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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과 기억 (1896)』 제3장
Henri Bergson, Matière et mémoire, Paris: PUF, 1990(1919, origine. 1896), 1-9.
제3장 이마쥬들의 잔존 - 기억과 정신
Ch. 3 De la survivance des images - La mémoire et l'esprit 147
우리가 벩송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는 이데아처럼 상부에 정신을 설정할 수는 있어도 영혼은 상부에(공중에) 있지 않고 표면(현재) 그 안에(dedans)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안에”란 신체라는 물체라기보다는 움직이는 힘(역동성) 그 안에 있다는 의미이다. 그 안에 작동하고 있는(en acte) 실재성을 이마쥬라 한다. 그의 용어에서 이마쥬가 문제가 되기에 이 3장을 쓰고 난 뒤에 1장을 썼다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물론 2장과 3장의 몇 부분은 이미 발표된 논문을 수정하였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는 이마쥬가 문제 거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1911년 7판 서문을 다시 쓰면서, 이마쥬가 한편으로 사물로 다른 한편으로 표상으로 다루는 이 물질을 이 둘의 중간쯤(mi-chemin)인 현존(existence) 즉 “이마쥬(image)”라는 개념을 창안하였다고 설명한다.
그러면 현존하는 이마쥬가 과거를 어떻게 끌어내어 현재의 지속을 만들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현재는 점도 잘려진 단면도 아니다. 현재도 지속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이 현재의 지속하는 내용이 무엇일까? - 여기서 우리는 들뢰즈가 말하는 기호의 이중성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마쥬가 언어로서 기호로 등장하는 경우와 실제적 운동으로서 기호로 등장하는 경우가 다를 것이다. 이는 에피쿠로서학파와 스토아학파만큼의 차이를 드러낼 것이다. - 지속하는 내용은 총체적 기억이다. 기억은 추억과 다르다. 추억은 단면 또는 사태의 한 점, 한 단위, 한 요소일 수 있지만 추억은 현재에 와 닿아 있는 과정으로서 즉 형성중인 것으로 또는 만들고 있는 것으로 힘 또는 운동이다. 이런 의미를 잘 들여다보면 힘과 운동이라는 것이 스피노자의 아펙투스와 닮았다. 현실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작동하고 있는 실재성인 것이다.
기억에서 과거들이 층을 이루거나 부분들의 지위를 차위를 차지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추억은 그 위치를 가지고 있다고 여긴다. 그 추억의 고정성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환자들의 경우이며 트라우마가 그 예이다.
기억은 추억들 또는 추억의 분할할 수 없는 덩어리이다. 이 덩어리 중에서 침잠해 있는 또는 현재에 소용이 없어서 마냥 밑에 깊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순수 추억이다. 그렇다고 순수 추억이 현재의 현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 영향을 미치는 방식은 진화론 상으로 생명체가 자기 전개를 할 때 형질이 미치는 영향과 같으며, 형태 또는 형상을 먼저 설정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기억에서 과거들이 층을 이루거나 부분들의 지위를 차위를 차지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추억은 그 위치를 가지고 있다고 여긴다. 그 추억의 고정성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환자들의 경우이며 트라우마가 그 예이다. 추억이 고정되어 있지 않기에 지각에 여전히 영향을 미친다. 추억은 감각과 달리 현전에 있지 않다. 현전이란 오관이 사물을 대하면서 이루어지는 표상들이다. 이 표상들이 반복에서 관념이 형성된다고 여기는 것이 관념연합이다. 그러면 감각이 신체와 연관 속에서 행동에 관련이 있다면, 이에 비해 지각은 기억의 영향을 입어 추억들을 불러들인다. 지각은 의식 상태와 연관이 있지, 감각과 달리 물체에 속하는 거나 물체와 관계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지각으로부터 추억의 실재성을 깨달을 수 있으며, 지각의 확장에서 추억들의 깊이와 부피(신체의 공간과 다르다는 의미에서)가 잔존해 있음을 알게 된다. 심층에서 잔존하는 추억의 덩어리가 무의식인 셈이다. 무의식의 총체는 말 그대로 지나온 과거의 경험적 총체이다. 이를 파악하고 정리하는 선험적 틀이 먼저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이들을 서로 연결하는 유사성과 인접성이 있다고 여기는 것은 반복된 인지과정에서 이루어진 습관에 불과하다. 그 습관은 어쩌면 의식이 자기의 필요와 유용성에 의해 상식처럼 받아들이는 것일 뿐이다. 이런 관심들을 모두 내려 놓으면, 의식에는 기억의 총체가 스물스물 기어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과거가 현재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가. 일반관념을 형성하거나 인과관계와 같은 법칙적인 관념이 있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현재와 순수 추억 사이에 여러 층들을 설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종적 차원의 일반관념이나 류적 차원의 법칙은 현재와 순수 추억사이에서 여러 관계 방식으로 이루어진 조합에 불과하다. 이것을 추억의 평면들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럼에도 현재의 점(지속)과 순수추억에 이르는 기억의 총체는 추억의 평면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즉 위상적으로 존속한다. 이러한 두 측면을 벩송은 꿈의 도식과 행동의 도식으로 설명한다. 전자는 기억의 총량으로 상상하는 것이고, 후자는 평면들을 이용하여 언어로 몸짓으로 현실에서 행동하는데 쓰인다. 의식의 평면들을 가정하는 것은 일반관념의 다수성을 또는 그 관념들의 의미의 다의성을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사는 것이 먼저고 철학은 그 다음이라. 그런데 여기서 사는 것은 생명의 총체적 삶이다. 사람들이 삶에 주의를 하는 것은 삶의 총체에 연관보다 자기 또는 이기심이 활동하는 것이다. 그 삶의 주의는 유용성에 의한 것이다. 총체적 삶은 부분이 전체와 연관 속에서 나오는 것이며, 부분이 아프면 총체도 아프다 라는 것을 깨닫는 삶이다. 부분의 조합으로 삶의 주의와 부분과 총체와 연관 속에서 삶의 선택은 추억을 어떻게 불러내는가에서 차이이다.
일반적으로 정신적 상태가 안정성을 갖는다는 것은 현재와 순수 추억 사이에서 자기 삶에 대한 리듬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 리듬은 인격성이라기보다 종적 차원에서 인간이다. 리듬은 상식적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 리듬이 인격에서 총체성과 연관 속에서 고유한 방식으로 나오는 것을 멜로디일 것이다. 그런데 신체는 총체적 연관 속에서보다 현전에서 삶의 양식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기에 감각적 행위와 더불어 행동해야 한다. 그 행동에서 멜로디보다는 리듬으로 살아간다. 일상으로 상식으로 산다. 그럼에도 심층에서 솟아오르는 힘 또는 역량이 있다는 것을 누구나 느낀다. 그 역량의 분출을 잘 선택하여 자신의 모습을 만들려는 노력이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사랑이며, 요즘 말로 욕망이다. 욕망은 기억의 총체와 더불어 작동하는 역량이다.
이로써 벩송이 첫 작품 DI에서 심층에 존속하며 현재에 작동하는 인격성이 무엇인지를 말할 때 이다. 이 인격성은 기억의 총량이며, 항상 리듬을 넘어서 멜로디를 창발하려는 생성 또는 창조의 역능이다. 그 인격에게 진솔한 자유가 있으며, 그 인격은 신체의 습관을 넘어서, 언어의 관념연합을 넘어서 실제성을 현실에서 실현하려고 한다. 어쩌면 신체와 영혼(인격) 사이에 대칭 또는 평행이 있다고 여기는 것은 습관에 기초하는 것이리라. 이에 비해 영혼은 신체에 언제나 기억 총량을 투여하는 힘(역량)인데 그 힘과 일치한다고 여기는 점에서 신체가 영혼의 대리자 또는 거울일 것이다. 신체가 영혼을 주도하다고 또는 두뇌가 의식을 지배한다고 여길 때, 그 지식은 인지론에 머물 것이다. 그런데 기억의 총량이 더 확장될 때(들뢰즈 표현으로 탈영토화, 탈주 할 때) 인격은 양식을 넘어서 고등양식으로 향하는 것이며, 생산양식의 변전의 사회만큼이나 생명 양식의 변형을 가져다 줄 것이다.
