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조 종장의 완결성 연구

[이광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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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차 >

Ⅰ. 들어가는 말---------------------------2

Ⅱ. 고시조의 종장 완결성 고찰

1. 고시조의 단수성(單數性)-----------------2

2. 고시조에 나타난 종장의 완결성(完結性)------3

Ⅲ. 현대시조의 종장 변이 양상

1. 현대시조의 전승적 의미-----------------5

2. 현대시조의 종장 자수고(字數攷)-----------7

3. 현대시조에 나타난 종장의 완결성

가. 단수형의 완결성--------------------10

나. 연작형의 완결성-------------------13

4. 종장 완결성에 대한 현대적 변환 방법------17

Ⅳ. 맺음말-------------------------------22

<참고 문헌>--------------------------23

Ⅰ. 들어가는 말

시문학(詩文學)의 가장 핵심적인 특성은 무엇보다도 '압축적 표현'일 것이다. '압축적 표현'이라 하는 말은 결국 시는 어떤 시어들로 어떻게 완결성(完結性) 있게 효과적으로 나타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래서 적절한 시어의 선택과 시를 전개해 나가는 기법상의 문제는 시 작법상의 핵심 과제로서 많은 연구의 대상이 되어왔다. 시에 있어서 '압축적'이며 '함축적'이라야 한다는 말은 절제된 시상의 완결성 확보의 문제로서 시 작법에 있어서 가장 긴요하게 요구되는 문제이다.

시조(時調)는 가장 압축적인 표현 형태로서, 그것이 발생한 이래 현재까지 유일하게 전해 내려오는 전통적인 민족 문학의 한 장르로서 일정한 격식을 갖춘 정형시이다. 평시조형의 단시조인 경우 3장 6구 45자 내외라는 정형적 틀이 있어서 시조는 다른 어떤 시의 장르들보다도 더욱더 절제된 표현기교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시조는 가장 절제되고 정제된 시의 모형으로서 시적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시조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단시조가 대부분인 고시조의 경우는 초·중·종 3장에 걸쳐 삼단구성, 즉 기-서-결(起-敍-結)의 전개 양상을 띠며 대부분 종장에 완결의 의미를 확실히 부여하였다. 그러나 현대시조의 창작 실태는 장(章), 연(聯), 음보(音步), 자수(字數)의 개념이 혼동된 상태이고 자유시와의 변별력도 약할 뿐만 아니라 시조 본연의 정체성마저 흔들릴 위기에 처해 있다. 특히 현대시조의 종장은 그것의 완결처리가 분명했던 고시조와는 달리 맺고 끊음에 있어 불분명한 상태이다. 시상의 완결처리가 불분명하면 시조 본래의 멋과 맛이 사라지고 가장 정제된 압축적 문학 장르라는 매력과 의미가 상실된다.

본고는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먼저 고시조의 종장처리 기법을 살펴보고 현대시조에 나타난 종장처리의 실태를 고찰해 봄으로써, 현대시조의 종장 완결처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현대 시조시인들을 위한 창작의 해법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Ⅱ. 고시조의 종장 완결성 고찰

1. 고시조의 단수성(單數性)

자유시에 비해 시조는 언어의 절제를 통한 시상의 응축을 요구하면서 시상의 전달적 효과를 초·중·종 3장의 범위 안에서 해결해 내야 한다. 초·중·종 3장의 가장 기본적이며 전통적인 시조형태는 평시조형의 단시조이다. 현대시조가 정립되기 이전의 조선 말엽까지 발표된 고시조는 거의가 단수(약 83%)로 되어 있다. 특히 인구에 널리 회자되고 있는 정몽주, 이조년, 황진이 등의 유명 시조시인들의 시조가 단수인 것은 시조의 종가(宗家)는 역시 평시조형의 단수에 있다는 것을 입증해 준다. 그것은 간결한 만큼 더 함축적이고 단단하며 감칠맛이 난다.

고시조의 대부분이 단수로 그치고 있는 이유는 고시조의 창사성(唱詞性), 즉흥성(卽興性)과 연관이 있다. 시조라는 장르가 본래 '단가(短歌)'로서 창작 상 단형이라는 개념상의 고정관념 아래, 가락이 아주 길게 늘어지는 창(唱)으로 불러졌던 까닭에 단수 한 편으로도 족했을 것이며, 지금처럼 치열한 문학창작 정신 속에서 양산되었다기보다는 사대부들이 대인(對人) 즉석에서 서로 화답하거나 강호 경관을 즉흥적으로 읖조리는 즉흥시라는 관점에서도 단수 한 편이면 족했던 것이다.

임종찬님도 '선비들은 자기 신원 표출을 시조 속에 담다 보니 시조가 논리적 완결미를 나타냄과 동시에 단수만으로도 자족한 시 형태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하나 더 부과되는 것은 시조가 唱詞였다는 측면이다. 시조창이든 가곡창이든 창의 연행은 독창 위주고 한 곡의 창이 끝나면 곧이어 和答의 창이 계속되기 때문에 時調가 長歌로 나타날 수 없고 민요처럼 제창으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일절 이절로 속개되지도 않는다. 연시조의 형태라 해도 각 수는 각 수 그 자체의 독립적 완결미를 나타내는 단수들이 연속되는 형태이기 때문에 고시조는 단수로서 완결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이 고시조는 단수로써 그 표현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정제된 단시조의 멋과 맛을 모르고 마구잡이로 장시조(長時調)랍시고 양산해 내는 오늘의 시조시인들이 다시한번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 숙고해 봐야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2. 고시조에 나타난 종장의 완결성(完結性)

고시조를 분석해 보면 대부분의 경우, 초·중·종 3장이 서로 유기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대부분이 종장에서 작가가 표명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을 분명히 드러내어 작품의 완결성을 확보하였다. 시조의 3장(章) 형식에 대하여 최동원님은 '시조는 속요(俗謠)의 음악적 분단의 요소와 가곡(歌曲)의 3장(章) 형식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시형이라 할 수 있겠다.'라고 결론지은 바 있다. 전형적인 3장 형식의 단수로 창작되어진 다음 고시조에 나타난 결말 처리를 보자.

(1) 梨花에 月白고 銀漢이 三更인 제

一枝春心을 子規ㅣ야 알랴마

多情도 病인 냥 여  못드러 노라

-이조년(李兆年), <청구영언>

시조 (1)은 선경후정(先景後情)의 시상 전개 구조와 종장의 '다정도 병이라 잠 못 든다'라는 결말처리가 분명하다. 비록 시조 초기에 창작된 글이지만 그 어느 현대시 못지않은 시적 구성 능력과 서정적 표현이 뛰어나다. 이 작품이 오늘날의 순수 서정문학으로도 그리고 시가(詩歌)로도 높이 평가 받고 있는 이유는 그러한 시상의 완결성과 무관하지가 않다.

고시조의 종장은 전개상, 시상 논리의 완결성 기능을 갖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시학>에서 완결된 문학작품이란 '시작','중간','결말'의 세토막이 상호 균형을 이루며 배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조도 '기(起)-서(敍)-결(結)'의 3단구성의 원리로 볼 때에 초장은 기(起), 중장은 서(敍), 종장은 결(結)이 된다. 초장에서 시상을 일으키고 중장에서 이어받으며, 종장에서 한번 구르고 결말을 짓는 것이다.

