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바람의 絃으로
立春이 오는, 저 甘美로운 感覺
■냉이 위에 내 마음 날아올라—.
눈이 내린다, 봄눈이다. 또 다른 나를 만나게 하는 계절ㅡ. 겨울에 소외됐던 분위기와 다시 조우하게 된다. 이는 환절기 체험이 반복되는 삶의 본능이다. 거기 나의 비밀스런 습벽도 함께 묻어든다. 은은한 현(絃)의 울림소리여—!
하늘에 날아오르는 새들… 들불 타오르는 연기를 볼 수 있어서가 아니다. 알몸으로 쫓겨난 나무숲에 허물을 돌려놓으려고 꽃눈 틔우며 건너오는 봄 때문이 아니다. 저 팬 플루트 아닌. 바람의 현에 현혹된다.
개나리 울타리에 겨울이 짧다고 흰 나비로 봄눈을 쉬어가게 하는 결코 그런 계절의 배회 탓만이 아니다. 그렇다고 일렁이는 스트레스의 주파수를 줄이는 탄성으로 기쁨을 여물게 하는 속잎 때문만은 더욱 아니다.
천재…, 바보의 분석을 확실히 초월해 있다. 그들이야 말로 삶의 빛을 광기로 발굴한 때문이다. 게다가 볕 바른 뒤란 가시지 않은 시린 손 찬바람에 수집은 백목련 탓일 것인가?
그것은 욱신거리는 피로에도 머리에 새봄을 이고 팔러 나온 산마을 어느 소녀를 보고서다. 싱그러운 풍미를 자극하는 바람의 향기에 취하느니….
소녀의 머리 위엔 바람이 꿈꾸는 봄의 술렁임이 있었다. 그 냉이 위로 내 마음이 날아올랐다. 이른 봄날 냉이는 무엇을 꿈꾸고 있다가 소녀를 만났을까? 싱그러운 푸성귀들은 이내 나를 유혹하듯 풋풋한 향기를 발산한다.
■生存의 사랑에 喜悅의 錯綜—.
소녀에게서 연상되는 흰 목련ㅡ. 어디서 왔을까? 산 내음 새 울음 묻어나는 초록빛 골짜기를 돌아온 황홀한 몸짓에 겹치는 목련 꽃을 생각했다. 이 무렵은 으레 푸성귀와 목련이 잊어지지 않는 노래로 내 마음을 데운다.
봄의 살갗은 그렇게 환각의 기쁨 안에 나를 초대한다. 싱그러운 풋나물에 보슬보슬 내 시선이 내리고 있어서였다. 젖은 숨결로 나는 봄의 잎이나 뿌리에 입 맞추며 소녀를 보냈다, 현을 켜며 머리카락 날리게 하는 바람을 따라 가도록ㅡ.
돌아서며 만난 아침 달…! 엷은 우유 빛 베일에 싸이듯 구름 안을 달려서 간다. 차디찬 은의 활(銀弓)에서 더욱 해맑은 영혼으로 나를 눈 뜨게 하는 제3의 언어에 흡수된다.
음악이 흐르는 산책 길… 황홀해진 팬터지에 색칠해질 시간이 아니었지만 목련이 지워진 거리는 푸성귀 나물 냄새와 날카로운 은의 활이 드러낸 신화시대의 은밀한 서스펜스로 휩싸인 듯했다.
설 명절을 손짓하는 舊 正月節 立春은 인간의 생활관을 취미나 기호까지도 새롭게 회유하도록 한다. 변화를 모색하는 움직임에서 진취의 열락, 감격으로 생존의 사랑에 희열이 착종되는 환희의 계절이여—!
지난주 25일 일본 남 규슈 온천의 명소 미야자키(宮崎)시에서는 옛 백제 왕족의 망명설을 기리는 구 섣달 제례(師走祭)가 성대히 베풀어졌다.
이는 木城 거리 比木 신사에 모신 新智王 위패를 안은 행렬이 南鄕區 神門 신사에 모셔진 아버님 楨嘉王을 배알하려는 부자상봉을 기렸다. 신문신사 가까이서 영접하는 불기운 화염이 밤하늘 높이 휘영청 밝았다.
사진은 이 도시의 장려한 관광축제로 만월의 보름 달빛 아래 신지왕의 위패가 정가왕의 신문신사를 향하는 엄숙한 행렬이다.
■仙女의 羽衣를 그려볼거나—.