남북이 만나는 점에서 두 평면이 만나는 것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기억 총량의 확장과 변형을 생각한다면 생명 양식의 변화를 또는 새로운 인격되기가 이루어질 것이다. (51QKC)
제3장 이마쥬들의 잔존 - 기억과 정신
순수 추억 Le souvenir pur 147-152
현재는 무엇으로 되어있는가? En quoi consiste le présent (152-156)
무의식 De l'inconscient 156-165
과거에서 현재로 연관 Rapport du passé au présent 165-173
일반관념과 기억 L'idée générale et la mémoire (173-181)
관념 연합 L'association des idées (181-186)
꿈의 도식과 행동 도식 Plan du rêve et plan de l'action (187-189)
의식의 다양한 평면 Les divers plans de conscience (189-192)
생의 주의 L'attention à la vie (192-194)
정신적 균형 L'équillibre mental (194-198)
신체의 운명 Destination du corps 196-198.
*** 내용
Ch. 3 De la survivance des images - La mémoire et l'esprit 146.
제3장 이마쥬의 잔존 - 기억과 정신 [정신 -> 영혼]
[그리고 기억의 내용들은 꿈과 유사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정신의 삶 속에서 더욱 규칙적으로 침입할 때 지적이 균형을 심히 혼란스럽게 하지 않는 경우란 드물다. / 이 기억(mémoire)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디서 유래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우리는 다음 장에서 보여줄 것이다.(94)] [기억이 어떤 태도나 운동 속에 점차 삽입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우리는 다음 장의 결론들에 관해 조금은 예상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109)]
[우리는 이 잠재적 상태[기억]들을 더 깊이 연구할 것이고, 심리적 작용들과 심리-물리적인 작용들의 내적 작동 방식 속으로 더 깊이 파고 들어가 어떤 연속된 과정에서 의해서 과거가 현실화되면서 그것의 상실된 영향력을 되찾게 되는지를 보여줄 것이다(146, 제 2장 마지막 구절)]
순수추억
- Le souvenir pur 147-152
순수추억, 이마쥬-추억 지각이라는 세 항들을 구별한다(147)
#베르그송의 「제2도표」 (147) 우리가 이름짓기를, ‘일차원적 선형도표’ [일차적 선형으로 표시된 의식의 흐름, 순수추억, 추억-이마쥬, 지각, [순수지각]이다. 여기서 항들의 구별은, 구조주의가 구별하는 것과 같을 경우에, 관여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마쥬추억(표상)과 행동(신체지각)사이에 분절(articuler)이 있듯이, 각각에는 분절이 있음을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 지각까지는 사유의 부분이고 순수지각이라는 것은 물질의 기능적 한계일 것이다. - 덧붙여서 이 도표는 프로이트의 무의식 전의식 의식의 차원과 유사하게 보인다. 베르그송은 흐름의 선형을 일차원적으로 설명한 것일 뿐이다.]
우리의 사유는 이 선을 A에서 D로 가는 연속적인 운동의 선을 묘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고, 그 항의 하나가 어디에서 끝나고 다른 항은 어디에서 시작하는지 정확하게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148) [사유에서 행동의 방향을 말한다.]
과거 일반 속에 위치하기 ... 이는 사진기의 초점 맞추기와 유사한 모색의 작업이다. 그러나 우리 추억은 여전히 잠재적(virtuel) 상태에 머물러 있다. (148)
관념연합론의 오류 ...생성의 연속성 대신에.. 부동적이고 병치되어 있는 다수의 불연속적인 요소들로 대치하는 것이다.(148) ... 관념연합론의 원리는 심리 상태가 일종의 원자, 단순한 요소이기를 원한다. (149) 관념연합론은 ... 지각은 이마쥬-추억을, 이마쥬-추억은 순수 추억을 대치할 것이다. 그런 이유로 순수 추억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어버린다. ... 이 두 상태 사이에 정도의 차이 또는 강도의 차이 이상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거기서부터는 강한 상태와 약한 상태의 구별이 비롯되는데, 우리는 전자들을 현재 지각으로 후자들을 과거의 표상으로 삼을 것이다. (149) .. 이 실현된 어떤 것에서 그것의 흔적을 찾으려고 해보아야 헛된 일이다. 그것은 빛 아래서 어둠을 찾으려는 것과 같은 것일는지 모른다. 거기에 바로 관념연합론의 오류가 있다. (150) [깨어나서 꿈을 묘사하려 해보라 사라지는 것이 더 많다. 대부분의 해석을 위한 꿈은 현실과 타협에서 만들어진 것이다.(51PME)]
[심리학자의 경우에] 상상하는 것은 추억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추억은 그것이 현실화됨에 따라서, 이마쥬 속에서 살아가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역은 사실이 아니다. (150) ... 기억의 진행과정은 바로 물질화하는(matérialiser) 것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통에 대한 기억이 진실로 본래 있었던 고통인가를 아는 일이다. 최면에 빠진 사람은 사람들이 그에게 덥다고 끈질기게 반복하면, 마침내 덥다고 느낀다.(150) ... 한 감각의 추억이 연장되어 이 감각 자체가 된다는 사실로부터 그 만큼 추억도 하나의 시발적인(생겨나는) 감각이었다고 결론지어서는 안 된다. 사실상 이 추억은 ... 최면술사의 역할을 함에 틀림이 없다. 따라서 우리가 비판한 논증은, 이런 형태로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 (151) [최면에는 의식의 단절이 있다. (51PME)]
[또] 예를 들어 한 큰 고통의 추억이 단지 미약한 고통에 불과하다면, 거꾸로 내가 느끼는 강렬한 고통이 약화되면서 끝내 재기억 된 큰 고통의 상기가 될 것이다. 그런데 내가 느끼는 것이 내가 체험한 미약한 감각인지, 아니면 내가 상상하는 미약한 감각인지를 말하는 것이 불가능한 순간이 분명히 도래한다. .. 그러나 이 미약한 상태는 결코 나에게 어떤 강렬한 상태의 추억처럼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추억은 그와 전혀 다른 것이다. [심리학자의 상상의 오류를 지적한 것이다.] (151)
관념연합론의 착각(l'illusion)의 뿌리는 .... 결국 외적 지각의 대상과 본성에 관한 거짓된 관념에 근거한다. (151)... 추억은 더 이상 대상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단순히 더 강한 법칙 덕분에 지각이 추억을 대치하고, 우리의 현재를 구성하면서 지각과 추억사이에 정도의 차이만을 발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나의 현재는 나의 관심을 야기하는 것이고, 나를 위해 살고 있는 것이며, 말하자면 나의 행동을 촉발하고, 반면에 나의 과거는 본질적으로 무능(impuissant)하다. 이점을 더 깊이 탐구해보자. 나의 현재는 추억을 현재적 지각과 대립시킴으로써 우리가 순수 추억이라 부르는 것의 본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152)
현재는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 En quoi consiste le présent 152-156)
현재적 순간(le moment présent)이란 무엇인가? ... 흐르는 순간(l'instant)을 현재라고 부른다.... 실재적이고 구체적이고 체험된 현재는 필연적으로 어떤 지속을 점유한다. ... 나의 현재라고 부르는 것은 나의 과거와 나의 미래를 동시에 잠식한다. (152)... 내가 나의 현재라고 부르는 심리적 상태는 직접적 과거에 대한 지각임과 동시에 직접적 미래에 대한 결정(détermination, 규정)이다. ... 따라서 나의 현재는 감각인 동시에 운동이다. 그리고 나의 현재가 하나의 불가분의 전체를 형성하기 때문에, 이 운동은 이 감각에 기인하며 그것을 행동으로 연장한다. 이로부터 나는 나의 현재가 감각들과 운동들이 결합된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결론짓는다. 나의 현재는 본질적으로 감각-운동적이다. (153)
그것은 나의 현재란 내가 나의 신체에 대해 가지는 의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나의 신체는... 행동의 중심이고, 받은 인상들이 완성된 운동들로 변형되기 위해 자신의 길을 영리하게 선택하는 장소(le lieu)이다. 따라서 나의 신체는 나의 생성의 현실적 상태, 나의 지속 속에서 형성 중에 있는 것을 나타낸다. 더 일반적으로는 실재 자체인 생성의 이 연속성 속에서 현재적 순간(le moment présent)은 흐르는 유동체 속에서 우리의 지각이 실행하는 거의 순간적인 절단에 의해서 구성된다. 그리고 이 절단이 바로 우리가 물질적 세계라고 부른 것이다. ... 공간 속에 연장되어 있는 한에서, 물질은 끊임없이 새로 시작하는 현재로 정의되어야만 하기 때문에, 거꾸로 우리의 현재는 우리의 존재의 물질성 자체, 즉 감각들과 운동들의 전체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전체는 결정된 것이며 지속의 각 순간에 유일한 것이다.(154)
나의 현실적 감각들은 내 신체 표면의 결정된 부분들을 점유하는 것들이다. 반대로 순수 추억은 내 신체의 어떤 부분에도 관련되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구체화되면서 감각들을 생겨나게 할 것이다. (154) ...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은 ... 감각과 추억 사이에 모든 본성의 차이를 미리 삭제했기 때문에... 추억을 물질화하고 감각을 관념화한다. ... [이들의] 착각(l'illusion)은 감각 속에서 떠다니는 비연장적 상태를 본다는 것이다. 이 상태가 연장을 획득하고 우발적으로(par accident) 신체 속에 고정되는 것이다. 이 착각으로부터... 방편을 취하게 되는데, 감각은 본질적으로 외연적이고 위치화되어 있다고 하고 그것이 운동의 근원이라 한다. - 순수추억은 비연장적이고 무기력하기 때문에 어떠한 방식으로라도 감각에 참여하지 않는다.(155-156) [감각에 참여는 행동에 있다(51PME)] .
