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내하면서 찬찬히 읽고 확인하여 보시면,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3년 기간 절기 사역의 주요 일정과 시간표, 부활절 일자가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제1부>는 희년과 공생애 절기 사역의 일정, <제2부>는 성경 절기력, 유대력의 변질된 절기력, 신약시대에 달라진 교회 절기력에 대한 내용입니다.
<제1부>
30회 희년과 공생애의 3년 사역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3년 사역에서 처음 6개월은 안식년, 그다음 1년은 희년입니다. 총 1년 6개월입니다. 세례와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던 공생애 준비 기간인 AD 25년 후반기도 안식년이었습니다. 지금의 양력(그레고리력)으로 후반기는 성경 희년 달력으로 전반기에 해당하므로 안식년입니다.
그러면 공생애 3년 또는 3년 6개월 동안 안식년과 희년이 거의 2년 기간입니다. 이 기간을 제외하면, 공생애 기간 나머지 1년 6개월은 평년에 해당합니다. 나사렛 회당에서 희년을 선포한 때는 공생애를 시작하여 6개월째 맞는 속전일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희년 선포를 예언한 이사야서 61:1~3의 말씀을 읽으시고, 길게 강론하시며 청중들과 논쟁도 하십니다(눅 4:16~30). 예수님은 희년을 선포한 외에 공생애 3년 동안 안식년과 희년에 관하여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사역을 살펴보면, 공생애 3년 사역은 안식년, 희년, 그리고 희년을 입증할 수 있는 각종 절기 사역들이 들어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활동은 크게 보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지역과 북쪽 갈릴리 지역으로 사역 장소를 나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의 첫 공식 활동은 성전청소입니다(요 2:13~22). 갈릴리 지역에서 첫 공식 메시지는 나사렛 회당에서 희년을 선포한 것입니다(눅 4:16~29). 그리고 마지막 사역은 예루살렘에서 일주일 동안 고난주간의 사역과 유월절기를 따라서 부활의 큰 역사를 이루십니다.
그다음은 부활 후 제자들을 만나서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과 증인의 삶을 가르치셨습다(행 1:3~8). 그리고 재림의 약속과 오순절 성령강림을 예비한 후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눅 24:49, 행 1:11).
공생애 3년 동안 첫 6개월은 안식년입니다. 4복음서에서 첫 6개월은 공생애 첫 사역인 유월절 성전청소에서 시작하여 30회 희년을 선포하기 직전까지의 기간을 말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성에게 복음을 전한 시기는 희년을 선포하기 위하여 갈릴리로 가는 도중이었습니다. 갈릴리에서 때가 차서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 전파를 시작하십니다(막 1:15).
예수님이 갈리리 나사렛 회당에서 희년을 선포한 때는 AD 26년 7월 10일 속전일입니다. 출애굽 이후 30회째 맞은 희년입니다. 이때부터 1년, 음력 1년인 354일 기간이 희년이었습니다. 15회 희년을 맞았던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기름 부음을 받은 메시아가 선포하게 될 그 희년입니다(사 61:1~3). 다니엘 70 이레에서 예언된 기름 부음을 받을 자와 490년 기간이 도래한 희년 선포일입니다(단 9:24, 눅 4:16).
AD 27년에는 오순절을 맞아서 예루살렘으로 잠시 다녀오시게 됩니다(요 5:1). 그리고 다시 갈릴리로 돌아와서 그 해는 특별한 활동 없이 1년을 보내십니다.
AD 28년은 유월절을 맞아서 다시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이때가 유월절로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시기입니다(요 6:1,4). AD 28년 유월절부터 6개월이 지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초막절 설교를 하십니다(요 7:37).
그다음 6개월 후인 AD 29년에 유월절기를 맞으면서 공생애 사역을 사실상 마무리하십니다(마 21:1). 이렇게 보면 예수 공생애 3년 사역은 안식년, 희년, 그리고 6개월 단위로 나누어진 기간으로 유월절이 있는 1월 절기와 초막절이 있는 7월 절기에 맞추어서 활동하신 것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7월 절기는 공생애 1년 차에 속전일(속죄일, 7월 10일) 희년 선포, 3년 차에 생수 복음을 전하신 설교(초막절기 마지막 날, 제8일) 등을 말합니다.
공생애 절기력과 6개월 기간 사역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활동 3년 동안 유월절기는 4회, 7월 절기 또는 초막절기는 3회가 있었습니다. 유월절기 사역은 AD 26년, 28년, 29년에 걸쳐서 3회, 7월 절기 사역은 AD 26년 속전일과 AD 28년 초막절기로 2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희년을 선포한 그해부터 1년, 곧 AD 27년은 유월절기와 초막절기가 와서도 절기 사역을 접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성경 절기력은 첫 절기 유월절에서 마지막 절기 초막절까지 만 6개월입니다. 초막절에서 다음 유월절까지도 만 6개월입니다. 여기서 6개월은 일수로 177일이며, 음력 1년인 354일의 절반 기간입니다. 추수기를 시작하는 초실절에서 추수를 다 마친 수장절까지도 6개월입니다. 성경에서 씨를 뿌리는 시기에 내리는 이른 비(가을비, 약 5:7)와 3월, 4월에 내리는 늦은 비(봄비, 슥 10:7)의 시차도 약 6개월 기간입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공생애 3년 기간을 절기력을 따라서 활동을 하셨습니다. 첫 사역은 AD 26년 유월절기 니산월 1월에 성전청소, 속전일 7월 10일에 희년을 선포하십니다. 6개월 기간입니다. 그다음 해가 되는 AD 27년은 오순절기에 예루살렘에서 38년된 병자를 낫게 하십니다. 그 외에 1년 동안은 절기에 따른 특별한 활동이 없습니다.
AD 27년 오순절은 그레고리력 5월 30일, 안식일 이튿날인 일요일이었습니다. 38년 된 병자 치료는 안식일이었므로 하루 전날인 토요일입니다(요 5:9). 이날을 유대인들이 ‘사부옷’이라고 하여 3월 6일이라는 날짜를 중시하여 지킵니다. 그러나 레위기 절기력은 날짜보다 ‘안식일 이튿날’인 일요일에 지켜야 합니다(레 23:15, 16).
그런데 AD 27년 오순절은 일요일이므로, 유대인의 오순절인 3월 6일 샤부옷과 레위기 절기력인 안식일 이튿날이 맞아집니다. 날짜가 3일이나 당겨진 유대인 오순절과 성경 오순절이 일요일로 겹치게 된 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AD 27년 오순절에 예루살렘을 잠시 들러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예루살렘은 유대인의 명절 샤부옷과 레위기 절기력이 겹치는 날(3월 6일 = 일요일)이었으므로, 그 이튿날 일요일 절기, 오순절을 지키려고 가신 것 같습니다.
그다음 AD 28년 유월절에 갈릴리에서 활동을 다시 하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사건이 이때 있었습니다. 그리고 6개월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초막절을 맞습니다. 초막절기 마지막 날에 생수에 대한 복음을 전하시고 설교를 하셨습니다. 이 기간이 6개월입니다.
AD 28년 초막절기 6개월 후는 AD 29년 유월절기를 맞습니다. 예수님은 이때 십자가 희생과 부활하심으로 거룩한 구원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이렇게 6개월씩 절기를 따라서 사역을 가지게 됩니다.
세례 요한의 출생과 아기 예수 출생도 6개월 기간 간격을 가집니다(눅 1:26). 아마도 공생애 활동에서도 세례 요한과 예수님은 6개월 정도의 시간 차이를 둔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같이 요한복음에서 예수 공생애의 활동이 6개월 단위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공생애 3년 사역이 절기를 따라서 활동하신 것을 알려줍니다.
백성들의 불신과 달라진 희년 사역
공생애 활동 3년 동안 안식년 첫 사역은 예루살렘에서의 성전청소이고(요 2:13~19), 갈릴리에서의 첫 사역은 나사렛 회당에서의 희년을 선포한 것입니다(눅 4:16~24). 성전을 청소한 안식년과 메시아의 신분으로 기쁜 소식을 전하신 희년 선포는 이렇게 6개월 기간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전청소는 부패한 종교를 개혁하려는 것이며, 희년 선포는 궁핍에 처한 백성들의 경제생활을 개혁하고 회복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희년에도 절기와 관련된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으시고, 1년을 보냅니다. 오순절로 추정되는 명절에 예루살렘에 잠시 다녀온 것뿐입니다(요 5:1). 희년이 끝 난 시기는 AD 27년 초막절기인데, 이때는 예수님이 나사렛으로 돌아오신 상태입니다(마 13:54, 갈리리 2차 사역 말기). 그런데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신분(목수의 아들)을 지적하면서 배척합니다(마 13:55, 막 6:3). 1년 전 나사렛 회당에서 희년을 선포한 때와 똑같은 반응을 보입니다(눅 4:22).
예수님이 AD 26년 7월 10일에 희년을 선포하신 후 1년 기간은 정기적으로 지켜왔던 유월절기와 초막절기도 지키신 흔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선포한 희년에 대한 강한 저항 때문일 것으로 보입니다.
