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空)
걸음과 시선이 자유로이 움직여
마음이 급한데 갈 곳은 없고
스스로 몸을 던지는 마른
소리 따라 무작정 걷고 본다
오래된 숲은 현명하고 지혜로워 깊은 상념에 빠지게 하고
앳된 나무들은 수군거리며 숲을 험담하지만 푸릇하여 멋스럽다
납자 푸른 가사 소매 속에
공작새 한 마리처럼
길을 헤매기는 매 한가지
어디쯤일까 나는
오늘 이 깊은 산 빠져 나가긴 글렀다
<시작 노트>
나이가 들면서 집중하지 못한다. 한번 생긴 상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사람과의 관계도 거절하기가 힘들고, “아니다.” 말하기가 힘들어 거의 웃음으로 대신하는 내가 맘에 안 든다. 잘 살아내기가 힘들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나는 언제쯤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올해까지 해보고 안 되면 대충 살 생각이다.
첫댓글 김은영 시인님의 시 한 편 더 올립니다.
봄날 부르스
¸ 장준범 가수의 노래가 나오고 가로수 꽃잎이 비처럼 쏟
아지는 날 도축장 가는 벚꽃색 돼지들은 비좁은 트럭에
갇혀 꽥꽥거린다 신호를 받을 때마다 돼지들은 탈출을 감
행해도 시원찮을 판에 자리싸움이 한창이다 그 뒤를 따
라가며 뻐꾸기 울음 같은 딸국질을 할 때마다 봄볕이 눈
으로 자꾸 들어온다
- 『瑞雪 시동인 31집』에서
사람이란 이름을 가진 누구나가
상념의 숲길을 헤맨 적이 한두번 일까요?
짐승은 잘 모르지만 아마도 짐승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ㅎㅎ
우리의 삶이 숲속을 오르고 내리는 길일 것입니다
던져진 삶의 길
때론 무섭기도 했지요
그 숲 속을 상념에 젖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뛰기도 걷기도 하고 욕도 먹고 실수를 거듭하는 것
오르면서 힘든 이의 손도 잡아 주면서
말 동무되어 주는 삶아라면 더욱 좋겠지요?
아무 사고 없이 최선을 다해 오르지만
못 오르는 이가 얼마나 많습니까?
나이 70이라면 30%만 오른다고합디다
어렵지만 여기가 정상인가 싶으면 헛디디지 말고
조심 조심 내려오는 것 중요한 것 같아요
태어 났으면 올라야하고 내려와야 하는 숲길
그래서 인생은 공이라 했는가???
은영시인님~
'아니다' 고 말하기 곤란할때 웃음으로 대신한다는건 그대가 아름답기 때문이지요.
우리 이제 숲에서 나오려고 애쓰지도 말고
집중하려고 애쓰지도 말고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푸릇하고 멋스러운 모든것을 즐기면서 살아갑시다~
때때로 상념의 숲을 거닐며 나를 둘러싼 숲은 오래되어 자연의 이치처럼 현명하고 그 안의 계절 닮은 변덕스런 나무들마저 푸릇함이 멋스럽기만 합니다. 비로소 젖어든 무념(공)이 어느덧 온통 스며들어 자연과 혼연일체된 모습, 이 겨울에 담백하게 와닿습니다. 감사합니다.
온 하늘을 담고 있는 물방울처럼, 걸음걸음에는 기쁨과 슬픔, 경험과 사유, 존재와 부재 등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무작위의 걸음은 갈 곳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기실은 “스스로 몸을 던지는 마른/ 소리”의 기원과 자아, 자유를 찾아나서기 위해서다. 오래된 숲길, 아니 마음의 사막길을 오늘도 걷는 너는 누구? 앳된 것이 오래되고, 푸른 가사袈裟(의) 소매 속에 깃든 공작의 슬픈 눈처럼, 구름과 물처럼 (떠)흐르는 너는 헤매임. 나는 언제쯤 현존재인 노래가 될 수 있을까? 깊은 산속을 피할 수 없다면, 숲과 나무와 소리를 온전히 즐길 수밖에. “귀와 귀 사이에 뇌(내)가 있다”(웨인 다이어,『인생의 태도』)는 말씀은 자아와 사유의 힘이 들음에서 온다는 것. 존재의 들음이 곧 존재의 들림이라는 사실. 아, 공空과 가假와 중中의 비밀은 어디에?
납자 푸른 가사 소매 속에
공작새 한 마리처럼
길을 헤매기는 매 한가지
// 생의 성찰이 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