내가 나의 현재라고 부르는 것은 무매개적 미래에 대한 나의 태도이자 나의 긴박한 행동이다. ... 이마쥬로 현실화된 추억은 순수 추억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마쥬는 하나의 현재적 상태이고, 자신이 유래한 추억에 의해서만 과거에 참여할 수 있다. 반대로 추억은 그것이 무용하게 남아있는 한 무력하기 때문에, 감각과의 모든 혼합으로부터 벗어나 순수하고 현재와 어떤 접촉도 없으며, 따라서 비연장적으로 남아있다. (156)
무의식에 대해
De l'inconscient 156-165
순수 추억 어떻게 잠재적 상태로 보존되는가(se conserver)하는 것은 그것의 근본적인 무력함을 볼 때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156) ...
그러나 의식이 단지 현재의 특징적인 표시 즉 현실적으로 체험된 것의 표시 즉 작용하는 것의 특징적인 표시일 뿐이라면, 그 때 작용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필연적으로 계속 존재하는데도 의식에 속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156) 다른 말로, 심리학적 영역에서 의식은 존재와 동의어가 아니라 단지 실제적 작용 또는 직접적 효율성과 동의어이다. ... 무의식적 심리 상태, 요컨대 무력한 심리상태를 표상 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을 덜 갖게 될 것이다.(157) 신체적 기능을 수행하는 존재자에게 의식은 특히 행동을 주재하고 선택을 조명하는 역할을 한다. ....그 나머지는 그늘 속에 머문다.
착각- 사람들은 의식이 ...우발적으로만 실천적이며 본질적으로 사변을 향하는 기능이기를 바란다.(157) [이 착각의 기원은 비연장을 연장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착각이다(40), 추억과 관념을 이미 이루어진 사실로서 받아들이는 착각(144)]
모든 실재적인 것은 현실적이라는 결과에 이를지 모른다. 그러나 의식에게 진정한 역할을 돌려주라. 내가 물질적 대상들을 지각하기를 멈출 때 그것들도 존재하기를 그친다고 가정할 이유가 없듯이, 일단 지각된 과거가 사라진다고 말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157)
무의식적 표상 ... 지각되지 않은 물질적 대상이 있고, 상상되지 않은 이마쥬가 일종의 무의식적 정신상태가 아니라면 무엇이 될 수 있겠는가? 내 의식에는 부재하지만 존재하는 바깥세계[내방이외 종로도로, 광주, 제주도, 파리]들을 무의식적 상태로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 자체로 존재 할 수 있겠는가? [문제가 있다. 의식내의 존재와 의식외 존재는 구별되어야 하고] 의식 밖의 존재가 대상에 대해 작용할 경우에 분명하고, 주제에 대해 말할 때는 모호한 점은 어디에서 오는가? [의식 밖이란 현실적으로 활동의 의식 밖을 지칭한다. 그래서 무의식도 의식 밖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교묘하게 베르그송은 전개한다. 지각되지 않은 대상이 존재한다고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리의 지각은 현실적이든 잠재적이든 두 노선을 따라 펼쳐진다. 하나는 AB라는 수평선인데, 그것은 공간 속에서 동시적인 모든 대상들을 포함하며, 다른 하나는 CI라는 수직선인데, 시간 속에서 이어지면서 배열된 우리 기억들이 그 위에 놓인다. 두 선분의 교차점인 I는 우리 의식에 현실적으로 주어진 유일한 점이다. (159)
# 베르그송의 「제3 도표」(159) [‘의식의 이차원적 좌표화’, AB의 좌우 수평으로 펼쳐지는 의식은 지각하는 실재성이다. 이 극한은 지각되지 않는다고 해도 실재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CI 수직으로 내려오는 의식은 기억의 현재화 방향이다. 즉 I 현재이며 지각하며 행동하는 현실적 자아의 위상이다. 기억과 지각의 만남에서 인식이 생성 또는 성립된다. I가 수직 아래로 전진하면 현재의 지속하는 흐름인 셈이다.]
... 이 착각(l'illusion)[지각이외 것과 추억이외의 순수추억이 없다는 점]을 완전히 벗어나기 위하여, ...그때 공간은 거기서 서로 병렬되는 사물들을(choses) 무한히 보존하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시간은 그 안에서 잇따르는 상태들을(états) 나타나는 족족 파괴할지 모른다. (159)
공간 속에서 거리는 시간 속에서 위협(menace) 또는 약속(promesse)를 나타낸다. 그리하여 공간은 이처럼 우리의 접근 미래의 도식을 우리에게 단번에 제공한다. 그리고 이 미래는 무한히 흐르고 있음에 틀림없기 때문에, 미래를 상징하는 공간은 그 부동성 속에서 무한히 열린 채로 머무는 속성을 갖는다. (160)
실재성이 부피인 한에서 우리지각을 무한히 넘어서는 것처럼 우리에게 나타나는 반면에, 우리의 내적인 삶에서 현재적 순간과 함께 시작하는 것만이 우리에게 실재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 나머지는 거의 폐기된다. 따라서 하나의 기억이 의식에 다시 나타날 때는 그것의 불가사의한 출현을 특수한 원인들에 의해서 설명해야 하는 유령(revenant, 망령)의 효과를 우리에게 만들어 낸다. 추억이 우리의 현재 상태에 유착되어 있는 것은 지각되지 않은 대상들이 우리가 지각하는 대상들에 유착되어 있는 것과 똑같이 비교될 수 있다. 그리고 무의식(l'inconscient)은 이 두 경우에서 같은 부류의 역할을 한다. (161) [무의식은 무(non)-의식이 아니다.]
