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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귀환 시대 역대왕들 (바벨론, 메대,바사 시대)
고레스왕의 1차 포로귀환 조서
다리오 1세
학개, 스가랴 선지자 활동
아하수에로왕의 에스더 왕후 등극
아닥사스다 1세 등극
아닥사스다의 왕의 2차 포로귀환 조서
에스라의 귀환
예루살렘 성벽 재건과 방해공작
예루살렘 성벽 재건 중단
에스라 개혁운동
아닥사스다의 왕의 3차 포로귀환 조서
예루살렘 성벽 중건 재개
예루살렘 성벽의 완공
느헤미야의 인구조사
예루살렘 성벽 낙성식
(느 2:1, 현대어)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가다] 아닥사스다왕 20년 ㄷ) 니산월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그동안 4개월이나 금식하며 기도하다가 왕 앞에서 술을 따라 바치게 되었다. 그런데 전과는 달리 나 자신이 아주 슬프게 느껴졌다. (ㄷ. 유대 달력으로 봄철이 시작되는 1월로서 오늘날의 양력으로는 3월 중순에서 4월 중순에 해당된다)
(느 13:4, 현대어) [도비야의 추방] 내가 12년 동안의 총독 임기를 마치고 다시 ㄷ) 바사 왕궁으로 잠시 돌아가 있던 사이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 우리 하나님의 성전 곁방들을 관리하던 제사장 엘리아십이 민족의 원수인 도비야와 더욱 가까워져서 엉뚱한 일을 저질렀다.
(ㄷ. BC 433년) 말라기 시대입니다..
(느 13:6, 현대어) 내가 예루살렘에 없는 그 짧은 기간에 원수의 상징이요 대표자인 암몬 족속의 도비야가 성전의 깊은 곳에까지 들어와 앉은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임기를 마치고 바사의 수도 바벨론으로 돌아가 아닥사스다 왕궁에 있었다. 이때가 아닥사스다왕 32년이었다. 나는 그곳에 얼마 동안 머무른 다음, 다시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왕에게 요청하였다.
(느 5:14, 현대어) [모범적인 총독 느헤미야] 나는 ㄱ) 아닥사스다왕 20년부터 32년까지 12년 동안 유다 지방의 총독으로 임명되어 일을 하였으나, 나와 나의 형제들은 총독이 받는 월급을 받은 일이 없었다. (ㄱ. BC 444-432년)
(느 6:15, 현대어) [성벽 수축 공사의 완료] 성벽공사는 안팎으로 어려움이 많았지만 마침내 완성되었다. ㄱ) 공사를 시작한 지 52일 만이었다. ㄴ) 엘룰월 25일이 완공일이었다. (ㄱ. 아닥사스다 20년 즉 BC 445년. ㄴ. 오늘날 양력으로는 8월 중순에서 9월 중순에 해당된다)
(느 7:1, 현대어) [예루살렘 도성 방위 체제] ㄷ) 성벽재건이 완성되자, 나는 성문을 달고 문지기들을 세워 놓았다. 그리고 성전에서 섬길 성가대원들과 레위 사람들도 임명해 놓았다. (ㄷ. BC 445년)
(느 7:5, 현대어) 내가 이렇게 사람이 적은 것을 염려하자,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을 감동시켜 전국의 인구를 조사하게 하셨다. 그래서 나는 전국의 유지들과 관리들과 백성들을 불러모으고 전국적으로 인구조사를 시켰다. 이때에 나는 스룹바벨을 따라 ㄹ) 1차로 귀환한 이들의 이름이 등록된 책을 발견하였는데, 거기에는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ㄹ. BC 537년)
3차포로귀환 입니다..
(느 7:66, 현대어) 고국으로 귀환한 온 무리는 모두 4만 2360명이었고, 그 밖에 남녀 노예가 7337명이요, 남녀 성가대원 245명이요, 말 736마리, 노새가 245마리, 약대 435마리, 나귀가 6720마리였다.