그 대신 안식년과 희년이었던 그 시기는 예수님이 12제자를 선택하여 제자들에게 산상수훈을 가르치셨습니다. 백성들에게는 비유를 들어서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마 13장). 병든 자를 만나면 치료는 해주십니다. 그러나 이런 치유 활동은 소수에 그칩니다.
복음서 기자는 이 시기를 “예수님이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소수의 병자만 고치실 뿐, 큰 능력을 행사하지 않으셨다(마 13:57,58, 막 6:5,6)”라고 합니다. 이것이 안식년과 희년이었던 공생애 초반부 1년 6개월, 특히 희년이었던 1년 동안 하신 예수님의 사역에 관한 총평이 될 것입니다.
갈릴리에서 행하신 1차 사역과 2차 사역은 안식년과 희년에 관한 사역이 중심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희년이 시작될 때나 그 기간이 끝이 날 때까지도 거부하며,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이런 현상을 이상히 여기시며(막 6:6), 희년이었던 1년 동안은 큰 능력을 행하지 않으십니다. 그 대신 제자 교육과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안식일 논쟁, 산상수훈, 비유 복음에 들어있는 안식년과 희년 사역
AD 27년 유월절기와 초막절기는 절기 사역이 없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산상수훈을 가르치고, 백성들에게는 비유를 들어서 천국 복음을 전하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백성들이란 예수님을 찾아오는 병자나 무리를 말합니다. 이 시기는 종교 지도자나 정치 권력자들과 부딪히는 일도 없습니다.
성경일독학교 이애실 원장은 이 시기를 “민중사역”의 기간으로 봅니다(이애실, 앞의 책, 별책 부록 47쪽). 필자는 '민중'을 '민간'으로 바꾸어 “민간사역기”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민간사역기 1년은 절기 사역이 없었습니다. 안식년과 희년을 직접 언급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러나 민간사역기 1년 활동을 살펴보면 안식년, 희년, 절기에 관련된 복음적 사역을 많이 하셨습니다.
안식일 논쟁은 안식년과 희년에 집중됩니다.
모세의 율법으로 제정한 3대 안식제도는 안식일, 안식년, 희년입니다. 그런데 예수 공생애에서 특이한 것은 안식일에 대한 논쟁이 이 기간에 집중적으로 발생합니다. 안식일에 이삭을 자른 사건이 그 대표적입니다(마 12:1, 막 2:23, 눅 6:1). 이삭를 자른 것으로 보아서 AD 27년 밀 추수기가 다가오는 시기로 보입니다. 밀 추수를 마치면 오순절을 맞습니다.
주) 누가복음 6:1에서 “밀밭”으로 번역된 헬라어 “스포리모스”는 씨를 뿌린 ‘경작지’를 뜻한다. 킹제임스성경은 ‘옥수수밭’으로 번역하였다. 보리는 생 이삭을 먹지 못하므로 제자들이 자른 이삭은 밀이나 옥수수다. 밀과 옥수수는 보리보다 수확기가 1개월 정도 늦다(출 9:31,32). 요한복음 5:1의 명절은 유월절이라는 말이 없으며, 이삭을 자른 시기도 보리 추수기 유월절보다 밀 추수기에 가까운 오순절로 보아야 한다.
그다음은 안식일에도 병자를 치료합니다(요 5:9, 막 3:1, 눅 6:7). 누가복음은 평년의 안식일에도 손이 꼬부라진 여인과 고창 병자를 고치십니다(눅 13:10, 14:1). 그러나, 다른 복음서에는 안식일 논쟁이 초반기 사역 6개월 후 안식년 다음 해, 곧 희년이었던 1년 동안 있었던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안식일 사역과 안식일 논쟁을 통하여 유대 종교인들에게 안식제도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다.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 2:28,29)”라고 하셨습니다. 이때가 희년이었으므로 당연히 그 안식일은 안식년과 희년이 포함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당시에 도래한 안식년과 희년의 참 의미를 안식일 사역을 통하여 가르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안식일도 주인, 안식년과 희년도 주인이시며, 실제로 그 희년에 “주의 해”와 “승인의 해”를 선포하셨습니다(눅 4:19)
산상수훈과 희년 사역
절기와 희년 사역을 제도적(또는 율법적) 부분과 내용적 부분으로 나누면, 안식일 논쟁과 포도원 경제법의 비유는 제도적 준수를 위한 사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산상수훈과 비유 등에 들어있는 내용은 희년에 필요한 경제의 내용적 준수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예수 공생애를 연대기로 살펴보고 있으므로, 희년 경제의 내용적 측면은 간단하게 언급하고, 상세한 것은 별도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산상수훈은 모세의 계명을 복음적으로 재해석하면서 희년과 절기에 들어있는 경제적 내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간은 희년이었던 AD 27년 희년 선포일에서 다음 해 7월 절기까지 약 1년 기간입니다. 7월 절기는 나사렛 회당(눅 4:16)에서 행한 희년 선포일부터 1차, 2차 갈릴리 사역을 마치고, 다시 나사렛으로 돌아오신 장소(막 6:1)를 근거로 기간을 추정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과 6장, 누가복음 6장은 희년에 필요한 경제적 내용을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산에서 제자들에게 팔복 설교를 하십니다. 여기서 세 번째 복이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마 5:5)”고 하십니다. 평지 설교에서는 “가난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보며, 배가 부를 것(눅 6:20,21)”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부자에게는 복 대신 화가 미친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산에서는 입을 열어서 8가지 복으로 영적, 정신적 문제를 가르치시고, 평지에서는 눈을 떠서 실제 경제생활에서 필요한 희년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8복에서 세 번째 받은 복은 모세오경 세 번째 책 레위기 희년법을 지키는 자나 그 수혜자가 받을 기업입니다. 룻과 보아스와 같은 온유한 자가 레위기 희년법을 순종하여 토지 무르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계의 끊어진 족보를 잇고, 기업을 되찾아서 몰락한 가정을 복원합니다. 이에 더하여 다윗 왕가를 일으키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 족보를 통하여 오시게 됩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율법과 선지자를 폐하려는 것이 아니고, 완전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다 이루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다 이루겠다고 하신 율법의 일점일획에는 희년법이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듯이, 하나님과 재물(Mammon)을 동시에 섬기지 못합니다(마 6:24). 하나님을 섬기려면 재물에 욕심을 부리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마 6:33). 보물은 땅에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어야 합니다. 하늘에 쌓는 보물은 구제를 말하며(눅 12:33),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고, 빚은 사하여 주는 신명기의 면제년이나 구제년 등의 준수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산상수훈은 성경 희년법 준수도 당연히 포함되고 있습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으려면 먼저 남을 대접해야 합니다(눅 6:27,31). 원수라도 사랑하며, 주리면 먹이고, 모든 것을 내어주어야 합니다(마 5:44, 롬 12:20). 예수님은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눅 6:35)”고 하십니다. 이것을 “황금률”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산상수훈을 통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희년법의 제도적 준수보다 더 강도가 높은 내용적 순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희년법 실현을 위한 주기도
그리고,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주기도를 가르쳐 주셨는데, 주기도에는 희년과 경제를 위한 기도가 구체적으로 들어있습니다. 기도의 주 내용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이 땅에서 이루어질 나라”입니다. 그리고 내가 아닌 우리(구성원 모두)가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희년법은 구성원 전체와 들짐승들까지 먹을 양식을 허용하는 안식년 제도가 있으며(레 25:4~7), 항구적인 양식을 위해서 토지 무르기가 있습니다(레 25:24,28).
특히,특히 주기도에는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의 모든 빚들*’을 사하여 주듯이, 하나님이 우리의 죄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마 6:12, 눅 11:4)”라는 기도를 하라고 하십니다.
*주) 주기도에서 “죄”나 “잘못”으로 번역한 헬라어 원문은 “옵헤일레(debt)” 또는 “옵헤일레테스(debtor)”로 경제 용어인 “빚”을 말한다. ‘빚진 자를 사하는 것’은 사람의 용서보다 사람이 진 '빚*'을 없애주라는 뜻이다.
빚을 사하는 기도는 경제생활에서 노동 거래로 발생한 몸값과 토지 거래로 발생한 땅값을 무르기라는 방법으로 없애주어야 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그 사회는 안식년과 희년이 오게 되고 이 땅에 경제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레위기 희년법이 말하는 값을 치르는 속전일 행사와 죄를 사하는 속죄일 의식을 동시에 해야 하는 기도의 요청입니다. 곧 주의 기도는 우리가 우리에게 생활에서 필요한 희년 경제법의 순종을 위한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비유에 들어있는 희년법과 하나님의 나라
예수님은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땅은 스스로 열매를 내는 것”을 비유를 들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십니다(마 4:26~29). 씨 뿌리는 비유에서도 복음을 받아서 결실하는 정도를, 땅에 씨를 뿌려 거두는 경제적 현상을 예로 드십니다. 같은 씨를 뿌리고, 동일한 노동을 하여도 토지의 성질에 따라 수확물이 다르듯이, 복음을 받아드리는 사람의 마음 밭도 이런 토지의 비옥도(fertility)와 같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레위기 희년법이 알려준 땅이 스스로 내는 산물(레 25:5,11,19), 곧 땅의 생산활동을 비유로 복음 전파에 대한 사람의 영적인 결실 상태(정도)를 설명하신 것입니다. 땅이 스스로 경제적 가치를 생산하며, 수확물을 낸다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가시떨기 사이에 뿌린 씨앗은 말씀을 들어도 세상 재리의 염려와 유혹으로 결실하지 못하며, 좋은 땅에 뿌려져야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냅니다(마 13:22,23).
