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설십이두타경(佛說十二頭陀經)
송(宋)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송성수 번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서 8천의 비구승 및 1만 명의 보살과 함께 계셨다. 모두들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다니며 걸식하였고, 식사를 마치고는 아란야(阿蘭若)의 처소에 이르러 가부좌하고 앉았다.
그때 세존께서 환한 얼굴로 미소를 지으니, 장로 마하가섭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를 정돈하고 꿇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예로부터 부처님께서 연유 없이 웃으시는 것을 아직 본 일이 없습니다.
불쌍히 여겨 저희들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아란야의 처소를 보시고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께서 다 찬탄하시니, 한량없는 공덕이 모두 여기에서 생겼다.
성문(聲聞)을 구하는 이는 성문승을 얻고, 연각(緣覺)을 구하는 이는 연각승을 얻고,
대승을 구하는 이는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빨리 얻을 것이다.
이런 곳에서 내가 살고 있으니 기뻐할 따름이다.”
그때 마하가섭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크게 기뻐 뛰면서 전에 없던 일이라고 찬탄하며 거듭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아란야의 처소는 이익이 넓고 깊어 중생들이 이것에 의지해 닦고 배우면 3승의 도를 이루게 됩니다. 저희들에게 아란야의 법을 가르쳐 주시기를 원합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내가 네게 간략히 그 이치를 일러주리라.”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아란야의 비구는 두 가지 집착을 멀리 여의고, 몸과 마음을 청정히 하여 두타(頭陀)의 법을 행하라.
이 법을 행하는 데는 열두 가지가 있다.
아란야의 처소에서 지내는 것이 그 하나이며,
항상 걸식을 행하는 것이 그 둘이며,
차례로 걸식하는 것이 그 셋이며,
한 끼의 밥만 받는 법이 그 넷이며,
양을 절감하여 먹는 것이 그 다섯이며,
정오 후에는 미음도 마시지 않는 것이 그 여섯이며,
누더기를 입는 것이 그 일곱이며,
세 가지 옷만 가지는 것이 그 여덟이며,
무덤 사이에서 사는 것이 그 아홉이며,
나무 아래 머무는 것이 그 열이며, 한데에 앉는 것이 그 열하나이며,
앉았기만 하고 눕지 않는 것이 그 열둘이다.
첫째, 아란야 비구는 두타를 행할 때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나는 지금 이 비고 조용한 곳에서 지내며 위없는 도를 위해 몸과 목숨과 재산을 버리고 3견법(堅法)을 닦는다.
죽더라도 죽음을 달갑게 여기며 애석하게 여기지 않으리라.’
병고가 닥쳐와 사람이 필요할 때면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지금 나의 이 한 몸은 법을 위해 출가하였으므로 법이 곧 나의 벗이고,
부지런히 법을 수행하면 그것이 곧 구호하는 사람이다.’
이런 자가 아란야의 법을 행하는 사람이다.
지난날 집에서 사는 건 괴로움이 많다고 하여 부모와 처자를 버리고 출가해 도를 배운 것이다.
그러나 스승들이나 같이 배우는 자들에게 도리어 번뇌와 애착을 일으키면 마음에 다시 소란스러움이 많아진다.
그러므로 아란야의 법을 받아 심란하고 소란스러운 곳에서 그 몸이 멀리 벗어나 비고 고요한 곳에서 지내는 것이다.
‘멀리 여읜다[遠離]’는 것은 여러 가지 시끄러운 소리를 벗어난 목장 같은 곳을 말하며,
아무리 가까워도 3리(里) 이상이어야 하고 멀수록 좋다.
몸이 멀리 벗어났으면 또한 마음도 5개(蓋)를 멀리 여의게 해야 한다.
아란야 비구의 법은 이와 같다.
둘째, 마을에 들어가 걸식하려고 할 때는 반드시 6근(根)을 제압하여, 빛[色]ㆍ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촉감[觸]ㆍ법(法)에 집착하지 말며,
또 남녀 등의 형상을 분별하지 말며,
얻건 얻지 못하건 그 마음을 평등하게 가지고,
좋고 나쁜 것에 대해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을 내지 말라.
