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도심내에서 조합을 결성해 토지를 매입하고 그 위에 집을 짓는 '지역주택조합사업' 아파트가 늘고 있다. 일반분양 아파트와 엄격한 차이가 있음에도 수요자들은 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한 실정이다.ⓒ게티이미지뱅크
"평당 1600만원대에 서울 목동의 새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다는 말에 계약했습니다. 5월에 공사를 시작해 3년 뒤에는 입주할 수 있다는 말을 그대로 믿었을 뿐입니다. 그러다 계속 사업이 지연돼서 사업추진에 필요한 토지사용승낙서나 조합원 가입수를 확인해보니 애초 분양대행사가 설명했던 것과 전혀 달랐습니다. 계약 당시 프리미엄(웃돈)을 붙여서 팔아준다고 권유해서 집도 2채나 가입했는데 사업이 무산되면 모두 허공에 날릴 것 같아 불안합니다."
목동아덴프라우드…사업 초기부터 '진통'
서울 양천구 목3동 324번지 일대에서 추진되고 있는 '(가칭)목3동지역주택조합 목동아덴프라우드'에 가입했던 한 조합원 말이다. 그는 지난해 6월 우연히 지하철에서 해당 아파트 광고를 보고 주택홍보관을 방문, 분양 상담사의 설명만 듣고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했다가 곤혹을 치르고 있다.
'(가칭)목3동지역주택조합 목동아덴프라우드'는 목동 324-47번지 일대에 구역면적 3만여㎡(약 9000평) 땅에 지하 3층~지상23층 6개 동에 총 650가구 규모로 짓는 지역주택조합 아파트다. 현재 이 사업장은 관할 지자체로부터 '조합설립인가'를 받기 전이다. 즉 사업 초기 단계로 볼 수 있다.
지난 2014년 7월 해당 사업지 토지주 등 20명이 모여 최초 추진위원회가 결성, 이후 2015년 6월 주택홍보관을 개관하고 예정 가수수의 1/2의 조합원을 채우기 위해 현재까지 1차 조합원을 모집하고 있다.
그러나 사업 초기 단계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부 조합원들은 사기 계약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추진위, 업무대행사, 분양대행사를 상대로 계약금 반환 등의 손해배상청구 소송 등을 벌이는 중이다.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분양대행사의 허위·과장 광고로 사기 계약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 유형이 가장 많고, 심지어 해당 사업장 조합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프리미엄을 받고 팔아준다는 말에 현혹돼 가입한 제주도 지역민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모두 현행법을 위반한 사항이다. 그러나 이를 사전에 제재할 대책은 없는 실정이다. 해당 사업장은 법적 장치가 없는 사업 초기 단계로 지자체로부터 통제를 받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조합사업은 조합의 자율성을 보장하는게 최대 취지인데 오히려 이 점이 변질되고 있는 셈이다.
관할 구청 한 관계자는 "조합설립인가 전 단계에서는 조합이 구청에 제출하는 서류가 없다 보니 누가 어떤 방식으로 조합원을 모집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직접적인 주민 신고 및 민원이 접수되기 전까지는 해당 사업장에 대해 행정력을 가할 권한이 없어 사실상 사각지대"라고 말했다.
특히 해당 사업 부지는 2000년대 초반 지역주택조합 사업이 추진된 적이 있는데 당시 투기 세력이 가세하며 조합원 입주권에 프리미엄(웃돈)이 붙은 '물딱지(가짜 입주권)'까지 돌았다. 그러다 결국 사업이 무산되면서 수억원의 재산 피해만 남겼다.
이후 이 일대는 단독주택 재건축사업으로 방향을 전환해 다시 추진됐지만 2012년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시행령 개정으로 관련 제도가 폐지되면서 2014년 또 다시 무산됐다. 이에 다시 지역주택조합으로 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고, 관할 지자체는 유사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역주택조합사업 유의문을 배포하며 당부에 나서고 있다.
1차 조합 가입자, 해당 사업장 사정 및 여건 모르고 가입
대부분 조합설립인가 전 단계에서 가입하는 1차 조합원들은 해당 지역 주민이 아닌 경우가 많다. 주택조합은 조합원 자격이 사업 부지 내 토지 등 소유자에 국한되는 재개발· 재건축 정비사업과 달리 광역 생활권까지 그 범위가 넓기 때문이다.
이에 동네 사정 및 토지 확보 현황을 제대로 알지 못한채 가입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한 조합원은 "해당 구청도 조합 가입 현황이나 토지 확보 여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데 일반 시민은 얼마나 제대로 알고 가입하겠냐"면서 "조합추진위나 업무대행사, 분양 담당자가 하는 말만 믿고 가입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부 사업장은 조합규약에 따라 조합원들에게는 조합 명부 및 토지사용승낙서 현황 등을 직접 보여주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 조합설립인가 전까지는 운영상의 이유로 보여주지 않고 구두 설명에만 그치고 있다.
따라서 실제 토지 현황 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직접 확인할 수 밖에 없다. 토지 및 건물등기부등본을 떼서 소유주가 실제 조합에 가입했는지, 또한 땅을 팔기로 했는지 등을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조합원 대부분이 일반 직장인들로 이같은 수고를 감당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분양대행사, 불법전매 부추기며 무차별 조합원 가입 유도
특히 원칙적으로 불법전매가 금지됐음에도 분양대행사는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조합 자격이 없는 사람을 무차별 가입시키는 경우도 있다. 조합설립인가 신청일 전까지는 직접적인 전매제한 규정이 없다는 점을 악용하는 셈이다.
