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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40구간(댓재-이기령)
1.산 이름 : 덕항산, 황장산
2.소재지 : 태백시 하사미동 9-6, 삼척시 하장면 두타로 680
3.산행코스
: 댓재 ←(0.78km)→ 햇댓등 ←(0.85km)→ 명주목이 ←(1.5km)→ 1016봉 ←(1.1km)→ 통골재 ←(2.1km)→ 두타산 ←(2.1km)→ 박달령 ←(1.3km)→ 청옥산 ←(1.2km)→ 연칠성령 ←(0.99km)→ 고적대 ←(1.1km)→ 사원터갈림길 ←(1.4km)→ 갈미봉 ←(1.5km)→ 1142.8봉 ←(0.54km)→ 샘터 ←(2.1km)→ 이기령 → 이기령 마을
4.산행거리 및 시간 : 18km 총 9시간
5.산행안내 : 댓재 민박 숙박(06:00)) 출발 이기령 마을(15:00) 도착
이기동마을 버스-동해터미널, 동해(17:00)버스- 서울고속터미널 도착
댓재-이기령
댓재민박집에서 마누라가 볼일 보러가고 없어 남자 주인이 간단한 식사를 해줘서 다행이다. 많은 산객들을 다루어서 모르는 것이 세상을 아는 척한다...
오늘 산행이 험하고 길어서 6시경에 아침을 먹고 늦은 가을이라 아직도 우두워서 모처럼 전등을 끼고 올랐다.
\산신각으로 들어서는 들머리에 서니 산보다 먼저 바람이 말을 건네 왔다. 무지막지한 역대급의 바람소리는 쌀쌀맞으면서 날카롭게 첫인사를 건네고서는 온종일 냉랭하게 나를 따라 다녔다.
잠시라도 가지고 싶은 넉넉한 온기와 따뜻한 평화는 소박한 희망이었을 뿐이고, 바람은 종일 서쪽의 산을 넘어와서는 동쪽 바다를 향해 거친 질주를 계속 해 댔다.
바람과 마주서고,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들려오는 소리에 내 몸은 저절로 위축되고 있었지만 어이하랴! 물처럼 바람처럼 미련한 곰같이 고도를 높이다 보니 햇댓등에 닿는다.
어둠은 모든 것을 삼켜 버려 왼쪽으로 급하게 고도를 낮추는 대간을 따른다.산행 속도를 조금 느리게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산행을 이어간다.
부침이 심하진 않지만 발걸음 따라 새벽의 어둠은 점차 묽어져 간다.
등로 오른쪽으로 삼척의 불빛이 낯설게만 느껴질 즈음에 여명은 밝아온다. 아침의 붉은 기운을 받아 가는 길이 나에게는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두타산까지 2시간에 오르려는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친구가 있어 조금씩 산행은 느려진다. 남을 배려함이 이렇게 힘이 든단 말인가? 내 마음과는 다르게 발은 자꾸만 빨리 움직이고 있어 미안함이 묻어난다.
두타(頭陀)!
‘세속의 욕심을 버리고 청정하게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것’을 말하는 불교 용어라 그런지 나는 아직 남을 위한 배려가 부족한 것을 보니 수행이 모자란 모양이다.
통골재는 댓재와 두타산의 중간지점으로 쉬어가기 좋은 곳이지만 그냥 지나친다. 통골재에서 두타산 전위봉 격인 1243봉까지 가파른 된비알이다. 1243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된비알이 힘겨운데, 세찬 바람마저도 몸의 균형을 자꾸만 무너뜨린다.
쉬면서 참나무 사이로 떠오른 일출도 보고, 두타산의 위용을 감상하며 산정으로 향한다. 두타산의 산정으로 가는 길은 이미 가을이라는 느낌은 사라지고 없다.
고도가 높아지니 바람은 더욱 거세지기만 하고, 숨어 우는 다양한 바람 소리들이 오늘은 슬프게도 나의 산행 친구가 된다.