공간 속에서 동시에 배열된 대상들...시간 속에서 계속해서 전개되는 상태들 ... 따라서 표상들의 순서는 전자의 경우는 필연적이고 후자의 경우는 우연적(contingent)이다. 이 필연성은 내가 실체화한(hypostasier) 것이다. ... 지각되지 못하는 대상들의 전체가 주어져 있다고 가정하는데 있어서 내가 어떤 불편함도 느끼지 못한다면,(161) .... - 그러나... 우리의 기억도 동일한 종류의 연쇄를 형성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모든 결단들에서 항상 현재적인 우리의 성격(les caratères, 인격)은 우리의 모든 과거 상태들의 현실적 종합이라는 것을 보게 되리라. 이 응축된 형식 하에서 우리의 앞선 심리적 삶은 우리에게 외부세계 이상으로 현존한다. 외부세계에 대해서 우리는 그것의 작은 부분만을 지각할 뿐인데, 반대로 체험된 경험에 대해서는 그 총체성(la totalité)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162) [여기서 인격과 성격은 동일하다. 경험적 과거의 현실적 종합 즉 경험 형이상학의 기본설정이다]
그러나 그처럼 완전한 소멸이나 변덕스러운 소생으로 보이는 것은 단순히 현실적 의식이 매순간 유용한(l'utile) 것을 받아들이고, 잉여분(le superflu)을 순간적으로 물리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162)
따라서 우리의 지각들이 공간 속에서 엄밀한 연속성으로 배열되는 바로 그 이유들에 의해 우리의 기억들은 시간 속의 불연속적인 방식으로 드러난다. 우리는 공간 속에서 지각되지 않은 대상들과 시간 속에서 무의식적인 기억들에 관해서 근본적으로 다른 현존(l'existence)의 두 형식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에서 행동의 요구는 후자의 경우에서 행동의 요구와 역전된다. (162-163)
...현존(l'existence)은 두 개의 통합된 조건을 함축하는 것으로 보인다. 10. 의식에 표상 20. 논리적 연결 또는 인과적 연결 즉 그렇게 표상된 것이 앞선 것과 뒤따르는 것과 맺는 연결(connextion). ... [A] 연결이 덜 밀접할 경우... 과거에 의한 현재의 결정은, 우연에 커다란 자리를 남겨주면서, 수학적 함수 도출의 성격은 아니지만 - 의식에 나타난 표상은 완전하다(parfait). 왜냐하면 현실적 심리상태는 우리가 그 내용을 지각하는 행위자체 속에서 우리에게 그 내용의 총체를 넘겨주기 때문이다.(163) [B] 반대의 경우. 연결이 완전한 경우. 의식에 나타나는 표상은 부분적이다 [현실적 행위에 맞는 인과관계이기 때문에 많은 다른 부분들이 빠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보게끔 하는 것보다 무한히 더 많은 것을 자신 뒤에 숨기고 있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존재(existence 현존)는 ... 의식적 이해[10]와 규칙적 연결[20] 동시에 그러나 다른 정도[정도의 차이]로 함축하고 있다. (164)
[이에 대한 철학사적 해명] 우리의 오성은 상이한 비율로 혼합된 두 요소들의 현전(presence)을 인정하기보다 이 요소를 분리하여, 하나는 외적 대상에[부피 속성] 다른 하나는 내적 상태에 [사유속성] .. 두 개의 존재 양태로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의식의 상태들의 존재는 의식에 의한 파악으로 이루어질 것이고 외적 현상들의 존재 동반(concomitance)과 계속(succession)의 엄밀한 질서로 이루어질 것이다. ... 심리적 상태의 존재... 외적 현상의 존재(164) [심리 상태는 기억과 연관이, 외적 현상은 지각론과 연관이 있다]
첫째 착각: 물질에 대한 우리의 표상을 거짓으로 이르게 한다. 둘째 착각: 무의식의 관념 위에 인위적인 모호성을 퍼뜨리면서 정신에 관한 우리의 개념규정을 손상 입힌다. (164)
우리의 과거 심리적 삶은 그 전체가 우리의 현재 상태를 필연적 방식으로 결정함이 없이 조건 짓는다. 또한 이 삶 전체가, 비록 과거 상태 중에 어떤 것도 삶 전체에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우리들의 성격(caractère, 인격)에 드러난다. 이 두 조건들이 통일되어, 과거의 심리적 상태들의 각각에 무의식적이지만 실제적인 존재(현존)를 보장한다. (164-165)
과거에서 현재로 연관
-Rapport du passé au présent 165-173
추억이 어디에 보존되는지? 우리는 물리화학적인 현상들이 뇌 속에서 일어났고, 뇌는 신체 속에 있고, 신체는 그것이 잠겨있는 공기 속에 있다는 등을 상상한다. ....(165) [내가 아니라도 어디에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한다. 그것은 정신이 신체를 이탈할 수 있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기억은 인간의 현상이라는 점에서 인간과 더불어 있다..]
사람들은 한 사물이 다른 사물 속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므로 그것이 (자체적) 보존이라는 현상을 결코 해명하지 못했다. (166) [속에(dans)라는 공간적 설명 또는 위치 설정으로 해명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과거의 그 자체적인 잔존(surviviance en soi)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생각하는데서 느끼는 곤란은 단순히 우리가 공간 속에서 순간적으로 포착된 물체들의 전체에만 적용되는 포섭관계[포함하는 것과 포함된 것의 관계] 의 필요성을 시간 속에서 기억들의 계열에 부여한다는 사실로부터 비롯된다. 근본적인 착각은 지속 안에서 우리가 실행하는 순간적인 절단면들의 형식을 흐름의 과정 중에 있는 지속 자체에 이전하는 데 있다. (166)
현재란 단순히 생성되는 것(ce qui se fait)인데, 당신은 현재 있는 것(ce qui est)이라고 독단적으로 정의한다. 이 현재는 대부분 무매개적 과거로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 빛에 대한 가능한 가장 짧은 지각이 지속되는 한 일초에도 수조의 파동들이 자리 잡고 있는데, 그것의 첫 번째 파동은 마지막 파동으로부터 어마어마하게 나누어진 간격에 의해서 분리된다.(166) ....모든 지각은 이미 기억이다. 순수 현재는 미래를 잠식하는(ronger) 과거의 포착할 수 없는 진행이기 때문에, 우리는 실행에서 단지 과거만을 지각한다. (167)
따라서 과거가 전체적으로 존속한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하기를 혐오[싫어]하는 것은 우리의 심리적 삶의 방향(l’orientation) 자체에 기인한다. 우리의 심리적 삶은 상태들의 진정한 전개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완전히 펼쳐진 것이 아니라 펼쳐지는 것을 바라보는데 관심을 가진다. (167)
두 기억, 하나는 유기체 속에 고정되어 있고.... 기억이라기보다 습관이며... 다른 하나는 진정한 기억이다. 이것은 의식과 공연적(coextensive, 공연적)이다. 각 사실에 자신 위치를 남기고 날짜를 표시하며... 정해진 과거(passée définitif)속에서 실제로 잘 움직이는... (168)
[여기서 공연적이란 수학의 동연적과 다르다. 동연적이란 우주 속에 자아가 중심이며, 그 중심으로 우주를 파악하는 것으로 동일평면의 비례관계이다. 이에 비해 공연적이란 우주와 관계속에(내재성) 있으면서도 우주의 일부이지만, 중심이 아니라, 여러 단자들처럼 우주와 관계맺고 있는 부분이다. 이 부분의 특이성은 다른 부분들과 달리 행위(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이적인 부분이며, 여러 부분이란 분화를 지칭한다. 이 분화는 의식의 분화이며, 선형으로 인간의 의식이 발전하는 것과 관계없다. 분화는 들뢰즈의 의미논리의 「제30계열 환영에 대하여」(p. 249)에서 표현된 것으로 보면, 한 포자 속에 여러 홀씨들이 터져 나오는 것이며,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 2장에서(p. 99) 수류탄이 파편으로 터지고, 그 파편이 또 파편으로 터지는 식으로 외적 불연속 속에 내재적 연속성을 지닌 확산(분화)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제1장의 이마쥬에 대한 해설을 한다]
새로운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신체는 우리의 표상을 언제나 다시 태어나게 하는 부분이자 항상 현재적인 부분, 아니면 오히려 매순간 방금 지나간 부분과 결코 다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마쥬들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이마쥬들은 뇌 속에 있지 않다. 오히려 이 이마쥬들 안에 뇌가 있다. 그러나 다른 이마쥬들 가운데 존속하며 내가 신체라고 부르는 이 특별한 이마쥬는 우리가 말했듯이 매순간 우주적 생성의 하나의 횡단면(une coupe transversale)을 구성한다. 따라서 그것은 받은 운동들과 되돌려 보내는 운동의 통행로(lieu du passage), 나에게 작용하는 사물과 내가 작용을 행사하는 사물들 사이의 연결 선(le trait d'union), 한마디로 감각-운동적인 현상들의 자리(le siège)이다. (168-169)
[의식의 모든 대상들은 횡단면이다. 이런 의미로 쓰인 경우는 들뢰즈의 앙띠-외디푸스 (p. 12)에서, 자아와 대상의 이원적 관계에서 단절과 접속(connexion)관계가 있는데, 그 사이에는 횡단(transverser)이 있다고 한다.]
원뿔(꼬깔) SAB로 나의 기억(mémoire) 속에 축적된 추억들(souvenirs) 총체를 표현하고... 나의 현실적인 표상의 움직이는 평면 P.... S에서 신체 이마쥬가 집중된다.(169)
# 베르그송의 「제4도표」(169) ‘의식의 삼차원적 공간도표’ [삼차원적 공간으로 표시된 이 도표는 「제5도표」 (181)를 설명하기 위한 예비적 도표이다. 이 삼차원에서 고깔의 밑면이 AB이며 꼭지점은 S이다. 「제3도표」와 관련하여보면, S는 현재이며 신체의 이마쥬이다. 현재 S가 선으로 외부 대상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꼭지점으로 “움직이는 평면”(P)과 만난다. P는 우주에 대한 나의 현실적 표상이다. S가 현실적 지각이라면, P는 가능적 지각과 연결된 공간이다. AB의 밑면은 과거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남아 있는 즉 현실적 신체에 효과적으로 등장하지 않은 기억이다. AB는 S와 뗄 수 없는 하나이다.]
