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바람에 익어가는 석류 보면 마음도 황홀해져
선홍색의 아름다운 꽃과 빨간 열매, 벌어진 껍질 사이로 투명한 알맹이가 드러나는 석류는 꽃과 열매 모두 눈을 즐겁게 한다. 최근에 석류가 건강에 좋은 과일로 알려지면서 과수로 재배하는 농가도 늘어나고 있다. 석류의 매력에 흠뻑 빠져 일찍 재배를 시작한 김여종 씨는 ‘석류는 신비의 과일’이라고 예찬했다. 글 장수옥 기자 사진 임승수(사진가)
중부 이남으로 가면 웬만한 집 울타리 안에 석류나무가 한 두 그루씩은 심겨져 있다. 꽃이 아름다워서 관상수로 그만일 뿐만 아니라 오래전부터 석류의 알맹이와 껍질, 뿌리까지 기관지 천식과 기생충 구제 등 갖가지 질환을 다스리는 약재로 이용돼왔기 때문이다. 그 석류가 몇 년 전부터는 여성에게 특히 좋은 과일로 각광받고 있다. 여성호르몬의 일종인 에스트로겐 성분이 어떤 과일보다 월등히 많이 들어 있어 여성의 갱년기 장애를 극복하는 천연 호르몬제라는 점이 과학적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석류를 가장 많이 재배하는 곳은 전남 고흥이다. 김여종(56)·송미자(49) 씨 부부는 고흥에서도 가장 먼저 석류 농사를 시작한 선구자다. 1984년에 처음 석류 묘목을 심었으니 25년 전 일이다. 6000평 규모인 김씨의 농장에 심겨져 있는 석류나무는 15〜16년생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실험중인 신품종도 다수다. 꽃과 열매, 묘목 판매 등을 합친 연간 수입은 2억여 원. 웬만한 대기업 임원 못지않은 수준이다. 김씨의 석류농장은 다도해의 푸른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두원면 예회리 바닷가 언덕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기자가 찾았을 때는 막바지 수확이 한창이었다. “3형제의 장남으로 공부하라고 서울에 보냈지만 작은집에서 전차 타고 덕수중학교에 다녔는데 영 맘이 편치 못했어요. 고향에 내려왔다가 다시 상경해서 여러가지 일을 했지요. 그러다 양재동의 묘목 상에서 여러 해를 조경수와 과수를 주로 판매하는 영업사원으로 일했었는데 부모님이 편찮으시고 결혼도 하면서 고향에 자리를 잡은 거지요.”
앞서가는 실험 맨, 석류는 실패 끝에 거둔 열매 그런데 김씨는 스스로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할 만큼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전까지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다. 주변에서는 만류했지만 10대와 20대 초반 가수가 되고 싶은 갈망을 누르지 못해 ‘딴따라’세계를 기웃댔다. 그러나 음반 하나 낼 돈이 없어 포기하고 생업 전선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돈을 벌기 위해 해외 건설 현장에서도 여러 해를 보냈다. 1970년대 중동건설 붐이 일면서 현대·유유·미륭건설 소속 중기 배관기술자로 리비아와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에서 6년 넘게 모래바람 속에서 일했다. 한때는 운수사업도 했다. 또 고랭지배추와 마늘 산지 수집인으로도 전국에 다녔었다. 석류를 재배하게 된 것은 국제원예, 미림조경 등에서 묘목 담당 영업사원으로 여러 해를 일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고향으로 내려와 석류뿐만 아니라 겹 동백을 비롯한 사과와 당시엔 생소했던 블루베리 등 여러 가지를 심었다. 일본 시장을 겨냥해 특수작물인 작약과 시호를 재배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기후와 토양, 재배기술, 판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실패를 거듭했다. 사과도 ‘야다까’품종을 심어 2년간은 꽤 수확을 했으나 3년째부터는 급격히 수확량이 떨어져 고흥에서 재배가 어렵다는 것을 체험하고야 그만두었다. 농사 지으면서 타조를 사육하기도 했다. 타조나 블루베리 모두 이름도 생소할 뿐만 아리라 재배기술도 확립돼 있지 않았고 수요기반도 없던 시절로, 너무나 앞서간 탓에 좋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다 보니 실패를 거듭했지만 그러면서도 다시 벌떡 일어서는 오뚝이 인생을 살았다. 석류도 처음부터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일찍 시작한 데 비해 오래된 석류나무가 16년생인 이유는 연거푸 두 차례나 실패해 2〜4년씩 기른 석류나무를 모조리 뽑아내고 다시 심었기 때문이다. 