(느 8:1, 현대어) [율법을 읽는 명절] 이렇게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옛 고향을 찾아 정착하였다. 그해 7월이 되었다. 유다 전통에서 ㄱ) 7월 1일은 여호와를 위하여 즐겁게 잔치하는 축제일이었다.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은 이 명절을 이용하여 율법을 배우는 명절을 지키게 되었다. 그래서 7월 1일이 되자 온 백성이 수문 앞의 광장에 모였다. 온 백성은 서기관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르쳐 주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다가 읽어 주시오!' 하고 요청하였다. (ㄱ. 오늘날의 양력으로는 9월 15일쯤에 해당된다)
(느 8:2, 현대어) 그러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나왔는데, 그의 앞에는 남녀 어른들부터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모였다. 에스라는 이른 아침부터 점심 때까지 여러 시간을 읽었는데, 온 백성은 그동안 계속 에스라만 바라보며 율법의 말씀을 들었다.
(느 12:1, 현대어)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 ㄱ) 538년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함께 바사의 포로생활에서 떠나 유다의 고향으로 돌아온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은 다음과 같았다. 먼저 제사장들의 명단은 스라야와 예레미야와 에스라와 (ㄱ. BC 538년)
(느 12:2, 현대어) 아마랴와 말룩과 핫두스와
(느 12:3, 현대어) 스가냐와 르훔과 므레못과
(느 12:4, 현대어) 잇도와 긴느도이와 아비야와
(느 12:5, 현대어) 미야민과 마아댜와 빌가와
(느 12:6, 현대어) 스마야와 요야립과 여다야와
(느 12:7, 현대어) 살루와 아목과 힐기야와 여다야, 이상 22명의 제사장은 예수아가 대제사장으로 봉직하던 동안에 지도적인 위치에 있던 제사장들과 그 협동자들이었다.
(느 12:27, 현대어) [예루살렘 성벽 봉헌식] 느헤미야가 계속 보고하였다. ㄱ) 예루살렘의 성벽공사가 완공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성벽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우리는 온 나라에서 레위 사람들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제금을 치고 비파와 수금을 타며 즐겁게 감사의 찬양을 드리는 봉헌 예식을 거행하게 하였다. (ㄱ. BC 445년)
(느 12:47, 현대어) ㄱ) 스룹바벨 시대와 나 ㄴ) 느헤미야 시대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성가대원과 성전 문지기들의 생활을 부양하기 위하여 매일 일정한 예물을 바쳤다. 백성이 그 예물을 레위 사람들에게 가져다 주면 레위 사람들은 그 중에서 일정한 분량을 떼어 제사장들에게 넘겨 주었다.
(ㄱ. BC 537년. ㄴ. BC 433년)
(라 3:1, 현대어) [새 제단에서 첫 제물을 바치다] 이스라엘 백성이 저마다 자기 고향 마을로 가서 정착한 다음, 바로 ㄱ) 그해의 7월이 되자 온 백성이 한마음으로 단합하여 예루살렘에 모였다. (ㄱ. BC 537년)
(라 3:8, 현대어)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ㄴ) 다음해 2월에 스알디엘의 이득 스룹바벨,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그 형제 제사장들, 레위 사람들, 그리고 바벨론의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모든 사람들이 공사를 시작하였다. 20세 이상된 레위 사람들은 그 공사의 감독을 맡았다. (ㄴ. BC 536년)
(라 4:5, 현대어) 그들은 귀환한 유다인들의 성전재건 계획을 좌절시키기 위하여 유다에 와 있는 바사 왕궁의 관리들까지 뇌물로 매수하였다. 그들은 고레스왕이 통치하던 시대부터
ㄱ) 다리오왕 2년에 이르기까지 거의 20년 동안 계속 그렇게 방해하였다. (ㄱ. BC 520년)
(라 4:6, 현대어) [예루살렘 성벽재건의 방해] 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났을 때에도 그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벽 공사를 방해하였다. ㄴ) 아하수에로왕이 즉위한 해에 그들은 왕에게 예루살렘과 유다 주민들을 고발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ㄴ. BC 486년)
(라 4:7, 현대어) 그로부터 20여 년이 또 지나서 ㄷ) 아닥사스다왕 1세가 다스리던 때에도 그들은 예루살렘 성벽 공사를 방해하였다. 이때에는 느헤미야가 성벽재건을 하고 있었는데 비슬람과 미드르닷과 다브엘과 그들과 함께 일하던 친구들이 바사 왕 아닥사스다에게 성벽재건을 고발하였다. 이들은 모두 바사와 아람과 바벨론 지역에서 들어온 외국인들이었다. 그들의 고발장은 그 당시 국제 통용어였던 ㄹ) 아람어로 기록되었는데 그것은 아람어로 번역한 것이었다.