제도적 안식년과 희년의 온전한 성취(계승)는 포도원 경제법의 비유로
예수님은 안식년과 희년이 되었어도 희년을 선포하신 누가복음 4:16~19 외에는 안식년과 희년을 직접 언급하지 않으십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예수님이 안식일 준수에 대해서는 지도자들과 논쟁도 하면서 실제로 안식일에 필요한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안식년과 희년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안식년과 희년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다고 하면서, 희년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구약의 안식년과 희년을 신약시대에 와서 복음적으로 더 온전하게 회복하고, 회복한 희년을 영구적으로 지킬 수 있는 경제적 처방을 알려주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온전하고 영구적인 처방이 바로 포도원 품꾼의 비유(마 20:1~16)와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가 알려주는 경제법입니다(마 21:33~44). 안식년은 몸값이 소멸하여 노동의 자유가 회복되는 해입니다. 희년은 땅값이 소멸하여 토지 사용의 자유가 회복되는 해입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희년법에 있는 노동력 거래에서 발생한 몸값을 품삯으로 대체하는 거래 방식입니다. 이것은 구약시대에 노동시장에서 발생했던 몸값(자본, 미래가치)이 임금(소득, 현재가치)으로 바뀌는 제도입니다. 그래서 가격에 묶여있는(담보된) 몸값이 소멸하는 제도입니다. 노동력이 담보된 채권 채무(레 25:47~55)가 자동으로 소멸하여, 노동의 자유가 보장되는 시장입니다. 지금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임금 중심의 노동시장이 바로 이 제도입니다.
그리고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는 희년법에서 발생한 토지 사용권 거래를 토지 임료(임대료, 지대)로 거래하는 방식입니다. 이것은 구약시대에 발생한 시한부 땅값이 임료 하나로 바뀌고 소멸하는 제도입니다. 구약시대에 발생한 몸값이 임금 하나로 바뀐 것과 구약시대의 땅값이 임료 하나로 바뀐 것은, 시장원리가 같습니다. 토지에서 발생한 채권 채무(레 25:24~28)가 자동으로 소멸하여 버립니다.
구약시대의 토지 무르기가 자동으로 완성되어 토지의 자유가 영구적으로 보장될 수 있습니다.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에서 포도원 임료는 포도원 토지가 생산한 토지 생산물로 내게 됩니다. 내 것으로 임료를 내는 것이 아니고 포도원이 생산한 것으로 내는 것입니다. 포도원 사회에서 실업자의 생활비나 공적 경비는 포도원 자가 생산물로 충당하므로 포도원 경작자는 따로 세금을 낼 필요가 없습니다. 토지 임료 하나로 땅값에서 발생한 채권 채무도 소멸하고, 세금도 낼 필요 없이 토지 사용의 자유는 영구로 보장되는 사회입니다. 이것이 복음시대에 걸맞는 영구 희년입니다.
그러므로 두 비유가 알려주는 노동시장과 토지시장의 운영 방식은, 모두 구약시대의 희년법 무르기가 복음시대에 맞도록 방법과 내용이 획기적으로 바뀌는 제도입니다. 노동 거래에서 발생한 몸값 부채의 속량을 위해 필요했던 안식년과 토지 거래에서 발생한 땅값 부채의 무르기(상환)를 위해 필요했던 희년이 자동으로 성취되고, 완성되는 제도입니다.
포도원 비유는 천국 비밀을 깨닫는 자와 희년법 수용자에게
예수님은 이런 안식년과 희년의 복음적 성취를 위해 공생애 초반부에 직접 희년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강한 거부로 인하여 시행은 물론, 언급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다가 공생애 마지막 사역 기간에 선포한 희년을 완성하는 방법을 비유로 제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천국 비밀이 허락된 자만 알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마 13:10,11). 그러므로 포도원 비유도 허락된 사람만이 그 의미를 깨달아 알 수가 있습니다.
포도원 비유는 안식년과 희년에 관심이 있어야만, 그 비유에 들어있는 말씀이 희년법과 경제에 대한 내용으로 보이게 됩니다. 아니면 경제를 말하고 있는 포도원의 비유마저도 경제적 내용은 버리고 영적인 것만 취하게 됩니다. 곧 복음시대에 희년법이 온전하게 성취되려면, 포도원 품꾼의 비유와 경작자의 비유에 제시된 경제적 처방과 내용을 이해하고, 이것을 경제생활에서 수용해야 가능합니다(마 21:41,43).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예루살렘 성 밖에서 품꾼에게 필요한 천국 경제를 말씀하셨고(마 20:1),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는 성전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필요한 경제 통치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마 21:43). 비유의 대상도 품꾼(노동자)은 희년법이 말하는 기업(基業)이 없어서 고용된 자들이며, 경작자(경영자)는 분배받은 기업을 품꾼을 고용하여 경작(경영)하는 자로 신분을 나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두 비유에서 나타나는 사람들의 일반적 반응은 강한 불평과 거부입니다(마 20:11, 21:38). 희년을 선포한 때와 똑같은, 아니 이때보다 훨씬 강도가 높은 거부감을 가집니다. 포도원을 차지하고 싶은 인간의 소유욕은 그 상속자까지도 죽일 만큼 강도가 높습니다(마 21:38,39, 막 12:7).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안식년과 희년을 맞아서도 선포한 희년은 실행하지는 않으시고, 마지막 십자가 희생을 앞둔 시점에서야 그 방식을 비유로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제도의 온전한 성취와 실행을 위해 필요했던 속량의 값을 치르기 위하여 희생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래서 친히 피와 살과 목숨으로 값을 다 치르시어(요 19:30) 구약의 희년법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를 살리시는 참 구세주이시며, 누구보다 탁월하고 위대하신 인류의 스승이십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와 경작자의 비유가 가진 경제적 내용과 시장원리의 상세한 것은 필자의 다른 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주) 한가위 희년나라 1권, 희년과 포도원 천국, 2021, 요벨랜드.
공생애 3년과 30회 희년 사역의 연대기 요약
예수님이 공생애 3년 동안 하신 희년과 절기 사역을 연대기로 요약해 봅니다. 먼저, 참고로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 공생애 3년 1,090일은 ②~④의 기간 총일수를 공생애 첫 사역이 있었던 1차 성전청소일을 기준으로 계산한 것입니다. 곧 성전청소가 AD 26년 유대인의 유월절 당일에 있었다고 보는 기간 계산입니다(1,090일 = ②172일 + ③354일 + ④564일).
그러나 성전청소가 유월절 당일보다 정상 달력을 따라 3일 전에 있었다면, 총일수는 1,093일이 됩니다. 요한복음 2:13에는 유월절이 가까운 때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실제 청소는 안식일과 유대인의 명절이 되는 유월절 당일보다 그 이전이었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고난주간에 있었던 2차 성전청소는 유월절 5일 전, 월요일에 있었습니다(마 21:12).
그러함에도 필자가 공생애 기간을 유월절부터 잡는 것은, 1차 성전청소일이 구체적으로 며칠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 공생애 기간 1,090일은 날짜가 정확한 유대인 유월절을 기준으로 계산한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음력으로 만 3년 기간인 7의 주기 1,092일에 부활절(또는 초실절) 일자 1일을 더한(‘+1’) 1,093일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공생애의 3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주요 활동을 안식년, 희년, 절기를 중심으로 연대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공생애 준비 기간(210 안식년 전반기 활동) : AD 25년 안식년 시작기 7월 절기 ~ AD 26년 유월절 직전까지, 이 기간의 사역 일수는 확실하지 않음.
② 공생애 초기 사역(안식년 6개월) : AD 26년 유월절 ~ 7월 절기 희년 선포일 속전일까지, 172일
③ 공생애 중반 사역(희년 기간 1년) : AD 26년 7월 10일 ~ AD 27년 7월 9일까지, 음력 1년 354일
④ 공생애 후반 사역(평년 기간 1년 7개월) : AD 27년 7월 10일 ~ AD 29년 1월 15일, 부활절, 564일. 이 기간에는 AD 28년 7월, 초막절기에 생수 복음을 전함.