(2) 春山에 눈 노기  건듯 불고 간 업다

져근듯 비러다가 리우희 불이고져

귀밋 무근 셔리를 녹여볼가 노라

-우탁(禹倬), <병와가곡집>

(3) 가마귀 눈비마 희닷 검노라

夜光 明月이 밤인들 어두오랴

님向한 一片丹心이야 變줄이 잇시랴

-박팽년(朴彭年), <동국가사>

(4) 菊花야 너 어이 三月東風 다 지나고

落木 寒天에 네 홀로 퓌였다

아마도 傲霜孤節은 너인가 노라

-이정보(李鼎輔), <화원악보>

위의 고시조는 (2)가 고려말, (3)은 조선 초기, (4)는 조선말의 단시조 작품이다. (2)는 탄로(嘆老)를, (3)은 밀고자 김질(金礩)의 배신행위를 염두에 두고 님(단종)에 대한 일편단심을, (4)는 국화와 같이 꿋꿋한 지조를 지키려는 오상고절(傲霜孤節)의 절개를 노래하고 있는데, 세 편의 고시조 모두가 시적 전개의 시상 완결점을 종장에 두고 있다. 세 편 모두 표현상 비유의 수법이 뛰어나며, 종장의 활용 면에 있어서도 종장으로써 더 이상 논의의 여지가 발생하지 않도록 글의 마무리가 깔끔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대부분 고시조의 시상 전개상 특징으로서, 고시조가 종장처리의 완결성에 얼마나 충실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고시조 대부분은 종장에서 그 완결성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고시조라고 전부 다 종장에서 완결성을 보여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음과 같은 시조들은 굳이 종장에다 완결성을 부여했다기보다는 전체적 분위기의 조화와 그 통합적 의미 전달에 중점을 두었다.

(5) 삿갓셰 되롱이 입고 세우중에 호뫼 메고

산전을 흣다가 녹음에 누어시니

목동이 우양을 모라다가 든 날을 와다.

-김굉필, <병와가곡집>

(6) 논 밧 가라 기음 고 돌통 기미 퓌여 물고

코노 부르면서 팔츔이 제격니라

아희는 지어 니 詡詡 웃고 놀니라.

- 신희문, <청구영언>

(5)는 세상 파쟁과 권모술수를 떠나 흙냄새 물씬 풍기는 초야에 묻혀 삿갓과 도롱이를 걸치고 시골에 한유하는 선비의 모습을 그렸고, (6)은 소박한 가운데 흥겨우며 낙천적인 농민생활의 한 단면을 그려내고 있다. 두 작품 모두 굳이 종장에다 종결적 의미를 두진 않았다. 시상 전개의 분위기로 인한 그 통합적 의미 전달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5)와 (6)은 전원생활의 범위 안에서만 한정적으로 더 사유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고시조의 작가는 표명하고자 하는 주체적 의도를 3장 안에서 해결하여 분명히 드러나도록 경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고시조는 본래 창사(唱詞)로서 화답적 또는 즉흥적 문학성을 띠게 되면서, 초․중․종 단수로써 작가의 의중을 분명히 표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3장 단수의 완결성이 오히려 묘미를 제공하면서 민족문학 장르로서의 변별성을 유지해 오게 되었으며, 오늘날 시문학적 가치를 높여주는 결과를 이끌어낸 것이다.

Ⅲ. 현대시조의 종장 변이 양상

1. 현대시조의 전승적 의미

시조(時調)는 원래 창(唱)과 더불어 있어 왔기 때문에 음악과 문학을 아우르는 용어로 쓰여 왔다. 창사(唱詞)로 듣는 문학이었던 시조시가 창과 분리되어 문학으로 논의되고 발전되어 창작된 것은 개화기(開化期) 이후의 일이다. 최근 학계에서는 현대시조의 시발점을 1906년 대한매일신보에 발표된 대구여사(大丘女史)의 <혈죽가(血竹歌)>'로 보고 있다. <혈죽가>는 을사늑약에 항거하여 자결한 충정공 민영환(1861~1905)의 위국 충정을 그린 것이다. 현대시조 출발의 의의는 '노래하는 시조'에서 '읽는 시조'로 변모되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1907년 <國風四首>를 발표한 최남선은 현대시조 개척의 선구자이다. 그리고 뒤를 이어 가람 이병기도 시조를 두고, "노랫말로서의 唱詞性을 벗어나 時調詩로 전환해야 한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 논문에서는 특히 육당(六堂)의 문학적 공로를 주시하고자 한다. 육당 최남선(崔南善)을 주목하는 것은 그가 이루어낸 시조의 현대적 전승의 사적 의미 때문이다. 일제 침략으로 민족문학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러한 문학의 위축기 속에서도 조선시대의 창성했던 시조문학을 이어받아 우리의 시조가 그 명맥을 유지하면서 이어져 내려오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육당의 헌신적 역할이 컸다. 육당은 신체시<海에게서 소년에게>(1908)로 근대시의 첫 문을 열어 놓았으며, 동시에 시조시를 부흥시켜 서세동점(西勢東漸)으로부터 우리 고유의 문학을 지켜내는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최남선이 주도한 '시조 부흥운동'은 근대 초기 개화의 바람이 불 때 민족적 각성에 의해 비롯되었으며, 시조는 거세게 밀려 들어오는 서구시와, 가사·민요 등의 다른 민족시들과 상존‧ 혼융 되면서 장르상 존폐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 당시 시조가 일반 대중들에 의해 그 명맥을 유지하기는 했지만, 일부 신진 지식인들에게는 타파해야 할 구시대의 유물이었다. 이러한 문예사적 혼돈 속에서도 시조는 민족시인 최남선의 관심과 열정이 있었기에 문학적 생명력을 보존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민족시 부흥을 위해 시조와 가사를 지어 발표했지만 안타깝게도 가사는 끝내 사멸되고 말아, 육당이 시조에 미친 영향력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현대시조 100인 선집(이지엽 외, 태학사)에 의하면, 1950년대 전후를 현대시조 모색기와 개척기, 60년대를 정립기, 70년대를 격변기, 80년대를 혁신기, 90년대를 현대시조 확산기로 구분할 수 있다. 특히 현대시조 모색기로 볼 수 있는 1950년대 이전의 대표적 시조시인들로 최남선, 이병기, 안자산, 이은상, 조운, 정인보, 조종현, 김상옥, 조남령과 그 뒤를 이은 이호우, 이영도 시인들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의 역할이 오늘날 시조 형성의 토대가 되었다. 이들은 현재와는 달리 극소수의 시조시인들이 시조라는 장르의 독립성과 부흥을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시조 쓰기에 고군분투하였다. 이러한 것은 민족문학의 전승차원에서 대단히 다행스럽고 의의가 깊은 일이었으며. 그러한 선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적인 연구와 심도 있는 고찰이 요구되며 수준 높은 작품들이 줄줄이 뒤를 이어 쏟아져 나와야 할 것이다.

다음의 단수형 작품을 보도록 하자.

(7) 가만히 오는 비가 낙수져서 소리하니

오마지 않는 이가 일도 없이 기다려져

열릴 듯 닫힌 문으로 눈이 자주 가더라

-최남선, <백팔번뇌>(1926)

이 시조는 평범한 우리말로 된 시어들의 기막힌 조합으로 기다림의 내면적 정서를 아주 잘 표현하였다. 낙숫물 소리는 아마도 기다리는 님의 발자국 소리, 금방이라도 그리운 이가 문을 열고 들어올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이 시조의 묘미는 특히 종장에 있다. 그리운 님과의 '장애물'이자 '통로'가 될 수도 있는 '열릴 듯 닫힌 문'이란 즉물적 소재를 통하여 '기다림'의 비유 언어인 '눈이 자주 가더라'의 환치는 놀랄만한 작법이다. 전통적인 시조의 율격을 엄격히 잘 지켰으면서도 단수로서 이만한 명작을 창작해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문학 장르의 생명력이란 그것이 현재 창작되어지고 있느냐 아니면 소외되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문학도 신생, 성장, 사멸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본연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시가(詩歌) 장르만 보더라도 고대 가요로부터 향가, 고려가요, 경기체가, 가사 등 여러 장르의 문학이 나타났다 사라져갔다. 그러나 유일하게 생명력을 잃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은 오로지 시조로서, 지금도 민족 고유의 전통시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음은 아주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대시조 비평의 특징은 현대적인 감각을 살려내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초점을 둔다. 본래 시조라 할 때 '時' 는 때를 말하므로 '시조(時調)'라 함은 '오늘날의 가락'을 뜻한다. 그래서 현대시조는 현실에 어울리는 시작법(詩作法)을 요구하게 된다.

