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지 않은 손님
김 언 홍
한참 텔레비전 연속극에 빠져있는데 새콤달콤하면서도 탄내 비슷한 것이 후각을 자꾸 건드렸다. ‘이게 뭔 냄세지, 뉘 집에서 뭘 태우나?’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얼른 일어나 둘러볼 생각도 안 하고 뭉그적거렸다. 그러다 혹시? 하는 생각에 주방으로 달려가 문을 열어보니 맙소사! 주방 가득 연기가 차올라 지척이 분간되지 않았다. 재빨리 가스 불을 끄고 솥뚜껑을 열어보니 새카만 숯검정이 나를 노려보는 게 아닌가. 어쩌면 좋아, 내가 만날 이 모양이다. 정말 왜 이럴까. 그나저나 저녁까지 이 냄새 안 빠지면 어떡하나. 냄새 나가라고 문이란 문은 모두 열어놓고 촛불도 켜놓고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해보아도 냄새는 쉬 빠질 기미가 안 보였다.
어린 손녀가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그렇게 텔레비전만 보고 있으니까 그렇지!” 하며 어른 같은 말투로 핀잔을 주었다.
방향제를 찾아다가 주방은 물론 안방 건넛방 옷방까지 다 뿌리고 아이들에게도 단단히 일러두었다. “애들아 이건 비밀이다. 할아버지한테 말하면 안 돼, 절대 안 돼”
퇴근하여 돌아온 남편이 무언가 냄새를 맡았는지 자꾸 킁킁거렸다. 가슴이 뜨끔해서 눈치만 보고 있는데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 일은 그렇게 넘어가나보다 안심하고 있는데, 저녁상 앞에서 기어이 일이 터지고 말았다.
마당의 개가 짖어대어 잠시 현관으로 나가 밖을 살펴보고 들어오는데 “할아버지 다 탓다.” 하는 작은 손녀의 말소리가 나직이 들렸다. 나도 모르게 아이 뒤로 잽싸게 다가가 등을 '탁' 치며 “뭐가 다 타!”하고 소리 질렀다. 순간적으로 나온 버럭 소리에 아이가 놀랐는지 울기 시작했다. 남편이 “뭐가 다 타?”하더니 이내 고개를 주억거리며 “으응 그래서 이상한 냄새가 났구만.”하더니 손녀에게 뭐가 탓는데? 하고 묻는다. 아이는 내 눈치를 살피느라 비죽 내민 입을 꼭 다물었다. 차라리 실토를 하는 게 났겠다 싶어 입을 열었다. “실은 저번에 경동시장 가서 사온 수삼 있잖아요. 당신 주려고 거기다 대추랑 생강이랑 넣어서.”“그게 뭐 어찌됐는데?” 쳐다보는 남편의 눈이 예사롭지 않다. “또 태웠단 말이지, 쯔쯔 언제고 일 내지, 일 내고 말아.”
작년 이맘때의 일이다. 가스렌지에 찻물을 올려놓고 잠시 마당으로 나갔다가 까맣게 잊고 이웃집에 마실을 갔다. 왕래가 잦던 집도 아니었는데 그날은 무언가에 홀린 듯 거실에 앉아 차 대접까지 받게 되었다. 커피를 다 마시도록 까맣게 잊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다.
‘아뿔사!’달리는 건지 나르는 건지 허둥지둥 달려와 보니 온 집안에 연기가 차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주전자는 이미 새카맣게 탄 뒤였고 주방 창 커튼에 불이 붙기 직전이었다. 무슨 정신으로 수습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 봐도 아찔했던 사건이었다.
이런 나도 한때는 총기 좋다는 소리를 듣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믿어줄까. 나이 들면 찾아온다는 손님, 건망증! 쫓아낼 방법을 찾을 길 없으니 함께할 방도를 구해야만 될 것 같다. 해서 오늘도 나는 집 안팎을 둘러보고 또 둘러본 뒤 집을 나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