부정에서 출발해 부정으로부터의 긍정, 죽음에 따른 삶의 경로가 반복된 저 특유의 울분, 격정, 그리고 아성의 절규… 어쩌면 내 귀를 의아하게 하는 어느 작곡가 비이올린의 협주곡 D장조가 아니겠는가!
칸초넷타의 곡취를 발산하는 바람의 리듬—. 새로운 절기의 심벌이 아니고 이리 유려할까? 포근한 품에 안겨 두둥실 애드벌룬으로 날고파 저 햇살 와르르 분쇄되는 선녀의 우의(羽衣)를 그려본다—.
立春을 향해 깃발을 흔들며 가는 나목(裸木)이 무슨 죄이랴? 아무런 수치도 없는 기다림의 꿈을 마음으로 채우고 우리의 내일을 함께 할 정념의 꿈을 맞으러 가자!
우리의 만남은 눈 빛 지평의 환상이 아니다, 바람의 현이 있기에 즐겁다. 비나 햇빛, 눈의 반짝임으로 춤사위 일렁이는 계절의 풍속도여. 나비도 벌도 아직 잠든 곳에 소리와 소라끼리 어울려라…!
미래를 여는 세월 앞에 야망의 포부를 사다리로 놓아주는 거리는 젊음과 힘의 메아리로 왁자하다.
차이코프스카의 까치 노래에 들떠 백합꽃. 장미, 안개꽃 졸업기의축하 앨범 모자이크 소포로 현의 몸짓은 화려하다. 순 하디 순한 양 떼 위로 초원의 화음이 여울지는 감동적인 여운이여라…!
■來日을 위한 華麗한 準備를—.
착각은 자유라지만ㅡ.의ㆍ식ㆍ주 문화에 미치는 영향 또한 불규칙할 정도로 일상적인 궤도를 벗어나게 한다.주 생활만 해도 중앙난방의 보일러 작동이 달라지고 있다.
뿐 아니라 주거문화에 부수된 취미와 기호도 생활화된 유희에서 예 술화 된 유희로 양상이 바뀐다.
교양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예술로 불리는 소업이나 인격으로 불 리는 도덕적 가치 또한 취미와 기호로 격조 높은 원숙한 자기 경 지를 발전시킨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은 주 의 문화와는 직접 관련이 없다. 공자는 `民은 以食爲天한다'했다. 실상 일체의 착상이 식탁에서 일깨워지고 있다.
이제 겨울 옷을 벗어버릴 때다. 그러나 때로는 四月까지 날씨의 변동과 함께 겨울 옷을 꺼내 입게 한다. 옷장 깊이 챙겨둘 수만도 없다 때문에 옷장은 겨울과 봄 옷으로 혼란스럽다.
우리는 내일이란, 에스커레이테 올라 있다. 하루의 괴로움은 그날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마태오복음 6,24) 모두에게 지닌 오늘이 내일을 갖고 있기에 기대가 크다. 내일을 위해 오늘은 화려한 준비기 요청된다,
■健康이 늘 確保돼 있어야—.
식도락의 계절이 오는데ㅡ. 한식은 특히 발효성 식품이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봄이면 이들이 예외 없이 식성을 감퇴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꿈 꾸는 바람이 된다. 요리를 준비하는 주부에게는 미안할 뿐이다.
한국의 요리란 일하는 시간 보다 요리하는 시간이, 연구하는 시간 보다 먹는 시간이 길어 다분히 낭비적이다. 그러나 그 같은 상 꾸미기에도 요즘 나는 으레 이 계절이면 유럽 여행을 마음으로 곧잘 떠난다.
동유럽 각국의 중세시대 성곽마다 내부 벽면에 장식된 현란한 회화와 각종 유품, 그리고 서유럽의 화려하고 매혹적인 거리에서 보는 삶의 환희에 일련의 노스탤지어를 일으키곤 한다.
유럽여행에서 식욕을 자극하는 음식은 한식이다. 칼과 창으로 육류를 썰며 마시는 포도주는 식탁의 감미로움을 풍요하게 하는데, 프라하나 부다페스트, 파리나 런던에서 즐겨 먹은 한국요리 레스토랑의 식도락은 일품이었다.
이는 가풍처럼 전해오는 전통적인 요리솜씨를 물려받지 못한 엉성한 식탁을 대하다가 외국에서 표준식단을 만나고, 또 그 때의 식사시간을 회상하면 확실히 식욕 잃은 봄의 식생활을 쾌락으로 되돌리곤 한다.
인간을 삶에서 유리하려는 혐오스러운 적과 맞서려면 그 값진 건강이 항상 확보돼 있어야 하겠다. 봄을 맞는 그대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