품종을 잘못 선택해 열매가 잘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김씨는 “석류에 대한 연구자료나 재배기술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여서 혼자서 시행착오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두 번이나 실패를 하고도 석류를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성공하기만 하면 수익성은 확실하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동시장에서 친구가 장사를 했는데 책임지고 한약재와 과일로 두루 유통해주기로 했기에 처음부터 판매 걱정은 할 필요도 없었던 상황이었다. “일반인들은 석류나무를 관상용으로만 여기던 시절이었지만 1980년대 초반에 이미 외국산 석류가 서울 미군부대에서 유출돼 고가에 팔리고 있었고, 당시에도 마니아층이 있었던 것을 알았죠. 국내에는 아직 본격적으로 재배하는 이가 없기에 석류를 재배하면 전망이 좋겠다고 생각해 시작했는데 자꾸 실패하니 속이 상하면서도 오기가 생겼어요.” 이탈리아, 중국 등지의 석류재배 현장을 둘러보고 기후와 품종 비교를 하며 혼자 품종개량을 거듭했다. 김씨가 석류를 본격적으로 수확한 것은 석류 농사를 시작한 지 10년이 지난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였다. 김씨는 과일로 재배했지만 기대와 달리 과일로 석류를 찾는 수요자가 적어 한약재로 대부분 유통했다. 10㎏ 한 상자에 4만〜5만 원에 팔았는데 그래도 사과나 배농사보다는 나았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에스트로겐이 석류에 많고 건강에 좋다는 학술논문이며 보도가 잇따르면서 갑자기 석류가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했다. 비로소 한약재가 아닌 과일의 대열로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에게 좋은 과일로 급부상하면서 한 상자에 10만 원 대로 뛰면서 기대한 이상의 고수익을 올리게 됐다.
어떤 작목보다 쉽지만 어려운 게 석류농사 국내에서 석류를 과일로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10여년 정도로, 새롭게 석류를 재배하려는 사람도 늘어나는 등 관심 작목으로 부상했다. 석류를 다른 과수와 비교할 때 재배 기술 측면에서 난이도는 어떨까? “세상에서 가장 쉽고도 어려운 게 석류농사요. 크고 작은 실패를 되돌이켜 보니 참 간단한 걸 몰랐던 거예요. 요즘에야 ‘건달농사’ 짓는거죠.” 그가 말하는 ‘건달농사’란 일할 때는 집중적으로 하기에 대부분은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석류농사의 핵심은 품종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건 기본 중의 기본이란다. 품종 선택도 중요하지만 과수로서 묘목이 유통되지 않던 시절 이야기고, 지금은 재배기술에 따라 품질과 수확량에서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그러면 석류농사를 망치게도 하고 흥하게도 하는, 가장 골치 아픈 병해충은 뭘까. 25년간 석류농사 경험으로 깨친 영농기술을 요약하자면 첫째가 진딧물, 두 번째가 나방, 세 번째가 탄저병이란다. 우선 5월 중순에 잎이 나오기 시작할 때 진딧물이 극성을 부리는데 제때 방제를 해주지 않으면 단 한 상자도 수확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진다는 것. 두 번째는 나방으로, 반드시 꽃이 활짝 피었을 때 방제를 해야 한단다. 나방이 꽃 속에 알을 낳으면 그 속에서 부화하고 나중에 석류 속에서 유충이 자라게 된다고. 그리고 탄저병 방제를 잘 해줘야만 수량과 품질을 모두 끌어올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석류 농사에 관한 한 전문가로 통하는 김씨의 농장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면면이 참 다양하다. 묘목을 구하러 오는 사람부터 단순히 농장 견학하러 온 사람, 석류를 사러온 바이어, 몇 년째 고정적으로 석류를 주문해 먹는 고정 단골들까지. 올 여름엔 주한 베트남 대사를 비롯한 12명의 베트남 정부 관료와 농업기술자들이 김씨의 농장을 들렀다. 한국을 성공모델로 삼은 베트남은 한국의 농업분야에서 성공한 농가와 작목을 눈여겨보고 있는데, 석류에도 관심을 쏟고 있어 그의 농장을 찾은 것이다. 