밥을 얻지 못했을 때는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전륜왕(轉輪王)의 자리를 버리고 출가해 도를 이룬 석가여래께서도 마을에 들어가 걸식할 때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하물며 복이 없고 덕이 적은 나 같은 사람이 얻을 수 있을까?’
이런 자가 걸식의 법을 행하는 사람이다.
공양의 청을 받거나 대중공양을 받는 것은 온갖 번뇌를 일으키는 인연이다.
무엇 때문인가?
공양의 청을 받은 이는 공양을 받게 되면 곧,
‘내가 바로 복덕이 훌륭한 사람이기에 받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공양을 받지 못하게 되면 곧 초청한 이를 미워하고 원망하며,
‘저 사람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선 초청하지 말아야 할 사람을 초청하고, 초청해야 할 사람은 초청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혹은 자신을 비루하고 천박하게 여겨 괴로워하고 자책하며 근심과 고통을 일으킬 것이다.
이것은 탐애의 법으로 곧 도를 가로막는다.
다음은 대중공양이다.
대중 가운데 들어가면 당연히 대중의 법을 따라 일을 결단하고, 사람을 배척하고, 요리하고, 대중으로서 할 일을 담당하고, 자기 위치를 지키고, 남을 부려야 한다.
그러면 마음이 곧 산란해져 도를 행하는 데 방해가 된다.
이런 번거롭고 어지러운 일이 있기 때문에 항상 걸식의 법을 받들어야 한다.
셋째, 두타 비구는 물질에 애착하지 말고 중생들을 업신여기지 말며,
평등한 마음으로 불쌍히 여겨 빈부를 가리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항상 차례로 걸식하는 법을 받들어야 한다.
넷째,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내가 지금 한 끼 밥을 구하는 것에도 오히려 방해되는 것이 많은데, 하물며 아침ㆍ점심ㆍ저녁밥이겠는가?’
만일 스스로 줄이지 않으면 반날의 공부를 잃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도를 행할 수 없게 된다.
불법을 위한 까닭에, 도를 행하기 위한 까닭에 음식을 먹는 것이지,
말이나 돼지를 기르듯 몸과 목숨을 위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여러 차례 먹는 것을 끊고 한 끼만 먹는 법을 받들어야 한다.
다섯째, 한 끼 밥을 얻었을 때에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내가 지금 목마르고 주린 중생을 보고 한 몫을 나누어 그에게 베푼다면, 나는 시주가 되고 그는 받는 이가 되리라.’
또 베푼 뒤에는 이렇게 원을 세워 말해야 한다.
‘일체 중생에게 복을 일으키고 그들을 구해 간탐(慳貪)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라.’
그리고 밥을 가지고 한적하고 조용한 곳으로 가서는 한 덩이를 덜어 깨끗한 돌 위에 놓아 여러 금수에게 보시하고, 또 위와 같이 원해야 한다.
밥을 먹으려 할 때는 반드시 니사단(尼師壇)을 깔고 손을 깨끗이 씻고 이렇게 생각하며 말하라.
‘몸속 8만 구멍에 벌레가 있으니, 벌레들은 이 밥을 받고 모두 다 편안하라.
나는 지금 이 여러 벌레들에게 밥을 보시하지만, 뒷날 도를 얻을 때는 법을 보시하리라.’
너는 이처럼 중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만약 곤핍한 이가 보이지 않거든 3분의 2만 먹고 그걸로 스스로의 몸과 목숨을 유지해야 한다.
무엇 때문인가?
수행하는 이가 탐심으로 배가 부르고 가슴이 답답하도록 너무 많이 먹으면 수행하는 도를 방해하고 깨뜨리게 되지만,
3분의 1을 남기고 먹으면 몸이 가볍고 편안해 소화가 잘 되고 병이 없기 때문이다.
몸이 축나지 않을 정도면 도를 수행하기에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양을 절감하여 먹는 법을 받들어야 한다.
여섯째, 양을 절감하여 먹은 뒤에 정오가 지나서 미음을 마시면 좋아하고 애착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여러 가지 미음과 과일즙ㆍ꿀물 등을 구하며 구함에 만족함이 없으면, 한결같은 마음으로 선법(善法)을 닦아 익힐 수 없게 된다.
