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흥광(金興光)이 통일 신라말기 곳곳에서 민란이 일어나 국가 사직이 위태로움을 느끼고 경주(慶州)를 떠나 무진주(武珍州) 서일동(西一洞)(현재 담양군(潭陽郡) 평장동(平章洞))에 은거 자연을 벗삼아 살았다 光山金氏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가문(家門)의 하나다. 광산김씨는 세도가 당당했던 집안이라기보다 대대로 석학.거유(巨儒)를 많이 배출한 명문(名門)이다.
5개파(문정공파, 문숙공파, 양간공파, 낭장공파, 사온직장공파)중 양간공파의 후손이 현재 전국의 약 70%로 제일 많으며, 그 후손에서 많은 명현들이 배출되었다. 조선 중기 예학(禮學)의 태두요 성리학의 대가인 사계(沙溪) 김장생은 광산김씨 가문의 정신적 지주다. 김장생과 그의 아들 김집은 유학(儒學)의 입문이요 맺음이라 할 예학을 집대성한 대학자로 죽은후에 동국18현(東國18賢)에 추앙되어 문묘(文廟:공자를 모신 사당)에 배향되는 영예를 누렸다. 동국18현 : 우리나라 역사상 최치원. 안유. 정몽주 등과 같이 학문과 도덕이 깊어 온 백성이 겨레의 스승으로 우러러 받드는 18명의 명헌을 말하며 문묘 배향은 일문 일대만이 아니라 대대손손의 영광이요! 자랑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