산정은 그동안 답답한 시야를 보상하듯 동쪽으로 붉은 기운으로 치장한 구름들이 시원한 조망을 보여준다.
북쪽으로 청옥산(1403m)과 고적대의 넉넉한 품은 아쉽게도 안개로 인해 볼 수 없다. 백두대간 능선이 감싼 깊은 계곡인 무릉계곡과 동쪽으로 아스라이 찰랑거리는 동해의 실체만 확인될 뿐 조망을 즐길 수는 없다.
품격 있는 금강송 군락지와 산정(山頂)의 암반에 쉰 개의 우물처럼 패인 구덩이가 있는 쉰움산, 그리고 쌓은 지 2000년이나 된 두타산성, 신라시대 때 창건한 고찰 천은사(天恩寺)로 하산한 기억만이 남을 뿐 시간이 지날수록 정상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체온은 자꾸만 떨어진다.
두타산에서 청옥산으로 가는 길은 박달령까지 끝없이 고도를 내리면서 비교적 호젓하게 이어진다.
골산(骨山)이면서 육산(肉山)이고 경사각이 완만해 연계산행으로 무리가 없는 곳이지만 능선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발걸음을 느리게 한다.
문바위를 지나며 너덜길을 따라 고도는 계속 높인다.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청정하게 자기를 완성시켜 가는 수행’이라는 두타(頭陀)의 의미를 청옥산으로 오르며 느끼게 한다.
학등을 거쳐 청옥산에 오르니 쌀쌀한 바람으로 긴장감을 들게 한다. 고적대와 무릉계곡 삼거리인 자그마한 돌탑이 있는 연칠성령에 도착했다.
망군대를 지나 고적대를 오르는 길은 굉장히 가파르고 바위투성이다. 로프에 의지하여 오르며 무릉계곡을 바라보니 안개 자욱한 이곳과는 사뭇 다르게 햇살이 비추고 있다.
이미 몇 번을 갔었던 무릉계곡은 인간세상이 아닌 것 같다. 신선들이 노닌다는 바로 그 무릉도원으로 손색이 없다.
짙은 안개 속에서도 정선 쪽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은 무릉계곡을 넘어 동해 쪽으로 빠지느라 바쁘다.
바람에 묻혀 나도 동해로 날려갈 것 같아 로프를 더욱 힘줘서 잡고 조심조심 하면서 삼척시와 동해시 그리고 정선군의 경계가 되는 고적대(1354m)에 올랐다.
고적대는 백두대간의 산 이름들 중에서 유일하게 대(臺)자가 붙은 산이다. 아마 동쪽 무릉계의 급경사 암석지대를 돌을 쌓아 놓은 것으로 보고 붙인 이름이라 생각된다.
사방은 안개의 장막에 가려 청옥산마저도 보이지 않는다.
서울에서 남진으로 대간을 이어가시는 분들과의 조우를 통해 인증을 하고는 잠시 바람이 멈춘 한적한 곳에서 쉼을 가진다. 은근히 4시간 만에 고대적에 오르려고 했으나 이리저리 생각치도 못한 시간 낭비로 4시간 30분 만에 고적대에 도착했다.
댓재에서 고적대까지 나의 가상 산행 예상시간을 4시 30분에 설정을 했었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목표 시간과 부합하여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백두대간의 중심축인 두타산, 청옥산과 더불어 고적대는 산 정상에서 해 뜨는 동쪽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해동삼봉(海東三峯)이라고 한다.
높이 1407m의 청옥산을 정점으로 동해시 방향에서 올려다보면 두타산과 고적대가 산(山)자 형태로 좌우로 어우러져 있다.
산 아래 수계에는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인용된 별천지 무릉도원(武陵挑源)에 빗대어 무릉계곡이라는 선경까지 품고 있으니 산이 갖출 수 있는 품격은 모두 갖춘 명산이라 아니할 수 없는 곳이다.
