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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거러지가 아니리예
“ 3대대장 ! 참모장이 도와줄 일이 뭐 없겠오?”육군 대령시절 사단 참모장으로 부임하자마자 S 시에 위치한 관리대대를 방문하여 업무보고를 청취한 뒤 대대장 박 중령에게 물었었다.“ 예 저희 대대 급수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숙원사업입니다. 한 350 만원만 지원되면 완전히 해결되겠습니다.” “참 여기가 S시지 . 여기 최 0만 회장님이라고 혹시 연락처를 알고있나?” 얼핏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대대장에게 물었더니,“네? 참모장님께서 그분을 어떻게 아십니까? 그분은 정말 대단한 분이라서 아무나 쉽사리 만나주질 않습니다” “전화한번 해주게. 내 이름을 대면 아마 기억하고 계실 거야. 여기 온 김에 한번 뵙고 가야겠네. 그분한테 급수문제를 한번 부탁 드려봄세.” 그날 따라 심한 독감으로 집에 누워 계시다는 최 회장이 “윤 월산 대령을 아느냐”는 대대장의 물음에 “그분이 중령이었는데 어느새 대령으로 진급이된 모양이라”면서 꼭 찾아뵈어야 할 분이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약속장소에 미리와 계신걸 보고 대대장 박 중령은 세상에 참으로 희한한 꼴 다 보겠다며 두눈이 휘둥그래진 채 나를 매우 존경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참모장님 저분이 일찍이 저렇게 긴장하여 부동자세로 서 계신걸 본적이 없습니다. 참모장님 참으로 대단하십니다.”라고 귓속말로 내게 전해 주는 것이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지금은 말할 수 없지만 나중에 알게 될거야” 짤막하게 대화를 나누며 저만치에서 길가에 일부러 나와 서있는 최 회장 곁으로 우리는 서서히 접근해 가고 있었다. “참 그리고 또 이곳 경찰서장으로 정 0대 서장이 얼마 전에 근무했었지 아마? 나와는 00사단에서 함께 대대장으로 근무했었네” “예에? 그러시면 그 정 0대 서장이 입버릇처럼 강조하던 필생의 강적이 바로 참모장님 이었습니까?” “뭐라고? 내가 왜 그 사람의 필생의 적이란 말인가?”“그분이 그러던 데요. 평소에 2등이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육사 한해 선배인 워낙 악바리를 도저히 이길 수 없어 사단 작전참모 보직을 포기하고 홧김에 전역하여 경찰에 투신했다는 얘길 하도 많이 들어왔기에 어느 분인지 꼭한 번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평소 정 중령의 상투적인 말투가 떠올라 씨익 웃었다.
“아 왜또 잘 나가다가 갑자기 00포로 빠지십니까 선배님?” 걸핏하면 00포, 00포 하며 곧잘 웃기곤 하던 한해 후배 정 중령의 생각이 나서 일의 공교로움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처음 뵙겠습니다. 최 회장님 이신 가요? 제가 윤 월산 대령입니다. ”그분을 만나 조용한 찻집으로 안내되어 이동하는 순간 나는 무어라 형언할 수 없이 착잡하고도 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부터 꺼내야 한 다더란 말인가? 불현듯 대대장시절 소름이 끼칠 만큼 끔찍했던 총기살인 및 무장탈영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새벽 3시가 막 지났을까? 때아닌 일발의 총성이 새벽정적을 갈랐다. 곧이어 다급한 목소리로 대대 주번사령 전 대위가 전화로 보고해왔다.“대대장님 큰일났습니다. 최 0복 일병이 무장 탈영했습니다. 인접초소 보초 김 0중 병장을 사살하고 실탄을 절취후 달아났습니다.” “아! 이제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싶었다. 6개월 전엔가? 최 이병이 나의 대대에 논산훈련소를 거쳐 신병으로 전입해 왔는데 그를 처음 대하는 순간 나도모르게 소스라치게 놀라서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만큼 살벌한 그의 ‘눈동자’를 발견하고는 식은땀을 흘릴뻔 했던 최초의 기억이 되살아 났던 것이다. 급히 복장을 갖추고 달려가 보니 전역 1개월 앞둔 10중대 김 0중 병장이 보초근무중 1발의 총성에 복부관통상을 당하여 초소에서 이미 절명된 상태였고 그와 함께 복초근무를 섰던 9중대 최 0복 일병은 총기와 실탄 19발을 소지한 채 탈영하여 자취를 감추고 난 후였다.드디어 전 사단병력이 비상 출동하여 무장탈영병 최 0복 일병 색출작전에 온 사단이 발칵 뒤집히게 되었었다. 문득 기억 나는 게 있었다.한달 여 전인가 어느 토요일 저녁 무렵 대대장 관사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대장님예! 들어가도 되겠심까? 저 9중대 일병 최 0복이라예.”
