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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1일(화요일)은 작년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단풍 산행을 하기 위해 4시 50분에 일어나서 산행 준비를 마치고 5시 20분에 집을 나선다. 밖은 밤안개가 어둠 속에 대기를 온통 뒤덮고 있다. 지선버스로 쌍문역까지 가서 몇 분쯤 기다리니 사당행 첫 차가 지정시각인 5시 34분을 조금 넘어서 도착한다.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니 6시 30분. 단풍산행을 위해 증편된 6시 40분발 오색행 직행버스를 타기 위해 어제 예매해 두었던 한계령행 버스표를 무인 발권기에서 발권하고 버스를 타니 한계령과 오색에서만 정차하는 게 원칙이지만 산행객들의 편의를 위해 장수대와 흘림골에서도 차를 세워 준단다. 다행이다.
버스는 중간에 화양강랜드휴게소에서 15분쯤 쉰 후에 다시 달려서 8시 40분경 자신을 포함한 몇 명의 산행객을 장수대에 내려놓는다. 오늘의 산행지는 강원도 인제군 북면에 위치한 곳으로 옛날 하사관학교에서 하사관후보생으로서 기초적인 보병 훈련을 받을 때에 군대에 대한 예비지식이 많던 훈련생 동료들이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라는 말이 있다고 되뇔 정도로 자대 배치를 받게 되면 험하고 외진 전방지역이라서 고생이 심하다던 악명 높은 곳으로 생생하게 기억되는 곳이다.
화장실에서 볼일도 보고 느긋하게 산행 준비를 마친 후에 9시경 산행을 시작하는데 초입부터 등로의 유실을 막기 위해 큼지막한 자연석들을 깔아놓은 돌길과 계단길이 험로의 시작을 예고해 주고 있다.
계곡을 지나서 험하고 가파른 지능선에 설치해 놓은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숨이 차오르고 땀이 뻘뻘 흐른다.
첫 번째 계단전망대를 지나서 등로에서 조금 벗어나 있고 들머리인 장수대가 내려다보이는 두 번째 계단전망대에서 자켓을 벗어 배낭에 집어넣고 첫 번째로 쉰다. 평일이지만 맑고 따뜻한 날씨에 단풍도 한창이라서 산행객들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10분쯤 쉬다가 다시 가파른 돌길과 계단을 10분쯤 더 오르면 대승폭포 안내판이 있는 대승폭포 전망대에 이른다.
대승폭포는 높이가 88 미터로 금강산의 구룡폭포, 개성 천마산의 박연폭포와 함께 한국의 3대 폭포라고 하는데 절벽에서 물이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어서 우기가 아닌 한 웅장하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볼 수 없는 게 유감이다.
대승폭포를 구경하다가 소나무가 많은 바위지대를 지나서 자연석으로 등로를 포장해 놓은 돌길을 지나면서 등로의 유실은 막겠지만 무릎과 발목에는 부담이 많은 돌길에 대비하여 경등산화 대신 중등산화를 신고 온 게 아주 잘했다는 생각이 자주 뇌리를 스치게 된다.
대승폭포를 지나면서부터 등로는 눈에 띄게 완만해지고 울긋불긋한 단풍도 눈에 많이 띄어서 시선을 즐겁게 해 준다. 그러나 단단하고 울퉁불퉁한 돌길은 걷기에 그리 편하지 않다. 계속해서 나아가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목이 더 말라오고 혀도 바짝 말라붙게 되지만 대승령까지 쉼 없이 진행하기로 마음먹고 마침내 대승폭포 전망대에서 1시간 20분 가까이 걸려서 해발 1210 미터의 대승령에 닿는다.
대승령은 삼각점이 설치돼 있는 봉우리지만 장수대에서 올라오는 길과 지금은 출입이 통제돼 있는, 흑선동계곡을 통해 백담사로 내려가는 길이 나 있는 사거리이고 안부와 가까운 지점에 있기 때문에 고개로 불리게 됐나보다.
들머리인 장수대 - 해발 480 미터.
들머리에서 바라본 남설악의 정경.
들머리의 정경.
장수대에서 남교리까지의 등로를 잘 축약해 놓은 돌길과 계단길.