현대시조의 비평에서 흔히 일부 논자들에 의해 거론되는 것은 전통미를 계승하라는 미명하에 '절제'와 '응축'의 기법을 요구하면서 정형시로서의 시조성만을 강조한다. 그러나 '시조(時調)'라는 말이 암시해 주는 것처럼,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고 과거의 틀에만 얽매여 있어서야 되겠는가? 전통을 계승하고 절제를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현대적인 감각에서 멀어진 작품은 대중의 소외를 받고 언젠가는 자멸하기 쉽다. 엄청나게 달라진 현대인의 미적 감각을 무시한 고집은 시대착오적 복고주의라고 비난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된다. 과거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다양화 다변화된 현대에 절제의 미학만을 고집하여 전통시형만을 고집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시조문학이 찬란히 꽃피웠던 조선시대에 '선비풍' 하면 시조를 연상했을 정도로 품위 있고 격상된 문학 통로였다. 그것은 생활의 한 도구요, 정서 교류의 매개체였다. 그러나 현대의 시조문학의 현실은 어떠한가. 자유시의 물결에 내밀려 우리 고유의 얼이 깃든 시조문학은 활기를 잃고, 대부분의 현대 시조시인들도 현실에 맞는 새로운 창작기법 모색은 도외시하고 고집스럽게 고풍스런 형태만을 고집하고 있다. 시조의 퇴행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시조의 현대성 확보나 파격 문제에 대하여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좌나 우로 너무 치우치면 둘 다 퇴행이 된다는 사실이다. 지나치게 전통형만을 고집하면 현대인의 미의식에 걸맞지 못하고 뒤쳐져서 자유시에 밀려 사멸되기 쉽고, 지나치게 현대성만을 내세워 해체나 파형을 단행하면 시조로서의 정체성을 잃어 역시 사멸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새 포도는 새로운 부대에 담아야 하지만, 전지되지 못한 포도의 넝쿨까지 집어넣으려 한다면 부대는 이내 찢어지고 만다. 문무학님도 "시조의 원형만을 지켜야 한다는 사고도 고리타분한 것이지만, 창조적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정형시를 비정형으로 해체하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이다. 시조가 시조일 수 있는 것은 형식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외면하고는 시조를 우리의 민족시니 겨레시니 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라고 파형시를 지적하였다.

필자는 이 문제 즉, 시조의 현대적 변용 문제에 대하여 오직 파격의 문제에 대하여는 무질서한 창작행위를 금하고 '시행(詩行)의 다양한 변주'로만 국한되어야 하며, 아울러 '장시조 습작의 확대'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그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위의 시조 (7)을 변형한 것이다.

(7-1) 가만히 오는 비가

낙수져서 소리하니

오마지 않는 이가

일도 없이 기다려져

열릴 듯 닫힌 문으로

눈이 자주 가더라

(7-1)과 같이 (7)을 변형하였을 때, 낭송자 또는 청자, 즉 시조 향유자에게 수용되는 미적 감각의 차이는 어떨까? 아마도 (7)보다는 더욱더 걸음의 폭이 완만하고 정적이어서 색다른 미적 감각을 느낄 것이다. 또한 이 시조는 완결성을 보인 종장의 '열릴 듯 닫힌 문으로 눈이 자주 가더라'라고 하는 부분을 초장에 배치하여, 일부 시어를 변형하여 의미상 소위 귀납식이 아닌 연역식 배치로 전환하는 실험도 가능하다. 이와 같이 정형시 본래의 전통적 원형을 살리면서도 시행의 배열이나 주제행의 배치 변화를 통해서도 현대적 감각을 살려낼 수가 있는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현대시조가 활기찬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지나친 의고주의(擬古主義)나 일탈주의(逸脫主義)를 벗어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성 확보를 위한 파격의 정도는 공감대를 형성치 못하는 무질서한 창작 행위를 금하고 오직 '시행(詩行)의 다양한 변주'에 한해야 하며, 동시에 현대인들의 넘치는 미적 감각을 담을 큰 그릇으로 '사설시조'를 그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시조는 그 생명력이 더욱 강해지고 향유 층위가 더 두터워지며 민족문학으로서 생명력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

2. 현대시조의 종장 자수고(字數攷)

가람 이병기님은 종장 첫구의 자수율에 관하여 "종장 첫구에는 三字句"라 하였다. 이런 이후 종장 첫음보의 자수율은 '三字'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서원섭님의 세밀한 조사에 의하면 그 자수율이 다양하다는 사실이 확증되었다. 서원섭님의 통계에 의하면 종장 기구(起句)에 사용된 '3자'는 '평시조 2759 중에서 98%에 상당하고, 엇시조 326수 중 90%, 사설시조는 250수 중 84.5%에 각각 상당하고 있다.' 이것을 전체적으로 통괄해서 파악해 볼 때, 첫구가 3자인 작품은 대상 작품 3335 수 중 95.8%인 3196 수이고, 이동철님이 조사한 수치는 대상 작품 2376수(시조문학사전)중 96.2%인 2296 수로 나타나고 있어서 비슷한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종장 첫음보를 3음절로 고정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종래 일반적인 통설로 알려져 있는 종장의 자수 개념에 있어서는 종장의 기본율을 3.5.4.3으로 하고 제1음보는 3음으로 고정되어야 하고 제2음보는 5음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종장의 자수 개념, 특히 초구의 고정설에 대하여는 기존의 학설과 주장들이 다소 석연치 않은 면이 있으며 서로 상이한 의견들이 많다.

일찍이 안자산(安自山)님은

"시의 운율에는 선율(旋律)이라는 것이 있다. 선율은 음악에 고저음이 있는 것 같이 시간을 위반치 않는 안에서 변조(變調)를 취하는 것인 바, 그 선율을 변함에 의하여 미(美)라는 것이 생기는 것이 다. 말하자면 동일한 2자음절만 무한히 연속하면 하등의 예술미가 없이 된다. 종장의 운율이 타장 (他章)의 순서와 반하여 先8, 後7로 된 것이 곧 그 이치를 쓴 것이다. 서양시에 활기를 위하여 先强 後弱의 율동을 쓰는 것 같이 초장,중장은 동일한 先7, 後8로서 弛緩의 감이 있다가 종장에 와서는 그 순서를 전환함으로써 일종의 쾌감이 생기나니, 고로 종장에 當한 詩語는 강한 인상의 語를 쓰는 것이 通例로 되니라"

라고 하였다. 이러한 설명은 운율면에서 종장의 특성을 분석한 예라고 보여지는데, 초장 중장의 7‧8. 7‧8형의 운율을 종장에서 갑자기 8‧7운율로 전환함으로써 미적 감각을 획득하고 운율적 쾌감을 유발한다는 논리이다.

이 점에 대하여 김사엽(金思燁)님은,

'특히 종장 초구가 반드시 3언이란 철칙은 다름 아닌 감탄사(阿耶․病吟․打心 등)의 잔재였으 니, 이조 초, 중기의 단가에 '어즈버','아희야','두어라' 등이 많은 것도 이 초구가 실로 감탄사의 위치임을 인지하고 있던 시대까지는 무엇인가 감탄구를 삽입했지마는 그것을 잊어버리고, 또 단 가의 제작이 빈번하던 중기, 말기에 와서는 감탄사 아닌 딴말로 대치하되, 3자를 놓아야 한다는 제약만을 묵수(墨守)하게 된 것이다.

라고 밝힌 바 있다. 또 조윤제님은,

'종장 제1구는 역사적인 그 전통성에 의한 시조 전면에 있어 의연(依然) 그 중요성을 가지고 또 그 중요성을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데 있어, 음수의 고정화의 필요성을 느끼어 이에 가장 타당한 3음절에 고정했으리라 믿는다.'

라고 하면서 3음절 고정의 타당성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그 설명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3음수가 우리 국어의 어휘에 있어 가장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 음수라는 것

(2) 2음수는 시조의 전체적인 운율의 균형상 맞지 않는다는 것

(3) 3음수는 보편적이요 동시에 시조 운율에 있어서 가장 널리 쓰이는 음수이니까 여기에 고정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

이 밖에도 시조 종장의 3‧5‧4‧3 이론에 대하여 김근수님은 "노래의 단일성을 피하기 위함과 또 노래의 결말로서 작품으로서의 효과성을 위한 수단에서 그리 하였을 것"이라 하였고, 제2음보의 5를 두고 김지용님은 "초.중장의 종합으로 여기에 全詩의 종합된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자연 그 음수가 길어진 것은 정한 이치라고 할 수 있는 것" 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견해들에 대하여 최동원님은 고시가의 전․후절 분단의 사이에 끼어 있던 감탄사의 유물이었음을 상기시키면서,

"시조 종장의 제1구는 이와 같은 고시가의 前․後節 분단의 중간에 끼어 있던 감탄사의 성격을 계 승한 것이다. 고시가의 前․後節 분단 의식이 약화되면서 감탄사의 위치가 後小節의 앞머리에 접근 되고, 나아가서 감탄사의 존재에 대한 의식이 흐려져 차츰 소실되면서 다른 有意語로 바뀌는 이 와 같은 과정 속에서 시조 종장 제1구는 형성되었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라고 하였다.