신라 고승 의상(義湘, 625~702년) 대사가 수행했었다는 고적대(高積臺, 1353.9m)를 떠나 6.6km 거리에 있는 이기령까지는 대체적으로 긴 내리막이라 그렇게 산행이 힘들지는 않다.
이제 이기령으로 가는 등로상에 있는 갈미봉으로 떠난다. 끝이 없을 것 같은 내림 길이지만 등로가 고르지 않아 산행속도는 생각한 것보다 그렇게 빠르지는 않다.
고적대를 오르며 내륙에서 불어와 재를 넘어 바다를 향해 불어가는 폭풍처럼 드센 바람이 고도를 낮추며 계곡 사이로 들어서면 바람이 잦아들 것이라는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계속해서 불어온다.
가을이라는 계절의 향은 날카로운 바람이 몰고 갔는지 잡목들의 울음들이 외롭게 대간을 이어가고 있는 나를 위협하고 있음이다.
겨울로 가고 있는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면서 멋진 기암이 진을 치고 있는 곳에서 뒤 돌아보니 고적대와 청옥산의 모습은 아직 의상대사가 수행이 끝나지 않음인지 안개 속에 묻혀 신비감을 자아낸다.
절정의 능선미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인데......고적대삼거리(사원터 삼거리)에 닿는다. 오른쪽으로 빠지면 무릉계곡 사원터가 나온다는 곳이다.
산행을 진행하다 보면 오른쪽으로 간혹 만나는 조망터에 올랐지만 신선들의 놀이터와 같은 무릉도원인 무릉계곡은 심한 안개로 조망할 수는 없게 한다.
안개가 말끔히 걷히면 깊은 계곡과 힘 있게 내닫는 능선들, 그리고 아름드리 소나무와 기암괴석이 한데 어울려 무릉계의 선경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게 다가 올 텐데 안타깝다. 고만고만한 무명봉들을 지나 갈미봉에 닿았다.
갈미봉에서 내려서는 길은 힐링을 할 만큼 편안하게 한다.
1142봉으로 가는 오름과 너덜지대가 있기는 하지만 큰 어려움 없이 샘터를 지나 자작나무 숲을 따라가는 길은 영혼까지 맑게 해주는 치유의 숲길이 되어준다.
멀고 지난(至難)한 길이 아니라 걸을수록 흥겹고 새록새록 기운을 나게 하는 길이었다.
이기령이 가까워지면서부터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다. 겉껍질이 붉은 빛이 도는 소나무들이 참 품위가 있어 보인다. 한동안 빽빽하게 자란 조릿대 사이에 노란색으로 치장한 낙엽송이 가는 가을을 아쉬워한다. 잠시 후에 동해시 삼화와 정선군 임계면 명주목이를 잇는 재인 이기령(耳基嶺, 815m)에 닿았다.
강원도에서는 ‘더바지 길’이란 이름으로 이기령을 통과하는 옛길을 복원 중에 있다고 한다. 무사안녕과 소원을 빌며 돌탑을 쌓아 놓은 곳인 국시뎅이 뒤로 주술을 했는지 사람 모양의 인형이 묶여 있고 ...... 이상한 느낌이 뇌리를 스친다.
샤머니즘 적인 행위를 보니 그 어떤 절실함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보부상의 애환과 장원급제의 희망이 담긴 조상의 역사를 간직한 옛길인 이기령에는 대간꾼들을 위한 쉼터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많은 평상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보통 산꾼들은 댓재에서 백봉령까지 구간이지만 우리는 긴 구간은 반씩 나누어 계획이 되어 있기에 무리하게 진행하지 않고 욕심을 버리고 이기령에서 이기령 마을로 내려가기로 하였다.
이기령은 평지와 다름 없고 왼쪽에는 임계로 내려가는 임도가 잘 되어 있고 오른쪽으로는 이기령 마을로 내려가는 등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구불구불한 내림 길을 따라 내려 가는 길은 늦은 가을 낙엽이 많아 쌓여 있고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벚꽃처럼 바람에 날려 떨어지고 있다.