신체의 기억(첫째 기억)은 단지 경험의 움직이는 평면 속에 둘째(진실한 기억, 과거기억)을 삽입하는 움직이는 점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 두 기능들이 서로 받침점[들/가, 첨점]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169) ......실제로 하나의 추억(souvenir)이 의식에 다시 나타나기 위해서는 순수 기억(mémoire)의 높이[깊이]로부터 행동이 이루어지는 정확한 지점에까지 내려가야[올라가야] 한다. 다시 말해서 호출(l’appel)은 현재로부터 출발하며, 추억은 그것에 응답한다. 추억은 생명이 주는 열기를 현재 행동의 감각운동의 요소들로부터 빌어온다.(170)
자극에 대해 연장하는 무매개적 반응으로 응답하는 것은 하등 동물의 고유한 특징이다. 이렇게 처신하는 자는 충동자(un implusif)이다. ... 추억들이 현재 상황에 대해 별 이득도 없이 의식의 빛으로 나온다. ... 그는 몽상자(un réveur)이다.(170)
어린 아이에서 자발적 기억의 특별한 발전.... (170) [어린아이의 꿈은 전날의 일의 변형이라고들 한다. 행위에 한정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18세가 넘으면 추상적 사항들을 만들어낼까?]
따라서 지성이 발달함에 따라 기억 외견상 감소는 추억과 행동들이 더 잘 조직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이처럼 의식적 기억은 침투의 힘으로 얻은 것을 부피로(en étendue, 신체로) 상실한다. (171)
...한 선교사의 사례: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 오래 설교를 한 후, 그들 중 한사람이 그것을 원문그대로, 동일한 몸짓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Kay)(171)...... [나의 추억에도 아버지의 말투와 몸짓까지 따라 하면서 흉내는 내는 어른을 보았다. 그분은 아버지를 만난적이 그당시 5년 전이라 했다.]
그러나 우리의 과거는 현재적 행동의 필요에 의해 억제되기 때문에 거의 전적으로 숨겨진 채로 있는 반면, ... 사람들은 최근에 우리에게 수면 중에 감각적 신경 요소들과 운동적 신경요소들 사이에 접촉의 단절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171)
이 점에 관해서 익사자들과 교수형을 받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갑작스런 질식의 특정한 사례에서 일어나는 것보다 더 교훈적인 것은 없다. 다시 살아나게 된 환자는 짧은 시간에 그의 앞에 자신의 삶의 역사적 망각된 모든 사건들이 그 가장 미세한 상황들과 함께 일어났던 순서대로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Winslow, Ribot, Maury, Egger, Rouillard) (172)
꿈꾸는(rêver) 자와 상연하는(jouer) 자 차이: 전자는 부분자 심지어 개별자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며, 한 이마쥬와 다른 이마쥬가 어디서 차이를 나는지 볼 것이다(172-173). ... 후자는 습관에 끌려서 한 상황이 앞선 상황과 실행에서 닮은 측면만 분간 해.... 전자는 자기 관점(vision) 속에 특이성만을 ... 후자는 행동에 맞는 일반성을... 전자는 차이의 추억들에 의해 번역되고 후자는 닮음(유사)의 지각에 의해 번역된다. 이 두 흐름의 합류점에서 일반관념이 생겨난다. (173)
일반관념과 기억
- L'idée générale et la mémoire (173-181)
... 유사성(ressemblace)과 일반성(généralité)이라는 두 개념을 어떤 특별한 측면에서 고찰하면, 기억(memoire)의 본성과 역할을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173)
... 일반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추상화해야 한다. 그러나 유용하게 추상하기 위해서는 이미 일반화 할 줄 알아야 한다. (174)
유명론자는 일반관념에서 외연만 고려하고, .. 관념의 통일성은 .. 모든 구별되는 대상들을 무차별적으로 지칭하는 상징(le symbole)의 자기 동일성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174)
개념론은 내포에서 출발한다.(174) ... 각각의 류(genre)가 현실태로(en acte) 무수한 대상을 내포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대신에, 반대로 사람들은 이제 각 대상이 무수한 류들을 가능적으로(en puissance, 잠세태) 자신 안에 붙잡아 두는 만큼의 성질들을 지니고 있기를 바란다.(175) 개념론은 외연의 관점으로 회귀하여 순환론에 빠진다.
일반화는 단지 공통의 성질들의 추출[유명론]에 의해서만 이루어 질 수 있다. 그러나 성질들은 공통적인 것으로 나타나기 위해 이미 일반화의 작업을 겪어야만 했다. (175)
이 두 적대적 이론은... 둘 다 우리가 개별적인 대상으로부터 출발한다고 가정한다. 첫째[유]는 그것을 열거에 의해 구성하고 둘째[개]는 그것을 분석에 의해 이끌어 낸다. (175)
... 반성적 분석은 이 [눈에 띄는 성질의 또는 유사성의] 감정을 일반관념으로 정제하고, 분별하는 기억(mémoire)은 그것[그 감정]을 개별적인 것의 지각으로 견고하게 한다. (176)
일상적으로 동물의 지각은 유용한 것의 분별에 한정된다. 초식동물을 끌어당기는 것은 풀 일반[일반관념이 형성되어 있다]이다. ... 이러한 일반성과 유사성의 토대 위에 초식동물의 기억은 대조하게 되는데, 이 대조에서 차이화(différenciation)가 나온다. (176-177)
이 유사성은 객관적으로 하나의 힘처럼 작용하며, 전체의 같은 결과들이 같은 심층적 원인들을 따르도록 하는 전적으로 물리적인 법칙 덕분에 동일한 반응들을 야기한다.(177)
겉으로 보기에 상이한 작용들에 대한 반작용의 동일성이야말로 인간 의식이 일반관념으로 발전시킨 씨앗이다. (178) [일반관념의 형성이 우선이다 - 언어 때문일까?]
... 우리가 말한 것처럼 일반화하기 위해서는 유사성들을 추상해야 한다. 그러나 유사성을 이로운 방식으로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이미 일반화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사실인즉 순환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신이 의식적으로 일반화할 때 도달하게 되는 유사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신이 출발한 유사성은 느껴지고 체험된 유사성 또는 자동적으로 작동된 유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이 도달한 유사성은 지성적으로 통각되거나 사유된 유사성이다.(178-179)
기억(mémoire)은 구별들(개별지각과 류의 개념)을 자발적으로 추상된 유사성들에게 접합시키기 때문에, 오성은 유사성의 습관으로부터 일반성의 명백한 관념을 이끌어 낸다. 이러한 일반관념은 그 기원에서 단지 다양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태도의 동일성에 대한 우리의 의식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운동의 영역에서 사유의 영역으로 상승하는 습관 자체이다. ... 류의 일반관념으로 이행했다. ... 오성은 무한수의 개별대상들에 [운동장치의] 제한된 수로 응답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운동장치를 성립시켰다. ... 이 운동장치들 전제가 바로 분절된 말투(parole articule)이다.(179)
정신의 분화하는 두 개의 작용이 한편으로 개체들을 분간하고 다른 한편으로 류들을 구성하면서, 같은 노력을 요구하고 동일한 속도로 진행된다는 것은 어림없다. 첫째 작업은 단지 기억의 개입만을 요구하면서 우리 경험의 시초부터 완성된다. 둘째 작용은 결코 완성되지 않은 채 무한히 계속된다. 첫째는 안정적인 이마쥬를 구성하고, 기억에 축적되며, 둘째는 불안정적이고 사라져가는 표상들을 형성한다.(179-180)
실로 일반관념의 본질은 행동의 영역과 순수 기억의 영역 사이를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다. .. S지점에 내가 나의 신체로부터 즉 어떤 감각-운동적 평형으로부터 가지는 현실적 지각이 있다. [원 뿔] 윗면 AB의 표면 위에는 나의 총체적 추억들이 놓여있다. ...일반관념은 S와 AB 사이를 계속적으로 왕복할 것이다. 이미 만들어진 것(le tout fait)에 만족하는 심리학, 즉 진행(progres)을 무시하고 사물(choses)만을 인식하는 심리학은 이 운동으로부터 그것은 왕복하는 극단만을 파악할 것이다. ... 일반관념은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가는 이중적 흐름으로 이루어지는데, 단어로 결정화되거나 또는 기억으로 사라지거나할 준비가 되어있다. (180) [예름슬레우의 내용과 표현 안에도 이중성이 있다. 내용의 흐름 또는 진동으로서의 실체와 표현의 실체가 있다. 지층적인 측면에서 심층AB가 고른판인 셈이다.]