지금까지 살펴본 종장의 이론에 대하여는 종장 초구 고정의 이유가 확실한 논리적 근거를 확보하였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필자 나름대로 위의 견해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가장 타당성에 접근될 수 있도록 종장 고정의 논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시조 종장 첫 음보는 고시가의 전․후절 분단 사이에 끼어 있던 감탄사 또는 여음사(餘音辭)를 계승하면서 그 모형들이 변형되어 자연스럽게 현재의 고정된 모습으로 정착되었다.

(2) 종장 초구의 첫 음보는 우리 국어의 어휘에 있어 가장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3음절로 정착되었고, 창을 전제로 한 고시조에선 '이완감이나 여유', 현대시조에선 '긴장'을 불러일으키며 분위기를 바꿔주는 전환의 의미가 있다. (현대시조에서는 종장의 첫음보 3으로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둘째 음보 5(5~7)로 이완시켜주는 미학적 역할의 의미도 있다.)

(3) 초‧ 중장의 전형적인 운율 先7․後8(또는 先7,後7)의 연속적 이완감에서 갑자기 종장에서 先8(10까지 허용)․ 後7로 전환함으로써 미적 쾌감과 강한 인상을 주려는 뜻이 있다.

이러한 필자의 종합적 정리는 아마도 기존의 종장 운율구성의 불가피성을 확인하는 셈이 되어 줄 것이다. 아무튼 평시조의 운율형식 중에서 종장 초구의 형성 문제는 계속적인 논란 거리가 될 소지가 다분히 있으나 초구 '3. 5(5~7)'라는 고정된 형식으로 말미암아 전통시조가 자유시와의 경계를 분명히 구별 짓게 되는 변별력의 역할을 해왔으며, 이로 인해 시조의 독특한 멋과 맛을 이어갈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3. 현대시조에 나타난 종장의 완결성

가. 단수형의 완결성

전통시조와 현대시조는 그 외형부터가 차이가 있다. 현대시조는 평시조형(단시조,연시조)을 비롯하여, 장형시조(엇시조,사설시조), 그리고 혼합형 시조(옴니버스형 시조)등 다양한 면모를 보인다. 시행의 배열에 있어서도 초․중․종 3장 3행의 배열에서 과감히 벗어나 구별 배행, 음보별 배행, 심지어 음수별 배행 등 다양한 양상을 띤다. 특히 가장 절제된 시형이라고 볼 수 있는 단수형 시조에서는 시상의 전달성과 완결성을 높이기 위해 효과적인 시상 배열과 표현기법을 변용시키고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고시조에는 종장의 완결성 역할이 두드러져 단수의 시조로서의 묘미를 충분히 드러내었다.

그렇다면 현대시조의 단수형에 있어서도 고시조처럼 종장의 완결성이 두드러지며 또한 종장이 아니라도 시조 전체적인 짜임새로 보아 하나의 독립된 완성 형태를 갖추고 있을까?

다음 글을 보도록 하자.

(8)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조지훈, <승무> 일부

위의 시 (8)을 자유시로 볼 것인가, 시조로 볼 것인가? 일반인이 자유시로 보아오던 위의시를 시조시인이 보면 훌륭한 단시조임에 틀림이 없다. 낭송시의 음보율도 큰 무리가 없을뿐더러 종장의 정격인 초구 '3․ 5'도 제격이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종장의 시상 완결성도 너무나 훌륭하다. 서정적 자아인 시인의 시상도 종장에 집중되어 있다. 이와 같이 조지훈님의 <승무>처럼 한국의 명시들이 은연 중에 시조형을 닮았다라고 하는 것은 앞서 밝혔듯이 우리민족의 보편적 운율정서가 주로 3․4 율조에서 나왔다라고 하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9) 햇살은 보풀보풀 풀어내는 보푸라기

흙살은 흠씬 자고 눈 비비는 아기 속살

목련꽃 온다는 소문 온 골안에 떠돌아

-정완영, <초봄> 전문

(10) 투박한 나의 얼굴 두툼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내가 어이 이르리까

보소라 임아 보소라 빠개젖힌 이 가슴

- 조 운, <석류> 전문

(11) 잉걸불로 타오르던 / 그리움도 사위고//

미워할 그 무엇도 / 남지 않은 세월 밖에서//

끝끝내 / 지우지 못한 / 종두자국 같은 것아

- 나순옥, <고향> 전문

(12) 은어라 불러주면 / 비늘조차 황홀하다//

도루묵 불러내면 / 그 맛조차 텁텁하고//

얄궂다 / 달면 삼키고 / 쓰면 뱉는 세상사가

-변인숙, <도루묵> 전문

위의 단시조 (9)~(12)는 밑줄 친 종장에서 시상의 절정을 이루며 그 완결미를 찾을 수 있다. (9)는 감각적 시어를 동원하여 봄의 첫 방문자 '목련꽃'을 비유 기법으로 내세워 춘신(春信)을 효과적으로 나타내어 마무리를 짓고 있으며, (10)은 감정이입수법을 이용하여 빠알갛게 벌어진 석류 속에 자아의 거듭남을 실었다. 외면의 투박함을 내면의 뜨거움과 열정으로 밀도 높고 실감나게 구상화시킨 작품이다.

(11)은 돈호법을 종장 말미에 차용하여 주의를 환기시키면서, 그리워 잊지 못하는 고향을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종두자국에 비유하여 마무리하였다. (12)는 '얄궂다'가 서정적 자아심정의 구심점이며, 미각적 이미지와 도치법에 의한 표현기교를 이용하여 '감탄고토(甘呑苦吐)'라는 키워드로써 세상인심을 은근히 질타하고 있다.

이러한 시조들은 종장의 첫음보가 고시조처럼 비록 감탄적인 어휘가 아니더라도 위와 같이 다양한 시어의 변용에 의하여 종결의 현대적 감각을 살려내고 있다. 이러한 종장 완결성의 미학이 현대시조시인들에 의하여 연구․ 모색되고 창작될 때에 우리 시조문학의 미래는 더 밝아질 것이다. 다음 시조를 보자.

(13) 더는 모날 수 없는 절정에 이르러서야

자못 둥글 대로 둥근 저 붉고 아득한 둘레

온 누리 죄었다 풀고 풀었다가 다시금 죄이는

- 이정환, <원에 대하여.1-강강술래>전문

위의 시 (13)은 원형상징의 핵심 소재인 원에 대하여, '강강술래'의 속성을 들어 심오한 원의 의미를 형상화하고 있다. 사물에 대하여 관조적이며 사유의 깊이와 역동성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종장의 완결성 면에서 고찰한다면 다소 어색한 면이 있다. 언뜻 읽으면, '다시금 죄이는'이라는 종장 말구가 무언가 뒤처리가 덜된 듯한 느낌이 든다. 또 '다시금 죄이는'은 음절수도 초과되었을 뿐더러, 여운을 주기 위한 종결 기법이었다면 주로 같은 장(章) 내에서 도치법이나 생략법 등을 써서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 연결어미나 조사로 끝내든지, 또는 명사형이나 의문형, 아니면 생략형 등을 차용해야 되는데 여기선 그러한 통상적인 기법상의 공감 포착이 얼른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글을 반복해서 읽고 음미해보면 심오한 묘미를 느낄 수 있다. 크게 중장과 종장의 도치형으로 볼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원운동의 역동성과 계속성을 강조한 여운형으로 끝맺음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14) 전생의 인연으로

마주 앉은 우리 사이

차오르는 그리움

한잔 가득 받아들면

떨리는

내 가슴 안은

사랑이여 눈물입니다.

