다온댔다는 누이가 닷새가 지나도록 안 돌아오자 진욱은 무작정 뱃머리로 향했다. 나이는 열 살이라지만 못먹어서인지 유난히 왜소해 보이는 아이가 짚으로 엮은 ‘게다’를 신고 섬의 동쪽 끝인 상산포에서 서쪽 끝인 불목리까지 걸어가는 것이다. 바로 옆의 마을도 한번 벗어나 본 적 없는 꼬마는 두려운 마음으로 신작로를 걸어 동부의 동네들을 통과했다. 공동묘지를 지나 큰재를 넘고 도깨비가 많이 난다는 도깨비골창을 휘어 돌았다. 걷고 또 걸어 서부의 여러 마을들을 거쳐 마침내 뱃머리가 있는 불목리에 닿았다. 초가집 세 채가 전부인 상산포에 견주면 면소재지는 어마어마하게 큰 동네였다. 배도 많고, 양철집도 있고, 면사무소와 지서와 점빵도 있었다. 진욱에게는 전혀 새로운 세상이었다.
진욱이 뱃머리에서 처음 본 배는 ‘완도마루(丸)’였다. 배는 이레마다 한 번씩 부산을 왕래했다. 부산을 출발해 길목의 여러 곳을 훑은 배는 끝머리에 청뫼도를 달았다. 일본이 조선의 남쪽 구석구석을 먹어 들어간 뱃길이다. 그들은 그 길을 통해 이 땅에 침입해 들어와 약탈한 조선의 물산들을 자신들의 나라로 실어 날랐다. 물산을 약탈한 뒤에는 사람까지 수탈해갔다. 수많은 조선인들이 그 길을 타고 섬나라로 품팔이를 가거나, 징병이나 징용이나 근로정신대나 군대위안부로 끌려갔다. 빼앗아가고 끌고 가는 자들은 윗선실에 타고, 빼앗기고 끌려가는 사람들은 아랫선실에 탔다. 짓밟는 일본인들은 위에서 누운 채 가고, 짓밟히는 조선 사람은 아래에서 쪼그린 채 가야 했다. 그것이 지배하는 자와 지배 받는 자가 만나지는 층위였다. 그 뱃길은 결국, 굶고 허기지며 만들어낸 지배 받은 자의 피가, 힘으로 세상을 삼키려는 자들의 땅으로 빨려 들어가는 수탈의 굵은 혈관인 셈이었다.
해방이 되자 배는 ‘태완호’로 바뀌었다. 큰 배들은 접안을 할 수 없는지라, 객선은 개창 저만치에 떠 있고 종선이 노를 저어 가 사람과 하물들을 받아 선창에 내렸다. 그러고는 다시 사람과 하물을 객선에 올려 보냈다. 가끔씩 객선에 올리려던 소생키가 갯물에 떨어져 음매! 음매! 허우적거리기도 하고, 겁 많은 처녀가 바다에 낼쳐 어푸어푸, 하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배는 철선인 ‘강화호’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물양장에 철부선인 삼바시를 갖다 놓게 되었다. 선창에 삼바시가 띄워지자 큰 배들도 바로 접안이 가능해졌다. 객선이 바로 가에 닿는다는 건 좁은 고샅길과 신작로만큼이나 차이가 지는 것이었다. 섬에 들고나는 일이 그만큼 편리해졌고, 그럼으로써 더 많은 것들이 실려 나가고 또 실려 오게 되었다. 섬은 점점 육지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엔진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이레마다에서 나흘마다로, 그러다가 배가 두 척이 되면서 이틀마다로 객선의 텀이 줄어들었다. 부산으로만 나 있던 뱃길이 목포로도 뚫리게 되자 섬은 매일매일 읍과 이어지게 됐다. 아침에 읍에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오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생활의 방향이 점점 부산에서 광주 쪽으로 옮겨갔다. 원양어선이나 화물선을 타기 위해 부산으로 가는 사람은 줄어든 반면 돈벌이를 위해 서울로 가는 사람은 많아지는 것이다. 그것이 청뫼도만의 현상은 아니었는지 부산 쪽 항로는 어느 시점에서 아예 없어지게 되었다. 이제 목포 쪽으로 다니는 배가 매일 육지와 섬을 이었다.
섬을 오가는 객선의 역사는 진욱의 인생사이기도 하다. ‘완도마루’ ‘태완호’ ‘명륜호’ ‘강화호’ ‘삼영호’ ‘경영호’ 등은 진욱이 거친 배들의 이름이다. 그 객선들의 이름과 함께 진욱의 삶도 흘러갔다. 처음에는 이레에 한 번이던 뱃머리 행이, 다음에는 사흘마다로, 그러다가 이틀마다가 되었다. 배의 운행에 맞춰 진욱의 생활도 바뀌는 것이다.