실제 '(가칭)목3동지역주택조합'의 경우 해당 조합자격이 없는 타 광역권 거주자를 조합원으로 가입시켰고, 조합원 1명당 1채만 가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향후 프리미엄을 받고 팔아준다고 꼬드겨 2채를 계약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현행법상 사업계획승인을 받고 주택건설대지 소유권을 100% 확보하기 전까지는 조합주택을 공급받을 수 있는 지위를 팔거나 사거나 할 수 없다. 불법 전매에 가담할 경우 매수자와 매도자 모두 처벌 대상이 된다.
또한 사업 지연 등으로 가입 당시 분양가보다 추가 분담금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도 이에 대한 설명도 전무하다. 현재 해당 사업부지 내 부동산 관계자들은 조합 추진위 측에서 내세운 분양가(평당 1690만원)로는 사업성이 없어 추가 분담금이 100%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역 내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이곳 땅값만 현재 평당 1700만원에 거래되는데 조합이 정한 분양가는 1690만원으로는 사업을 하기에 부족한 금액"이라면서 "사업장과 지척에 있는 목동1구역 롯데캐슬 아파트도 조합원 분양가는 1800만원, 일반 분양가는 2000만원 선에서 결정된 것으로 아는데 이것과 비교해도 사업성을 반영하지 못한 금액"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조합사업을 추진에 가장 필요한 것은 땅 매입"이라면서 "물론 땅 주인에게 비싸게 땅을 사들이면 사업을 진행할 수는 있겠지만 그만큼 추가 분담금은 높아지고 오히려 주변 시세 대비 비싼 아파트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미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한 주민 일부는 집을 팔고 나간 경우도 있다"면서 "기존 노후 주택을 매입한 업자들은 신축 빌라를 앞다퉈 짓고 있는데 조합이 그 빌라까지 수용하다 보면 사업비는 천정부지로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본지 기자가 해당 사업지 일대를 둘러본 결과 최근에 지어진 신축 빌라는 10여개, 또한 공사를 끝마치고 마무리 단계에 있는 빌라는 5~6개, 현재 주택을 철거하고 있거나 막 공사에 들어간 곳도 10여곳에 달했다.
지난 10일 찾은 서울 양천구 목3동 324번지 일대. 현재 이곳은 노후한 주택을 허물고 빌라를 새로 짓는 공사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 좌측은 헐기 전 노후주택, 가운데는 공사 현장, 우측은 최근 준공을 끝마치고 분양 중인 신축빌라.ⓒ데일리안 박민 기자
이에 대해 조합 추진위 관계자는 "조합설립인가에 필요한 요건 중 하나인 지구단위계획 자문에 대해 지난 1년여의 노력끝에 최근 서울시로부터 결정을 받았다"면서 "이에 토지 매입이 원할하게 이뤄지고 사업계획승인 단계까지 추진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구단위계획은 조합설립인가 또는 향후 사업계획승인을 받을 때 필요한 요건 중 하나일 뿐 사업 성패의 큰 요소는 아니다. 이는 개발 사업에 수반되는 계획의 하나로, 이외에도 건축 높이 등의 건축심의기준, 토지이용계획, 도시관리계획 부합 여부 등의 검토가 수반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이 대지 소유권을 95%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다. 제 아무리 지구단위계획이 결정되고 조합설립인가를 받았다 하더라도 토지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 신세가 될 수 있다.
조합 설립 이전, 조합자금 사용처 알 길 없어
조합사업자금 집행에 대한 불안감도 여전하다. 최근 결성되는 지역주택조합은 신탁사에게 돈을 맡겨 운영하므로 안전하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초기사업자금 집행은 추진위와 업무대행사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만큼 이를 견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아서다.
실제 대부분의 현장에서 조합원들은 조합설립인가를 받기 전 '조합창립총회'를 열기전까지 사업 진행과정이나 돈이 쓰이는 곳을 제대로 확인할 길이 없다.
특히 신탁사는 신탁계약상 명시된 항목에 대해 진위여부와는 별도로 형식적 심사 후 지급에 그친다. 이에 따라 신탁회사가 자금관리를 한다는 것만으로 안전한 자금집행이 이루어진다고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여기에 사업자금 집행을 맡고 있는 조합 추진위는 조합원 분담금 및 업무대행비를 하나도 내지 않고 사업을 추진하는 경우도 있어 조합원간 갈등도 첨예하다. 이들 추진위는 조합설립인가 전까지 정식 조합원 자격을 취하지 않아서다.
통상 조합 추진위들은 해당 사업지 토지주일 경우가 많은데 조합 규약에 따라 토지 등을 신탁하고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그러나 조합규약은 어디까지나 조합원들이 스스로 결정하는 만큼 신탁 시기를 언제로 할지는 자유다. 조합설립인가를 받고 나서 신탁한다고 명시할 경우 그 전에 사업지연 등이 발생해도 이들의 손해는 사실상 크지 않는 구조다.
이 같은 문제는 해당 사업장 뿐 아니다. 현재 서울에서 추진되고 있는 대부분의 사업장이 비슷한 형태로 추진되고 있다. 실제 본지 기자가 인터넷으로 '지역주택조합'을 검색해 무작위로 10곳을 선정, 상담을 받은 결과 "조합설립인가를 목전에 두고 있다"며 "토지 확보도 문제없고, 현재 조합원 1차 마감이 임박했다"며 가입만을 종용할 뿐이었다.
한편 국토부는 지난해 조합원 알권리 강화를 위해 사업추진 관련 정보공개 의무자를 현행 조합임원 외에 조합 발기인으로 확대하고, 조합구성원에게 조합임원 또는 발기인에 대한 정보공개청구권을 부여하도록 주택법을 개정했다.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을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고, 만약 거짓으로 공개할 경우 이보다 처벌을 강화해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했다. 이 법은 오는 8월 12일부터 시행되며 소급 적용돼 기존 조합 및 추진위에도 해당된다.
데일리안 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