자켓을 벗고 첫 번째로 쉰, 두 번째 계단전망대.
대승폭포 전망대.
대승폭포 - 해발 780 미터.
등로의 유실은 막겠지만 무릎에는 치명적인 돌길.
샛노란 단풍.
해발 1210 미터인 대승령의 방향표지판.
삼각점이 설치돼 있는 봉우리지만 안부 근처에서 두 길을 이어주는 사거리라서 고개처럼 대승령이라고 일컫나보다.
열 명 정도의 산행객들이 끼리끼리 쉬고 있는 대승령에서 쉬어 가려고 작정하는데 갑자기 조용하던 대승령이 떠들썩해지면서 수십 명의 일행이 하나둘씩 대승령으로 올라오자 대승령은 금세 북새통을 이룬다. 이제 편히 쉬기는 다 틀렸다. 그래도 근처에 마땅히 쉴 곳이 없으니 여기서 쉴 수밖에 없다.
귀떼기청봉을 지나서 한계령으로 하산하거나 대청봉까지 갈 수 있는 서북능선길과 십이선녀탕계곡으로 하산할 수 있는 갈림길이 있는 대승령 사거리에서 30분 가까이 쉬며 땀을 식히고 간단한 식사를 하고 나서 다시 일어나 곧 안부에 이르러 가파른 돌길을 오르니 오른쪽 허벅지에 가벼운 쥐가 일어난다. 걸음을 늦춰서 천천히 진행하여 대승령에서 30분 남짓 걸려 안산능선과 응봉능선이 갈라지는 능선 삼거리인 안산 갈림길에 닿으니 그곳은 식사를 하고 있는 오륙십 명 정도의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잠시 앉아 쉬다가 응봉능선 쪽으로 7분쯤 나아가니 해발 1360 미터의 능선끝쉼터에 이르는데 이곳이 오늘의 산행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여기서도 간식을 먹으면서 15분쯤 쉬다가 일어서니 계곡으로 내려가는 비탈에 설치돼 있는 가파르고 긴 나무계단을 내려가게 된다. 20분 가까이 걸려서 가파른 비탈길을 다 내려서니 방향표지판이 설치돼 있고 이제부터는 계곡을 옆에 낀 돌길을 걷게 되는데 고지대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단풍이 서서히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끼 낀 바위들 사이로 계류가 졸졸 흘러내리고 있는 계곡을 바라보면서 걷는 돌길은 힘들지만 상쾌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2년 만에 온 단풍 산행이지 않은가.
계곡 주변의 화려한 단풍을 연신 카메라에 담다가 배터리가 소진되어 배터리를 교체하면서 잠시 앉아 쉬며 또 쥐가 날 것을 우려하여 예방하는 차원에서 씹어 먹는 바이엘 아스피린 한 알을 씹어 먹고 땀으로 많이 배출된 염분을 보충하기 위해 소금 정제 한 알을 복용한다.
다시 일어서서 나아가니 수량이 적은 계곡의 상류는 그리 볼품이 없었지만 아래로 내려갈수록 서서히 수량이 많아지고 폭이 넓어지면서 본연의 아름다움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가끔씩 나타나는 방향표지판을 볼 때마다 남교리까지 앞으로 가야 할 거리가 너무 느리게 줄어드는 것으로 느껴져서 그만큼 이 코스가 험로라는 것을 인식하게 해 준다.
눈 밑으로는 거칠고 원시적인 계곡의 아름다움이 평화로운 계류의 조용한 흐름과 함께 펼쳐지고 눈 위로는 절벽에 피어난 형형색색의 단풍이 시선을 취하게 하니 오늘, 눈이 제대로 호강하는 셈이다. 소에 떨어져서 모여 있는 낙엽들도 시야에 아름답게 다가온다. 삶의 마지막도 이 단풍처럼 처연하게 아름답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짐짓 생각해 본다.
십이선녀탕계곡은 험로가 많아서 곳곳에 목제 데크와 다리, 현수교가 세기도 귀찮을 정도로 자주 나타나서 식상할 정도다. 단풍과 계곡과 암봉,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 놓은 구조물들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면서 걷는 길은 험하지만 매우 각별하다. 계곡과 단풍의 아름다움에 취해 무아지경에 빠져서 걷다보니 폭포와 소와 그 주변의 암반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두문폭포에 닿게 된다.