굽은 길을 몇 번 돌아 30분 정도 내려오니 시골집에 나타나고 급경사의 시멘트길을 내려가니 마을이 보이고 작은 절 앞에 버스를 타는 곳이 나타났다.
절 앞에서 쉬고 있는데 스님이 증편과 물을 주며 오늘 절에서 행사를 했다고 한다. 배가 고픈 시간이라 너무 고맙고 맛이 있었다. 버스를 타고 동해터미널로 와서 서울 고속터미널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피로를 풀었다.
두타산(頭陀山)
높이는 1,353m이다. 산이름인 두타(頭陀)는 불교용어로서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불도(佛道) 수행을 닦는다는 뜻이다.
동해시와 삼척시 경계에 위치하며 동해시 삼화동에서 서남쪽으로 약 10.2km 떨어져 있다. 태백산맥의 주봉(主峰)을 이루고 있으며, 북쪽으로 무릉계곡, 동쪽으로 고천계곡, 남쪽으로는 태백산군, 서쪽으로는 중봉산 12당골이 있다. 4km 떨어져 있는 청옥산(靑玉山:1,404m)을 포함하여 두타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삼척시의 영적인 모산(母山)으로서 신앙의 대상이며 예술의 연원(淵源)이라 하여 오십정산제당(五十井山祭堂)이 있고, 예로부터 가뭄이 심하면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두타산과 서쪽의 청옥산을 잇는 의가등(衣架嶝)은 병풍을 펼쳐놓은 것 같은 가경(佳景)을 이룬다.
또한 북쪽으로 삼화사(三和寺)에 이르는 14km의 계곡에는 국민관광지인 무릉계곡, 조선시대 석축산성인 두타산성, 둥글게 패인 바위 위에 크고 작은 50개의 구멍이 있는 오십정(또는 쉰우물)을 비롯하여, 오십천(五十川)·학소대·옥류동·관음사·관음폭포·선녀탕·쌍폭포·천은사(天恩寺)·금란정·용추(龍湫)폭포 등의 명승 고적지가 있다.
수백 명이 앉을 만한 넓이의 무릉반석에는 조선 전기(前期) 4대 명필가의 하나인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의 석각(石刻)과 매월당 김시습(金時習)을 비롯하여 수많은 명사들의 시가 새겨져 있다.
박달령(朴達嶺)
“밝달“에서 온 말로 ”밝”은 광명을 비추는 높고 큰 산을 의미하고 “달”은 산과 들을 뜻하는 말로 청옥산과 두타산을 합하여 광명을 주는 맑고 큰 산이라 하여 두 산을 연결하는 안부를 박달령으로 부른 것으로 보인다. 무릉계곡의 박달폭포를 내려서는 분기점이다.
청옥산(靑玉山)
높이 1,404m. 태백산맥 줄기인 해안산맥(海岸山脈)에 속하는 산으로 북쪽에 고적대(高積臺, 1,354m), 북서쪽에 중봉산(中峰山, 1,284m), 동남쪽에 두타산(頭陀山, 1,353m) 등이 이어져 있다.
동해쪽 사면은 급경사를 이루나 청옥산과 고적대·두타산 사이에 형성된 이른바 무릉계곡(武陵溪谷)은 학소대(鶴巢臺)·관음사(觀音寺)·삼화사(三和寺)·무릉반석(武陵盤石)·금란정(金蘭亭)·호암소(虎巖沼) 등 많은 관광자원이 있어 국민관광지로 지정, 개발되고 있다.
서쪽 사면은 경사가 완만한 편이고, 중봉리와 삼화동 사이에는 연칠성령(連七星嶺)을 통하여 도로가 이어진다.