- 신영자, <복분자주를 마시며>전문

(15) 바람이 끌고 가는가

회오리 몰고 가는가

세월은 바람개비

쉴새 없이 돌고 가누나

가오리 연 꼬리 흔드는

허공에 바람결 무늬

- 장경례, <연꼬리 세월>전문

위의 (14)와 (15)의 시조는 외형상 시조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함축적인 시로서의 문학적 묘미는 발견하기 힘들다. (14)는 굳이 시가 아니더라도 파악할 수 있는, 일반적인 진술형태로서 끝나고 있다. 종장('떨리는~눈물입니다')에 시상의 완결성이 있는 듯하나, 사건의 진행에 따른 평이한 서술이어서, 시적 긴장감에서 벗어나 있다. (15)는 우선 종장의 "가오리 연'이 문제다. '가오리'로 첫 음보를 삼으면 3자이지만, 의미 단위인 '가오리 연'까지 첫 음보를 잡으면 4자로서 종장 초구 파격이 된다. 현대적 실험 의도로 일부러 파격의 의미를 부여했다면 이해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엇을 노래했는지 명확한 주제의식을 포착할 수가 없으며 시상의 완결성도 미흡하여 보완의 여지가 있다.

(16) 불볕 더위에

불알이 축 늘어진 황소

개울물 핥지 못한 채

두 눈 끔뻑이며 들여다 보고 있다.

황소의 깊은 눈망울 속

송알송알 맺힌

송사리들

- 장수현, <교감‧2> 전문

(16)은 전체 6연으로 이루어진 글로서 황소의 우직함을 송사리떼의 '송알송알' 거리는 모습으로 그 천진성을 이입시켜, 시각적 이미지로 잘 묘사해 내었다. 그러나 위의 글을 시조로 보았을 때, 형식에 있어서는 일탈적 모습이 드러나 있다. 훌륭한 시조는 내용과 형식을 아루르는 가운데 성립되는데 어디까지가 초장이며 어디까지가 중장인가? 초장을 '~축 늘어진 황소'까지, 중장을 '~보고 있다.'까지, '황소의~ 송사리들'까지를 종장으로 보았을 때, 종장의 완결성은 확보되었다고 볼 수 있으나, 시조의 3분(分) 구조 원칙이 혼란스러운 탈시조적 구조를 이루어 자유시 쪽에 가깝다.

현대의 시조시인들이 자기 나름대로 시조 창작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으나 시조창작의 원리를 터득하지 못하고 새로운 기법 연구를 소홀히 하면서 안일한 자세로 그대로 써 나간다면 시조의 맛과 멋을 잃어 급기야는 사멸의 위기에 처할 것이다.

나. 연작형의 완결성

현대시조의 큰 특징의 하나는 장형화(長型化)이다. 현대시조가 길어지게 된 이유는 생활환경의 다양한 변화와 그에 따른 사고의 변화 및 확장에 기인한다. 문학 의식을 수용하는 형식은 시대와 공간의 폭을 따라서 함께 변화하며 확장된 여건은 보다 더 큰 그릇을 요구한다. 그래서 현대시조의 기능 확장과 새로운 기법 모색은 필수적이며 현대시조시인들의 대부분은 연작형을 주로 창작하게 되는 것이다. 고시조처럼 시조창작에 수반된 교훈이나 용사(用事) 차용, 화답식 언술 등의 짧은 형식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장형시조의 창작은 불가피한 것이다.

한국시조시인협회가 최근 3년간 펴낸 시조사화집의 경우 장형시조(연작형 또는 사설시조)는 대략 전체의 82%를 차지한다. 이것은 고시조 대부분이 단시조였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이며, 확대된 시상을 큰 그릇에 담고자 하는 작가들의 시대적 부응이라고 본다.

(17) 진달래 망울 부퍼

발 돋움 서성이고

쌓이던 눈은 슬어

토끼도 잠든 산(山)속

삼월(三月)은 어머님 품으로

다사로움 더 겨워―.

멀리 흰 산(山) 이마

문득 다금 언젤런고

구렁에 물 소리가

몸에 감겨 스며드는

삼월(三月)은 젖먹이로세

재롱만이 더 늘어―.

- 이태극, <삼월은> 전문

(18) 퉁기면 열 두 가락 목을 빼면 鶴의 춤이

일렁이는 여울물에 한동안 쫓기다가

가난한 동구 밖에서 물이 드는 도라지꽃

곱게사 여민 靑瓷 물살 환히 밝아 오고

다홍 고추 둥둥 띄워 고향의 맛 빚어 낼 땐

우러러 하늘을 보면 果汁으로 끈끈했다

日月을 오르내린 꽃사슴의 발자국이

神話 저 편에서 무서리로 덮이는 밤

옷고름 다시 조이는 춘향이의 기침 소리

- 이우종, <母國의 소리>전문

(17)은 2수로 된 연시조, (18)은 3수로 된 연시조이다. (17)은 한 장(章)을 2열 배행한 형태이며 묘사와 진술의 어울림 표현기법으로 이른 봄의 정취를 생동감 있게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 살펴 보아야 할 내용은 각 연의 독립성과 완결성, 그리고 두 연간의 유기적 관계이다. 중심 소재 '삼월'은 소망의 초봄을 연상시키는 객관적 상관물이다. 그에 대한 작가의 이미지는 첫수에서는 '어머님 품', 둘째 수에서는 '젖먹이'로 비유되어 있다. 지은이는 밑줄 친 부분과 같이 완결과 휴지(休止)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첫 수에서는 어머님 품 같은 포근한 자연을, 둘째 수에서는 그러한 어머님 품에 안겨서 포근함의 젖을 먹어보고자 하는 서정적 자아의 심리를 종장에 잘 드러내었다. 이러한 두 연의 구성은 각 연이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유기적 연관성을 지닌 것으로서 연시조에 있어서 종장 처리의 완결성을 보인 좋은 예이다.

(18)은 1연, 2연, 3연의 시선의 공간적 이동이 가난한 동구 밖에서 고향집으로, 그리고 신화 저편으로 이동되면서 모국에 대한 애향의 이미지를 신화성으로까지 승화시켰다. '학', '다홍고추', '도라지꽃', '청자', '춘향이' 같은 향토적 시어의 적절한 배치로 무의미한 나열이 아닌 끈끈한 응집력을 보여주면서 전체적으로 모국에 대한 향수성을 조화롭게 드러내고 있다. 이 시조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귀결점은 '춘향이의 기침소리'이다. 시의 소재들이 형상물에서 사람(본향적 자아 형상)으로 바뀌면서 모국에 대한 애틋한 애향의 원형성을 회귀의 기법으로 잘 살려내고 있다. 여기서 '춘향이의 기침소리'는 즉 '모국의 소리'이다. 이 시조는 연시조이지만 작자는 무의미한 연의 나열이 아닌 응집력 있는 연의 구축으로서, 시의 완결성 포인트를 말미에다 두고 있는 것이다.

(19) 국적없는 길목으로 텃새 한 마리 들어왔다.

지천으로 널려 있는 불빛 속을 휘젓다가

출구를 찾을 수 없어 되돌아가지 못한다.

내 가난한 절망이 습기처럼 배어드는

하늘도 아니고 땅도 아닌 곳에

① 기쁜 숨 할딱거리며 막막해진 가슴은

낡은 기와 추녀와 조선햇살 그리며

땅보다 낮은 천장 정수리를 찧으며

② 불경기 낮게 엎드린 윤사월을 날고 있다.

-김복근, <지하상가․7-텃새 한 마리>전문

위의 시조 (19)에서 '텃새'는 아마도 불경기 속에 낮게 엎드린 시적 자아의 형상일 것이다. 그것은 이 시에 드러난 화자 '나'(내)로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기술된 내용으로 주제는금방 인지할 수 있지만, 연과 연끼리의 조화는 어색하다. 감정이입물인 1연의 '텃새'는 2연에서 '나'라는 실체를 드러내며 3연과 이어지고 있다. 시인은 객관적 상관물인 '텃새'를 보고서 1연에서 관조한 다음, 2연과 3연에서 서정적 자아의 실체를 토로해냄으로써 '1연—2연+3연'의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각 연의 독립성에 있어서는 주제행이라고 볼 수도 있는 2연의 '①'과 3연의 '②'는 시상의 자연스런 연결 구조로 나타내야 되는데, 2연의 '가슴은'이라는 미완의 끝맺음과 함께 3연과 분할된 연 구조를 보이고 있어 각 연의 완결성이나 독립성 확보에 문제가 있다.

