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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해
장이
역이기
연나라를 항복시키다[편집]
한편 한신은 정형에서 승리를 거둔 후, 군중에 광무군을 죽이지 말라고 엄명을 내리고, 그를 사로잡아 오는 자에게는 천금(千金)을 내리겠다 하였다. 그러자 누군가가 광무군을 포박해 데리고 왔는데 한신이 직접 광무군의 포박을 풀어주며 동쪽을 향해 앉게 하고 자신은 서쪽을 향한 채 광무군을 스승으로 삼고자 하였다.[46][47]
그리고 자신이 연나라와 제나라를 공격할 의도가 있음을 설명하고 광무군에게 "내가 북쪽으로 연나라를 치고 동쪽으로 제나라를 치려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물었다.
허나 광무군은 이를 사양하며 말했다.
"신이 들으니 '패배한 군대의 장수는 무용(武勇)에 대해서 말할 수 없고, 망한 나라의 대부(大夫)는 나라를 존속하는 일을 도모할 수 없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 신은 패망한 나라의 포로인데 어찌 큰 일을 꾀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그러자 한신이 광무군을 설득하고자 말했다.
"내가 들으니 백리해(百里奚)가 우(虞)나라에 있었지만 우나라는 망했고, 그가 진(秦)나라에 있을 때에는 진나라가 패자(覇者)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백리해가 우나라에 있을 때에는 어리석다가 진나라에 있을 때에는 현명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임금이 그를 등용했는지 안했는지, 그의 계책을 들었는지 듣지 않았는지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만약 성안군이 그대의 계책을 들었다면 나와 같은 자는 벌써 포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허나 그대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그대를 모실 수 있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래도 광무군이 주저하자 한신이 강한 태도로 말했다.
"내가 진심으로 그대의 계책에 따르겠으니 더이상 사양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한신이 진심으로 부탁하자 광무군이 말했다.
"신이 들으니 '슬기로운 사람도 천 번 생각하다 한 번의 실수가 있을 수 있고, 어리석은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한 번은 맞을 수 있다[48]'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미치광이의 말도 성인(聖人)은 가려서 듣는다'라고 했습니다. 신의 계책이 반드시 채용될 만한 것은 못 되지만 그래도 충심껏 아뢰겠습니다."
그리고 이좌거는 굳이 싸울 필요는 없다며 한신에게 계책을 올렸다.
"원래 저 성안군 진여는 백전백승(百戰百勝)할 수 있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단 한 번의 실수로 그의 군사는 호성(鄗城)에서 패하고 그의 몸은 저수(泜水) 강안에서 죽었습니다. 오늘 장군께서는 서하에서 하수를 건너 위왕 표(豹)를 사로잡고, 북쪽으로 진격하여 연여(閼與)를 피로 물들이며 대(代)나라의 상국 하열(夏說)을 포로로 삼았습니다. 계속 진격하여 일거에 정형(井陘)의 관문을 떨어뜨리고 오전도 미처 다 가기 전에 조나라의 20만 대군을 격파하고 그 대장 성안군 진여를 죽였습니다.
장군의 이름은 해내에 멀리 퍼지고, 그 위세는 천하를 진동시켰습니다. 이에 병화가 머지않아 자기 몸에 이르리라고 생각한 농부들은 농기구를 손에 놓아 밭 갈기를 멈추고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언제나 동원령이 내릴지를 알기 위해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정세는 장군에게는 매우 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 백성들은 과로에 시달리고 군사들은 피로에 지쳐있어 사실은 전투에 동원하기가 어렵습니다. 오늘 장군께서 피로에 지친 군사들을 다시 일으켜 연나라로 진격하여 그 견고한 도성 밑에 진을 치고 비록 싸우려고 하신다 할지라도 장시간의 공격에도 그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기라도 한다면, 오히려 한군의 피폐한 실상만 드러나고, 군대의 기세는 꺾이어 결국은 시일만 오래 끌게 되어 군량미만 다하게 될 것입니다.