안산능선과 응봉능선이 갈라지는 안산 갈림길 - 해발 1320 미터.
오늘의 산행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응봉능선의 능선끝쉼터 - 해발 1360 미터.
계곡으로 향한, 가파른 내리막의 비탈길.
계곡이 시작되는 지점의 방향표지판.
연녹색의 단풍.
계곡의 정경 1.
계곡의 단풍.
계곡의 정경 2.
계곡의 정경 3.
계곡의 정경 4.
울긋불긋한 단풍.
계곡을 건너는 다리.
계곡의 정경 5.
계곡의 정경 6.
두문폭포는 수량이 적은 게 조금 아쉽지만 흰 암반 사이로 소가 연이어 나타나는 게 시선을 매혹시킨다. 두문폭포를 지나면 험한 비탈에 놓인 목제 데크를 밟고 걷다가 쇠난간과 계단이 설치돼 있는 가파른 바위지대를 내려와서 복숭아탕 전망대에 이르게 된다. 오랜 세월 동안 떨어지는 물의 낙차에 시달려서 깊게 패인 암반과 소는 마치 큰 복숭아 한 개로 틀어막으면 딱 맞을 듯하다. 복숭아탕의 절경을 감상하다가 다시 목제 데크길로 나아가면 안산능선과 응봉능선 사이에 좁고 깊게 패인 십이선녀탕계곡이 울긋불긋한 단풍과 어우러져 한때의 황홀한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다. 전망이 좋은 곳에 조그만 정자 전망대를 짓고 하루 종일 협곡과 단풍을 감상하며 머물고 싶은 욕구가 불현듯 치솟는다.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바람에 256MB 용량의 SD카드 메모리가 다 소진되어 흔들다리 위에서 잠시 쉬며 디지털 카메라의 SD카드를 교체한다.
두문폭포.
두문폭포의 소.
새빨간 단풍.
복숭아탕 주변의 단풍.
용탕폭포와 복숭아탕.
비탈에 놓인 목제 데크.
단풍과 계곡과 다리 1.
단풍과 계곡과 다리 2.
계곡의 정경 7.
단풍과 계곡과 다리 3.
단풍으로 둘러싸인 구름다리(흔들다리) 1.
혼자 건너도 출렁거리는 흔들다리를 건너서 잠시 나아가니 연녹색의 단풍이 시야를 가득 채우는 등로가 나타난다. 녹색 일색인 단풍의 모습이 이채로우면서도 그렇게 고울 수가 없다.
좀 더 나아가니 한 무리의 산행객들이 계곡에 발을 담그고 정담을 나누고 있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아서 자신도 계곡으로 내려가서 양말을 벗고 차디찬 계류에 발을 담그니 십 초 이상 발을 담그고 있기 어려울 정도로 발이 시리다. 10분 남짓 계곡에서 발의 피로를 풀다가 다시 등로로 나아가니 한결 걷기가 편하다. 잠시 후에 십이선녀탕 입구(남교리공원지킴터)까지 3.0 킬로미터가 남았다는 방향표지판이 나타나고 이어서 응봉폭포가 나타난다. 등로와 많이 떨어져 있어서 멀리 보이는 응봉폭포를 카메라에 담고 원시적인 계곡과 단풍의 아름다움을 충만한 기쁨으로 받아들이며 걷는 길은 고달프지만 내심 흐뭇하기 이를 데 없다.
길은 서서히 평이해지면서 오늘 산행의 종착역인 남교리공원지킴터에 닿게 되는데 3.0 킬로미터를 55분 만에 지나쳤을 정도로 계곡의 깊숙한 곳에 비해 꽤 편한 길이다.