(20) 국방의 의무인 조국의 부름 앞에

청춘의 젊은 피가 온 몸을 휘감고

왕성한 푸른 기운이 몸 속에 가득한데

언제나 위협적인 북한의 거짓 행동

당의정 속임수에 눈가림 평화행진

화농성 연쇄상구균 침투한 바이러스

- 리창근, <봉와직염>일부

(21) 이제는 돌아가야겠지 넘지 못할 서파(西坡)재인 걸

무서리치는 구랑리(九郞里)밤을 신열로 지새다가

동틀 녘 시린 가슴 안고 이화령(梨花嶺)을 넘는다.

라일락꽃 조는 양산천변 조약돌로 깔린 사연

시방은 무너져 내린 먼 봄날의 연분홍 전설

차라리 표백된 동화로 그냥 둘 걸 그랬다.

정이란 징스러운 것, 양산천(陽山川) 는개처럼

밀쳐내면 다가오고 뿌리치면 안겨오는

빛바랜 일렁이는 자화상, 흐느적대는 성이여.

그래, 언젠가는 만나겠지 떠나기 전

유행가 가사처럼 우연도 있으니까

멀어진 소야교(素夜橋)를 보고 혼잣말로 대신했다.

- 정형석,<영강에서‧ 5>전문

위의 글 (20)은 2수 연작형을 연가름 없이 쓴 것이며, (21)은 4수 연작형의 시조를 2수씩 묶어 연가름한 형태이다. 그런데 (20)을 3장 구조로 연가름 한다고 했을 때, 제1수의 종장 마지막 음보가 '~가득한데'로 끝나 미완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반면에 글 (21)에서는 제1수의 끝이 '~넘는다.', 제3수의 끝이 '성이여.'로 마침표와 함께 마무리 되어 있어 완결성의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만약 (20)에서도 앞의 (17)에서와 같이 ~가득한데-.'나 '~가득한데.'로 끝맺음했으면 완결이나 휴지(休止)의 의미가 부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원문은 그렇지 못하기에 시조창작의 기본 원칙이라 볼 수 있는 3장 구조 설정과 각 연의 독립성확보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자유시인가, 시조인가?' 하는 변별 기준은 자수(字數)나 음보(音步)의 개념으로도 좌우되지만, 연가름의 여부에 따라서도 좌우됨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3장 단위로 연을 구분함에는 그만한 독립성과 휴지(休止)의 필요성에 의한 것이며, 굳이 세분된 연 가름을 할 경우에는 한 장(章)이 두 개의 구(句)로 이루어진다는 관점에 따라 3장을 6연 정도로 하거나 위 (21)과 같이 연가름을 안할 경우 마침표 등으로 휴지(休止)의 의도를 알려주는 것이 한계일 것이다. 각종 시조집에서 여러 류(類)의 지나친 파형시조들이 현대적인 글이라 하여 버젓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이는 시조의 정체성 확보와 발전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면밀히 검토되어야 할 사항이다.

여기서 잠깐 '현대 시조의 실험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김학성님은 그의 <시조의 정체성과 현대적 계승>이라는 글에서 시조는 '열린 형식'이면서도 '닫힌 형식'이라 단정하였다. "시조를 열린 형식으로 간주하여 여러 형식 실험을 자의적으로, 자유자재로 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시조는 결코 열린 형식이라 할 만큼 자유스럽지는 않다. 오히려 시조는 어떠한 경우에도 3장으로 완결해야 하는 닫힌 형식이며, 각 장도 4보격으로 혹은 4개의 통사․의미마디로 구성해야 하며, 종장은 첫째와 둘째 마디에서 시상의 전환을 이룰만한 변화를 보여야 하는, 정형률의 까다로움을 준수해야 하는 닫힌 형식인 것이다. 그만큼 안정된 형식이다."라고 하였다.

시조의 구조에 있어서 행(行,line)과 연(聯,stanza)에 대한 개념을 일반 자유시와 구분해서 생각해 보자. 행(行)은 단어(單語), 구(句), 절(節) 또는 그것들의 연합으로 구성되고 연(聯)은 하나의 행 또는 행의 연합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한 행은 한 단어만으로도 가능하고 구나 절 이외 한 문장 또는 그 이상으로도 가능하다. 이러한 점은 정형시인 시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러나 행(行)의 설정에 있어서는 자유시와는 달리 장(章)의 개념을 염두에 두고 구성해야 한다. 일반적인 평시조형을 따를 때에는 한 행이 한 장이 되어 3행(三行) 3장(三章)의 한 수를 이루지만, 표현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현대시조의 구성에 있어서는 자유시처럼 한 행에 한 단어가 올 수도 있고 그 이상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초․중․종 3장을 한 수로 보아야하기 때문에 단지 어디까지를 한 장(章)으로 끊어 3장을 구성할 것인가 하는 기법상의 문제가 따른다.

시행이나 연의 구분할 때 주로 기준이 되는 것은 '리듬'과 '이미지'와 '의미'이다.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의 중량 부여 필요에 따라서 효과적으로 행과 연을 나누어야 한다. 행과 연은 전적으로 작가의 의도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아무리 작가의 의도라고 해도 정형시의 경우는 형태 변경의 제약이 있다. 이 문제에 대하여 김춘수님은 "형태가 먼저 있어가지고 시가 되는 것"이라고 하였고, 또한 연(聯,stanza)의 기능에 있어서도 "stanza가 원래 이탈리아어로 방(房)을 의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더욱 분명해진다. 방은 하나하나 독립해 있으면서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며 한 채의 집을 이룬다. 이 때의 집이 한 편의 시인 셈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오규원님은 "정형시는 자유시나 산문시와 달리 형태가 우선하므로 그 형태로부터 작가가 자유로울 수가 없다. 작가의 의도가 형태보다 먼저일 수가 없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집이 다른 크기와 다른 모양과 다른 숫자의 방으로 되어 있듯, 시 또한 마찬가지다. 정형의 시행을 가진 형태가 아닌 모든 시에서는 연은 작가의 의도에 맡겨져 있다."라고 하여 정형시에서는 형태변경의 제약을 분명히 하였다. 이러한 점은 정형시의 독특한 장르적 특성을 강조한 것으로서 자유시와의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렇다면 위의 글 (16)이나 (20)과 같은 글은 자유시에 넣으면 자유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만큼 시조로서의 변별력은 약해진 형태이기에 시조문학의 사멸을 우려하게 되며, 이는 3장과 연의 구분을 소홀히 한 작가의 자유 의도 때문이다.