약한 연나라를 굴복시키지 못한다면 제나라는 필시 국경의 경비를 강화하여 전력을 다해 한군에 대항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연(燕)과 제(齊)는 기각지세(掎角之勢)를 이루며 서로 양쪽에서 버티며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로써 한(漢)과 초(楚)의 싸움은 승부가 분명하게 되지 않고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면 천하의 정세는 장군에게 불리하게 변하게 됩니다.
소인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연제(燕齊) 두 나라를 공격하려는 장군의 계획은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고로 용병에 능한 자는 자기의 단점으로 상대방의 장점을 공격하지 않으며, 자기의 장점으로 상대방의 단점을 공격합니다."
즉, 사실 이미 한신의 군대는 한계에 봉착했고, 연나라와의 싸움에서 고전하게 된다면 그 어려운 실상을 드러내게 되는 꼴이니 그렇게 되면 결국 연나라도, 제나라도 항복하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다. 그러나 한편으론 정형전투의 승리와 조나라 평정으로 인해 지금 한신의 명성이 절정에 오르고, 모두가 한신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에 이좌거는 굳이 싸울 필요없이, 적당한 사람을 보내서 항복을 권유하면 저쪽에서 항복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한신은 이좌거의 계책이 옳다고 여겨 그 계책에 따라 연나라에 사람을 보냈고, 연나라의 왕 장도(臧荼)와 신하들은 바람에 쓰러지는 풀잎처럼 모두 한나라에 항복했다.
6.3. 잠자다가 군사를 빼앗기다[편집]
한신과 장이는 진군을 멈추는 대신 하수를 통해서 넘어와 조나라 땅을 넘보는 초나라 군을 쫓아내고, 그 대가라는 구실로 사람들을 징발해 유방에게 보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유방 쪽은 한신과 달리 상당히 위급한 지경에 처하게 된다. 형양에서 1년 넘게 항우의 공격을 근근히 막아내고 있었지만 이제 한계에 가까워진 것. 급한대로 진평(陳平)의 계략을 이용하여 범증(范曾)을 쫓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눈앞에 있는 항우의 군대는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기신(紀信)이 유방으로 분장하여 초나라 군대의 시선을 끌고, 본인은 관중으로 몸을 피했다. 소하와 영포가 긁어온 군사를 얻어 잠깐동안 완성으로 항우를 유인해 버티던 유방은 팽월의 유격전으로 항우가 일시적으로 회군하자 성고(成皐)로 진입했지만, 병사가 모자라 형양의 포위까진 뚫지 못하고 그 사이에 팽월을 어느정도 처리한 항우가 돌아와 형양의 주가를 쳐부수고 성고에 있는 유방에게 맹공을 퍼부어 6월 즈음에 이르러 형양-성고 라인은 붕괴 일보직전에 몰렸다.
그런데, 정작 한나라가 이렇게 멸망까지 몰리는 와중에는[49] 한신이 원군을 보내주었다는 언급이 나오지 않으며, 항우가 없어진 틈에 성고에 입성한 유방과 호응한 적 또한 없었다. 이렇게 되자 유방은 한신이 찝찝해진 듯 일단 포기하기로 한 성고에 잠깐 더 병력을 남겨둔채[50] 하후영만 데리고 몰래 빠져나와 한신의 군영으로 향했다. 그리고 한신이 있는 소수무에 도착하고도 일부러 하루를 머물러서 새벽에 일어나서는 처음에 한나라의 사자라고 자신의 이름을 대고 성벽으로 들어가, 한신의 침소로 침입해 장군의 인수(印綏)와 부절(符節)을 손아귀에 넣고 순식간에 인사배치를 끝내 그 병력을 완전히 자신의 통제 하에 놓았다.
이때 한신은 잠자고 있었다.
