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속에서 도덕감정과 일반감정은 분리되어 있을까?
성리학에서는 리(理)와 기(氣)의 관계에 대한 정의로 이세상 만물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 그리고 인간의 본성과 도덕적 행동의 근거는 무엇인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기본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리(理)는 만물이 존재하도록 하는 근본 원리가 되는 것으로, 세상과 인간이 마땅히 따라야 하는 법칙이자, 도덕적으로 올바른 원리이다. 기(氣)는 이러한 원리로서의 리가 현실에서 실제로 나타날 수 있도록 하는 구체적인 재료이자 힘이다. 우리가 비어 있는 땅에 다양한 용도(주거공간, 관공서, 사업장 등등)를 가진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그 건물을 실제적으로 짓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원리로서의 설계도가 필요하듯, 현실에서 구체적인 모습인 기가 있기 위해서는 기의 원리로서 작용하는 리가 있어야 한다. 즉 설계도와 건물이 별개의 것이 아니듯, 리와 기 역시 서로 떨어질 수 없고(理氣不相離), 또 그렇다고 '설계도=건물'이 아니듯이 리와 기 역시 서로 섞일 수 없는(理氣不相雜) 성격을 지닌다.
여기까지는 성리학의 기본 원리, 그중에서도 리기(理氣)론에 대해 내가 이해한 내용을 정리해보았다.
당연히 동일한 성리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더라도 자신이 어떤 것이 올바르고 타당하다고 믿느냐에 따라 다양한 관점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성리학자 이황과 기대승은 이런 리와 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의 감정인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을 바라보는 의견이 서로 달랐고, 이에 대해 첨예한 논쟁을 펼친다.
이황은 흔히 도덕 감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단과 일반 감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칠정에 대하여, 사단이라는 것은 리는 도덕적 원리인 리가 주도해서 나타난 감정으로 도덕적 본성에서 직접 발생한 순수한 선(善)의 감정으로 보았다. 또 칠정에 대해서는 기가 주도해서 나타난 감정으로, 외부 자극(외물)에 감촉되어 발현한 유선유악(有善有惡)의 감정으로 보았다. 즉, 내 마음 속에 도덕감정(사단)과 일반감정(칠정)이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주장한 것이다. 이황의 이러한 생각이 가능한 근거에는 리에 도덕적 능동성을 부여하여 리가 스스로 발(發)하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 따라서 리라는 원리가 스스로 주도하여 사단이라는 감정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었는데, 바로 이황의 이러한 사상이 성리학의 근본 원리인 리는 움직이지 않는 불변한 것이라는 설명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또한 성리학에서 이야기하는 현실에서의 리와 기가 언제나 하나로 작용한다는 리기공발(理氣共發)의 관점에서 볼 때 사단과 칠정을 분리하여 바라본 이황의 관점은 리와 기를 나누는 이원론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옳지 않은 설명이었다. 이 부분이 바로 기대승이 논리의 오류로서 지적한 부분이다. 기대승은 사단과 칠정에 대하여, 마음 속에서 사단과 칠정이 분리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칠정이라는 전체 감정 속에서 때(정도)에 맞게 나오는 감정이 바로 순선(純善)한 감정인 사단이라고 보았다. 즉 칠정이 사단을 포함하는 것으로, 칠정포사단(七情包四端)을 제시하였다.
이상의 내용은 수업 시간에 공부한 사단논쟁에 대해 내가 이해한 바를 정리한 내용이다.
그렇다면 사단과 칠정은 마음 속에서 분리되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칠정 속에 사단이 포함되어 있는 것일까? 나는 기대승의 주장이 좀더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성리학의 큰 이론적인 틀로 봤을 때 이황의 주장은 성리학의 원리에서 어긋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을 떠올려보면, 우리는 누구나 나에게 없는 것, 또는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가지고 싶어하는 마음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대전에 있는 유명한 빵집 성심당을 다들 알 것이다. 성심당의 빵 중에서도 생과일이 듬뿍 올라간 각종 과일 시루 케이크가 있는데, 인기가 많아서 빨리 가지 않으면 품절되어 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얼마나 맛있는지는 아직 안 먹어봐서 모르겠다......ㅎㅎ) 부모님이 대전에 관광을 가셨다가 성심당 시루 케이크를 사온 상황을 가정해보자. 무슨 맛인지 궁금했던 케이크가 집에 있으면 아직 안 먹어봐서 맛이 궁금하고 배가 고프면 당연히 나는 그 케이크를 먹고 싶은 감정인 욕구가 든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는 그 케이크를 먹음으로써 나는 내 욕구를 해소할 것이다. 이번엔 성심당에 케이크를 사러 직접 갔는데 내앞에서 케이크가 품절되어 살 수가 없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아까와 마찬가지로 성심당 케이크가 내 눈앞에 있고 나는 그 케이크를 먹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 일 것이다. 첫째는 케이크를 사간 내 앞 순번의 사람을 공격해서 케이크를 강탈하여 먹는 방법, 두번째는 다음번에 케이크를 살 기회를 얻길 바라며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 똑같이 케이크를 먹고 싶은 욕구가 들었지만 나는 두번째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그 케이크를 뺏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고, 나는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을 분별하고 옳은 일을 선택하고자 하는 마음(是非之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내 마음 속에는 욕구라는 일반감정인 칠정이 있지만, 그 감정은 어떤 때는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고 어떤 때는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여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처럼 내가 가진 일반감정이 때에 맞게 적절하게 발현되었을 때가 바로 사단이라고 생각한다.
이황의 견해처럼 일반감정과 다른 절대적으로 선한 도덕감정이 별개로 존재한다면 도덕성의 순수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상황들에 대해 똑같은 감정이 들더라도 상황에 따라, 즉 정도에 맞게 발현될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서 우리의 감정은 모두 같은 감정(마음=칠정)인데, 이 안에 순선한 감정인 사단이 포함되어 있다는 기대승의 견해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