그것은 결국 다음과 같은 말이 된다. 점S에 감각기제.. AB에 추억 총제, A′B′, A″B″심리적 삶의 무수한 반복들의 자리 ... 꿈의 삶으로 AB로 분산되고... 현실적 실재성에 밀착될수록 S로 집중하려는 경향이 있다. 정상적 자아는 이 두 극단적인 입자들 중 어느 하나에 고정되지 않는다. ... 그 자아는 자신의 표상들[각 분할면]에게 현재의 행동에 유용하게 협조할 수 있는 바로 그만큼의 이마쥬와 관념을 제공한다.(180-181)
# 베르그송의 물질과 기억의 「제5도표」 (181), 즉 ‘의식의 내부평면의 고깔도표’ - [고깔도표는 삼차원으로 된 「제4도표」의 내용을 좀 더 보완하면서, 기억의 일반관념의 형성을 설명한다. AB 밑면(추억의 총체이기도 한)을 추억의 극단(무의식)으로, S를 현실적 인식으로 보자. 지각의 범위인 외부평면(P)과 달리, 고깔 속에서 수평의 단면들(sections)들은 기억의 반복을 의미한다. 이 반복의 밑바탕으로 향하는 것은 꿈의 방향과 같다. 그러면 현실에 점점 다가가는 A′B′, A″B″의 단면들은 의식의 관심 증대이며, 재인식에 연관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순서상 AB로 물러나는 것은 무관심으로 S로 접근하는 반복은 주의 깊은 재인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일상적(정상적) 자아는 S와 AB 사이에서 작동한다.] [사회적(통상적) 자아는 S가 P면에서 활동(연계)한다. 평범한 자들은 P면과 함께 진행하는 한 점(면)이다. 이에 비해 특이자 또는 탈주자는 P면에서 S로서 균열을 내고 솟아나는 되기 생성을 한다. (51PME)]
관념들의 연합
- L'association des idées (181-186)
[흄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두 사건(항) 사이의 연속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무엇이 이 연결 작용을 하는지, 연결되었다고 어떤 접속(연접, 선접, 대립) 관계인지를 구별하게 해주는 것인가? 어디에서 차이가 발생하는가?] [그런데 들뢰즈/가타리의 배치는 접속(connexion)의 문제이다. (51PME) ]
이 하부 정신적 삶(la vie mentale inférieure)에서[즉 깔데기 밑에서] 관념 연합의 법칙이 연역될 수 있다. - 그러나 이전에 연합에 대한 현행이론을 보자. (181)
정신에 출현하는 모든 관념이 앞서의 정신적 상태와 유사성(ressemblance)과 인접성(contiguité)의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주장은 연합의 작동방식에 대하여 우리에게 알려주는 바가 없다.... (181) [관념론자들이 에피쿠로스의 후신인 것은 여기서도 보인다. 단위는 독립적이고 결합은 문법적이다. 그 결합이 접속인 셈이다. 결국 관념연합은 유사든 인접이든 형성은 결과론이다. 과정이 없는 것은 의식의 개입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 역동론에서 개입이 없는 운동 흐름이다. 그자들은 흐름을 설명할 수 없다. 역동론은 원자와 원자의 마주침보다 흐름의 연속인데 원자로 파악되는 것은 흐름의 단절에서 이다. (51PME)]는 형성
유사성의 경우 - [심층에서] 공통의 류(類)를 발견한다. .
인접성의 경우 - A와 B사이 인접성의 문제: 기억 속에서 B를 실제로 접촉하고 있는 것은 지각 A가 아니라 추억 A′이기 때문이다. (182)
진정한 문제는 어떤 측면에서 모두가 현재적 지각을 닮고 있는 무한한 추억들 중에서 어떻게 선택이 이루어지는지, 왜 그것(추억)들 중의 하나만이 - 다름 아닌 바로 이것이 - 의식의 빛에 출현하는지 아는 것이다. [영혼(기억)이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신체를 선택하고, 왜 이런 신체로 출현했는지] - 관념 연합은 이 물음에 대답할 수 없다. 왜냐하면, 관념연합론은 관념과 이미지들을 독립적인 실체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 이들은 에피큐로스 학파의 방식을 따랐다. [- 관념의 원자화](182) - 베르그송: 의식 상태들이 서로 간에 친화성(affinité)을 갖는다는 것을 모호하게나마 인정하는 것이 된다. (183)
... 관념연합론은 이 친화성(affinité) 자체에 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도 제공할 수 없다. ...관념연합론은 이 대상들[관념과 이마쥬] 사이에 불가사의한 인력을 가정하기에 이른다. 자족적 이마쥬가 유사와 인접에 의해 결합하려 하는가? [신이 무엇이 답답하여 인간에게 가까이 또는 지시(명령)하려고 하겠는가?] [이들이 말하는] 독립적 이미지는 인위적이고 사후적인 정신(esprit)의 산물이다.(183)
사실 우리는 서로 유사한 개체들에 앞서 유사성을 지각하며, 인접된 부분의 집합에서 전체를 부분에 앞서 지각한다. 우리는 유사성으로부터 유사한 대상으로 이행하면서 ... 따라서 연합은 원초적 사실이 아니다. 우리가 출발하는 것은 바로 분해(dissociation)에 의해서 이다. [데리다의 언어 파악에서 해체와 차연은 이점에서 베르그송의 계승자이다] 그리고 다른 추억들과 결합하려는 모든 추억의 경향은 지각의 불가분적 단일성을 향한 정신의 자연적 회귀로 설명된다. (184) [자연의 내적 단일성(역동성)이 원래적이고 시발점이다. 이데아의 회상이나 종교의 저세상은 회귀는 부동의 자연을 선전제로 두는 경우이다.]