유방이 눈 깜짝할 사이에 군대의 지휘권을 장악하는 동안, 한신은 장이와 함께 꿈나라 여행을 떠나고 있던 중이었다. 자고 일어나 보니 느닷없이 유방이 있자 한신과 장이는 경악했고, 유방은 장이에겐 줄어든 군사를 조나라에서 보충하라는 명목으로 한신의 곁에서 떼어놓았고, 한신은 한나라 좌승상에서 조의 상국으로 사실상 강등시키고 조참, 관영, 주설, 부관을 한신에게 협조하라는 명목으로 북방 전선으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한신에겐 즉시 제나라를 공격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많은 역사에서는 지방에 파견된 군대에서는 지휘권을 가진 장수가 최고의 권력을 휘두르기 때문에, 마땅한 호위부대 하나 딸려있지 않은 군주가 찾아오면 장수에게 이래저래 휘둘리고 구석에 찌그러져 있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나쁜 뜻을 품은 장수라면 군주가 비명횡사하는 경우마저 적지 않은데, 그런 시나리오를 무시하고 유방은 순식간에 지휘권을 손에 넣어 군권을 장악했다. 잠자고 있던 한신은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순식간에 털렸다.
한신과 유방의 악연은 이때부터 시작된 셈인데, 이후로도 한신은 잠자다가 창졸간에 군대를 빼앗긴 이때처럼, 유방에겐 이상할 정도로 약한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만다. 또한 멋대로 군대를 강탈해 간 유방이 치사하게도 보이지만, 달리 보면 주군이 지휘하는 본진 쪽이 무너지기 직전인데도 먼저 원군을 보낼 생각은 않고 잠이나 잘 만큼 한신과 유방 사이의 연결이 약해져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일화이기도 하다. 웃기는 점은, 이때 한신의 옆에 있었던 건 다름아닌 자기가 죽을 상황인데 원군을 안 보내줬다고[51] 절친 진여와 원수가 된 장이였다는 것.
다만 유방 입장에서는 좀 조심하긴 했지만 딱히 크게 생각히고 한 짓은 아닐 수도 있다. 즉, 한신을 꺼려서 한신의 군사를 뺏어갔다기보다는 그냥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게 한신이라서 급한 김에 들러서 한참 항우에게 당하고 있을 성고와 형양을 지원할 군사들을 데려간 것이라는 말이다.[52] 물론 한신을 만나기 전에 이미 군권을 회수, 확보하긴 했지만 원래 한신과 장이는 유방과 처음부터 함께 거병한 인물들은 아니므로 주의하는 건 오히려 당연한 것이고 이것만으로 한신을 핀포인트로 찝어서 노렸다고 할 수만은 없다. 굳이 말하자면 한신 정도면 내가 좀 급한데 군대 좀 떼어가도 알아서 잘하겠지 정도? 게다가 이때는 이미 목표였던 조와 대를 평정한 터라 군대를 좀 떼가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도 무리도 아니고 또, 한신이 워낙 혁혁한 공을 세운 터라 연과 제는 천천히 압박해도 충분했다.[53]
6.4. 역이기의 죽음[편집]
유방의 명령대로, 한신은 조참, 부관, 주설 등과 함께 군대를 이끌고 제나라의 평원(平原)으로 이동했다. 이때, 아직 한신이 도착하기 이전, 역이기가 먼저 유방에게 청하여 제나라를 항복시키기 위해 떠났다.[54]
역이기의 화려한 언변을 들은 제왕 전광(田廣)은 싸워봐야 더 나을 것도 없다고 생각하여 유방에게 항복하기로 하고 역하(歷下)[55]에 주둔하고 있던 제나라 군사들의 경계를 풀게 했다. 이대로라면 싸우지 않고도 한나라가 제나라를 영향권 아래 둘 수 있는 상황. 그리고 한신 또한 역이기가 제나라를 설득하여 항복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제나라 정벌을 그만두고자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말 잘하는 제나라 출신의 변사였던 괴철(蒯徹)이라는 인물이 유방이 한신에게 말도 없이 제나라를 설득했다거나, 군사를 멈추라는 명령은 내려오지 않았다는 말[56]과 함께 이대로 공을 역이기에게 빼앗길 셈이냐고 한신을 충동질했다. 괴철의 말에 넘어간 한신은 즉시 군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건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굳이 제나라를 평정할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대우 받으면서 다른 전선에 투입되어 얼마든지 공을 세울 수 있었다. 다른 전선에서 팽월이 다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팽월은 원래 게릴라전이 전문이라 항우가 오면 튀고 다시 가면 나와서 활동하는 식이었으니 한신은 아직 할 일이 많았다. 팽월이 제대로 자리를 잡은 건 아무리 봐도 광무 대치부터 항우가 제나라 방면에 신경을 쓸 수 없게 된 때부터지 그 이전에는 게릴라전으로 재미는 보고 있었어도 그 이상의 전과는 아니었다.