“그래? 네가 웬 일이냐? 이 밤중에. 어서 들어와” 그의 뒤를 따라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한다는 그의 외삼촌이 자기소개를 해왔다.“대대장님 말씀은 조카를 통해서 잘 들었습니다. 참으로 고맙다는 말씀을 무어라 표시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0복이와 상의할 일이 있어 찾아오고 보니 지문제는 지가 해결할 테니 그리 알고 온 김에 아부이같이 고마우신 대대장님 한번 인사하고 가라 캐서 이렇게 찾아 뵙게되었습니다.” 그를 통해서 전해들은 이야기가 참으로 기가 막혔다.
S 시에서 냉동 수산업을 하시는 최 0만 회장의 6녀 2남중 막내로 태어난 최 0복 일병은 호적상으로는 최 회장의 아들로 입적은 되었으나 딸 여섯에 아들하나를 둔 최 회장이 끝으로 아들 하나 더 얻어보려고 요정여자를 가까이 하다가 출산하게되어 억지로 최 회장의 호적에 입적은 되었으나 아비를 모르는 사생아로 태어나서부터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할 길이 없었다한다. 설상가상으로 생모는 시름시름 앓다가 생후 6개월이 채 안된 그를 외할머님 품에 안겨둔채 세상을 떠났는데 할머니 손에 자라난 그가 철이 들면서 자신의 출생비밀을 어렴풋이 알아차리게 되어 걷잡을 수 없이 성미가 급하고 난폭하여 해괴망측한 행동을 일삼는 통에 참으로 골칫거리였다 한다.
보는 이로 하여금 언젠가는 저놈이 예측 불가능한 끔찍한 대형사고를 저지르고야 말 놈이라며 경계해 왔다는 것이었다. 논산 훈련소에서 두차례나 현지 탈영한 사실이 있으니 각별히 조심해야할 인물이니 총기나 탄약은 절대로 지급해서는 절대로 안된다며,“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아야 될 놈이 태어났으니 저 짐승만도 못한 지 한놈 뒈지는 건 문제가 아닌데 애꿎은 주변 사람들 다치게 할까봐 걱정된다”면서 신신당부를 잊지 않던 그의 외삼촌의 마지막 말이 자꾸만 뇌리를 스쳐왔다. 뒤늦게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그의 외삼촌이라는 자가 최 회장을 설득하여 독립호적을 파 가도록 협조할 테니 그의 생계비로 일금 3천만 원을 내놓으라고 강요하여 허락하자 전격적으로 그를 본인도 모르게 입영토록 조치하였다 하며, “거금 3천만 원이 네앞으로 생기게 되니 여기에 동의한다는 표시로 도장을 찍어라”고 홍천 부대까지 찾아와 서류를 내놓았던 바 의외에도, “이제는 지도 맴잡았심더. 아부이 속 안 썩이고 제대할 때까지 군 생활 잘 할랍니더. 지문제는 지가 알아서 할께니께 오신 김에 우리 대장님 한번 인사나 하고 가이소”하고 보채는 바람에 하도 고맙고 기특해서 찾아왔노라는거였다. “저 짐승만도 못한 놈이 고삐 풀린 망아지요 성난 코뿔소이상으로 난폭하던 녀석이 어쩌면 그사이에 이토록 순한 양이 되었으니 도대체 그 비결이 어디에 있느냐”며 내게 물어오는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외삼촌은 대대장 관사에서 나와 부대를 떠나는 순간 끝내 최 일병의 도장을 서류에 받아 가는데 성공하였다하며 외삼촌인 그가, “돌아가자마자 네 앞으로 3천 만원짜리 통장을 만들어 가지고 면회 오마”던 약속을 저버린 채 한 달여 기간이 지나는 동안 단 한 차례의 전화나 편지 또는 답장 조차 없었으니 속았구나라고 판단한 최 일병의 심사가 오죽했겠는가? 