관념론의 오류: 두 가지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1)지각은 자기 자신과 동일한 것으로 있으면서 진정한 심리적 원자로서 다른 원자들이 그 옆을 지나감에 따라서 그것들과 결합한다고 가정한다. ... 2)재인식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인격성 전체가 추억들의 총체와 불가분인 채로 우리의 현재적 지각 속으로 들어온다고 가정했다. [관념연합의 가설은 요소들이 점점 증가하는 것으로 파악하는데] - 흐릿한 성단 - 망원경 : 불가분의 전체를 반성에 의해 쪼갠다. (184-185) - [우주의 발생 시점이나 그 크기가 측정가능한 자료들 중에 1/3정도의 정합성으로 125억 광년, 250억년 등을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51PME)]
... 1)감각-운동의 기능 측면에서 : 운동기제 속에 유사성(ressemblance)의 연합이 있다. 왜냐하면 현재적 지각은 지나간 지각과의 유사함(similitude) 덕분에 작용한다. [원본이 아니라 모사본을 닮았다]. [2)]거기에 인접성의 연합(association par contiguité)이 있다. 왜냐하면 이 이전의 지각들에 잇따르는 운동들이 재생되어 계속해서 재생되며, 심지어 최초의 지각에 배열되는 무수한 작용(동작)들을, 앞선 지각들의 연속으로, 끌어낼 수 있다. ... 우리는 유사성의 연합과 인접성의 연합을 그 근원자체에서 - 사유된 것이 아니라 작동되고 체험된 상태로 - 파악한다. .. 이 두 측면은 유일하고 동일한 근본적인 경향의 상보적인 두 측면들을 나타낸다. (186) [하나의 샘에서 여러 영혼이 솟아난다. 그들은 상보적 관계이다. - 변증법의 투쟁과 대립은 승자 독식의 문화에서 나온 사유(사고)이다.] / [관념연합의 사고는 남사고의 파자 사고에 유비가 된다. 게다가 파자의 놀이는 결과에 맞추어 설명하는 것에 불과하다. 박정희 18년: 나무 목(18), 점복, 한방(일) 끝난다(지) 그리고 자기 신하에게 빵빵빵빵. (51PME)]
꿈의 도식과 행동 도식
- Plan du rêve et plan de l'action (187-189)
[유사성의 연합에 대한 여러 평면(plans différents)들에 대한 설명]
... “상연된(jouée) 심리학적 현존으로부터 오로지 꿈꾸어질(revée) 심리학적 현존으로 이행해보자 다른 말로 기억의 기초 토대 AB 위에(181 쪽) 위치해보자. 거기서 우리의 흘러간 삶의 모든 사건들이 가장 미세한 부분까지 그려진다. 행동으로부터 벗어난 과거의 총체를 자신의 시선 아래 간직하고 있을 의식은 이 과거의 어떤 다른 부분이 아니라 바로 이 부분에 고정될 어떤 이유도 갖지 않을 것이다. (186)
어떤 의미에서 그의 모든 추억들은 그것들의 무수한 세부사항들과 함께 취할 경우, 어느 두 추억도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의미에서 어떤 임의적 추억도 현재적 상황에 접근될 수 있을지 모른다.(186-187)
방금 전에 현실적 지각은 결정된 운동들로 연장되었는데, 이제 현실적 지각은 동일하게 가능한 무한한 추억들로 해체된다. 따라서 S에서는 연합이 운명적인 진행을 야기하듯이, AB에서 그것은 임의적인 선택을 야기할 것이다. (187)
... 감각-운동 상태 S란 기억(mémoire)의 방향을 정하는데, 실상 감각운동 상태란 단지 추억의 현실적이고 활동적인 극단에 불과하다. .... 매 순간 우리 도식의 A′B′, A″B″ 등의 절단면들에 의해서 그려진 상태들, 즉 기억의 무한히 많은 가능한 상태들이 나온다. .. 이 절단면들은 우리 과거의 삶 전체의 그만큼 반복이다. (187-188)
총체적 기억(la mémeoire intégrale)은 현재적 상태의 호출에 두 가지 동시적인 운동들에 의해서 응답한다. 하나는 이전(translation)운동인데, 이 운동에 의해 기억은 전적으로 경험 앞으로 향하며, 행동을 목적으로 분할되지 않은 채 다소간 수축한다.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 위에서의 회전(rotation) 운동으로 이 운동에 의해 (총체적) 기억은 순간의 상황에 자신의 가장 유용한 측면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로 향한다. 유사성에 의한 연합의 다양한 형태들은 바로 이 수축(contraction)의 다양한 단계[정도]들에 상응한다. (188) [총체적 기억은 선험적 인식능력이 아니라 경험적 총량이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서 꿈속에서 임의적 작동과는 다른 점을 보여준다.(51QKC)]
따라서 모든 것은 마치 우리의 추억들이 우리 과거의 삶의 가능한 무수한 환원들(reductions) 속에서 수없이 반복되었던 것처럼 일어나다. 이 추억들은 기억이 압축되었을 때, 더욱더 평범한 형태를 취하고, 그것이 확장되었을 때는 더욱더 개인적인(personnelle) 형태를 취한다. 그리고 추억들은 상이한 무제한적 수많은 체계화(systématisations) 속에 들어 있다. 어떤 외국어의 한 단어가 내 귀에 발성되었을 때, 그것은 나에게 이 언어 일반(langue en général)을 생각하게 하거나 또는 이전에 어떤 방식으로 발성했던 어떤 목소리(voix)를 생각하게 할 수 있다.(188) ...두 연합은 두 상이한 정신적 성향(dispositions)에, 즉 기억의 두 상이한 정도의 긴장에 대답하는 것으로 이 쪽에서는 순수 이미지에 더욱 접근하고, 저쪽에서는 직접적 응답 즉 행동하기 위해 더욱 잘 준비되어 있다. (188-9)
예를 들어 우리가 심리 분석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거기 묘사된 어떤 관념들의 연합은 진실하고(vraies), 체험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안다. 다른 연합은 우리에게 충격을 주거나 실제적이라는 인상을 주지 못한다: 이 경우는 저자가 자신이 선택한 정신적 삶의 평면에 스스로 위치 할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가 거기서 정신의 상이한 층들 사이에 단순히 기계적 접근의 효과만을 느끼기 때문이다.(189) [심리분석 소설을 읽으면서 불편한 점은 요소들 사이에 요소가 있다는 점을 알리지 않고, 독자가 행간을 읽게 한다. 그런데 작가는 그 행간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야기의 결말에는 미세한 지각(인식)에 대한 내용이 등장(재등장: 기술적 작가는 앞에 유사한 장면을 언급한다)하면서 독자에게 주의를 기우릴 것을 강요한다. (51PME)]
예를 들어 히스테리 환자들의 “체계화된 기억 상실(amnésies sysntématisées)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기억들은 실제로 현존한다. ....(189)
의식의 다양한 평면
-Les divers plans de conscience (189-192)
이처럼 유사성에 의한 연합에 대해 무한한 수의 상이한 평면들(plans différents)이 있다면, 인접성에 의한 연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기억의 기반을 나타내는 극단적인 평면에서, 인접성에 의해 자신을 선행하는 사건들과 또한 자신을 뒤따르는 사건들의 총체에 연결되지 않는 추억은 없다. 반면에 공간 속에서 우리의 행동이 집중되는 지점에서는 인접성은 운동의 형태로 앞선 유사한 지각에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반응만을 주도한다. (189-190)
[들뢰즈/가타리의 고른판(le plan de consistance)이 곧 기관없는 신체(CsO)이며 절단된 무수한 면들은 기관들인 셈이다. (51PME)]
예를 들어 사람들이 행동(action)에 접근하면 할수록, 인접성은 유사성에 더욱더 참여하는 경향이 있고, 그렇게 해서 연대기적 계속(succession)의 단순한 관계와 구분된다. 따라서 외국어 단어들이 기억 속에서 서로 환기할 때, 인접인지 연합인지 말할 수 없다. 반대로 실재적 또는 가능적 행동으로부터 벗어 나면 날수록, 인접성에 의한 연합은 우리의 과거 삶의 연결적인 이마쥬가 단순히 재생하는 경향이 있다. 이 다양한 체계들에 대한 심화된 연구를 시작하는 불가능하다. (190) [옐름슬레우에서 시작될 것이다. 들뢰즈/가타리가 내용과 표현의 이중성을 마치 스피노자의 사유와 운동처럼 활용할 것이다. / 참조:옐름슬레우(Louis Hjelmslev, 1899-1965), 덴마크 언어학자. 내용과 표현, 이 양자 각각에게 두 개의 양태(될과 된으로 구분될 것이다. (51PME))
위치화 작업이란 사실상 점증하는 팽창(expension)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노력에 의해 언제나 자기 자신의 전체로서 현존하는 기억은 자신의 추억들을 점점 더 넓은 표면 위로 펼치며, 그렇게 해서 마침내 그 때까지는 혼란되어 있던 더미(amas) 속에서 [아직] 자신의 자리를 되찾지 못했던[못하고 있었던] 추억을 구분하게 된다. .... 환자는 최면상태와 같은 예외적 노력에서 기억의 극단적인 평면들을 되찾을 수 있다. (191) [더미는 “천개의 고원”의 고른면 .. 플라노메네 아이티아... (51PME)]
지각들 즉 연속적인 지각들과 더불어 불가분의 추억을 형성하는 지각들은, 사건의 결정적인 부분이 아직 생겨나지 않았다면, 공중에(en air) 떠있는 체 있다. [사건의 결정적인 부분이 아직 생겨났다 하더라도 현실적의 주체에 관심을 끌지 못한다면, 무의식적 지각처럼 그냥 스쳐 지나는, 즉 공중에 떠있는 것쯤이다. 이 사건화 되지 않고 지나치는 이마쥬도 추억이다. 현실에서 이 이마쥬는 백일몽과 같은 몽상일 수 있다,] (192) [공중에 떠있는 = 심층의 내부 진동하는 또는 유동하는 체 있다. (51PME)