그리고 당시 제나라는 유방과 더불어 반 항우세력의 양대축으로 팽성대전 이전까지 항우와 가장 많이 싸웠던 세력이었고 유방의 삼진정벌과 팽성점령 때도 항우의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지며 항우를 방해한 세력이었다. 그 뒤로도 팽성대전 후 제후들이 대부분 항우 쪽으로 붙을 때도 절대 항우 밑으로는 안 들어가던 세력이었으며,[57] 그 후로도 팽월이 항우에게 쫓겨다닐때도 초나라 북쪽 제나라의 곡성지역으로 피신가고, 후술할 제나라 멸망 이후 제왕이 팽월에게 망명할 정도로 팽월의 유격전에는 제나라의 역할이 작지 않았다. 여기에 역이기가 말한대로 세력이 강해 쉽게 멸망시키기 어려운 나라라는 이유 때문에 항우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함부로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되는 세력이었고, 역이기는 이런 제나라를 고작 세 치 혀만으로 한나라 편으로 돌리는 엄청난 공을 세웠는데 한신은 질투심에 제나라를 공격하였다.
제나라는 한껏 준비를 하고 싸워도 승부가 어떨지 모르는 판에, 경계를 완전히 풀고 있다 기습을 당했으니 상대가 될 리 없었다. 한신은 황하를 건너 역하(歷下)에 있던 제나라 군대를 습격하여 순식간에 격파해 크게 승리하고 제나라 군대를 패퇴시켰으며, 패주하는 적을 파죽지세로 쫓아 결국 제나라의 수도 임치(臨淄)에까지 이르렀다.
당시 역이기는 제나라 사람들과 좋게 술자리를 가지면서 주연을 한껏 만끽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고, 놀란 전광은 역이기에게 "지금 당장 저 한신의 군대를 오지 못하게 하지 않으면 삶아 죽여주마."라고 협박했다. 하지만 역이기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도 불구, 기개를 끝까지 잃지 않았다.
"큰일을 도모하는 사람은 자질구레한 일을 개의치 않으며, 덕이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책망을 사양하지 않는다고 했소.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내가 공을 위해 무슨 일을 다시 할 수 있겠소?"
결국 역이기는 인생 최대의 하이라이트 시기에 삶아져서 죽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대해 사마천은 전담열전(田儋列傳)에서 "참으로 심하도다, 괴통(蒯通)[58]의 지모여! 제나라를 혼란에 빠뜨렸으며 회음후를 교만하게 만들어 마침내는 그 두 사람을 망하게 만들었다."라고 하며 괴철을 비난했다.
만일 이때 괴철이 한신을 꼬셔대지 않았다면 제나라 전씨는 유방에게 무난하게 항복했을 테고, 연왕 장도나 조왕 장오(張敖)처럼 이성왕에 임명되면서 가문을 좋게 보존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59] 그러나 괴철의 이 제안 때문에 제나라는 박살이 났다.
사마천은 이 일이 제나라 전씨를 몰락시켰을 뿐만 아니라 한신을 교만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때 역이기는 유방의 승낙을 받고 제나라에 파견되었으므로 한신의 이 행위는 한왕 유방의 뜻을 분명하게 거스르는 행위였다. 보는 시각에 따라 한신에 대한 유방의 분노, 이후에 왕을 시켜달라고 조르는 한신의 행태 등이 여기서 씨앗을 뿌렸다고 볼 수도 있다.