엄청난 배신감과 증오심을 불태웠던 최 일병은 기회 있을 때마다 특유의 살기 어린 두 눈을 무섭게 번득이면서 “쥑여버린다”는게 그의 노래였단다.“아부이와 외삼촌을 내손으로 칵 쥑여버리고 말겠다”며 이를갈고 별러왔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지휘관 회의시 마다 9중대 최 0복 일병이 특별관찰 및 보호대상임을 관련 간부들에게 누차 강조해왔을 뿐아니라 부대환경에 적응할때까지 각별한 관심과 배려를 기울이도록 늘 당부해 왔고 그를 선도하기 위해 일찍이 느껴보지 못했던 어떤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갖게 되었었다.“내가 이 한사람을 완전한 내사람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나는 군 생활에 실패한자가 되는 것이다”라며 굳은 각오와 결심 끝에 근 6개월 동안 대대장으로서의 지휘관심의 절반이상을 그에게 기울여 왔다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리라. 그의 경직된 얼굴에 웃음을 띄게 해보려고 집요하고 세밀한 관심을 가지고 접근했으며 내가 임관후 25년간을 보배처럼 소중하게 간직해왔던 영한대역 성경책(육사 졸업 기념선물)을 그에게 주었다. 어쩐지 그 성경책을 인연으로 그의 강퍅한 마음이 녹여지고 그와의 관계개선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고싶었다. “최 일병! 이 성경책은 내 생명과도 다름없는 소중한 보배란다. 내가 전후 두차례에 걸쳐서 월남전선에 소총 소대장과 소총 중대장으로 파월 하여 전투 시에 잠시도 내손을 떠나지 않았던 나의 수호신처럼 귀중한 물건이란다. 이걸 오늘 네게 선물로 줄 테니 너 오늘부터 예수 믿기로 하자”며 권유했더니 의외로 순순히 그 성경책을 받아들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그로부터 6개월여 기간 우리 둘은 매일새벽 대대 사병식당에 임시로 정해둔 장소에서 예수님 사진을 걸어놓고 새벽기도를 드려왔었다.(연대 교회까지는 무려 700여 미터의 거리가 이격되어 있었으므로...)
그러는 동안 충분한 기간이 흘렀고 그의 심성변화는 물론 환경적응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는 모습이 보였으며 어느새 일병으로 진급이 되었고 그의 후임 사병이 줄줄이 빈자리를 메우고 있었으니 이제는 안심해도 되겠구나 싶었는데 면회온 그의 외삼촌을 안심시키고 설득하여 오히려 대견스러운 면을 내게 보이기까지 했던 그가 아니었던가?
그렇게 믿어왔던 최 일병이 외삼촌의 배신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일을 저지르고 말게 된 것이었다.때마침 10. 26사태가 벌어져 박 정희 대통령이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 재규에게 시해되어 며칠후면 국장이 치러지게 될 판인데 갑자기 우리 부대에서 끔찍한 총기살인 및 무장 탈영사건이 발생하고야 말았으니 ...
