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
강부자
매달 배달되는 작은 소식지. 얼마 전 십여 권을 하루에 몰아쳐 읽고는 숙제를 다 한 기분이었다. 그러고도 읽어야지 하고는 미루어 둔 수십 권의 책. 대충으로 월간지, 문학신문 공공기관의 홍보지 등 한두 달 새 발간 된 지인들의 삶이 담긴 고백서 까지 읽을거리의 홍수다. 그뿐만이 아니다. 의식주는 물론 어렵던 시절 부족했던 생필품이며 넘치지 않는 것이 없다. 이 또한 범람이기에 홍수이다. 어렸을 적 홍수란 물의 넘침이고 원인은 배수에 있었다. 하수도시설이 열악하여 큰비가 내리면 지면이 낮은 도로가 물에 잠기곤 한 것이다. 그 시절 방과 후 우리들은 부모님 등에 업히어 물의 범람을 건넜다. 그 홍수란 단어를 내가 문자의 홍수라고 부끄러움도 없이 말하고 있다. 문자의 홍수, 내가 소화해야 할 책의 분량을 감당하지 못하는 부족함을. 결혼 전 나도 취미가 독서라고 할 만큼 책을 읽었지 싶다. 한 달이면 많은 분량의 책을 읽어내는 초등학년 손자가 대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TV 리모컨을 손에 들고 있는 나를 본다. 문자의 홍수를 극복하지 못하는 원인이다.
남편은 직장에서 전집의 책을 들여올 때가 많았다. 지인들의 부탁도 있었겠지만 그 시절에는 거실에 책이 가득한 것만으로도 부자가 된 듯 했고, 자주 이사를 하면서도 살림살이보다 많은 책이 부담스럽기보다는 뿌듯한 자부심이었다. 책장은 보물 1호이고 손재주가 좋은 남편은 작은 책장을 직접 재작하여 흐뭇해하였다. 아파트 작은 평수에 살 때 세 모녀는 가구의 배치를 일 년이면 수시로 바꾸곤 하여 힘들어하면서도 그 뒤에 오는 새로운 분위기를 즐겼다. 결혼 후에도 첫째는 가구 옮기기가 몸에 밴 듯 수시로 도움을 청해서 한 동안 적응을 못했다고 맏사위는 하소연을 했고, 둘째 딸은 신랑이 출장을 다녀오는 동안 온 밤을 새워서라도 나를 공모자로 만들어 가구의 위치를 바꾸곤 했다. 지금 사는 아파트는 방이 세 개다. 위로 남매는 새로 이사 온 아파트에 살아볼 기회도 없이 진학을 하였기에 고등학생인 막내를 위해 책장이 겸비된 책상과 침대를 마련 해 주었었다. 지금도 방학이면 침대가 없는 방은 큰 딸 가족의 몫이고 둘째는 결혼 전 쓰던 방을 당연하게 자신의 방으로 소유한다. 몇 해 전 작은 딸이 책상과 책을 모두 버리자고 말했다. 가족들과 쓰려니 방의 구조도 바꾸고 싶고, 수십 년이 지난 책은 미세먼지로 건강에도 안 좋다며 한 번 더 읽고 싶으면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보관하고 싶은 책은 새로 구입하자고 했다. 나름 정리에는 자신이 있었고 삼남매 모두 필요한 평수만큼의 집을 마련하였기에 새로운 내 공간에 만족하며 살았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잠시 마음에 혼란이 왔지만 접기로 하였다. 본인이 쓰던 책상이고 손녀들의 건강 운운하니 달리 반대 할 명분도 없었다.
이번 달에도 숙제인 냥 펴든 작은 소식지에서 한 사제님의 글을 읽어가다 순간 온 몸이 반응하는 시 한 편을 만났다. 분량에 대한 부담이 없는 작은 소식지, 시간이 지나면 으레 분리수거함으로 버려지던 책. 한 번도 내 책장에 꼽혀보지 못한 책이다. 묵상하며 쓰신 따뜻한 삶을 말해주는 보석 같은 사랑의 시가 다달이 나에게로 왔었다. 재빨리 분리된 종이 묶음에서 여러 권의 소식지를 찾아내어 시를 오려내기 작했다. 남들에게 자랑거리와 자기만족으로 처녀 적부터 소장해온 명작들과 남편이 작은 봉급을 쪼개어 들여놓았던 전집 외 전문서적들을 책장에 과시해 놓곤 문자의 홍수라 우기고 있었다. 이제 사람 냄새가 묻어있는 책들을 읽으며 그동안 버려진 보물들을 찾아가는 건 나의 몫이다. 어린 시절엔 부모님의 등을 빌어 홍수를 건넜지만 지금은 책들의 범람 안에서 스스로 문자의 홍수를 건널 수 있는 지혜를 찾아야겠다. 남편이 제작한 작은 책장을 꾸미는 데는 많은 책이 필요치 않다. 내 머릿속에 든든한 책장 하나 만들어 저장하곤 언제나 꺼내 읽어야겠다.
한 편의 시에서 문자의 홍수를 건널 수 있는 힘을 얻은 행복한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