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집백연경 제6권
6. 제천내하공양품(諸天來下供養品)
59) 두 범지(梵志)가 함께 재계(齋戒)를 받은 인연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시었다.
어느 날 저녁에 5백 천자들이 천관(天冠)을 쓰고 보배 영락을 걸고 그 몸을 장엄하여 향ㆍ꽃을 가지고 내려와 온 기환정사에 광명을 비추면서 부처님 앞에 예배 공양한 다음 한쪽에 물러나 앉았다.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는, 곧 마음이 열리고 뜻을 이해하게 되어 곧 수다원과를 얻고 세 번 부처님을 돌고 도로 천궁으로 올라갔다.
이튿날 아침에 아난(阿難)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기환정사에 평상시보다 몇 배의 광명이 비쳤는데, 그것은 제석ㆍ범천ㆍ사천왕, 28부 신장들이 와서 법을 듣기 위해 비춘 것이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광명은 제석ㆍ범천이나 귀신 대장들이 설법을 듣기 위해 비춘 것이 아니다.
과거 가섭(迦葉)부처님 때 두 바라문이 국왕을 따라 부처님 처소에 가서 예배 문안하였는데, 때마침 그 성중에 있던 우바새 한 사람이 두 바라문에게 권유하였다.
‘그대들이 이제 국왕을 따라 함께 불 세존을 뵈었으니, 이 기회에 재계(齋戒)를 받는 것이 좋으리라.’
바라문이 대답하였다.
‘그 재계의 법을 받으면 어떠한 이익이 있습니까?’
우바새가 다시 말하였다.
‘그 재계의 법을 받으면 모든 것을 뜻대로 구할 수 있고 소원대로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오.’
이 말을 들은 바라문이 함께 재계를 받되, 한 바라문은 천상에 왕생하기를 구하고, 다른 한 바라문은 국왕이 되기를 구하였다. 그들은 재계를 마친 뒤 역시 여러 바라문들의 모여 있는 곳으로 같이 갔는데, 그곳의 바라문들이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이제 목이 마르거나 배가 고프면 같이 음식을 먹읍시다.’
재계를 받은 두 바라문이 대답하였다.
‘우리는 부처님의 재계를 받았기 때문에 식사 때가 지나면 먹지 않습니다.’
여러 바라문들이 다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우리들의 바라문 법이 있거늘 저 사문의 재계를 받을 필요가 무엇인가?’
이같이 은근하게 여러 차례 권유하자 그 뜻을 굽혀 천상에 태어나기를 원하던 바라문은 결국 음식을 먹기 시작하여 재계를 깨뜨림으로써 본래의 소원을 이룩하지 못한 채 목숨이 끝나는 대로 용(龍) 가운데 태어났다.
다른 한 바라문은 끝내 음식을 먹지 않고 재계를 지킴으로써 과연 그 소원대로 국왕이 되었다.
앞서 용 가운데 태어난 바라문은 전생에 재계를 같이 받은 인연으로 국왕의 정원 못물[池水] 속에 왕생하였다.
이때 정원지기[守園人]가 날마다 갖가지 과일을 국왕께 헌납하여 왔는데,
어느 날 문득 못물 속에서 아주 향내 나고 빛깔 좋은 과일 하나를 얻어 생각하기를,
‘내가 이 정원을 드나들면서 항상 황문(黃門:내시)에게 신세를 끼치고 있으니, 이 과일을 선사하리라’ 하고,
황문에게 넘겨 주었다.
황문은 또 이 과일을 얻어 생각하기를,
‘왕의 부인이 항상 대왕께 나의 덕을 칭찬하셨으니 이제 내가 지니고 있는 이 과일을 선사하리라’ 하고,
왕 부인에게 바쳤으며,
왕 부인은 이 과일을 얻어 다시 대왕에게 바쳤다.
왕이 과일을 먹어 본 다음 너무나 향내 나고 맛좋은 것에 감탄하여 곧 부인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 과일을 어느 곳에서 구해 왔소?’
부인은 사실 그대로를 왕에게 대답하였다.
‘황문으로부터 이 과일을 받았습니다.’
왕은 다시 황문에게 물었다.
‘너는 이 과일을 어느 곳에서 얻어 왔느냐?’
이와 같이 차례차례 그 과일의 출처를 따진 결과 점차로 정원지기에까지 미치자 왕은 곧 정원지기를 불렀다.
‘나의 정원에 이같이 아름다운 과일이 있었거늘 너는 어찌해 직접 올리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주었느냐?’
이에 정원지기가 그 경위를 자세히 진술했으나 왕은 듣지 않고 그에게 말했다.
‘지금 이후부터 항상 이 과일을 보내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당장 너를 사형에 처하리라.’
