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일본인들이 철수할 당시 근택인쇄소는 조선은행권 `을`백원권을 인쇄하다가 중단한 상태로서 인쇄 원판, 인쇄 잉크 등 은행권 제조에 필요한 자재의 관리가 매우 허술하였다. 이 틈을 타 한 인쇄공이 `을` 백원권 인쇄판 일부를 절취·보관하다가 이를 이용하여 조선공산당의 정치자금 조달을 위해 1945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약 1200만원의 위조지폐를 남발하였다. 이것이 소위 정판사 위폐사건인데 이 사건을 계기로 미 군정청은 남한 내에서의 공산당 활동을 불법화했다.
1950년 6월 12일에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으로서 한국은행이 설립되었다. 그러나 조선은행권이 그대로 유통되는 상황에서 6·25전쟁이 발발하자 한국은행은 곧 전시체제로 전환하여 대전으로 이전했는데, 한국은행 본점을 점거한 북한군은 남한 경제 교란을 목적으로 조선은행권을 남발했다. 이에 따라 1950년 8월에는 조선은행권을 한국은행권으로 교환하는 제1차 통화조치를 실시하게 됐다. 한편 제1차 통화조치 중인 이듬해 10월에는 `한국조폐공사법`이 발효되고 한국조폐공사가 설립되어 천원권을 제조하기 시작했으며 1952년 `신`천원권과 오백원권을 제조해 조폐기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1953년 2월 제2차 통화조치의 실시로 화폐단위가 `원(圓)`에서 `환`으로 바뀌고 100원이 1환으로 교환됐다. 이때의 환단위 은행권은 미국 연방인쇄국(BEP)에서 제조된 것으로 광복 후 당시까지 발행된 어떤 은행권보다 품질이 뛰어난 고급종이가 사용됐다. 또한 형광물질을 넣어 자외선을 비추면 바탕이나 번호색상이 바뀌는 등 위·변조방지장치가 삽입됐다. 제2차 통화조치 이후 1958년까지 발행된 환 은행권은 9권종에 달하였는데 이 중 오십환권 및 `신`십환권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을 앞면 도안으로 채택하였다.
1960년 8월에는 세종대왕으로 도안을 변경한 `개`천환권이 발행된 데 이어 이듬해에 역시 세종대왕을 도안으로 한 `개`오백환권이 발행되었다.
1970년대 급속한 경제개발로 고액 화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자 `가`오천원권과 `가`만원권이 발행되었다. 액면이 크게 높아진 오천원권 및 만원권은 위조 방지와 은행권 품질 향상을 위해 한국은행권으로서는 최초로 은화를 넣었다. 또한 한국은행은 표준영정도안을 채택하여 `나`오천원권과 `나`만원권을 발행하였다. 아울러 그동안 오천원권 및 만원권 용지는 영국산 수입용지를 사용했었으나 은화 용지의 국내 생산이 가능해짐에 따라 이때부터 은행권 용지를 국산화하였다.
1980년대 들어서는 그동안 발행하여 온 은행권의 규격을 다소 축소시키고 용지의 내구성을 보완하는 한편 처음으로 기계 감응요소를 채택하는 등 은행권의 품질을 크게 개선하였다.
1990년대 들어서는 수입이 자유화된 컬러복사기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은행권의 위조 위험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부분 노출은선(일부만 드러나 보이는 은색선), 미세문자, 요판(凹版)잠상(볼록 인쇄된 숨은 숫자), 광간섭무늬(동그란 나선형 무늬), 보는 각도에 따라 색상이 변하는 시변각잉크(OVI·Optically Variable Ink) 등 위·변조 방지장치를 권종별로 보강했다.
2002년부터 화폐제도 개선에 대한 연구·논의가 이루어지다가 2005년 초 정교한 5000원권 위조지폐가 대량 발견됨에 따라 현재의 은행권 3종을 모두 새로 발행하여 위조를 방지하고 화폐품질을 개선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2006년 1월 새 5000원권이, 2007년 1월 새 1만원권과 1000원권이 각각 발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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