여담으로 초한전쟁이 모두 끝난 후 황제가 된 유방은 오호도라는 섬으로 도망가있던 제왕 전광의 숙부 전횡에게 '그대를 왕으로 삼아줄 터이니 지난 날의 아픔은 잊자'고 하며 낙양으로 올 것을 명하고, 역이기의 동생 역상에게도 전횡에게 해코지할 경우 처형하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전횡은 두 명의 식객과 함께 낙양으로 오던 중 '천자께서 내린 명령이라 할지라도 내 손으로 직접 삶아 죽인 자의 동생을 죄스러워 어찌 본단 말인가. 이제 낙양이 멀지 않았으니 여기서 내 목을 베어 가져간다면 썩지 않고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고는 자결해버렸다. 유방은 눈물을 흘리며 죽은 전횡을 왕의 예로 장사지내게 하고 두 식객을 도위로 임명했으나 그 두 식객마저 전횡의 무덤 앞에서 자결해버리고 말았다.
6.5. 용저를 격파하고 제나라를 평정하다[편집]
제왕 전광은 역이기를 삶아 죽이고 고밀(高密)[60]로 달아나면서,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을 구했다. 한신은 유방의 부하이고, 유방에 적대한다면 붙을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그 사람은 바로 항우였고, 전광은 항우에게 사람을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
항우 역시 한신이 초나라 북쪽을 완전히 평정하는 일을 두고 볼 수는 없었기에, 항우로서는 이례적으로 무려 20만이나 되는[61] 대군을 용저(龍且)와 주란(周蘭)에게 맡겨 한신을 상대하도록 명령했다. 이에 용저는 군대를 이끌고 전광과 합류했다.
이때, 용저가 한신과 겨루기 전, 어떤 사람이 하나의 전략을 제시했다. 지금 한신이 이끄는 군대의 기세가 엄청나 싸우면 형세가 좋지 못하니 싸움은 피하고, 제왕 전광을 내세워 항복한 제나라의 성들을 설득하고, 초나라 20만 대군의 기세를 보이면 항복한 성들이 모두 다시 분위기를 보고 들고 일어날 것이며, 후방이 막히게 되는 한신은 싸움 한번 제대로 못하고 박살나버린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용저는 이렇게 말하며 사망 플래그를 세웠다.
"나는 평생 한신의 사람됨을 알아 왔는데, 쉬운 상대일 뿐이다. 빨래하는 아낙에게 밥 얻어 먹었으니 자신의 계책을 취하는 바가 없고, 가랑이 밑을 지나가는 치욕을 받았으니 사람의 용기라곤 겸한 것이 없으니, 족히 두려워할 바가 아니다. 또 제를 구하고 그를 항복시킨다면 내게 무슨 공이 있는가? 지금 싸워서 그를 이긴다면 제의 반을 얻을 수 있는데, 어찌 그만두겠는가?"[62]
한신이 초나라 군대에 있었던 적이 있었으니, 용저 역시 한신의 막장 시절 이야기는 들어본 것으로 보인다. 용저는 한신의 찌질한 일화들을 들먹이며 그를 무시했고, 즉시 교전을 벌이기 위해 유수(濰水)를 사이에 두고 한군과 대치했다.
이때, 한신은 밤을 틈타 1만 개의 주머니를 만들고, 그 안에 모래를 잔뜩 넣어 모래 주머니를 만든 뒤, 강의 상류에 가서 그것을 던져 물의 흐름을 막아버렸다. 그리고 용저의 군대에 싸움을 걸다가, 짐짓 패하는 장면을 연출하여 달아났고, 이를 본 용저는 기뻐하며 말했다.
"나는 한신이 겁쟁이라는 것을 원래 알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한군이 재차 반격을 가하자 용저는 전사했고, 사령관이 죽으면서 초나라 군대도 여지없이 박살이 나버렸다. 제왕 전광도 달아났고, 한신은 도망치는 부대를 성양(城陽)까지 추격하여 대부분의 병사들을 사로잡았다.
BC 203년, 마침내 한신은 위(魏), 대(代), 조(趙), 연(燕), 제(齊) 5개국을 모조리 평정하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