공생애 3년 1,090일 = ② 안식년 6개월 172일 + ③ 희년 354일 + ③ 평년 564일
공생애 3년 6개월 = ① 공생애 준비 기간 + 공생애 3년 1,090일 + 부활 후 승천일까지 약 40일
희년 사역기 1년 또는 1년 6개월(추정) : 나사렛 회당과 30회 희년 선포일(눅 4:16) ~ 갈리리 2차 사역 종료와 나사렛 귀향 시기(막 6:1)
이를 종합하여 다시 정리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3년 기간은 윤달을 포함한 정상 절기력(음력)으로 만 3년입니다. 총일수는 1,090일, 1,092일, 1,093일입니다. 요일주기로는 156주 또는 156주 ‘+1일(안식일 이튿날)’입니다.
1,090일은 유대인의 유월절기에서 부활절까지의 일수입니다. 유대인의 절기로 3일이나 늦추어진 달력은 단축년을 적용하여 정상 절기력으로 복원된 달력으로 부활절까지의 일수입니다. 1,092일은 같은 공생애 3년 기간이지만, 정상 절기력에 따른 AD 26년 유월절기에서 AD 29년 유월절기까지의 기간입니다. 1,093일은 만 3년, 156주인 1,092일에 ‘+1일(안식일 이튿날)’이 들어간 일요일로 부활절까지입니다.
1,092일 = 성경 절기력 3년 = 354일 × 3년 + 윤달 30일 = 156주
1,090일 = 유대인 절기력 = AD 26년 유월절기(4.21.화, 요 2:13) ~ AD 29년 유월절기(4.15.일, 요 20:1, 부활절)
1,092일 = 레위기 절기력 = AD 26년 유월절기(4.18. 토) ~ AD 29년 유월절기(4.14. 토)
1,093일 = 부활절 절기력 = 1,092일+1일 = 156주+1일(안식일 이튿날), AD 29.4.15. 일요일
출애굽 연도 BC 1446년 4월 11일 유월절(토)부터 공생애 3년을 포함한 AD 29년 4월 15일 부활절(일)까지의 총일수도 이렇게 계산됩니다.
538,371일 = 1,474년 × 365.24219878 538,367일 + 4일(초일 11일~말일 15일의 4일 기간)
538,371일 = 1,471년(210 안식년 + 30회 희년) × 365.24219878일 + 3년 총일수 1,100일
* 3년 총일수 1,100일 = AD 26년 유월절(4.21) ~ AD 29년 부활절 1,090일 + 10일(BC 1446년 초일 11일~AD 26년 유월절 4.21)
예수 공생애 3년 기간 절기력 사역 일람표
연도 (AD) | 절기 | 유대력 | 그레고리력 | 요일 | 성구 | 장소 | 주요 활동 |
26년 | 유월절기 | 1.15 | 4.21 (4.18) | 화(토) | 요 2:13 | 예루살렘 | 1차 성전청소일 |
속전일 | 7.10 | 10.10 (10.7) | 토(수) | 눅 4:16 | 갈릴리 나사렛 회당 | 30회 희년 선포일 | |
27년 | 유월절기 | 1.15 | 4.10 (4.7) | 토(목) | 갈릴리 | 활동 없음 | |
초막절기 | 7.15 | 10.4 (10.2) | 월(토) | 마 6:1(?) | 갈릴리 나사렛 | 활동 없음 | |
오순절기 | 3.6 | 5.30 | 일(일) | 요 5:1, 9 | 베데스다 | 치유는 토요일 | |
28년 | 유월절기 | 1.15 | 4.27 (4.24) | 목(월) | 요 6:4 | 갈릴리 디베랴 | 오병이어의 기적 |
초막절기 | 7.22 (제8일) | 10.28 (10.26) | 토(목) | 요 7:37 | 예루살렘 | 생수 복음 설교 | |
29년 | 유월절기 | 1.14 | 4.14 | 토(토) | 요 9:31, 42 | 예루살렘 | 십자가 희생과 무덤 |
1.15 | 4.15 | 일(일) | 마 28:1 | 예루살렘 | 부활절 | ||
오순절기 | 3.5 | 6.3 | 일(일) | 행 2:1 | 예루살렘 | 초대교회 | |
30년 | 유월절기 | 1.14 | 4.3 | 수* | *수요일=4.3 유월절 **일요일 = 4.7, ∴ 부활절 불가함 | ||
초막절기 | 7.15 | 9.28 | 토 |
* 그레고리력 ( ) 안은 레위기 23장에 따른 정상 절기력 일자와 요일임
** AD 27년은 유대력 12월에 윤달, AD 29년 그레고리력 2월에 윤일이 들어있음
*** AD 28년 달력은 27년 9월에 1일 단축, 29년 달력은 28년 9월 1일 단축, 29년과 30년 달력은 윤일 현상으로 1일이 늘어나서 자동적으로 정상 달력으로 복원된 일자와 요일임
안식년, 희년, 공생애 3년, 시간의 걸작품
BC 1446년 유월절부터 AD 29년 부활절까지 538,371일은 210 안식년 기간 + 30회 희년 + 공생애 3년을 모두 합계한 총일수입니다. 그러면, 예수 공생애 3년은 안식년 기간과 희년 1년을 다 채운 다음, 공생애 3년이 추가로 들어가야 산술적으로 계산이 맞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예수 공생애 3년 안에 안식년도 들어가고, 희년도 포함된 기간이 3년입니다. 일수로는 1,092(또는 1,090)일입니다. 기간 계산에서 중복되거나 틀린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중복이 아니고 맞습니다.
아이가 11월 초에 태어나서 다음 해 1월 초가 되면 나이가 만 2개월이지만, 연수로 치는 집 나이는 2살이며, 이를 연간 일수로 계산하면 730일입니다. 희년주기로 계산한 1,471년 또는 1,474년과 예수 공생애 3년의 총일수는 집 나이와 만 나이의 일수 차이와 원리가 같습니다.
이것은 예수 공생애 3년 기간에 초년도 1년 365일과 공생애 3년의 마지막 1년 365일이 모두 들어가서 이런 기간을 만들어냅니다. 기간 계산에서 1,471년과 1,474년의 기간을 일수로 계산할 때는 그 총일수가 성립하는 날수는 초년도 365일과 말년도 365일이 모두 포함되기 때문에 이런 계산이 나올 수 있습니다. 공생애 3년 기간만 보면 중복된 것이 맞는데, 이 3년 기간에 포함되는 초연도와 말년도 일수를 모두 포함하면, 거의 5년에 가깝고, 그 5년 기간 안에서 만 3년 총일수가 계산되기 때문에 이런 계산 결과가 나옵니다.
여기에 성경 달력과 그레고리력은 2개월 시차가 나며, 종교력과 희년 달력은 6개월 시차가 납니다. 총 8개월 시차입니다. 그런데 예수 공생애 3년은 이러한 성경 달력의 음력과 양력(그레고리력), 종교력과 희년 달력, 여기에 초년도 365일과 말년도 365일이 풀(모든 일자)로 가동되거나 연동되어서 이런 기막힌 연도와 날짜들이 만들어집니다. 이러한 예수 공생애 3년 기간은 3년 이전에 있었던 세례 요한의 활동기와 3년 이후에 있을 성령강림 사건과 초대교회의 출범연도까지 모두 들어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령강림은 AD 29년 성경 절기로는 3월 오순절이며, 이때는 희년부터 4년 차 맞는 초막절기로 7월입니다. 요셉의 이름을 가진 바나바가 땅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내어놓은 시기로 보아서(행 4:36,37) 토지 거래를 할 수 있는 7월 속전일 쯤 이었을 것입니다. 이때가 모든 추수를 다 마치고, 다시 씨를 뿌리기 직전이 7월 절기이므로 토지가 거래가 가능한 시기입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들이 모두 성령의 가르침대로 땅을 내어놓고 재분배를 한다면 초대교회 성도들도 희년을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처럼 땅을 팔아도 공동체에 내어놓기를 꺼리는 사람이 있었고(행 5:1~11), 구제에서도 히브리파와 헬라파 간의 갈등이 생기고 있으므로(행 6:1) 공동체 전체의 문제가 생깁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의 강한 반발과 스데반 집사의 순교가 있었습니다(행 7:59). 이는 성령강림이 있었던 초대교회도 속전일을 맞아서 할 수 있는 희년법의 실현은 어려웠습니다.
아무튼, 예수 공생애 3년 기간에 물리고 있는 총 기간은 AD 26년 유월절 이전 1년, AD 29년에도 부활절 이후 초막절기를 거쳐서 연말까지는 거의 1년의 여분이 남습니다. 그래서 공생애 3년은 그 앞에 있어야 할 210 안식년과 30회 희년이 서로 물리고 물리거나 총 기간에 포함되기 때문에 5년의 기간을 계수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유대력은 음력과 그레고리력의 2~3개월 시차, 종교력과 민간력의 6개월 시차가 있어서 서로 맞물립니다.