나의 아내는 대대장의 가족으로서 무장탈영병 색출작전에 협조해야 된다는 사명감으로 수시로 내게 전화를 해대는 것이었다. “여보! 혹시 화장실 천장이나 식당 하수구 , 수챗구멍 아니면 빈집 창고에 숨어있을지도 모르니 조심스럽게 찾아보세요” 어느새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더니 사단 참모장 부인과 연대장 부인은 선배 가족이랍시며 나의 아내를 강제로 차에 태우더니 탈영병 소재파악을 위한 조치라며 유명한 점장이집에 억지로 데려가더란다. 기독교 신자라서 이런 일은 죽기보다도 싫다 거절하려 했으나 역부족이었고 남편 생년월일을 빨리 대라고 하도 윽박지르는 통에 도무지 생각은 나지 않고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울어버렸노라는 나의 아내, 거의 실신상태가 되어 돌아오는 찻속에서 두 선배부인이 한다는 말이 남편 내조법이라는 책을 읽어본 적이 있는가? “당신의 남편은 지휘관형이 아니라 참모형이라는데 격에 어울리지 않게 지휘관을 하고 있어 이렇게 사단이 시끌벅적한 사고를 유발했으니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된다”며 번갈아 윽박지르는 통에 차라리 죽고만 싶었었노라며 통곡하는 것이었다. 그러던중 갑자기 연대장 사모님이 부르신다기에 영문을 모르고 관사에 들어서는 나에게 유리컵에 든 정종(?)한잔을 주면서 원기회복에 필요한 특효약이라며 마시라고 권하기에 엉겁결에 마시고 나니 그게 바로 부적 태운 재를 술에탄것이란 말을 듣고 하도 역겨워서 얼마나 구토를 했던지. 부대에 돌아와 집무실에 홀로 앉아 방탄복을 매만지며 “최 일병 어디 있니? 내가 달려가 주마. 나를 쏠 테면 쏴라.” 어차피 부대지휘 작전에 실패한 책임은 지휘관인 내가 져야할 거니까..그가 총기살인 후 무장탈영한지 3일째 되는 날 총기자살을 결심한 그의 총성 1발이 단서가 되어 피투성이가 된 채 신음하고있던 그를 나의 가슴에 안았을 때 그의 눈빛이 애처로워 울고 있었다. “대장님예. 용서해 주이소. 그리고 살려주이소. 지는 살고싶어예”
“최 일병! 너 조금만 참지 왜 그랬어?”“아부이하고 외삼촌을 쥑이려고 탈영했습니더. 그런데 이제는 다 틀렸습니더. 용서해 주이소 대대장님 존경합니다. 잘못했어예.”
“대장님예! 지는 거러지가 아니라예. 모든 대대원이 지를 거러지 취급하는 게 싫었어예”
결국 최 일병에게 쏠린 대대 장병의 과잉친절이 빚은 결과가 이렇게 엄청난 뒤범벅으로 만들어지고야 말았던 것이다.“최 일병! 배고프지 않어? 아픈데는 없어? 너 한번 웃어봐!” 보는 놈마다 지나는 놈마다 툭툭 머리를 동네북인양 쳐대며 한마디씩 줏어대었었다니 그가 어찌 견딜 수 가 있었겠는가?
”대장님예! 지는 거러지가 아니라예!“ “내가 죽거든 할무이곁에 묻어주이소. 그리고 대장님예 용서해 주이소”
“ 저세상에 가서라도 대장님의 은혜를 꼭 갚을낍니더!”
6개월 간 남달리 깊은 정이 들었던 그와 마지막 나누었던 이별의 말은 “ 0복아! 부디 편히 잘 가거라.!”였다.
“그 사람은 내 재산 절반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라며 언젠가 최 회장이 가장 절친했던 전 사장에게 입버릇처럼 얘기하는걸 들었노라며 은근히 내게 귀띰해주던 박 중령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돌아왔다.
“박 중령! 세상에 기구한 사연도 많아. 자네 대대의 숙원사업인 급수문제는 참모장이 방문선물로 주고가겠네. 이다음에 최 회장님께 고맙다고 큰절 한번 해야될걸...”그리고나서 단한번 박 중령도 최 회장도 만나본 적이 없었는데
수년전에 최 회장님께서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최근에 접하고 가슴이 몹시 아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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