배는 저물녘에 섬에 닿았는데 진욱은 그 시간에 맞춰 뱃머리에 나다녔다. 십리 가웃 되는 신작로를 부지런히 뛰어 뱃머리에 닿아 구석구석을 살피고는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뛴다. 그것이 여러 해 계속되면서 진욱은 섬의 명물이 되어 갔다. 여느 사람 같았으면 그저 누이를 기다리는 동생의 지극정성이려니 했겠지만 진욱의 특이한 모습에 사람들의 눈길이 안 갈 수 없었다. 보통사람보다 키가 많이 작고 여위었으며, 거기에 등까지 좀 굽었다. 언제 깎았는지 모르겠는 기다란 머리카락은 제멋대로 헝클어졌다. 위는 항상 누런 런닝이었는데, 얼마나 오래 입었는지 런닝의 목둘레가 가슴까지 축 처져 내렸다. 새끼줄로 허리띠를 해 훌친 후줄근한 바지는 항상 정강이까지 걷어져 있는데, 마치 조금 전에 논의 물이라도 잡고 온 듯한 품이다. 처음에는 짚으로 엮은 게다를 신었다 벗어 들었다 하며 뛰었는데, 나중에는 헝겊을 대고 징근 다 떨어진 고무신을 새끼줄로 동여매고 달려 다녔다. 달리는 폼도 특이했다. 그냥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걷거나 달리면서 내내 주변을 휘뚤거렸다. 외딴 집에 살아서인지 사람에 대한 경계가 습성화 된 듯했다. 길에서 사람을 마주치면 눈치를 보며 한켠으로 외오돌았고, 상대방의 눈길을 피하려고 고개를 수그린 채 부리나케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런 모습으로 달리다걷다를 반복하며 신작로를 왕복하는 것이다.
진욱이 동네를 지나갈 때면 뼈다귀를 발견한 강아지들처럼 여지없이 아이들이 달라붙었다. 꼬맹이들은 진욱을 따라 달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돌이나 마른 소똥, 심지어 개똥까지 던져대며 쫓아 뛰었다. 그때마다 진욱은 흘낏흘낏 뒤를 돌아보며 빠르게 동네를 벗어났다. 심한 동네에서는 한 패는 뒤에 따라붙고 다른 한 패는 저 앞을 가로막은 채 토끼몰이를 해 놀란 진욱이 논둑길로 도망쳐 달아나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꼬맹이들은 자신들의 놀이감을 ‘이스모스’라 부르기 시작했다. 누가, 언제, 왜, 그렇게 불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불어오는 바람처럼 어느 날 문득 그 이름은 등장했고, 그것은 꼬맹이들의 입을 통해 이 동네 저 동네로 퍼져나갔다. 애들의 입은 부는 바람만큼이나 빠른 것이어서, ‘이스모스’라는 이름은 바람에 날리는 코스모스 꽃씨처럼 섬의 구석구석으로 날아갔고, 진욱은 몇 조금이 안 돼 본이름 대신 ‘이스모스’가 되어 있었다. 섬에는 점차 ‘진욱’이라는 이름은 몰라도 ‘이스모스’를 모르는 사람은 없게 되었다. 소위 ‘이스모스를 모르면 간첩’이었다. ‘조캐’라고 하대(下待)할 지팡이 짚은 할아버지나 할머니들도, ‘갑장’이라며 친구처럼 대해야 할 장년들도, ‘형님’으로 깍듯하게 대해야 할 청년들도, ‘오춘’이라며 어른 대접을 해야 할 아이들도, 남녀노소 너나없이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 그냥 ‘이스모스’라 불러댔다. ‘이스모스’는 나이나 연령에 상관없이 아무렇게나 불러도 되는 똥개 같은 호칭이었다. 그러면서 점차 ‘이스모스’라는 이름은 보잘것없고 추레하고 어리뜩한 대상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어 갔다. 상대를 비하할 때 쓰는 ‘이스모스만도 못한 놈’, ‘이스모스랑 지(계) 묻어라’ 같은 말들은 섬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관용어였다. 가장 ‘하빠리’를 가리키는 명칭인 것이다. 그 천하디천한 이스모스는 그런 것에 아랑곳 않고 그 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자라다 만 작고 굽은 빼빼한 코스모스 같은 이스모스의 겨드랑이로 세월은 흐르고 또 흘러갔다.
첫댓글 어떤 삶에는 세월이 약이였고,어떤 삶에는 아픔이 되기도 하리라.
하층의 하층민으로 세상을 견더야만 했던 우리 찐욱이 오춘님의
영령앞에 두손을 모으다.기억을 반추해준 작가님에게도...
가슴 깊이 웅웅거리는 이 소리!
아, 것들...
어릴 때 그분의 모습이 내내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언젠가 소설을 쓰면 그분의 얘기를 맨 먼저 쓰리라 생각했었습니다. 대학교 때 소설창작 과제가 있었는데, 그때 썼다가 마무리 못 짓고 두었었습니다. 오래 묵혀놨다 이번에 마침표 찍었습니다. 힘들게 세상을 살았던 분들께 소주 한잔 따라드릴 수 있어 다행입니다. 제가 소설을 쓴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것들로 살다가 떠난 사람들 앞에 소주 한잔 따라 올리는 것. 그분들이 잘 받아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
할말을잃엇소야
그대으글들로인해
내가맑아집니더
뭔 죽고사고 병을 주든만 재린가 어찬가 약을 주요이이.
@너빠퉁 음마?
사진보고빙드싯소
그날찍사가잘몬찍드라마는
지대루찍햇으모클날뻔햇네라
@나비 긍게말이요, 남자는 갑빠가있고 솔찍해얀디, 사진보고 뿅 갔슴시로 안그런척. 빙좀 낫게 해주시오, 글 잘쓰게...
@해오라기 글은본시잘쓴께요
돼지코딱지탈을쓰고사진찍어올리께라
글믄도망가것제요머^^
@나비 아니지라우~ 보낼때 확실히 보냅시다, 청산범바구에서 동동주 얼큰하게 한잔하고 나비 잠자리되어 살랑살랑 걷는 모습을 오라버니가 찍어 올리면 입이 쩍 벌어져 두말 못할겁니다, 어디서 이렇게 이삔 나비님을...
@해오라기 아유쪽팔리라
대형 문어 발가락 사이에서 강자들한테 약자가 쫓기는 모습이 영 싫습니다, 후편에는 이스모스가 강자들을 몰고 다니는 와일드한 화면이 펼쳐지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