그러므로 어떤 추억이 자신의 예비적인 세부 사항들과 함께 추억 상실과 어떤 주어진 사건에 앞서 있는 다소간 많은 추억들이 퇴행적 기억 상실에 의한 폐지 사이에서는 본성상의 차이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가 있다. (192)
생의 주의
- L'attention à la vie (192-194)
하부[내부, 심층]의 정신적 삶(vie mentale inférieure)에 관한 이러한 다양한 고찰에서 지적인 균형에 관한 어떤 개념이 도출될지 모른다. 이 균형은 명백히 그것에 질료(matière)의 구실을 하는 요소들의 교란에 의해서만 깨질 것이다.(192)
정신은 ... 행위의 평면과 꿈의 평면 사이에 포함된 간격을 통과할 것이라 가정한다. ... 정신은 자신의 경험의 총체를 우리가 성격이라고 부르는 조직화하면서 ...(///)
축적된 추억들의 덩이(mass de souvenirs)가 현시점의 감각과 운동을 무한히 넘치듯이, 정신의 활동은 축적된 추억들의 덩어리를 무한히 넘쳐난다. [개인의 경험을 넘어서 종의 경험으로 넘쳐 남을 암시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감각과 운동은 사람들이 삶에 주의(l'attention à la vie)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조건 짓는다. 따라서 정신의 정상적인 작업에서 모든 것은 꼭지점에 의해 거꾸로 서 있는 피라미드처럼 감각과 운동의 응집력에 달려 있다. (193)
게다가 최근의 발견에서 드러난 바와 같은 신경계의 섬세한 구조에 눈을 돌리면, 사람들은 도처에서 전도체[신경섬유](conducteurs)들을 볼 수 있지만 [신경] 중추(centre 중심)들은 어디서도 볼 수 없다고 할 것이다. ... 바로 우리가 관찰하는 사실의 전체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 존재하는 것의 전체일지도 모른다. 만일 우리가 이 책의 전개과정 전체에서 가정 했듯이, 신체가 자신이 받은 자극과 완성된 운동 사이의 접촉 장소(lieu rendez-vous)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193) [베르그송 당시에 신경세포의 핵과 두뇌에서 여러 단계의 기능에 대한 생리학적 탐구가 모자랐다. 그러나 신경계의 특성, 즉 신체의 접촉장소를 경험으로 알고 있다.] / [신경계가 여러 회로들(배치들)로 되어 있을 수 있다. 장회로(소화), 폐회로(산소), 간회로(당분해), 님프, 봉한회로, 미토콘드리아 등 회로는 외부와 내적 작동 사이의 접촉장소인데 두뇌가 우선권을 행사하는 것 같지는 않다. (51PME)]
그러나 이 긴장을 이완시키거나 이 균형을 깨뜨려 보라. 모든 일은 마치 주의가 삶으로부터 풀려난 것처럼 진행될 것이다. 꿈이나 정신착란(aliénation)은 이와 별로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94)
정신적 균형
- L'équillibre mental (194-198)
꿈은 항상 주의가 신체의 감각-운동적 균형에 의해 고정되지 않은 정신의 상태[들: 준안정상태(caosmos)]일 것이다. 신경계의 이러한 이완은, 각성 시에는 신경요소들의 정상적인 활동으로부터 제거되지 않은 산물들 때문에, 신경요소들의 어떤 중독 현상(intoxication, 알콜과 마약)[스키조, schizo]에 기인한다는 사실이 점점 더 설득력을 갖는다. [이것이 중독현상 말고도 정상적인 사람에게 일어나면 신비가, 고승에 이른다.] 그런데 꿈은 전적으로 정신착란(alienation)을 모방한다. (194)
예) 뇌의 쇠약, 전염병질병이나 유독물질, - 등에서 오는 정신착란은 ...기억과 주의가 실재와의 접촉을 상실하게 하는데 충분할 것이다. ... 환자들의 말에 의하면 비실재성(non-réalité)이란 낯선 감정을 느낀다. (195) [르네의 일기 참조]
따라서 감각운동 사이의 관계들이 이완되거나 손상되는 곳에서 실재에 대한 감각(le sens du réel)은 약화되거나 사라진다. (195)
... 인격성의 분열(scissions de la personnalité) 사이에서도 많은 구별이 있다. 이러한 인격성의 질병들(ces maladies de la personnalité)은 추억의 그룹들이 중심 기억으로 분리되어, 다른 추억들과 연대성을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또한 감각성(sensibilité)과 운동성(mortricité)의 동반적 분열을 관찰하지 못하는 경우란 드물다. 우리는 후자의 현상들[감각성과 운동성의 분열]에서 첫째 현상들[인격성의 질병들]의 진정한 기초를 보지 않을 수 없다. (195-196) [인격성의 질병이란 신경증이 아니라 정신병(psychose)이라 할 수 있다.]
만일 우리의 가설이 확립된다면, 기억은 두 경우에서 매우 다르게 상해를 입을 것이다. 첫째 경우에는 어떤 추억도 산만하지 않겠지만, 모든 추억들은 덜 안정적이고 덜 확고한 방식으로 실재적인 것을 향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정신적 균형의 단절이 나온다. 둘째 경우에는 균형이 깨지지 않지만 그 복잡성은 상실할 것이다. 추억들은 그것들의 정상적인 측면을 보존할 것이지만 부분적으로 그것들의 연대성을 거부할 것이다. ... 첫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둘째의 경우에도 추억들은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거나 손상을 입지 않을 것이다. (196) [관념연합을 따라가면 요소 또는 원자로 기억이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는 점에 대해 오류를 지적하고, 기억이라는 운동덩이(들뢰즈 식으로 고른면)는 존속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51PME)]
신체의 운명
- Destination du corps 196-198. [운명이라기보다 사명일 수 있다.]
[신체에 대한 앞 시대의 학설에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실어증(aphasie)(농聾)]이다. 농은 의식의 문제이다.] / [감각 운동 기제에 대해서는 맹(盲)에 관해서이다. 이는 신체의 기제에 관한 것이다. (51PME)]
[실어증이] ... 그것이 유일한 경우인데, 질병에게 뇌의 특정한 회전 돌기 속에 항구적 위치를 할당할 수 있는 경우이다. ... 손상은 교란(perturbation)에 의해 작용되고, 즉 손상은 덩어리(masse, 감각운동연결 전체 = 신체)를 변질시키든지 또는 조각 내든지 간에 감각운동 연결 전체 가져오는 교란에 의해 작용된다. 그 결과 지적 균형의 단절 또는 단순화가 나타나며, 그 여파로 기억들의 무질서(désordre) 또는 분리(disjonction)가 나온다. (197)
이 모든 사실과 모든 유추(analogie)에서, 뇌에서 단지 감각과 운동의 중개만을 보려는 이론, ... 이렇게 해서 신체란 기억(mémoire)을 실재로 향하게 하고 현재에 이어주는 유일한 기능으로 봄으로써 이 기억 차체를 물질(matière)과 절대적으로 독립적으로 간주하려는 이론이 유리하다.(198) [여기서 베르그송의 이 책의 제목이 나온다. 여기서 기억과 물질에서 물질은 신체를 지칭한다. 기억은 영혼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는 – 우리 시대의 한 철학자의 심오한 말을 따라 - “물질성이 우리에게 망각을 놓는다”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있다. (198)
[1889년DI에서 정지의 불합리를 비판하며 지속(운동)의 실재성(심층자아)을 구하고, 자연은 단순하며 운동이라 한다. 여기서 역동성의 새로운 철학이 탄생한다. 1896년MM에서 역동성이며 흐름이며 운동인 기억은 위치도, 크기도, 모양도, 형식도 없지만 실재하는 흐름이다. 그 흐름이 역동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기억은 신체의 내부인 영혼이라는 이마쥬로 등장한다. 그 이마쥬의 구체적 현실태가 신체이다. 1903년(형이상학입문)에서 실재성이 흐름 운동인데, (현대물리학의 파동 관점을 받아들여) 물질도 운동이며 흐름이다. 물질은 둑도 바닥도 없는 흐름이다. 철학은 내부에서(dedans) 시작한다. 1907년EC에서 심층이 현전에 등장하는 것은 심층이 기억과 공연적이며 자발성의 자연이라 한다. 이 자연이 자기에 의한 자기 생성이 생명체이다. 이 생명체는 엔트로피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생성, 발전, 진화, 창조방향으로 나간다(들뢰즈에서 이 방향을 탈주라고 할 것이다). 1919년ES의 제1장에서 생명의 역동성이 긴장(압축)과 이완(퍼짐) 사이에서 생명이 발현하였다고 한다. ... 1980년(들/가MP) 지구(우주)같은 환경이 무질서한 상태에서 리듬을 형성하고 그리고 리듬의 반복에서 새로운 생성으로 생명체가 등장한다. (비)존재처럼 보이는 카오스에서 (거의 동일)반복의 리듬을 통한 준안정성의 상태로서 카오스모스 상태를 유지하다가, 나중에서 (이질적, 탈주적) 반복에서 고유한 선율을 만들면서 각각의 의미체(signifiance)로서 질서(cosmos)를 생성(창조)한다. (16:27, 51Q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