마치 말에 굴레를 씌우지 않으면 좌우로 풀을 뜯어먹느라 길을 갈 생각을 않지만,
고삐와 굴레를 씌우면 풀 뜯을 생각이 없어져 사람의 뜻대로 가게 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정오 후에는 미음도 마시지 않는 법을 받들어야 한다.
일곱째, 마을 안에 들어가 헐고 더러워서 버린 물건을 주워 그것을 깨끗하게 빨아 누더기를 만들어 차가운 이슬을 가리고 막아라.
좋은 옷의 인연이 있으면 사방에서 뒤쫓아 구하여 삿된 생활에 떨어지게 된다.
사람으로부터 좋은 옷을 받게 되면 그는 곧 친하다는 애착을 일으킨다.
따라서 가까이하지도 애착하지도 않으면 시주는 곧 원망하게 된다.
승려들 사이에서 옷을 얻어도 역시 위에서처럼 승려들 사이의 허물을 말하게 된다.
좋은 옷이 있다는 것은 바로 아직 도를 얻지 못한 이에게 탐착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며,
좋은 옷의 인연이란 도적을 불러들이고 혹은 목숨을 빼앗기기도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환란이 있으므로 누더기를 받들어야 한다.
여덟째, 욕심을 줄여 만족할 줄 알라.
옷은 몸을 가릴 정도여야지 많아서도 적어서도 안 되는데,
속인들은 옷을 좋아해 갖가지 옷을 쌓아두고,
어떤 외도는 고행한답시고 나체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불제자는 두 극단을 버리고 중도에 처하여 오직 세 가지 옷만 입는 법을 받들어야 한다.
아홉째, 부처가 세상에 있건 멸도(滅度)한 후건 두 가지 법을 닦아야 하니,
지관(止觀)과 무상공관(無常空觀)이 그것이다.
이는 불법의 첫 번째 문으로서 삼계를 싫어해 벗어날 수 있게 한다.
무덤에는 슬피 우는 소리가 그치지 않고,
주검이 낭자하여 눈으로 무상함을 보게 되며,
또 불에 타고 새와 짐승에게 먹혀 오래지 않아 없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주검을 관함으로 인하여 일체의 법에서 무상하다는 생각을 얻게 된다.
또 무덤에서 지내며 주검이 썩어 문드러져서 깨끗하지 못함을 보게 되면 9상관(想觀)을 쉽사리 얻게 된다.
이는 욕심을 여의는 첫 번째 문이다.
그러므로 무덤 사이에서 사는 법을 받들어야 한다.
열째, 수행하는 사람이 부정관(不淨觀)과 무상관(無常觀)을 행하고 나면, 도 얻는 일을 성취하게 된다.
만약 도를 얻지 못하면 마음에 곧 크게 싫증이 일어나게 된다.
그럴 땐 그곳을 버리고 나무 아래 이르러 사유하며 도를 구해야 한다.
여래가 태어날 때, 도를 이룰 때, 법륜을 굴릴 때, 열반에 들 때, 모두 나무 아래 있었듯이,
수행하는 이도 그 법을 따라 항상 나무 아래에서 지내야 한다.
이와 같은 인연이 있으므로 나무 아래에 앉는 법을 받들어야 한다.
열한째, 나무 아래에 머물러 있으면 반은 집이나 다름없다.
가려 주고 덮어 줘 서늘하고 즐거우면,
또 ‘내가 머물고 있는 여기는 좋다’는 애착심이 생기게 된다.
저 나무 아래에서는 이러한 번뇌가 생기기 때문에 한데[露地]로 가 머물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나무 아래는 갖가지 허물이 있으니,
하나는 비가 새어 습하고 차가우며,
둘은 새똥이 몸을 더럽히고 독충이 사는 곳이다.
이와 같은 여러 허물이 있지만 한데에는 이런 환란이 없다.’
한데에서는 옷을 입고 벗기를 뜻대로 하여 즐겁고,
달빛이 두루 비춰 마음을 밝고 시원하게 하므로 공(空)의 선정에 들어가기가 쉽다.