근처의 식당가에서 차편을 물어보니 인근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원통터미널까지 가면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가 있다고 하는데 다음 버스는 18시가 넘어서야 있다고 한다. 한 시간 가까이 여유가 있고 마침 배도 고프니 인근의 식당에서 더덕동동주 한 병과 감자전 한 개를 주문해서 먹는다. 재작년 가을에 흘림골과 주전골 단풍산행을 갔을 때에 오색약수터 근처의 식당가에서 사 먹었던 메밀전을 먹고 싶었지만 이곳에서는 아쉽게도 메밀전을 파는 곳이 없어서 감자전을 시킨 것인데 춘천에서 먹던 것에 비해 더 고소하게 느껴지고 꽤 맛있는 편이다. 식사를 겸해서 먹으려면 좀 양이 적은 듯해서 해물야채전을 하나 더 시켰는데 이 건 식당에 붙여 놓은 사진과는 달리 해물도 별로 많이 들어 있지 않고 맛이 실망스러웠다.
얼큰하게 식사 겸 술을 하고 식당에서 말해준대로 굴다리를 지나서 버스 정류장 표지도 없는 가게 앞에서 기다리니 슬그머니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는 게 외로운 나그네의 마음을 한결 더 우울하게 만들어 놓는다.
목이 빠지게 기다려서 18시 15분경에 도착한 군내버스를 타니 무인지경의 어둠 속을 쏜살같이 달리던 버스는 약 20분 만에 원통버스터미널 앞에 도착한다. 동서울행 버스표를 끊는다. 요금은 13100원. 그런데 버스표에는 출발시간이 기재돼 있지 않고 매표창구 위에 부착돼 있는 버스시간표에는 동서울행이 두 칸에 19시 정각과 19시 25분의 막차가 각각 기재돼 있다. 19시 정각의 막차는 동서울 준고속이라고 써 있고 19시 25분 막차는 인제, 홍천, 서울이라고 써 있다. 그런데 얼핏 보기에는 맨 왼쪽에 적어 놓은 인제, 홍천, 서울행이 글씨가 더 크고 줄 사이 간격도 넓어서 더 중요한 노선처럼 보이고 더 신뢰가 간다. 버스 출발시각을 생각하다가 승차장에서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대합실에 앉아서 있지도 않은 안내방송을 기다리다가 버스를 놓친 사람이 매표원과 실랑이를 하는 것에 정신이 팔리고 취중이라서 19시발 차의 존재를 잊고 있다가 19시 20분경 매표원에게 물어보니 아까 군내버스에서 같이 내려서 한걸음 먼저 매표소에 간 산행객 두 사람이 일행인 줄 알고 그 사람들에게만 버스 시간을 말해줬는데 19시발 차는 준고속이라서 두 시간 정도면 동서울에 닿고 19시 25분발 차는 완행이라서 홍천을 거쳐 동서울까지 3시간이 약간 넘게 걸린다는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미리 확인하지 않은 자신의 불찰도 있으므로 완행 막차를 기다려서 타니 몇 군데에서 서다가 한 시간 만에 홍천터미널에 닿는데 버스에 승객이 세 명밖에 없자 운전기사가 근처의 고속버스터미널로 버스를 몰고 가서 19시 30분발 동서울행 고속버스에 승객들을 인계하니 버스는 한 시간 만에 동서울터미널 앞에 도착한다.
오늘의 산행 거리는 11.3 킬로미터에 불과했지만 돌길과 가파른 계단의 험로가 많아서 총소요시간은 약 8시간이나 걸렸고 이 중에서 약 1시간 40분의 휴식시간을 제외하면 순수산행시간은 약 6시간 20분이 걸린 셈이다.
아무튼 오랜만에 수도권을 벗어난 단풍산행을 했다는 데에 의의가 깊었고 외롭지만 자유로운 단독산행의 멋과 맛을 또 한 번 온몸으로 유감없이 만끽한 산행이었다.
녹색 단풍이 시야를 가득 채운 등로.
잠시 발을 담근, 시리디 시린 계류.
만산홍엽.
응봉폭포 - 해발 580 미터.
계곡의 아름다움 1.
단풍으로 둘러싸인 구름다리(흔들다리) 2.
계곡의 아름다움 2.
녹색의 단풍.
계곡의 아름다움 3.
남교리공원지킴터.
원통버스터미널의 버스시간표.
원통버스터미널.
오늘의 산행로 - 11.3 킬로미터의 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