버릴게 하나 없는 석류, ‘경쟁력 있다’확신 김씨는 “석류야말로 버릴게 하나 없고, 수입산과 겨뤄도 경쟁력이 있는 작목”이라고 확신했다. 석류는 꽃이 지고 열매를 맺기 시작하면 농약을 칠 일도 없고 그냥 알아서 잘 자라니 노동력이 적게 들면서도 친환경적인 과일이고 농가에는 효자 작목이 될 수 있단다. 더구나 꽃은 차 원료로 판매하고 열매는 과일로 출하하며, 알이 작거나 못생긴 것은 껍질과 알맹이를 분리해서 화장품과 약품, 식품 원료 등으로 판매하면 되니 “한 개도 버릴 것이 없다”는 것이다. 김씨는 석류 껍질을 이용한 비누와 입욕제, 열매를 이용한 엑기스와 즙 제품 등 가공사업을 하려고 일부 시도를 했지만 직접 하기에는 여의치 않다는 판단에 따라 접은 상태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재배되는 12종의 석류는 대부분 신맛이고 과육이 적어 그냥 먹기에는 단맛이 주류를 이루는 이란·우즈베키스탄·미국·중국산 등보다 못하다. 그러나 석류가 여성들의 건강에 좋아 인기 과일로 뜨게 한 에스트로겐은 국산 신석류가 더 많이 함유하고 있다. 물론 이런 사실이 제대로 알려져야 하고, 소비가 늘어날 수 있도록 체계적인 홍보도 뒷받침돼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클레오파트라와 양귀비가 미를 유지했던 비결은 바로 석류라고 할 정도로, 석류는 젊음을 약속하는 신비의 과일”이라는 김씨. “젊은 시절 가수의 꿈을 버리지 못해 들락거리느라 쌓은 인연 등으로 가수 연예인들도 이곳 석류농장을 자주 찾는데 트로트가수 유지나, 장윤정 등이 목에 좋다는 이유로 즐겨 먹는다”고 귀띔했다. 하루 담배를 두 갑이나 피는 자신은 물론 가족, 주변 사람들의 건강 비결은 바로 석류 덕분이라는 김씨는 석류 알맹이를 설탕과 섞어 만든 석류엑기스는 천연영양제로, 음료 등으로 상식한다면 병원 갈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지금까지 도전을 거듭해 온 오뚝이 같은 인생이지만 김씨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자신의 농사를 지으면서 묘목을 대량 보급한 지역에는 직접 가서 재배 지도를 해주고, 그 와중에 새로운 품종 육성과 개량 작업도 계속 진행 중이다. 실제로 그는 몇 년 후엔 색깔과 크기, 맛이 다양한 석류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석류농사를 지으면서도 관상용 꽃과 나무에 여전한 관심을 갖고 육성 실험을 계속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세상이 놀랄 만한 꽃과 나무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젊은 시절 여러가지 직업을 거쳤던 김씨에게 만일 20대로 되돌아간다면 뭘 하고 싶은지 물어봤더니 일 초도 망설이지 않고 사투리가 섞여 나왔다. “당연히 가수죠. 가수를 못한 게 지금도 억울허요. 그때 어려워도 계속했으면 이름을 떨치고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할 거인디…” 이쯤되면 결혼 후 온갖 일을 다 벌여놓고 수습하느라 바빴던 그의 뒤에서 살림하며 세자녀 키우느라 심신이 고단했을 아내 송미자 씨가 한마디 할 법도 한데 옆에서 웃기만 한다. 한술 더떠 “사람이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야지요. 농장 홈페이지에 가수 유지나가 크게 나오고 장윤정 등 예쁜 연예인이랑 찍은 사진을 걸어놔도 그 심정을 아니까 아무말 안해요.” 집과 농장 바로 앞이 그림 같은 바닷가이지만 낚시에는 취미가 없고 산을 좋아한다는 김씨. 예전엔 설악산을 비롯한 전국의 산에 다녔지만 지금은 주로 영암 월출산을 자주 가는데, 혼자서 훌쩍 월출산에 올라 바람을 쐬고 나면 가슴이 뻥 뚫린단다. 다음에 다시 만날 기약을 하며 돌아서는데 김씨가 씨디 한 장을 수줍은 듯 내밀었다. 수록된 11곡 가운데 9곡을 직접 불렀고, 대표곡인 ‘고흥우주사랑’과 ‘고흥어머니’라는 곡은 직접 가사도 썼다. 경쾌한 가사인데 목소리에는 한이 서린 것 같다. “가수 못된 게 억울하다고 할 만하다, 이제 음반도 냈으니 농사짓는 가수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농장에서 콘서트를 열면 어떨까…” 이런저런 생각이 이어졌다. 문의 태양석류농원 www.sun-sr.com 010-3337-5566
출처 : 월간 전원생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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