30회 희년과 예수 공생애는 이렇게 3년이 5년과 합작하여 3년의 절기 사역 기간을 만들어내는 그야말로 시간의 예술이고, 걸작품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의 구원 사역은 이렇게 기간 계산에서도 신비함과 절묘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2부>
예수님이 지켜온 성경 절기력과 달라진 종교 절기력의 미래
성경 절기력
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출 23:14)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아빕월의 정한 때에..(15) 맥추절을 지키라...(16) 수장절을 지키라...(16)
예수 그리스도는 공생애 3년 기간을 레위기 23장의 성경 절기력을 따라서 활동하셨습니다. 성경 절기력은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맥추절), 나팔절, 속죄일(속전일), 초막절(수장절)로 7대 절기력이 있습니다. '유월절기' 안에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이 들어있습니다. 칠칠절은 맥추절이라고도 하고, 오순절이라고도 합니다. 나팔절, 속죄일(속전일), 수장절 등은 초막절이 있는 티쉬리월 7월에 있으므로 '7월 절기' 또는 '초막절기'라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그냥 '7월'이라고도 합니다(대하 5:3, 스3:1, 느 8:1).
그래서 7대 절기를 3대 절기로 줄이면, 유월절(기), 오순절(맥추절, 칠칠절), 초막절(기)입니다. 3대 절기 중 유월절이 첫 명절이며, 중간 명절이 오순절입니다. 3대 절기 중 마지막 명절은 초막절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님의 공생애 3년 기간에는 레위기에서 제정한 안식년과 희년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공생애 3년 사역은 성경의 3대 절기력이 210 안식년과 30회 희년에 연동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와서 구약시대의 첫 명절 유월절기는 부활절기로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다. 중간 명절 오순절도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여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3대 절기 중 마지막 명절인 초막절은 아직 성취되지 않고 있습니다. 초막절기는 아직도 그 온전한 성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절기력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요 2:13)
성경 절기력은 종교와 생활 규례를 다룬 것이므로 그대로 지키면 구원은 물론, 풍성한 복과 자유를 함께 누릴 수 있는 제도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슬람 종교에서는 절기가 계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불교의 경전도 계절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 절기는 자연 계절과 추수기를 따라서 절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절기는 다른 종교에서 없는 생활 규례를 다룬 것입니다. 안식일, 안식년, 희년도 마찬가집니다. 성경 절기, 곧 성경은 이럼 점이 타종교의 경전과 다르고, 탁월합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절기는 성경의 7대 절기력을 성경대로 지키기보다 유대인들의 종교적 필요에 의해 달력을 바꾼 절기력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잘 지켜온 절기도 있지만, 그릇되게 지킨 절기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안식일 제도입니다. 유대인들이 잘못 지킨 절기는 요지만 추려보면 이렇습니다.
①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형식적으로 지키고, 그 형식마저 너무 철저하게 지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안식일이 가진 본질은 외면하고,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인 토요일에 집착하므로 예수님께 잦은 질책을 받았습니다(마 12:8,10, 막 2:28, 3:4, 눅 13:15, 요 7:23).
② 유대인들은 첫 명절 유월절기 초실절을 제사장이 보릿단 한 단을 드리는 제사 의식만 가집니다. 굶주린 백성들이 보릿고개를 넘겨야 하는 초실절은 매우 소중한 날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절기력은 초실절부터 추수기를 맞추어놓고 있습니다. 추수기에 맞추기 위하여 성경 절기력(태음력)은 태양력에 맞추는 윤달이 들어가는 태음태양력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절기의 의미를 백성들의 생활보다 종교의식에 초점을 맞춥니다. 추수기에 맞추어놓은 성경 절기력이 추수보다는 종교의식에 맞추어 변질시켰습니다. 절기 행사가 종교의식에 치중하고, 추수기에 해야 할 경제 문제는 회피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초실절에 대한 이런 인식에서 초실절을 따라서 부활하실 메시아를 알지 못했으며, 알았어도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③ 절기가 다가오면, 추수기에 해야 하는 경제 문제의 해결방식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추수를 가능하게 한 땅의 경제적 기능을 거의 모르거나 알아도 경제활동에서는 사실 그 자체를 부정하려고 합니다. 이런 인식이 유대인들에게는 추수기와 절기를 따라서 지켜야 했던 안식년, 면제년, 구제년, 희년, 각종 절기 등에 대한 불순종 행위로 나타납니다. 유대인의 이런 인식은 예수님이 비유로 가르치신 경제적 가르침이나 공생애 활동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④ 유대인들은 오순절에 지켜야 하는 요일을 잘못 지켰습니다. 유대인들은 오순절을 “샤부옷”이라고 하여 3월 6일에 지킵니다. 이날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여서 50일째로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은 날입니다. BC 1,446년 3월 6일, 일요일이었습니다. 이날은 오순절이며, 칠칠절이고, 맥추절입니다.
레위기 절기력에서 오순절은 안식일 이튿날, 곧 일요일에 지켜야 합니다(레 23:15,16). 그런데 첫 오순절 3월 6일은 일요일이 맞지만, 다음 해부터는 매년 요일이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다음 해부터 오순절은 3월 6일이 아니고, 레위기 규례를 따라서 매년 유월절 지난 첫 안식일 이튿날(레 23:11), 곧 일요일에 맞추어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일요일은 염두에 두지 않고, 매년 3월 6일에 지킵니다. 이것이 “사부옷” 절기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성경의 절기 규례를 스스로 어긴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인 토요일만 중시합니다. 그래서 초실절과 오순절은 일요일에 지켜야 하는데 안식일 이튿날이 되는 일요일은 상대적으로 무시하여 빚어지는 실수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안식일 편중 사고가 초대교회에서 일요일에 일어난 오순절 성령강림의 큰 사건을 이해할 수가 없고, 알아도 수용하지 못합니다.
⑤ 유대인들은 7월 절기 중에서도 “속하는 날(욤 키푸림, 속죄일과 속전일)”을 제대로 지키지 않습니다. 이날은 백성들의 죄를 속하는 날로 1년에 한 번 있는 대속죄일입니다. 그리고 이날은 경제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절차를 수행해야 하는 속전일입니다. 속전일이란 땅의 안식과 토지 무르기, 종의 해방, 부채의 탕감 등을 행하여 환경문제와 백성들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날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안식년과 희년이 제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속전일 경제 규례는 거의 지키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이 속전일을 지키지 않은 것은, 그들의 종교와 역사에서 예수님을 거부한 실수 다음으로 큰 실수에 해당할 것입니다. 속전일 속전 행사에 대해서는 자주 언급했으므로 상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⑥ 유대인들은 레위기 절기력을 변질시켰습니다. 달력을 특정 요일에 맞추어 임의로 바꾼 달력을 사용합니다. 속죄일이 금요일에 오지 않도록 하고, 초막절 제7일이 토요일이 되지 않도록 합니다. 그리고 가능한 안식일과 절기가 겹치는 큰 날이 많아지도록 합니다. 그래서 요일에 맞추어 날짜를 바꾸는데 이것이 연장년 또는 단축년입니다. 그래서 유대력은 요일을 따라서 절기와 1년 일수가 고무줄처럼 늘거나 줄기를 반복합니다.
⑦ 유대인들은 3대 절기 중 마지막 명절인 초막절에 대해서도 무지합니다. 초막절은 지구촌 인류가 함께 지키게 될 세계적인 명절입니다(슥 14:16). 그러나 유대인들은 선민의식이 강하여 세계인의 명절, 초막절이 유대인들의 축제로만 생각합니다. 레위기 절기력도 유대식 종교의식에 맞추어 날짜를 바꾸어서 절기를 변질시켰습니다. 매년 전반기에 있는 절기력 일자를 전년도 후반기(8월과 9월)에 미리 바꾸므로, 표면상의 절기 일자는 같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날짜가 바뀐 것도 모르고 절기를 지킵니다.
유대인들은 생활 규례인 레위기 절기법과 겸하여 지켜야 하는 안식년법과 희년법도 버렸습니다. 유대교의 이런 약점은 세계인의 명절이 될 초막절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영성은 희년을 모르므로, 토지 무르기의 속량법을 따라서 이 땅에 오신 초림 예수는 물론, 재림 예수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준 마지막 때와 추수기(막 4:29, 마 13:30, 계 14:16)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유대인들은 “속하는 날(욤 키푸림=레 25:8, 승인의 해= 4:19)”의 생활 규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마지막 명절 초막절기도 생활 규례로 지키기보다 종교의식과 축제 행사로만 보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초실절, 맥추절, 수장절의 3대 절기를 모두 추수기에 맞추어 제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추수 절기를 맞추려면 부득이 태양력에 맞추어야 하므로, 3년꼴로 한 번은 윤달을 두어야 합니다. 절기를 지키려면, 초실절과 같은 추수기에 맞추어야 하므로 하나님은 유대력에서 윤달을 적용하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위임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특정 요일에 맞추어서 레위기 절기법에 정해놓은 절기의 날짜까지 바꾸는 것을 허용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이렇게 절기의 날짜를 임의로 바꾸고, 종교 행위는 잘 지키려고 애를 썼지만, 희년법과 경제 규례는 지키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진 이런 경제적 약점은, 생활에서 관습처럼 굳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 밭은 초림 예수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있습니다. 유대력의 상세한 내용은 유대 달력의 이해와 복원 방식에서 설명했습니다.