시조는 한 수가 3장으로의 완결성을 가지며 그것이 연시조형으로 이어갈 경우에도 전체 주제를 향한 각 연의 독립성이 엄연히 존립하면서 연과 연 사이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한다. 3장 단위로 구조화되는 정형장르이기 때문에 형식적 완결성이 강하게 요구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의 (16)이나 (20) 같이 장(章)이나 연(聯)의 경계를 무시하고 임의로 떼어놓거나 붙여 놓는 것은 자유시 형태를 흉내낸 꼴이 되고 만다. 그렇게 되면 시조장르의 경쟁력이 떨어질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자유시인들이, 자유시를 연상시키는 그러한 글들을 보고 '차라리 자유시를 써라.'라고 하며 폄하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4. 종장 완결성에 대한 현대적 변환 방법

가. 도치 ․ 변환의 기법

(22) 일흔의 내 뜨락에 / 그예 솟은 저 달덩이//

휘영청 여윈 그리메 /청청 물빛 소슬한 밤//

어쩐다 / 세월을 빗질하는 / 이 맹랑한 손님을

- 김인호, <기망(旣望)에>전문

(23) 지독하고 아름다운 땀 냄새 맡아보라

북한산 향로봉 밑 칼끝 같은 바위 길

절면서 산길 오르는 장애인 사내 뒤에서

- 김영재, < 아름다운 땀 냄새> 첫수

위의 시조 (22)는 음력 열엿새 날밤 불쑥 찾아든 달덩이 손님을 비유적 기법으로 나타내면서 늙어 기울어가는 탄로의 감정을 잘 그려내었다. 종장의 초구에다 서술어를 배치하고 말미에 목적어로 종결지음으로써 어쩌지 못하는 감정의 내면세계를 먼저 들여다 보게 하였다. (23)은 북한산을 오르는 장애인의 서럽고 끈질긴 삶의 자취를 끈적끈적한 인정의 눈으로 아름답게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23)은 초장과 종장의 도치가 이채롭다. 명령형으로 끝나는 초장에 강조 포인트가 있으며 환치의 거리가 초장과 종장으로 건너 뛴다. 정치(正置) 순으로 말하면 중장-종장-초장의 순이다. 이러한 도치 ․ 변환의 기법은 밋밋한 현대시조에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나. 생략 ․ 여운의 기법

(24) "그래, 그래, 그래" 소리도 기척도 없이

가랑비 옷 젖듯 몰래 드는 번민까지

그렇다 봄날 눈 삭듯 삭이고 살만한 것을……

"알것다, 오냐, 오냐" 말썽도 어리광쯤

보채고 칭얼대는 어린 놈 잠재우듯

함박눈 내려 쌓이듯 덮어두고 살 만한 일……

- 박재두, <그래, 알것다>전문

(25) 내쳐서 삼천리를 다 못 가고 마는 땅

.........................................................

가다가 뚝 끊긴 길 끝에 이념만이 선명한

- 문무학, <중장을 쓰지 못한 시조, 반도는>전문

(26) 겉으론 외면해도 속으론 조바시고

못본 체 지나와도 자로 돌아 뵈는 것을

그래도 그는 모르고 마름없이 가느니. —

어디든 걷고 싶어 옷을 털고 나왔다가

스치는 사람 속에 그 뉘를 보았든지

멍하니 길섶에 서서 가도 오도 못하여라

- 김상옥, <路傍>전문

위의 시조 (24)는 번민스럽고 말썽 많은 현실을 수용적으로 받아들여, 삭이고 덮어두고 하면서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자세를 대화적 기법으로 표현하였다. 그런데 주제가 드러난 종장의 결미를 말없음표로 끝냄으로써 사고의 여지를 남기고 여운을 주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긴 설명 없이 한 수를 3장으로 끝내야 하는 시조의 압축적 특성을 고려한 것이다.

(25)는 남북 분단의 현실을, 중장을 철조망처럼 분단 ․ 생략함으로써 특이하게 시각적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추론의 여지를 남긴 독창적 기법이다.

(26)에서 주목하여 볼 부분은 첫수의 끝부분 어미 처리다. 전체적으로 물 흐르듯 유연한 시상의 흐름에 왜 첫수의 말미에 '가느니.—'로 마침표를 찍고 줄표까지 했을까? 그것은 전술한 바와 같이 시조의 각 수는 그 나름대로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에 상응하는 것으로서 분명히 끊어주고 쉼을 이룬 뒤 다음수로 넘어가라는 뜻이다. 그러면서도 굳이 설명적 종결어미로 끝내지 않고 미완의 상태로 마무리 시킨 것은 역시 사고의 여운을 남겨 놓은 예이다. 이러한 미완과 여운의 기법들은 시조의 완결성과 연관되어 독자의 상상과 추론을 불러일으키는 현대시조의 중요한 작법이다.

다. 포말리즘(Formalism)적 기법

(27) 가을비는소리가있다

비․ ․ ․ 소리․ ․ ․ 비

․ ․

․ ․

․ ․

소리 소리

․ ․

․ ․

․ ․

어둠안고내린비

안개속그리운마을이

모두비에젖고있다

-임영석, <가을비소리>전문

이 글은 작가가 동경하는 내재된 귀의처가 불안정한 심리와 맞물리면서 모두가 무상한 일인듯 잦아들며 젖어버리는 상황을, 도식적 기법에 의해 의식의 흐름을 따라 기술하였다. 점(點) 점(點)의 연결, 특히 상하 연결은 떨어져 내리는 빗방울을 시각화한 것이며 띄어쓰기를 무시한 채 쓴 것도 연속적으로 그치지 않고 이어져 내리는 비를 의식한 시각적 표현이라고 본다. 이 글은 장 구분을 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으며, '거울속의비와거울밖의가을비소리의갈등'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으나 구조상 갈등의 양상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러한 지나친 도식적 시도는 시조쓰기의 운율 단위와 의미 단위를 올바로 갖추지 못해 바람직한 시조형태라고 보기에는 힘들다.

(28) 눈보라 비껴 나는

─全─群─街─道─

퍼뜩 차창(車窓)으로

스쳐 가는 인정(人情)아!

외딴집 섬돌에 놓인

하 나

둘

세켤레

-장순하, <고무신> 전문

위의 (28)은 '시문(詩文)의 시각화(視覺化)'라는 의도를 지닌 실험적 시조라고 보여진다. 초장에서는 먼저 전군가도(전주와 군산을 이어 주는 국도)의 전경을 도식적으로 제시하는 데 줄표가 쓰이었다. 글자 사이의 하나하나는 마치 가도를 달리는 듯한 사실감과 속도감을 불러일으킨다. 사각형의 틀은 관찰자의 시각적 창틀로서 눈앞에 스쳐지나가는 섬돌의 형상과 묶음을 단순화한 것이고 글자 크기가 서로 다른, '하나', '둘', 셋('세')은 아버지, 어린아이, 어머니의 신발을 차례대로 묘사한 것이다. 비록 가난하지만 단란하고 평화로운 가족의 인정과 따뜻한 가족애를 느끼게 한다. 중장에 쓰인 '인정(人情)'은 이 시의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핵심어로서 외딴집 섬돌 위에 놓인 세 켤레의 고무신에 의해 구체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렇게 시문을 시각화한 시는 독특하게 회화성과 입체감을 획득하고 있어 현대적 감각을 살리는데 유용하다. 그러나 '문자의 예술'이 '그림의 예술'로 일탈하게 되어 문학성을 잃게 된다면 그 의미는 상실될 것이다. 실험은 성공을 목표로 한다. 공감 기반이 약하여 실험이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면 지나친 탈격이나 일탈 시도는 수정되어야 한다.

(29) 어루만지듯

당신

숨결

이마에 다사하면

내 사랑은 아지랑이

춘삼월 아지랑이

장다리

노오란 텃밭에

나비

나비

나비

나비

- 이영도, <아지랑이> 전문

위의 시 (29)는 이호우(1912~70) 시인의 동생이기도 한 이영도 시조시인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66년 발표 당시 새롭고 독특한 형식으로 주목 받았는데, 3장6구45자 내외의 시조 틀은 지키되 행과 연을 자유롭게 나누어 현대적 감각을 살리면서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시선이 흘러간다. 특히 "나비"를 훨훨 나는 모양으로 공간 배치하여 시각적으로 문자를 형상화한 말구는 이채롭다. 이러한 시행과 연의 자유로운 변주기법은 매우 다양할 수 있으며 무리한 탈격이 아니라면 현대감각을 살리는데 아주 유용하다.

(30) 메-!

메-께!

메-께라!

메-시께라!

메-시께라!

메-께라!

메-께!

메-!

수화기 저편에서도 입술 끝에 묻은 소리

-오승철, <환전>중에서

위의 글 (30)은 '환전'과 관련하여 상대방과 통화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교감을 시각적인 글로써 독특하게 실험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메께'는 제주도 방언으로서 감탄사 '어마'의 뜻이다. 그런데 이글은 읽으면서 그 독특한 구조와, 제목 '환전'과 '메께'와의 주제성 여부, 시조 형식과의 관련성 파악 등에 신경이 쏠린다. 장르상으로는 단지 종장으로 볼 수 있는 '수화기~소리'로써 시조형과 관련성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글은 지나친 사적 경향과 리듬의 걸음폭 조절 요구, 그리고 특이한 조형적 형태로 인해 시조로서의 공감 기반은 약하다고 본다.

