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세상 입력 : 2014.12.03
왕자와 거지, 옷 한 벌 차이일 뿐
[43] 마크 트웨인 '왕자와 거지'
똑같이 생긴 왕자 에드워드와 거지 톰, 장난삼아 옷 바꿔입다 역할까지 바뀌어
16세기 영국, 모직물 발달로 농토 줄자 농민이 구걸·도둑질해 사회 혼란
더 나은 사회가 되길 바란 트웨인, 불평등한 계급 차이 비판했답니다
어느 날 거리에서 여러분과 똑같은 얼굴에 똑같은 몸, 똑같은 목소리를 가진 사람을 만난다면 어떨 것 같나요? 몹시 흥미롭게 느껴질 수도 있고, 온몸이 얼어붙을 정도로 소름이 돋을 수도 있을 거예요. 이러한 분신, 혹은 복제된 존재를 '도플갱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의 도플갱어가 서로 역할을 바꿔 며칠만 살아보자고 제안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할 건가요? 미국 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마크 트웨인이 쓴 '왕자와 거지'(1881)에는 이 선택을 받아들인 두 소년이 등장합니다.
16세기 중엽의 영국 런던. 에드워드 튜더 왕자와 톰 캔티는 서로 찍어낸 듯 똑같은 생김새로, 다른 장소에서 태어나요. 에드워드는 화려한 왕궁에서 왕자의 신분으로, 톰은 작고 허름한 방에서 가난한 백성으로 태어났지요. 어느 날 구걸하러 나간 톰은 거리를 방황하다 웅장한 궁궐 앞에 다다릅니다. 그리고 운명처럼 에드워드 왕자를 만나지요. 평소 왕자의 삶을 동경했던 톰과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 컸던 에드워드는 장난삼아 옷을 바꿔 입어요. 하지만 장난으로 시작된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결국 둘은 서로 신분이 뒤바뀐 채 살게 됩니다. 한 번도 왕궁 밖으로 나가본 적 없는 왕자는 거지와 빈민이 가득한 런던 뒷골목을 배회하고, 궁중 예절이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가난뱅이 톰은 궁궐 생활에 적응하느라 진땀을 빼지요. '왕자와 거지'에는 두 소년이 마주하는 상황과 그때의 감정이 세밀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묘사되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답니다.
- ▲ 그림=이병익
이 책은 16세기 영국 사회의 현실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특히 실존 인물인 에드워드 6세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소설과 현실의 연결고리를 강화하기도 했어요. 에드워드는 왕세자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거지꼴 때문에 아무도 그를 왕세자로 봐 주지 않아요. 끊임없이 구걸을 강요하는 톰의 술주정뱅이 아버지에게서 벗어난 것도 잠시, 수많은 빈민과 거지, 도둑이 뒤엉켜 살아가는 현장을 직접 보고 경험하게 되지요. 그가 만난 빈민이 부른 노래의 한 구절을 살펴볼까요?
"착한 여인들이여, 나와서 잘 봐 둬. 잘 봐 두라고. 런던 시내에서 나와 너의 물건을 훔친 그 사내를 잘 봐 둬. 교수대에 매달린 그 사내를."
물건을 훔쳤다는 이유로 교수대에 매달렸다니! 노래 가사치고는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요? 이 가사는 당시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요. 16세기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로, 중세 봉건제가 근대 자본주의로 바뀌는 시대였어요. 소유권의 개념이 중요해지면서 '누구' 소유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 우선시되었지요. 봉건 사회에서는 농민에게 관습적으로나마 '땅을 경작할 권리'가 있었는데, 자본주의 사회로 갈수록 땅 주인들이 소유권을 내세우며 농민을 내쫓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어요.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나앉게 된 농민은 굶주림에 시달렸고, 점점 구걸이나 도둑질을 하게 되었지요. 거지와 도둑이 늘어나면서 사회는 점점 더 불안해졌고요. 결국 나라에서는 구걸금지법을 만들어 어린이나 노인이 아닌 사람이 구걸하면 벌을 주고, 도둑질을 하다 걸리면 매우 가혹하게 처벌했습니다.
개인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사회는 너무도 절망적이지 않을까요? 톰의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구걸을 시켰던 이유와 앞서 살펴본 빈민의 노래 가사는 이러한 당시 사회 풍토를 보여줍니다.
#이야기
16세기경 영국에서는 모직물 산업이 발달하면서 지주들이 농경지를 목초지로 바꾸기 시작했어요. 지주들은 땅을 경작하던 농민을 내쫓고, 돈이 되는 양을 들여오기 시작하였지요. 땅 주변엔 양을 가두기 위한 울타리를 쳤고요. 이를 '울타리를 두른다'는 뜻으로 '제1차 인클로저(enclosure) 운동'이라고 불러요. 인클로저 운동이 일어나면서, 오랜 기간 땅을 경작하며 살던 농민은 아무런 준비도 못 한 채 굶어 죽거나 부랑자가 되었지요. 헨리 8세 때 대법관을 지낸 토머스 모어(Thomas More)는 이 현상을 두고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비판하기도 하였어요. 그는 암담한 현실에 대한 풍자와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소망을 담아 '유토피아(Utopia)'라는 책을 냈답니다. 가상의 나라인 '유토피아'는 하루 6시간 일하고, 직업에는 계급이나 남녀의 구별이 없으며 여가에는 정신을 고양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회였어요. '유토피아'라는 말은 이상향(理想鄕)을 뜻하는데, 역설적이게도 '없다'는 뜻의 그리스어 'ou'와 '장소'를 나타내는 'toppos'가 합쳐진 것이에요. 즉 '(현실에는) 없는 곳'이란 의미이지요.
마크 트웨인은 현실에는 없는 곳, 즉 유토피아를 우리가 사는 사회에 실현하고 싶어 한 작가예요. 그는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사회·정치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거든요. 그는 에드워드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왕이 되면 먹을 것과 잠잘 곳만이 아니라 책을 통한 가르침도 받게 해줘야지. 마음과 정신이 굶주려 있으면 배가 아무리 불러봤자 무슨 가치가 있겠어? 오늘의 교훈을 잊어버려서 내 백성이 고통받는 일이 없도록 부지런히 기억에 되새길 거야."
그런가 하면, 톰은 점점 진짜 왕자처럼 행동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나라를 다스려요. 이 책에서 마크 트웨인은 정해진 신분에 갇힌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비판적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 기본이 되는 '의식주'를 보장하고, 책을 통한 배움의 기회만 주어진다면, 누구라도 사람답게 살 수 있고 자기 능력을 키울 수 있음을 보여주지요. 오늘날에는 눈에 보이는 계급은 없어졌지만, 경제적·사회적 계급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어요. '사람은 본질적으로 모두 평등하다'는 가치가 담긴 '유토피아' 건설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과제입니다.
[함께 생각해봐요]
'왕자와 거지'에서 에드워드와 톰이 옷을 바꿔 입은 뒤, 사람들은 옷차림만 보고 그들을 평가하며 그에 따라 대우합니다. 옷과 같은 겉모습만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것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우리가 평소 겉모습만으로 타인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려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