정원지기가 왕의 명령을 받고는 자기 정원에 돌아와 자제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으면서,
‘이 과일은 종자가 없으니 구할 길이 없구나’라고 하였다.
때마침 용왕이 이 울음 소리를 듣고 사람의 형상으로 변화하여 정원지기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제 무엇 때문에 그렇게 울기만 하는가?’
정원지기가 대답하였다.
‘내가 엊그저께 이 정원 못물 속에서 아름다운 과일 한 개를 얻어 문지기에게 선사하였는데,
문지기는 이것을 얻고 나서 황문에게 주었습니다.
황문은 이것을 왕비에게 주었고,
왕비는 이것을 대왕에게 올렸는데,
대왕이 이제 나를 불러 명령하시기를,
‘지금부터 이 과일을 끊임없이 올려야지, 그렇지 않을 경우엔 사형에 처하리라’ 하셨소.
온 정원을 통털어도 이런 과일은 없으니 이 때문에 우는 것이오.’’
이 말을 들은 화인(化人)이 도로 물속으로 들어가서 앞서와 같은 향내 나고 빛깔 좋은 과일을 갖고 나와 금반(金盤) 위에 얹어 정원지기에게 넘겨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가 이 과일을 가져가서 대왕께 올리면서 다음과 같은 내 뜻을 전달해 주시오.
〈나와 대왕은 옛날 부처님 재세시에 본래 친한 벗으로서 함께 범지가 되어 8관재(關齋)를 받아 각자의 소원을 구하던 중,
왕은 계율을 구족하여 국왕이 되고, 나는 계율이 완전치 못해 용 가운데 태어났소.
하지만 이제 다시 재법(齋法)을 닦아서 이 몸을 벗어나려 하오니, 원컨대 국왕은 나를 위해 8관재 법문(法文)을 구해 보내시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당신의 국토를 뒤엎어 큰 바다로 만들 것이오〉라고 하시오.’
정원지기가 금반의 과일을 받아 국왕께 받들어 올린 뒤에 곧 용왕의 부탁한 말 그대로를 대왕께 전달하자, 대왕이 이 말을 듣고 매우 근심하게 되었다.
왜냐 하면 그때에는 불법이란 이름조차 없었거늘 하물며 8관재의 법문을 어떻게 구할 수가 있겠는가?
만일 구해 보내 주지 않을 경우엔 큰 위해(危害)를 받을 염려가 있어 이 일을 생각해 봐도 어떻게 할 수 없었는데,
그러던 차에 왕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어느 대신에게 물었다.
‘이제 용신(龍神)이 나에게 8관재 법문을 요구하니, 그대가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이 법문을 얻어 저 용신에게 전해 주어야 하겠네.’
대신이 대답하였다.
‘지금 세상에 불법이 없으니 어떻게 8관재 법문을 구하겠습니까?’
왕이 다시 말하였다.
‘그대가 구해 보낼 수 없다면 내 반드시 그대를 죽이고야 말겠노라.’’
대신은 이 말을 듣고 집으로 물러나와 안색이 이상해지고 아주 근심에 쌓여 있었는데,
때마침 연세가 많고 덕망이 높은 그의 아버지가 집에 돌아온 아들의 안색이 보통 때보다 이상한 것을 보고 그 이유를 물었다.
‘무슨 일이 있기에 네 안색이 그러하냐?’
이에 대신이 전후 사실을 그 아버지에게 자세히 말하자,
그의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집 기둥에 항상 광명이 비추는 것을 보건대 기둥 속에 아마 이상한 물건이 있을 듯하니,
네가 이제 시험삼아 기둥을 베어 그 속에 무엇이 있는가를 보아라.’
대신이 그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곧 기둥을 베어 보니, 과연 12인연에 대한 법문과 8관재 법문 두 권의 경전이 그 속에 들어 있으므로,
대신은 이것을 얻고 매우 기뻐한 끝에 금 책상에 받들어 국왕께 올렸다.
국왕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이것을 용왕에게 보냈는데,
용왕 역시 기쁨에 넘쳐 그 답례로 값진 보배를 국왕에게 보내고는,
5백 용자(龍子)들과 함께 부지런히 8관재 법을 닦은 결과, 뒤에 목숨이 끝나 곧 도리천에 태어났으니,
어젯밤의 광명이 바로 그들이 나를 공양하기 위해 비춘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알아 두라. 그 당시 8관재 법을 받들어 닦은 이가 곧 지금의 5백 천자니라.”
부처님께서 이 인연을 말씀하실 때 혹은 수다원과를, 혹은 사다함과를, 혹은 아나함과를, 혹은 아라한과를 얻은 자도 있었으며, 혹은 벽지불의 마음을, 혹은 위없는 보리의 마음을 낸 자도 있었다.
비구들은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다 환희심을 내어서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