그러므로 한데에 앉는 법을 받들어야 한다.
열두째, 4위의(威儀) 중에 앉음[坐]이 첫째이니, 음식이 잘 소화되고 기식(氣息)이 조화된다.
도를 구하는 이가 큰일을 아직도 성취하지 못했다면, 모든 번뇌의 도둑이 항상 그 틈을 엿보므로 편안히 누워서는 안 된다.
다니거나 서면 마음이 동요해 거두기 어려우며, 또한 오래 있을 수도 없다.
따라서 항상 앉는 법을 받들어야 한다.
자고 싶을 때도 옆구리를 자리에 대지 말라.
이것이 열두 가지 두타의 법이다.”
부처님께서 이어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이제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산란함이 없게 하라.
선정의 공덕이 이로부터 생기게 된다.
모든 범부는 아(我)ㆍ인(人)ㆍ중생(衆生)ㆍ수명(受命)에 얽매여 거짓 이름을 따르며 쫓고, 온갖 망령된 소견을 일으킨다.
본래부터 5음(陰)은 청정하며,
공하여 내 것이라 할 것이 없으며,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벗어나지도 않고 안에 있지도 않으며,
범부도 아니고 범부가 아닌 것도 아니며,
성인도 아니고 성인이 아닌 것도 아니다.
모든 이름과 숫자를 떠나고 언어의 길이 끊어져,
모든 부처님도 갈 수 없고 다다를 수 없으니,
너희들은 이제 각기 인연을 조촐히 하고 몸을 자세히 관해야 할 것이다.”
그때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매우 기쁜 마음이 생겨 곧 이 몸을 관하였다.
표피ㆍ진피ㆍ피ㆍ살ㆍ고름ㆍ찌꺼기ㆍ힘줄ㆍ뼈ㆍ맥ㆍ골수ㆍ비계ㆍ기름진 살ㆍ뇌ㆍ막ㆍ눈물ㆍ침ㆍ간ㆍ쓸개ㆍ지라ㆍ콩팥ㆍ심장ㆍ허파ㆍ가래ㆍ멍울ㆍ생장ㆍ숙장ㆍ소장ㆍ대장ㆍ대변ㆍ소변ㆍ머리카락ㆍ털ㆍ손발톱ㆍ이빨ㆍ태ㆍ때 등,
이 36물과 아홉 구멍의 깨끗하지 못함을 관하였다.
밖으로부터 안까지, 안으로부터 밖까지 나라는 모습을 찾아보았지만, 끝내 얻을 수 없었다.
이렇게 힘써 부지런히 하며 그만두지 않아 드디어 물질[色]과 마음[心]이 순간순간 생멸하는 것이,
흐르는 물이나 등잔의 불꽃과 같아,
생겨도 좇아서 온 곳이 없고, 사라져도 가는 곳이 없으며,
현재에도 머무르지 않음을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5음은 본래부터 공하여 있다고 할 것이 없음을 알고는,
모든 상(相)을 없애고 여실한 지혜를 증득하여 아라한을 이루었다.
여러 보살들도 법을 사유한 뒤에는 무생인(無生忍)을 얻어 10지(地)를 원만히 갖추었다.
부처님께서 여러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가 나중 상법(像法) 동안에 이 경전을 보호하여 지니고 널리 유포하여 불도를 구하는 이들로 하여금 그 요긴함과 묘함을 알게 하겠느냐?”
이때 제석천과 용ㆍ신 등 팔부 대중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하늘에서 내려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상법 동안에 비고 고요한 곳에서 불도를 구하는 3승인(乘人)이 있다면, 저희들이 그들을 호위하며 나쁜 귀신들이 그들을 요란스럽게 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문수사리 법왕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미래에 이 경전을 보호하고 지녀 끊어지지 않게 하겠으며, 배우는 자가 있으면 그를 깨우쳐 인도하겠습니다.”
그때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경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며,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의 이름은 두타고행(頭陀苦行)이며, 또한 이착집제선본(離著集諸善本)이다. 너희들은 이와 같이 받들어 지녀라.”
그때 하늘ㆍ용 등 팔부 신중과 일체 대중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