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4일(수) 오후 3시 30분 5·18민주화운동 기록관 7층에서 5·18의 성격 규명과 명칭에 대한 공론화의 장이 열렸습니다.
김희송(전남대 교수), 장세레나(광주 여성회 대표) 두 분의 사회로 주철희 박사(역사연구학자)의 주제 발표가 있었고, 이어 이동기 교수, 이재의 박사, 홍성칠 집행위원장, 기우식 시민협사무처장의 자유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이후 현장에 참여한 참여자들의 질문과 답변, 추가 의견 발표들이 있었습니다.
5·18, 광주사태, 광주의거, 광주항쟁, 광주민중봉기, 광주시민항쟁, 광주민중항쟁, 광주민주항쟁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다가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정부 차원에서 현재의 명칭을 사용하기에 이르렀고, 이후 각종 법률과 특별법이 제정되었으며, 2024년 6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종합 보고서가 위원회 활동 4년 만에 세상에 공개된 지금, 광주 공동체에서 지향하는 5·18의 성격 규명이나 그 역사적 위상은 무엇인가?
5·18 종합 보고서의 내용을 두고 설왕설래가 많은데, 왜 그 보고서는 꼭 정부 차원에서 작성해야 하는가? 정부에 맡겨두지 말고 광주 공동체에서 작성하면 안되는가? 5·18의 명칭은 꼭 정부에서 정한 대로 따라야 하는가? 언제부턴가 5·18을 공식 명칭으로 내세우면서 광주는 전면에서 사라져 버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왜 광주를 붙이면 안 되는가? 외국의 시선에서 볼 때도 5·18이라는 명칭은 어느 지역에서 일어난 일인지를 알리는 광주라는 명칭에 비해 차별화되거나 특징적이지 못하다고 주철희 박사는 주장합니다.
이후 자유 토론에서는 러시아의 10월 혁명, 프랑스혁명처럼 날짜나 지역명, 나라명이 붙은 경우는 다양한데 날짜를 넣은 작명이 된다, 안된다. 구분할 필요가 있는가? 라는 의견과 이제 와서 5·18의 작명을 두고 굳이 공론의 장에 올려야 하나? 세월이 더 지나 후대의 판단에 맡기자는 의견도 있었고, 5·18을 폄훼하는 극우세력의 행동에 대응하여 5·18의 정체성을 사수하고자 하는 시도이자 필연적인 흐름이라는 발언도 있었습니다.
이 시대에 맞는 광주 정신을 제대로 규명하고 그 정체성을 선명하게 할 수 있도록 모두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고, 이런 자리를 한 번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더 진행해야 한다는 데 모두 공감하였습니다. 이 한 번의 토론으로 명쾌한 결론을 지을 수는 없지만 5·18과 관련한 더 많은 공론의 장이 이어지기를 앞으로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