(ㄷ. BC 464-424년. ㄹ. 원문에서 아람어로 기록된 부분은 4:8-6:14,18. 7:12-26절이다)
(라 4:8, 현대어) 또 아닥사스다 1세가 다스리던 기간에 사마리아의 총독 르훔이 자기의 서기관 심새와 함께 예루살렘의 성벽재건을 막도록 왕에게 상소문을 써서 보냈다. 그 고발장에는 다음과 같은 상소자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었다.
(라 4:24, 현대어) 예루살렘의 성전 공사도 중단되어 있다가 ㄱ) 다리오 2세의 즉위 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성전 재건을 다시 시작하였다. (ㄱ. BC 420년)
(라 5:1, 현대어) [성전 공사를 다시 시작하다] 성전재건 공사가 중단되었을 동안에 예언자 학개와 스가랴가 바사에서 돌아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사는 동족들에게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름으로 격려하며 성전재건을 촉구하였다.
(라 6:15, 현대어) 성전 공사가 끝난 날은 ㄱ) 다리오왕 6년 12월 3일이었다. (ㄱ. BC 515년 3월 중순경에 해당된다)
(라 7:1, 현대어) [귀환한 에스라] BC 515년 성전이 재건되고 57년이 지난 ㄱ) 아닥사스다왕 7년에 에스라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조상은 아버지 스라히야로부터 위로 올라가면 다음과 같다. 아사랴, 힐기야, 살룸, 사독, 아히둡, 아마랴, 아사랴, 므라욧, 스라히야, 웃시엘, 북기, 아비수아, 비느하스, 엘르아살, 대제사장 아론. (ㄱ. BC 457년)
(라 8:1, 현대어) [에스라와 함께 돌아온 사람들] BC 457년, 아닥사스다왕 7년에 나와 함께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가문의 어른들과 그들과 함께 등록된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라 8:33, 현대어) 그리고 4일에 비로소 우리 하나님의 성전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우리는 은과 금과 귀중한 기구들을 다시 저울로 달아서 우리야의 아들 므레못 제사장에게 인계하였다. 므레못은 비느하스의 아들 엘르아살과 레위 사람 두 명을 데리고 있었는데 이들의 이름은 예수아의 아들 요사밧과 빈누이의 아들 노아댜였다.
1차 포로귀환 세스바살과 스룹바벨 (2차 포로귀환까지 약 81년 차이가 납니다)
(라 1:1, 현대어) [고레스왕의 조서] 바사 왕 고레스가 즉위한 ㄱ) 그해에, 여호와께서 이미 예언자 예레미야를 시켜서 알려 주셨던 약속을 성취해 주셨다. 여호와께서 세계의 통치권을 잡은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시자 그가 자기의 온 제국에 다음과 같이 선포하고 그것을 문서로도 적어 공포하였다. (ㄱ. BC 538년) 약 23년후 성전공사 완공 됩니다..
2차 포로귀환 에스라의 귀환 (3차 포로귀환까지 약 12년 정도 차이 납니다)
(라 8:1, 현대어) [에스라와 함께 돌아온 사람들] BC 457년, 아닥사스다왕 7년에 나와 함께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가문의 어른들과 그들과 함께 등록된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3차 포로귀환 느헤미야의 귀환
느헤미야가 귀환함과 동시에 예루살렘 성벽 공사 52일만에 완공됨
(느 6:15, 현대어) [성벽 수축 공사의 완료] 성벽공사는 안팎으로 어려움이 많았지만 마침내 완성되었다. ㄱ) 공사를 시작한 지 52일 만이었다. ㄴ) 엘룰월 25일이 완공일이었다.
(ㄱ. 아닥사스다 20년 즉 BC 445년. ㄴ. 오늘날 양력으로는 8월 중순에서 9월 중순에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