교회의 절기력
안식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요 20: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한 곳에 모였더니(행 2:1)
전통 기독교에서 지키는 절기는 부활절, 성령강림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등이 있습니다. 이에 더하여 부활절이 오기 전에 지키는 사순절과 고난주간이 있고, 성탄절을 맞기 전에 가지는 대림절 의식이 있습니다. 이런 교회의 절기는 원칙적으로 구약시대의 7대 절기 또는 3대 절기가 신약시대에 와서 성취된 사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절기력은 구약시대의 절기와 짝을 이루거나 계승된 것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내용은 복음적이어야 합니다. 지금의 교회 절기력은 잘 지켜지는 것도 있고, 미흡한 부분도 있는데, 이에 대하여 대강의 요지만 밝히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부활절은 매년 춘분과 보름(만월)이 지난 첫 주일(일요일)에 지킵니다. 춘분기는 태양력에 의해서 결정되며, 유월절이 그 시기에 근접하게 됩니다. 부활절에 보름(만월)날이 들어가는 것은, 구약시대의 유월절기가 보름날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주일에 지키는 것은 첫 부활절이 AD 29년 4월 15일이 유월절기에 있는 일요일이었습니다. 이날은 또 안식일 이튿날(+1)이자, 일요일에 지켜야 하는 초실절이었습니다.
그래서 부활절은 달력상으로 ㄱ. 음력과 양력이 계절에서 맞나는 시기, ㄴ. 유월절기 명절이 보름주기와 만나는 시기, ㄷ. 안식일 이튿날로 초실절과 부활절이 만나는 일요일이어야 합니다. 교회가 정한 지금의 부활절 일자는 ㄱ, ㄴ, ㄷ이 모두 조화를 이룹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부활절 일자는 성경 절기에 잘 부합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부활절이 절기력 중에 구약시대에 제정한 절기의 의미가 복음적으로 잘 계승하였고, 지금의 시대에도 걸맞은 절기라고 보고 있습니다. AD 325년 니케아 공회와 가톨릭이 제정한 교회력 절기 중에 가장 잘 정한 교회력 절기가 부활절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2) 부활절이 있기 전에 지키는 사순절(四旬節, Lent)이 있습니다. 사순절(四旬節)은 기독교에서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념하고 참회하는 교회 절기입니다. 사순절은 부활절 46일 전 수요일부터 시작하여 46일 동안 계속합니다. 이마에 재를 바르고, 예수님이 겪은 고난에 동참한다는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부터 시작합니다. 사순절은 시내산에서 모세의 40일 금식, 예수님이 시험을 받을 때 40일 금식 등에서 정한 기간입니다. 사순절의 3가지 전통은 금식, 기도, 구제입니다.
그런데 사순절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사순절은 기간을 정하여 예수님이 겪으신 고난에 동참하며, 절제의 생활과 경건의 신앙 수련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긍정적인 요소입니다.
그러나 사순절은 의식을 중시하는 가톨릭에서 만든 제도입니다. 성경의 40일 금식을 따라서 40일로 정하였지만, 실제는 46일 기간에 주일을 빼고 지키므로 40일입니다. 사실상 46일의 기간입니다. 기간이 너무 깁니다. 이것이 문제가 있으니 중간에 주일은 건너뛰는 징검다리식 절기입니다. 절기의 내용은 행위에 치중하는 면이 있어서 구약시대에 있었던 율법적 행위와 비슷한 종교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자 칼빈은 사순절 의식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원래 사순절은 금식하고 구제를 했으나, 지금은 구제도 거의 사라진 상태입니다. 일부 교단에서는 사순절을 교회 절기력에서 제외한 곳도 있습니다.
(3) 이보다 더 큰 약점은 사순절 의식에 치중하다 보니, 실제로 고난주간에 해야 할 부분은 행사로만 그칩니다. 이게 약점입니다. 고난주간은 예수님이 4복음서 전체의 1/3에 해당한다고 할 만큼 큰 비중을 두고 사건 사역과 강론을 펼치셨습니다. 이에는 왕으로서 이 땅, 지상왕국에서 해야 할 통치행위를 가르치셨습니다. 이 통치행위에는 희년법이 주제가 되는 경제강론이 많습니다.
그런데 고난주간을 맞아도 한 주간을 새벽기도와 같은 기도와 영성을 다지는 신앙 훈련에 집중합니다. 예수님이 생활과 통치에 필요한 가르침을 준 경제 부분은 뚜껑을 열지 않습니다. 이것이 왕의 취임과 역할, 성전청소, 종교 지도자들인 제사장과 서기관,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에 대한 질책, 지상왕국의 통치법인 포도원 경제법과 같은 경제강론 등을 말합니다.
그래서 필자는 긴 시간의 의식을 중시하는 사순절에 치우치기보다 고난주간 1주일 기간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그것도 예수님이 활동하신 월요일 성전청소와 화요일 성전강론을 중심으로, 도적과 청지기의 비유, 열 처녀와 달란트의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가르쳐 준 생활(마 24:43~25:46)과 경제활동을 집중적으로 배우는 기간으로 삼아야 한다고 봅니다.
(4) 3대 절기 중 중간 명절 오순절은 교회에서 성령강림절로 지킵니다. 이 절기는 초실절부터 기수로는 50일 만이므로 오순절(五旬節)입니다. 서수로는 49일 만이므로 칠칠절(七七節)이라고 합니다.
한국 교회에서 중간 명절 오순절은 성령강림절과 맥추절감사절로 나누어서 지킵니다. 성령강림절은 부활절로부터 계수하여 50일째, 맥추감사절은 한국에서 보리 추수를 마치는 7월 초순(첫 주일)에 지킵니다. 복음시대이므로 날짜를 추수기에 맞추어 지키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초실절부터 맥추절까지 지키는 절기 의식에는 추수와 경제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성령강림절은 성령의 임재와 역할, 곧 영적인 내용만 다룹니다. 맥추감사절은 추수에 따른 헌금을 내고, 구원에 대한 감사의 소식과 예배만 있습니다. 추수와 경제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이 없습니다. 성령이 임한 초대교회는 가진 물질과 재산까지 다 내어놓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대교회는 성령강림으로 조직된 공동체가 해야 했던 경제적 유무상통은 말하지 않습니다(행 4:32~37).
그래서 교회는 성령강림으로 알게 된 유무상통의 경제가 시장제도에서 자동으로 실현되는 생활경제와 희년법의 시장원리를 모르게 됩니다. 누가 이런 부분을 말하면, 물질이나 경제는 기독교의 본질이 아니라고 회피합니다. 희년법은 사유재산제와 시장원리라고 하여도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로 오해하며, 이상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오순절 교회가 광야교회처럼 초막절 나라로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5) 3대 절기 중 마지막 명절 초막절은 7월에 있는 7월 절기 중의 하나입니다. 7월 절기는 나팔절, 속죄일(속전일), 초막절 등입니다. 7월 절기는 초막절이 대표적이므로 전체를 초막절기라고 부르고, 그냥 통칭하여 ‘7월’이라고 했습니다(대하 5:3, 스 3:1, 느 8:1). 초막절은 한국에서 한가위 명절이 있는 바로 그날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교회 절기력 중에 가장 무지한 상태에 있는 것이 7월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① 나팔절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습니다(레 23:24). 이날은 7월 절기 시작일로 나팔을 불어서 절기를 알리므로 나팔절입니다(레 23:24). 유대인들은 이날부터 신년이므로 설날입니다. 신약시대에 와서 나팔절은 마지막 때에 있을 예수 재림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재림의 때는 누구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마 24:36). 그래서 교회는 이날에 대해서는 일절 말이 없으므로, 나팔절과 종말에 대한 인식은 둔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② 7월 10일 속죄일은 알아도(레 23:27), 같은 날 지켜야 하는 속전일은 모릅니다(레 25:8). 속전일은 토지 무르기, 몸값 속량, 부채 탕감 등의 경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날입니다. 안식년과 희년이 이날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나 유대교나 기독교는 이날 해야 하는 경제 문제의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사람들은 이날을 죄를 사하는 속죄일 의식만 알고 있습니다. 필자가 이날을 우리가 알고 있는 ‘속죄일’을 두고 굳이 ‘속전일’로 바꾸어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히브리어 “욤 키푸림(יוֹם כִּפֻּרִים)”은 원어가 ‘속죄일’보다 ‘속전일’입니다(‘죄’라는 용어가 들어 있지 않음). 내용도 종교의식보다 경제생활에 더 필요한 절기입니다.
