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목정 성지 못 미쳐 경주시 산내면 소재지에 산내 성당이 있다. 산내면 내의 의곡, 진목, 와항, 범곡 공소가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중심이 되는 신자 공동체를 만들고자 의곡 공소 자리에 1999년 2월 착공하여 1999년 7월 완공되어 축성된 산내 공소는 2008년 9월 5일 산내 성당으로 탄생하였다.
부지 총면적은 2216㎡(670평), 전용 면적은 824.41㎡(249.8평), 건축 면적은 162.4㎡(49.2평)이며, 경당 건물은 경량 철골조로써 지상 1층이다. 좌측에는 지상 2층 규모의 생활관이 있고, 또 그 옆에는 컨테이너로 된 교리실이 있다. 1999년 7월부터는 4개 공소의 신자들이 산내 공소에서 주일 첨례를 드리고 있다. 현재는 건천 성당 소속이다.
■ 산내 본당에 속한 4개 공소
◆ 의곡 공소 (경북 경주시 산내면 의곡리 135-19)
신라 시대부터 사람이 살아온 전통 있는 마을로, 근대에는 조선 중기 때 월성 이씨가 이 마을을 개척했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역촌으로 지정된 교통의 요충지였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살았다. 의곡(義谷)이라 함은 마을 사람들이 대중들의 모임에서 선도적으로 모범을 잘 보여 일을 잘 처리했으므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도 역시 병인박해 전후부터 신자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1893년 11월 경상도 지방을 처음으로 사목 방문한 조선 교구장 뮈텔 주교가 11월 6일에 의실(의곡과 같은 말) 공소를 사목 방문하였다. 이 때 공소 회장은 김 라우렌시오(56세)였으며 그때 로베르 신부와 함께 1891년 대구 교안 사건 때 관리들과 민중들에게 심한 박해를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공소집의 주인은 이 베드로이다. 뮈텔 주교의 일기에 의하면 이 마을의 약 40세대 중 3세대만이 신자였다고 전하고 있다.
1890년 부산 본당이 설립됨에 따라 부산 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가 1926년 경주 본당이 설립됨에 따라 경주 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 1950년 경에는 공소 신자들도 퍽 가난하고 공소 집이 없어서 이 시메온의 자택에서 매주 공소 예절을 했다. 1952년 윤광제 본당 신부 주선으로 가정집을 매입하고 수리하여 공소 건물로 사용하였다. 또한 이때 밭 700평도 매입하였다. 1999년 7월에는 이곳 의곡에 새 공소 건물을 신축하여 ‘산내 공소’라 하고 의곡, 진목정, 와항, 범곡 공소 신자들이 합동으로 주일 첨례를 드리고 있다. 현재는 건천 성당 소속이다.
◆ 진목정 공소 (경북 경주시 산내면 내일리)
부근의 탑골과 상선필에 1801년 신유박해 때부터 천주교 신자들이 살았으므로 이곳에도 일찍이 박해 시대 때 신자들이 피난와서 살았던 것 같다. 그 후 1815년 을해박해와 1837년 파리 외방 전교회의 신부들이 입국하여 포교 활동을 할 때 언양, 구룡과 이곳에 와서 성사를 주었다고 전한다. 1850년 경 부터는 최양업 신부가 상선필과 이곳 등 부근의 지방을 순회 전교 했으며, 이어서 다블뤼 주교와 리델 신부도 병인박해 이전에 상선필과 이 부근의 지방을 순회 전교한 것 같다. 병인박해 때는 부근의 단석산 중의 범굴에서 허인백 야고보, 김종륜 루까, 이양등 베드로 등 3인의 순교자가 체포되어 순교했다.
병인박해 후에는 1879년부터 1880년 사이에 두 세 신부가, 1882년 로베르 신부가, 그 후 1890년부터 조죠 신부 및 우도 신부 등 역대 부산 본당 신부들이 이 공소에 와서 판공성사를 주었다. 그러나 1895년부터 다시 이 공소는 대구 본당 관할 공소가 되어 로베르 신부가 다시 이 공소에 와서 판공성사를 주었다. 현재 이곳에 살고 있는 신자들은 1866년 병인박해 후에 이사 온 신자들이다. 이 공소 뒤편의 도매산 중턱에는 허인백, 김종륜, 이양등 순교자들의 시신을 모셨다가 현재 이 분들의 유해는 대구 복자 성당에 모셔져 있고, 진목정에는 가묘가 있다.
◆ 와항공소 (경북 경주시 산내면 대현3리)
대현리는 고현산과 문복산 등 높은 산을 경계로 울산시 두서면과 청도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곳 와항도 해발 500m의 높은 산 고개를 경계로 하여 울산시 두서면과 접하고 있다. 이곳에는 옛날부터 기와를 굽는 흙이 많이 출토되어 와항(瓦項)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 천주교 신자들이 언제부터 살았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높은 산 계곡 마을이고 부근에 1801년 신유박해 이후부터 신자들이 살았던 선필, 탑골, 진목정 등의 신자촌이 있으므로 이곳에서 박해시대 때부터 신자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병인박해 후인 1896년 대구에 살던 황 루까 가정이 이곳에 자리 잡고서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며 복음을 전파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신자들의 힘으로 현재 공소의 맞은편에 처음으로 공소를 설립했다. 교세 통계표에 의하면 1910년부터 1926년 경주 본당이 설립될 때까지는 부산 본당 관할 공소였다. 그러나 6.25를 전후하여 이곳에 빨치산이 많이 있어서 그들의 소굴이 될까 두려워서 공소를 자진 철거했다. 그러다가 7대 공소 회장 황달호 시몬이 당시 경주 본당 주임 신부였던 윤광재 다윗 신부의 도움과 신자들의 열성으로 다시 초가집 공소를 지었다. 그리고 신자들 스스로 성미를 모아서 기와를 올렸다. 1975년 1월에는 부산 교구 초대 교구장 최재선 요한 주교, 진 수산나 할머니와 본당의 도움으로 공소 운영을 위한 논 두 마지기를 마련하였다. 신자수는 이 후 증감을 거듭하다 현재는 많은 가정이 경주 등 다른 곳으로 가버리고 몇 세대 남지 않았다.
◆ 범곡 공소 (경북 경주시 산내면 대현리 1760)
마을 이름의 유래는 지형이 범의 굴과 같다 하여 범곡(凡谷)이라 불리게 되었다. 천주교 신자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1910년 청도 구룡 공소에서 박기문 프란치스코 가족이 이곳으로 이사 옴으로써 차츰 부근의 신자들이 모여서 공소를 설립했다. 그러자 부산 본당의 7대 마리오 줄리앙 권신부와 8대 뻬셀 신부가 매년 이 공소에 와서 춘추 판공성사를 주었다. 1926년 경주 본당이 설립됨에 따라 역대 경주 본당 신부들이 나와서 춘추 판공성사를 주었다.
2대 박토마 공소 회장 때인 1931년 현재의 공소 건물을 지었다. 5대 박도준 토마 회장 때 공소가 허물어져서 얼마 동안 의곡 공소에 가서 판공성사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집을 수리하고 지붕을 기와로 고치고 환경 정리를 깨끗이 했다. 1999년 7월부터는 산내공소에서 주일 첨례를 드리고 있다. 현재는 건천 성당 소속이다.
■ 찾아가는 길
■ 순례지 정보
첫댓글 직접가서 본 것 보다 사진으로 보니 훨~아름다워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