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과 남극: 운동의 새로운 생산
2019, 01, 03. 소한 사흘 전.
움직이지 않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것이, 즉 정지보다 운동이, 불변보다 변화가 자연 상의 이치일 것이다. 그럼에도 지구가 움직인다고 현실에서 느끼고 사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또한 움직인다는 것을 설득으로 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누구에게나 학습과 노력이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다. 스스로 깨달음의 길을 가는 길이 있을 뿐인데, 소크라테스는 그 길이 욕망의 길이라고 본 것 같다. 욕망은 탐욕이 아니다. 욕망은 오랜 우여곡절의 과정을 겪었으며, 실증적으로 움직임에 대해 안으로 또는 깊이 있게 생각하게 된 것은 2백년이 채 안 되는 것으로 보인다. 영혼이 움직임으로서 파악되기는 오래되었지만, 생명체의 활동이 자체 욕망으로 보는 것은 최근래의 일일 것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로 움직임의 연속에서 한 가지 양태에서 다른 양태로 이행이 있었을 것이고, 소위 말하는 내적 작동에 의한 탈영토화가 이루어진다는 것도 요즘의 이야기가 아닐까.
사회의 작동이 지성의 발달로 생산물에 의해서 변화가 촉진되고, 나아가 의식의 변화를 가져왔다고들 한다. 작년 한해의 흐름으로 보아 한반도는 세계정세 상으로 변화의 변곡점에 있는 것 같다. 미래는 미결정이지만, 다음의 길을 마련하는 고등양식을 지닌 인류는 여러 선들의 계열들에서 다음측정을 발명하고 만들면서 나아가는 것 같다. 이런 사유는 오래된 사유가 아니다. 19세기는 정지에서 운동으로 관점을 바꾸는 시기였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달리 사유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자석에 대한 이야기가 표면적으로 전개된 것은 지남철 위에 전류를 흘려보냈을 때, 자침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전류의 흐름과 자기의 흐름이 무슨 관계일까? 덴마크의 과학자 한스 외르스테드는 1820년 전류가 자기장을 만든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말굽자석이 공명현상이 있듯이 전기의 흐름에도 공명현상과 유사한 유도 현상이 있다. - 전자기유도현상은 마이클 패러데이와 요셉 헨리가 1831년 독자적으로 발견하였지만, 패러데이가 그의 연구 결과로서 처음으로 출판하였다. - 유도 현상은 떨어져 있는 두 회로 중에 하나에게 전류를 흐르게 하면 다른 회로에도 전류가 흐르게 된다는 것이다.
생명체나 인간도 전기의 흐름에 영향을 입고 있다. 생명체는 철이나 구리 같은 전도체가 아니라고 해도 전류의 흐름을 차단하지 못한다. 게다가 1953년 발명 이래 반도체에서, 전자는 낮은 온도에서는 흐르지 않다가 상온에서는 흐른다. 즉 운동이 활발해 진다. 사람들이 생각하를, 신체를 지닌 생명체가 물질로만 다루기에는 다른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물체들과 달리 상온을 유지 한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1980년 후반 이래로 시냅스 사이의 물질이동이 전류가 아니라 화학적 이온의 이동이라는 사실도 알려졌다.
사람들은 생명체 또는 인간의 신체에서, 운동에 대해 데카르트식으로 전체 운동량이 일정하다는 가설위에 교환과 교대해도 총량 불변이라 본다. 교환과 교대가 삶의 내재적 영향이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을 기우리지 않았다. 이에 비해 라이프니츠와 뉴튼 이래로 중력이 미치는 힘의 총량이 일정하다는 사고에서, 중력이라는 개념을 통해 태양계에도 지구 위의 물체들에도 설명하게 되고, 이에 걸맞게 생명체에도 마찬가지의 법칙이 내재할 것으로 보았고, 물질적 체계 또는 구조가 인간의 사고에도 적용될 것이라고 여겼다. 총량이 일정하고 원이든 타원이든 일반적 흐름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 선천적으로 또는 선험적으로 합리적 일 수 있다. 경험의 총합이 선천적 종합과 같을 수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자기장과 전기장의 경우는 교환과 교대(또는 교체)에 다른 양식이 있다는 점이다. 직접적으로 힘이 미치는 운동을 하지 않음에도 힘 또는 에너지가 전달된다는 점이다. 이제는 힘 또는 에너지의 생산과 기원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분위기로 돌있다. 에너지는 태양에서만 오는 것일까? 자기장은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지구의 평균 자전속도 시속 1667km이다(평균이라 함은 극지방은 거의 자전속도가 없고 열대 지방의 자전 속도는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얼핏 생각해보면 운동하지 않는 곳은 춥고 운동이 많은 곳이 더운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아니다. 지구 표면의 추위와 더위는 확실히 태양에너지의 역할이다. 그런데 지구의 속(안)에 마그마는 무엇인가? 운동에 의해 생긴 것이 아닌가.
지구의 자전 운동이 만든 어떤 힘과 에너지로 인해 지구의 내부에서 열 덩어리가 있고, 또한 내부의 운동에 의한 지구 표면으로 미치는 영향은 단지 지진이나 해일과 자기장만은 아닐 것이다. 지구의 변화의 영향으로 생명체의 생태계 변화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간략히 말하면 지구의 운동은 북극과 남극만을 만들 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가 변화하는 과정을 만들고 있고, 게다가 그 과정의 영향으로 생명체도 만들어 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생명체 중의 하나가 인간이다.
온지구는 생명체처럼 살아있는 것은 아니지만 온지구 자체가 생성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다. 들뢰즈 표현으로 생명체는 온지구에 붙어 있는 이나 벼룩 정도이다. 안 그런가? 온지구가 겪는 소리의 공명, 전류의 유도와 닮은 것으로 생명체에게 공감과 같은 것이 생성된 것은 그 운동의 일부가 아니겠는가? 단지 그러한 공감, 연민, 자비가 생성되는 것은 단순히 지구의 운동만이 아니라 그 위에서 생명체들이 운동(변화, 변환, 교대, 교체)을 하면서 서서히 만들어지는 과정을 거치고, 그 과정에 무언가 몸에 남아서 유전되고 기억되어, 지구 표면 위에서 좀 다른 운동으로 이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운동으로 이어 감을 탈영토화라고 하면, 또 닮은 종들 사이에서 앞으로 다음측정으로 나아갈 양태의 힘을 발휘하는 것을 탈위상화라고 해보자.
한 나라가 전지구적으로 핵무기의 공포로 식민화 시킬 수 있는 시대는 아닌 것 같다. 단지 예전처럼 몇 나라가 한나라를 파괴시키고 그 복원에서 나오는 인간노동과 자원으로 배불리는 그런 전략도 이제는 잘 되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시기에 북과 남이 전지구적이 아니라 오랜 온지구적 운동의 방식에서 나온 것(기억과 유전)을 잘 살려서, 탈위상화의 노력을 한 세대가 노력하며 이끌어 가자고 하고 싶다. 이것은 허리를 졸라 매자거나 금붙이를 모으자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 반대하여 인간의 띠를 매듯이, 우리가 스스로 이제는 공명, 유도, 공감, 소통을 통해 절단 없는 연결임을 사유할 때일 것이다. 새로운 생성, 새로운 창안. 평화통일 영세중립 코리아! (52LK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