③ 7월 15일 초막절에 대한 인식 부족입니다(레 23:34,39). 그리스도인들은 초막절에 대하여 들어본 사례가 적어서 이해가 미흡합니다. 3대 절기 중 초막절은 날짜부터 잘 모릅니다. 특히, 초막절은 3대 절기 중에 마지막 절기로 구원의 완성을 위한 절기의 종착지입니다. 신약시대는 3대 절기 중에 유월절과 오순절은 성취가 되었지만, 초막절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두 절기가 날짜마저 정확하게 맞추어서 성취가 되었으므로 초막절도 정확하게 성취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초막절이 미래에 있을 때를 말하므로, 초막절도 때를 모른다고 하는 세상의 종말과 결부시켜 이해하고 그칩니다. 종말은 누구도 때를 모르므로 초막절도 그때를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종말은 예수님이 그때를 아무도 모른다고 했으니 모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초막절은 매년 7월 15일로 그때를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유월절과 오순절 두 절기가 날짜까지 정확하게 맞추어서 성취되었으므로 초막절 역시 정확한 날짜의 성취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짜가 분명하게 있는 초막절과 때와 시기를 모르는 세상 종말과는 시간과 차원이 다르고, 내용도 다른 절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초막절에 대하여 아는 것이 너무 빈약합니다.
④ 교회 절기에서 성경의 초막절과 가장 유사한 절기가 추수감사절입니다. 보통 11월 셋째 주일에 지킵니다. 그런데 이 추수감사절은 미국에서 도입된 절기입니다. 성경 절기라기보다 서양 문화로 들어온 것입니다. 이방 절기에 가깝고, 시기는 성경 초막절보다 약 2개월이 늦습니다. 2개월 늦은 것은 절기를 추수기에 맞춘 것이므로 복음시대에 이런 시기까지 문제 삼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이 영혼 구원에 대한 감사만 다루는 것이 문제입니다. 초막절은 추수와 경제와 관련되는 내용을 전해야 합니다. 초막절 잔치를 준비하는 속전일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전하고 가르쳐야 하고, 알고 배워야 합니다. 생태계 보호를 위한 안식년과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정한 희년을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추수감사절 행사는 영혼 구원에 대한 감사만 있습니다. 감사는 넘쳐날 정도지만, 추수와 경제법에 대해서는 말이 없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6) 초막절은 미래에도 지켜야 할 세계적인 명절입니다(슥 14:16). 초막절은 한국의 한가윗날과 같은 시기, 같은 명절입니다. 윤달 적용의 시차, 유대력에서 연장년과 단축년으로 인한 날짜를 바꾸기를 제외하면, 성경 초막절과 한국 초막절은 같은 날입니다(시차로 약 18시간 차이). 이스라엘 민족은 초막절을 지키고, 한국인은 한가윗날을 같은 날, 같은 시기, 같은 의미로 지키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배척한 상태로, 성경의 초막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으면서 같은 날, 같은 의미의 명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한국인들은 성경의 초막절과 한가윗날의 관련성으로 알려주어도, 이날이 가지는 날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달력이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의 음력 달력이라고 해도 감각이 없습니다. 한국 기독인들은 사도 바울의 가르침대로 예수님 잘 믿고, 신앙생활(예배, 기도, 전도)만 잘하다가 천국에 가면 상급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큰 약점입니다.
필자는 이런 현상에 대하여 생각을 해봅니다. 만약에 복음이 서양인들을 통하여 들어오지 않고, 한국인 스스로 복음을 받아들였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성경과 복음을 유대인들을 통하여 들어왔으면, 어떠하였을까? 아마도 지금은 우리가 미국식 추수감사절보다 한국의 한가윗날을 성경의 초막절 절기로 지키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누가 미국식 추수감사절을 지키자고 하면, 그런 추수 절기는 성경에 없으며, 성경적이 아니라고 할 것 같습니다.
성경의 초막절과 한국의 한가윗날은 3대 절기 중에 남은 마지막 명절입니다. 성경에 추수는 마지막 때를 말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추수 절기인 초막절은 미래에 그 날짜를 따라서, 그 의미를 따라서 성취되어야 할 절기입니다. 그것도 우리가 잘 모르는 희년법과 예수 그리스도의 포도원 경제법 비유가 말하는 시장원리를 따라서 성취될 것으로 보입니다(마 21:41,43).
(7) 지금의 성탄절은 날짜를 잘 모르며 시기가 다릅니다. 원래 그레고리력 12월 25일은 로마에서 태양신을 숭배하는 축제일이었습니다. 태양신 축제일이 기독교의 축일이 된 이유를 물으면, 이교도들의 선교를 위해서 날짜를 그렇게 정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는 성탄절의 날짜를 잘 모르기 때문에 깊은 연구나 고민이 없이 졸속으로 결정된 절기입니다. 로마의 황제나 정치 권력의 영향을 받기도 했습니다.
성탄절은 정확한 날짜를 잘 모르지만, 우리가 거의 관심이 없는 생활과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그 시기를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ㄱ. 양들이 들판(농경지를 뜻함)에서 방목이 가능하였고, ㄴ. 목동들이 야영할 수 있는 시기입니다(눅 2:8). ㄷ. 더구나 요셉은 재산을 등록하기 위하여(눅 2:1~3) 만삭의 몸인 마리아와 함께 무리한 여행을 했습니다. ㄹ. 베들레헴은 다윗의 혈통을 가진 요셉과 마리아와 그 후손들에게 영구적으로 상속될 수 있는 기업이 있는 곳입니다(눅 2:4). ㄷ과 ㄹ은 기업이 회복되는 시기를 알려주는 성경 희년법과 상속법을 알아야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 당시 베들레헴은 만삭의 여인이 묵을 곳이 없었다는 것은(눅 2:7), 그 당시 예루살렘에는 사람이 많이 운집해 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곧 이 시기는 3대 절기에 지켜야 하는 축제와 순례 기간이었음을 시사합니다. 그래서 이런 연유를 종합하여 보면 이 시기를 충분히 유추할 수가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탄절은 예수님이 구원자로 오신 것이 중요하지 날짜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논의해 온 부활절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합니다. 물론 그런 의미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과 공생애 활동, 그리고 사람과 세상을 살리시기 위하여 행하신 죽음과 부활은 실제로 있었던 실제적 현상이고, 역사적 사건입니다. 또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구체적 사실입니다.
그러함에도 성경에 있는 사실을 등한시하거나, 역사를 외면하면서, 오직 믿고 구원만 받으면 된다고 하면 그런 신앙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사고는 일견하여 믿음이 좋아보이기는 하지만, 스스로 성경을 불신하거나 성경을 신화나 소설로 격하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이런 약점들로 인하여 비기독인들은 성경을 불신합니다. 비기독인들에게 예수님은 소설 속의 주인공으로 보거나 잘해야 성자나 현인 정도로 여깁니다. 그리고 기독인들은 성경을 신앙만 다루는 종교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약점들로 인하여 그 틈새를 이단들이 파고들어서 전통 기독교를 오염시키 있고, 복음의 본질마저 흐리게 하여 신앙의 뿌리를 흔들고 있습니다.
안식년과 희년, 예수 공생애와 부활절, 정확·절묘·신비합니다.
7의 주기, 1,471년의 희년주기, 1,474년 부활절 538,371일
하나님은 7일 주기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 주기의 안식일 제도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BC 1446년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종살이에서 구원하시고, 그 해에 7 안식일과 7 안식년을 제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해가 되는 BC 1445년 7의 주기를 가진 희년법을 제정하십니다. 그래서 유월절과 초실절의 발효일은 BC 1446년 유월절기부터이며, 안식년과 희년(법)과 희년주기의 발효일은 7월 10일 속전일부터입니다.
여기서 예수 공생애 시작한 연도까지 210 안식년, 30회 희년인 1,471년 기간입니다. 연도와 날짜는 모두 7의 주기가 정확하게 성립합니다. 여기서 예수 공생애 3년 기간을 더하면 1,474년 기간입니다. 1,474년 기간의 유월절와 초실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절이 7의 주기 안식일(토요일)과 주의 날 ‘+1일(안식일 이튿날, 일요일)’이 538,371일로 정확하게 성립합니다.
예수 공생애 3년, 1,092 +1일, 안식일 +1일, 초실절 + 부활절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사역은 이 출애굽 연도, 안식년과 희년의 연도와 날짜를 맞추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유월절 일자와 요일까지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정확하게 맞추어서 성취되었습니다. 이러한 연도와 날짜의 정확성은 수차례 반복하여 설명하고, 확인을 한 바가 있습니다.
양력 1년은 365일이며, 400년에 97회의 윤일이 있습니다. 성경 음력 1년은 354일이며, 3년마다 30일의 윤달을 두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양력과 음력이 예수 공생애 3년 기간은 총일수 1,092일로 일치합니다(유대력에 따른 실제 일수는 1,090일). 1,092일은 음력으로 만 3년이며, 7의 주기로 156주, 잔여일수가 0일입니다. 그리고 7의 주기에서 '안식일 +1일'은 구약의 초실절이고, 오순절입니다. 이 안식일 +1일이 신약에서는 부활절이고, 성령강림절입니다.