포말리즘((Formalism)적 성격의 시조는 실험적이고 현대적 감각을 살리는데 유용하지만, 지나친 파형과 일탈로 시조의 정체성을 벗어날 우려가 있으므로 작법에 있어서 세심한 주의가 요망된다.

라. 설의․ 반어적 종결기법

(31) 그럴싸 스러한지 솔빛 벌써 더 푸르다

산골에 남은 눈이 다산 듯이 보이고녀

토담집 고치는 소리 볕발 아래 들려라

나는 듯 숨은 소리 못 듣는다 없을 손가

돋으려 터지려고 곳곳마다 움직이리

나비야 하마 알련만 날개 어이 더딘고

이른 봄 고운 자취 어디 아니 미치리까

내 생각 엉기울 젠 가던 구름 머무나니

든 붓대 무능타 말고 헤쳐본들 어떠리

-정인보, <조춘(早春)> 전문

(32) 사람이 몇 생(生)이나 닦아야 물이 되며 몇 겁(劫)이나 전화(轉化)해야 금강에 물이 되나! 금강 에 물이 되나!

샘도 강(江)도 바다도 말고 옥류(玉流) 수렴(水簾) 진주담(眞珠潭)과 만폭동(萬瀑洞) 다 고만 두 고 구름 비 눈과 서리 비로봉 새벽안개 풀끝에 이슬 되어 구슬구슬 맺혔다가 연주팔담(連珠八 潭) 함께 흘러

구룡연(九龍淵) 천척절애(千尺絶崖)에 한번 굴러 보느냐.

- 조운, <구룡폭포>전문

글 (31)에서는 춘신(春信)을 고대하는 서정적 자아에 시각ㆍ청각적 감각 등이 다채롭게 동원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감각적 심상은 종장에서 마음의 문 안에 머물며 사유의 깊이를 더해 주고 있다. '더딘고','어떠리'와 같은 말구가 다소 고풍스런 느낌을 주지만 이것은 육당과 동시대를 살았던 작가의 당시 언어 흔적이고, 설의․반어적 화법 종결로 청자의 주의를 끌어들이고 있다. (32)는 사설시조의 전형으로서 손꼽히는 수작으로서 역시 의문형으로 끝맺음함으로써 청자를 공감의 광장으로 유도하며 시상 전달의 변화 효과를 도모하고 있다.

마. 주제의 탈종장(脫終章)적 기법

(33) 아직도 살아 있다는 그 사실이 신기하다

한낮 큰 길 모퉁이서 신음하고 있는

내장이 쏟아져 나온

텔레비전 한 대

- 이복현, <그 유기범은 누굴까>전문

위의 글 (33)에는 모진 환경으로부터 버림받은 자아의 처절한 실체가 아직도 버티고 살아 있음을 발견하고, 그 주체의 실상을 감정이입 수법으로 묘사하였다. 그런데 대부분 시조의 경우는 결(結)의 위치인 종장에 그 말하고자 하는 의도(주제)가 드러나 있지만 이 시조의 경우엔 앞의 시조 (23)번과 마찬가지로 초장에 드러나 있다. 청자의 지적 수준이나 분위기를 고려하여 요지를 먼저 강조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위의 글 (33)처럼, 굳이 종장에다 주제행을 두지 않고 초장(또는 중장)에다 배치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다. 말구의 '한 대'는 특정인, 즉 자아 실체를 지칭해 주는 구체어 '그 한 대'로 정도로 끝맺음하는 편이 운율 효과를 높이는데 좀더 효과적일 것이다.

바. 반복적 서술 기법

(34) 마음의 부표(浮漂)였다 / 삶의 신기루였다

눈을 주면 / 아득한 별 / 한 줄기 빛이었다

떠도는 / 영혼의 돛단배 / 그것은 섬이었다

- 박시교, <행복> 전문

시상의 완결성을 너무 종장에만 국한시키면 창의적이고 개성적인 표현 습작에 저해가 될 수 있다. 위의 글 (34)는 초․중․종 3장에 걸쳐 서술적 종결어[~이었다(였다]로 반복되었다. 각 장마다 비유적 기법에 의해 전개되고 있어 '확장 은유'에 해당되며 이러한 경우는 시상의 완결성도 전체적으로 고루 분포되어 있지만 대개의 경우 점층적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시상의 요지들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단정적이며 확증적인, 자신감 있는 서술적 태도를 보일 때는 이러한 기법이 유용하다.

이 밖에도 종결 어미의 활용법에 따른, 평서형[~네, ~는다,~(으)ㅂ니다 등]종결법, 감탄형(~구나,~도다 등)종결법, 청유형(~소서, ~자, ~십시다,~세 등)종결법, 명령형[~게, ~(으)오,~(어)요 등] 종결법, 그리고 호격조사(~아,이시여,이여 등)를 이용한 종결법 등이 있으나 활용을 할 때에는 어디까지나 시상 전개에 따른 문장의 통사구조와 율격과 의미구조의 흐름이나 호응이 조화롭게 이루어져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Ⅳ. 맺음말

앞에서 필자는 현대시조의 종장 완결성을 연구하기 위해서 우선 고시조의 완결처리를 고찰해보고 종장 초구율격의 고정성 근거를 확인해 본 다음, 현대시조에 나타난 종장처리의 실상을 파악하고 그 문제점에 대한 해결 방법까지 접근해 보았다. 그 결과 시조의 종장 처리의 성공 여부에 따라서 시조의 정체성 확보와 현대적 계승도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조작법에 있어서 종장처리는 시조의 시조다움을 이루고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논의되었던 중요한 쟁점들을 정리하여 간추리면,

1. 고시조에 나타난 종장의 완결성을 통하여 종장처리의 중요성을 인지하였다. 종장의 처리는 시조의 생명이므로 현대시조의 작법에 있어서도 무질서한 습작 태도를 버리고 완결성 을 갖춘 종장처리의 작법으로 전환해야 한다.

2. 현대시조의 창작에 있어서 지나친 복고풍의 고집은 다기능 ․ 다변화된 시대에 시조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열린 문학'을 주장하여 무질서한 파격과 일탈을 시도하는 것은 자유시와의 변별력(특히 종장처리의 미숙으로)을 잃어 사멸의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 따라서, 시조의 현대적 변용에 있어서는 전통시를 근간으로 하여, '시행(詩行)의 다양한 변주'와 표현 자유의 폭을 넓힌 '장시조'의 창작 확대 등으로 국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3. 현대는 다양한 생활패턴과 다양한 사고의 녹취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시조의 습작에 있어서 단수보다는 큰 그릇인 각 연으로 구분된 연작형이 많이 쓰이게 되는데, 이때 각 연은 각 연 나름대로 종장처리에 유념하면서 독립적 의미가 부여 되어 있어야 하며, 전체적으로 완결미를 위하여 조화로운 유기적 관계로 이루어져야 한다.

4. 종장의 완결법에 대하여는 도치법, 생략법, 포말리즘적 기법 등 다양한 표현기법이 있으므로 이를 익히고 활용하여 시조의 완결성을 확보하고 미학적 수준을 높여야 한다.

이상에서 정리해본 바와 같이 시조의 생명력은 크게 문학적 가치로서의 '현대성의 확보'와 '시상 의미의 완결성'여부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현대시조는 경쟁관계에 있는 자유시와의 변별력을 유지하면서 그 정체성을 지니고 독자적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시조시인들의 시조작법에 대한 깊은 연구와 창작 경주, 그리고 발전을 위한 자정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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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행 : <시조유형론>, 이화여대 출판부, 1998

[惠江]

공부 잘 했습니다. 고운 하루 되세요.

[유강]

어제 월례회에서 해주신 이 강의 잘 들었습니다. 다시 읽고 많은 공부했습니다. 항상 연구하시는 사백님의 학구열에 탄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벽파(碧波) 김일영]

박사님! 안녕하세요.
제가 충주시조문학회의 회장이 되었습니다.
충주시조문학회원에게 박사님 글을 회원들께 공유키 위해 옮겨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