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의 저주가 끝남 예수의 죽음 이후 스승을 잃고 방황하던 제자들은 한 놀라운 광경을 경험하게 됩니다. 작은 다락방에 모여 마음을 같이 해 기도하던 중 세찬 바람소리와 함께 불길 같은 모양을 한 혀들이 갈라지며 각 사람 위에 내렸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모두 성령으로 감동되어서 각각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시작된 사건이었습니다.
그때가 유대 추수 절기인 오순절이었고, 각 나라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명절을 지키러 모였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던 사람들이 각각 자기네 말로 알아듣게 된 것입니다. 배운 것이 없는 예수의 제자들에게서 세상의 모든 언어 장벽을 넘어서는 신기한 말들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하는 방언은 대부분 남이 알아들을 수 없지만, 오순절에 제자들이 한 방언은 누구라도 알아듣게 하는 방언이었습니다(행2:1-13).
이것은 인류에게 내려진 바벨탑의 저주가 끝났음을 선언하는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 사람들은 흩어지지 않기 위해 도시를 세우며 탑을 쌓았고, 높이 올라 이름을 빛내려 했지만 결국 언어가 혼란하게 되어 말을 서로 알아듣지 못하고 온 땅에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언어가 혼란스럽게 되었다 하여 그 도시를 바벨이라 불렀고, 언어의 장벽이 생긴 시작이 바벨탑 사건이었습니다. 인간은 꼭 외국어를 써서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말을 써도 마음이 다르고 입장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인류는 민족과 문화와 종교를 달리하며 끝없는 분쟁에 시달려 왔습니다. 정치는 말할 것도 없지만 같은 종교 안에서도 서로 자기 교파의 주장이 옳다고 싸웁니다. 생각이 다르고 목적하는 것이 달라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몇 사람이 모여도 분열하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사랑해서 함께 살게 된 부부도 서로 말이 통하지 않게 되어 오늘날 결혼한 부부의 절반 이상이 결별하는 실정입니다.
더 근원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선악과의 저주였습니다. 선악과를 먹고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 같이 되려한 인간은 자신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주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판단은 절대적이지 않기에 다른 사람의 판단과 충돌하게 됩니다. 판단하는 일에서 다툼과 분열이 생기고 살인과 전쟁이 생깁니다. 선악과를 먹은 인간은 자기 판단을 절대화하고 높아지려 하다가 결국 바벨탑의 분열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선악과의 저주가 뱀의 독처럼 온 인류의 피 속에 흘러, 어디를 가든지 인간은 선악의 판단으로 다툼과 분열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죽음과 부활을 통해 나타난 사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건은 선악과를 먹고 바벨탑의 저주 가운데 있는 인간 행위의 절정이었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사신 예수는 자기 뜻대로 살려 하는 자들에게 맞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내 뜻대로 살자면 “내 뜻대로 마옵시고” 하신 예수를 죽여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선’이라는 탈을 쓴 종교의 결말이고, 자기중심으로 사는 인류의 결론이었습니다.
제자들에게는 그들이 기대 했던 마지막 사람의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는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줄 최후의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린 예수에게서 그들이 기대했던 어떤 것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던 스승이었지만, 예수에게서 세상의 기대도 종교적 소망도 모두 끝이 났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를 철저히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시 사셨다는 것입니다. 부활은 제자들의 관념과 시각을 뒤집어 놓은 혁명이었습니다. 죽임 당한 예수가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는 살아 있는 자이며, 세상이 무시했던 그가 하나님이 참으로 인정하는 분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버렸던 사람에게서 인류가 잃었던 소중한 보화가 감춰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뒤 제자들은 모든 것이 변하게 된 것입니다.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모여들었고 제자들이 하는 말을 언어의 장벽을 넘어 모두 알아듣게 되었다는 것은 인류 사회에 새로운 여명이 밝아 옮을 상징하는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신 사람을 우리가 버렸다.”는 베드로의 설교에 회개가 시작되었고, “우리가 버린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 그가 사망에 메여 있을 수 없었다.”는 말씀에 온 인류가 하나로 만나는 자리가 생긴 것입니다. 선악과의 정죄와 바벨탑 분열의 저주가 끝나게 된 것입니다.
벽이 허물어진 사회 놀라운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함께 먹고 모든 소유를 함께 쓰며 재산을 팔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날마다 한 마음으로 모여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고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게 되었습니다(행2:14-42).
막힌 담들이 허물어졌고, 원수 되었던 것들이 십자가로 원인무효가 되었으며, 도저히 만나 질 수 없었던 유대인과 이방인까지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습니다. 모두 한 아버지 밑에서 형제가 되었습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이 터를 닦았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머릿돌이 되셨으며, 서로 연결되어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성전으로 함께 지어져 갑니다(엡2:11-22). 이것을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이라 불렀습니다(엡1:23).
거대한 통나무에는 혼자 살기도 비좁지만, 판자 조각들이 모여 지어진 집은 많은 사람의 거처가 될 수 있습니다. 크고 위대하고 잘난 사람이 되려하면 남을 눌러야하고 다툼과 분열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판자 조각처럼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은 모여질 수 있습니다. 서로를 필요로 하기에 연합하기를 좋아하고 누구와 더불어 서라도 화평을 누리고 살 수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원수 같았던 유대인과 이방인도 하나가 되었습니다. 언어와 문화와 종족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벽이 없이 하나로 만나지는 경험이었습니다. 나라와 생각과 이해와 깨달음이 다르다 할지라도 모두 만나질 수가 있습니다. 누구라도 하나 될 수 있는 사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능력으로 평가받고 버려지는 사회에서 사람이기만 하면 사회, 누구라도 존귀하게 여겨지고 복된 인생을 살 수 있는 사회, 교회는 인류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마지막 방주로 탄생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