천문학적 1년은 365.24219878일입니다. 소수점 이하 8자리 수가 날짜 계산을 어렵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어려운 숫자를 정확하게 세시고, 이 수를 사용하여 십자가 죽음과 부활하심으로 사람을 살리시고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숫자를 짧게는 1,471년(출애굽 연도~공생애 희년)과 1,474년(+공생애 3년), 길게는 2,107년(횃불언약 연도~공생애 희년)의 희년주기를 세어 오셨습니다. 그래서 숫자 계산이 어렵지만, 우리가 계산이라도 한 번 해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210 안식년, 30회 희년, 공생애 3년, 1.24219878일 배분
공생애 3년 중 희년 기간 1년은 365.24219878일입니다. 이 일수를 7로 나누면 ㉠1.24219878일이 남습니다. 그런데 출애굽 연도부터 예수 공생애 시작연도까지 계속하여 온 210 안식년은 7의 주기에서 ㉡0.9678일이 모자랍니다. 그래서 30회 희년이 남은 일수 중에 0.7678일을 빌려줍니다. 그러면 210 안식년 말일과 30회 희년 초일이 모두 7의 주기로 안식일이 되면서, 날짜와 요일이 시계의 초침, 분침, 시침처럼 맞춰집니다.
그러면 30회 희년은 ㉢0.2744일이 남습니다. 그런데 예수 공생애 3년 동안 자투리 1.24219878일을 3년 동안 계속하면 3.7266일로 4일에 0.2744일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30회 희년 잔여일을 ㉢0.2744일을 빌려주면 만 4일이 되고 잔여일수는 0일입니다. 이날은 지구의 자전주기와 공전주기가 0.001001일 차이로 접근한 때입니다. 천문학적으로 지구의 자전주기와 공전주기가 1억년 이내에 가장 최근접한 연도와 날짜와 요일과 시간입니다.
이날이 부활절입니다. AD 29년 성경 달력 1월 15일, 양력은 4월 15일, 보름날입니다.
㉠ 30회 희년 요일주기 자투리 일수 = ㉡ 210 안식년 안식일 부족일 + ㉢ 공생애 3년 부족일
㉠ 1.2422일 = ㉡ 0.9678일 + ㉢ 0.2744일
=> 총 1,474년 538.371일, 76,910주(안식일, 토요일) +1일(안식일 이튿날, 일요일, 주님의 날)
* 210 안식년, 30회 희년, 공생애 3년, 유월절기과 부활절기, 초실절과 부활절이 7일 주기로 일치한 날, 음력과 양력, 추수기와 보름주기의 최근접일
** 나머지 일자는 날짜 계산을 직접 해보시고, 요일은 한국천문연구원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안식일, 안식년, 희년의 수를 세시고 날짜를 지켜서 그 해와 날을 성취시키셨습니다. 이날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날입니다. 숨이 막히고, 기가 막힐 정도로 정확하고,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을 만큼 절묘하고 신비합니다.
부활절의 연도와 날짜도 이날에 맞추어서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설명해 온 희년법 희년주기와 부활절 일자를 비롯한 예수 공생애 3년 사역의 연대기는 이렇게 성경이 알려주는 정확한 연도와 날짜에 근거한 것입니다.
희년법과 십자가 희생은 구원의 유일 수단(속량의 방법론)
옹달샘의 물리적 성질과 성경 희년법
앞에서 토끼도 마시고, 사람도 마시는 “옹달샘 이야기”를 했습니다. 옹달샘은 솟아나는 샘물이 많든, 적든 그 물은 영원히 계속 솟아납니다. 그래서 땅을 적시고 뭇 생명들을 살립니다. 사람들은 옹달샘에 대하여 동화를 쓰고 시도 짓고, 종교인들은 예화도 듭니다. 과학자들은 샘과 샘물의 과학적 현상도 연구합니다. 경제학자는 가치와 가격을 논합니다.
그러나 이 옹달샘에 대하여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인간의 무지’가 하나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경제적 무지입니다. 마시고 또 마셔도 솟아나는 샘물은 사람이 그 물을 다 마실 수가 없습니다. 옹달샘이 생산한 샘물은 마실 수 있어도, 샘물을 생산하는 옹달샘은 사람이 마실 수 없습니다. 곧 옹달샘의 원천(원금), 옹달샘 자체(땅값)는 사람이 마실 수가 없습니다. 이런 성질을 가르쳐 주는 것이 성경 희년법입니다.
성경의 희년법은 옹달샘이 가진 토지의 물리적 성질 때문에 생겨난 제도입니다. 이 옹달샘의 물리적 성질 때문에 토지나 주식과 같은 영구적 존재물은 무르기가 있는 시한부 거래 방식을 채용해야 합니다. 아니면 예수님이 비유로 가르쳐주신 포도원 경제법을 따라서 옹달샘(포도원)은 주인과 사용자를 구분하여 거래해야 합니다. 그러면 부동산 문제, 금융문제, 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비로소 제도적 해결이 가능합니다. 말세적 타락의 징조를 보이는 가상화폐는 없애버리거나 특허권이나 기술 사용료로 대체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사람의 경제활동에서 시장기능을 해치는 가격의 암 덩어리가 제거되어 시장 균형이 회복되고, 세상은 경제적 안정으로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대속(代贖)과 성경 희년법, 구원의 유일 수단
이제 예수님 십자가 희생과 구원을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셨나요?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희생시키지 않고는 세상 구원을 이룰 수가 없으셨나요? 전능자 하나님이 왜 굳이 이런 희생의 방법을 사용하여 사람과 세상을 구원하셨을까요? 더 쉬운 방법은 없었을까요? 이런 질문은 자칫하면 사변에 불과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정리를 해봅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시기 위해서입니다(롬 5:8). 신이신 예수님이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살과 피와 목숨까지 다 내어주심으로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실제로 확인하고 실감할 수 있습니다. 풀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서 십자가 희생은 율법과 복음, 행위와 은혜를 구분하는 방법론의 기준이기도 합니다.
그다음은, 우리가 지은 죗값을 대신 치러주기 위해서입니다. 값을 치른다는 것은 세상에서 공짜가 없는 인과응보의 법칙이요, 시장원리입니다. 이 값을 대신 치러주신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의 자력으로는 이 값을 치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자비와 은혜가 필요한 십자가의 구원원리입니다.
마지막으로, 십자가 희생과 속량은 구원의 방식에서 문제 해결의 근본 해법이자, 유일한 수단입니다. 인간의 생존문제와 영생의 문제는 반드시 해결이 필요하지만, 내가 할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대신하여 해결하여 주는 것이 구원입니다. 성경 희년법은 반드시 값을 치러서 경제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 해결을 능력자가 대신하여 줄 때, 이것을 속량(贖良, redemption) 또는 대속(代贖)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과 성경 희년법의 토지 무르기는 이러한 구원의 방법론이 같습니다. 값을 치르는 시장원리와 이 값을 대신하여 치러주는 은혜의 구원원리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 구원의 방법론이 주기도문에 있습니다. 주의 기도는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모든 사람을 사하여 주듯이, 우리의 죄들도 사하여 주옵소서(눅 11:4)"라고 합니다. 죄와 죽음의 문제는 하나님이 해결하여 주시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 빚과 경제문제는 서로서로 값을 치러서 해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희년법이 가르쳐 준 시장원리와 구원원리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고전 1:18).
예수님이 친히 십자가를 지신 희생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한 것이 죄와 영생의 문제를 해결한 방법이었습니다. 사람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이러한 십자가 희생의 구원 방식과 원리가 같다는 것을 보여주시고, 그 방법을 실제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대속(대신)의 방법 외에, 다른 어떤 사상과 철학, 이론과 수단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희년법과 예수님이 비유로 가르쳐 주신 포도원 경제법은 경제구원의 근본 해법이자, 유일한 수단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방법론은 부족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었어도 희년법이 가르쳐 주는 무르기가 최선의 방법입니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희년법, 희년주기, 성경연대기, 정확·절묘·신비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희년주기와 성경연대기, 안식년과 희년이 들어있는 예수 공생애 3년 기간과 부활절 일자가 서로 맞물려 있고, 기간은 정확했습니다. 짧게는 1,474년, 길게는 2,107년의 기간이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돌고 돌아서, 시계의 초침, 분침, 시침처럼 정확하게 숫자까지 맞추어서 맞난 시간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성경 66권이 하나로 증거하고, 천체의 운동주기가 구체적으로 입증하여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같은 7의 주기 안식년과 희년주기로 제정된 구약의 희년법과 예수님이 알려주신 포도원 경제법, 역시 부족함이 없이 완전합니다. 이것 역시 성경이 증거하고, 토지의 물리적 성질이 입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3년의 공생애 사역을 통하여 이런 역사적 사실을 말씀과 사건으로 구체적으로 입증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을 따라서 십자가를 지시고, 값을 치른 값진 희생의 은혜로 사람과 세상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걸으신 구원의 방식을 믿고 따르면, 모든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풍성한 은혜와 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경은 정말 위대한 책입니다. 성경 희년법과 포도원 경제법은 경제문제의 유일한 해법입니다. 성경은 죽음의 문제도 해결하고, 삶의 문제도 해결하여 놓은 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생명을 살리신 구세주이시며, 세상을 다스리는 메시아, 만왕의 왕이십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