조선시대 경복궁을 중건할 당시 전국 각지에서 대들보가 될 만한 목재를 구하였는데, 마침 청옥산 주봉에 있는 소나무가 적재로 결정되어 하장천(下長川)을 이용, 뗏목으로 운반되었다고 한다. 중봉리의 청옥산 일대에서 생산되는 토종벌꿀은 약효가 좋다 하여 옛날부터 유명하다.
연칠성령(蓮七星嶺)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중봉리에 위치한 고개이다. 고적대(1,559m)와 청옥산(1,404m) 사이의 태백산 줄기에 있다. 동해시 무릉계곡에서 문간재를 넘고 호계(虎溪)를 지나 막다른 골짜기에 들어서면 가파른 산길이 나온다.
그 길을 넘으면 『대동여지도』에서 말하는 아곡천(阿谷川), 즉 지금의 하장면 중봉당골(中峰唐谷)에 이르게 된다. 이 산마루가 연칠성령이다. 넘나들기가 험준하여 난출령(難出嶺)이라고도 한다.
『동여도』에 '고고험(鼓高險)'이라 적혀 있다. 1623년(인조 1) 이식(李植)이 중봉산 단교암(斷橋庵)에 은퇴하고 있을 때 이곳에 등산하여 서울을 바라보며 마음을 달랬다고 해서 망경대(望景臺)라고도 한다. 산마루에 망경대가 있다.
다른 일설은 하늘에 계신 칠성님께 이어지는 고개로 보기도 하고, 사원터에서 하장면 방향으로 늘어선 일곱개의 봉우리에서 온 말로 보기도 한다
고적대(高積臺)/강원 동해시와 삼척시·정선군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 1,354 m. 태백산맥 줄기인 해안산맥에 속하며, 부근에 수병산(樹兵山:1,202 m) ·중봉산(中峰山:1,284 m) ·청옥산(靑玉山:1,404 m) 등이 솟아 있는데, 이들 산은 영동과 영서 지방의 분수령을 이룬다.
동쪽으로 흐르는 수계(水系)는 전천(箭川)으로, 북쪽으로 흐르는 수계는 임계천(臨溪川)으로, 남서쪽으로 흐르는 수계는 골지천(骨只川)으로 각각 흘러든다. 동쪽 비탈면은 급경사를 이루나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무릉계곡으로 이어져 경관이 수려하고, 서쪽 비탈면은 경사가 비교적 완만하다
갈미봉(曷味峰)/ 강원 정선군 북평면(北坪面)에 있는 산.
높이 1,271m이다. 황병산(黃柄山)·주봉(周峰)·발왕산(發旺山) 등과 함께 태백산맥의 등줄기를 이루며, 한강의 지류(支流)인 송천(松川)이 이곳에서 발원한다. 가까이에 정선아리랑(강원무형문화재 1)의 발상지인 아우라지가 있다.
이기령(耳基領)
동기(銅基)“의 순수 우리말로 구리터가 있던 마을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구리터”의 중간 자음인 ㄹ이 탈락되어 “구이터”가 되고 “구이”가 “귀”로 축약되어 “귀이(耳)로 표기 되었다. 구리터의 “구리”는 “동”이니 자연스럽게 동(銅)이고 터는 기(基)이니 銅基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재”를 뜻하는 “嶺‘을 넘어 가니 이기령이 되었다
또한 이기령은 구한말 백봉령도로가 생기기 전까지는 삼척, 동해지방과 영서지방을 연결하는 통로로써 정선의 삼배, 약초 등의 특산물과 영동의 소금, 해산물 등을 교환하던 장소로 시장이 형성되었다는 설이 있다.
우마차가 넘나들던 고개로 중요한 구실을 하였으며 고산지대 임에도 주위가 아주 넓게 형성되어 있다.
한편 ‘더바지’는 옛날 마을 주민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이기령을 오가면서 힘들다는 의미가 담긴 강원도 사투리다. 옛날 관직의 쳥운의 꿈을 안고 한양으로 가던 희망의 길이고, 동해에서 소금이나 어물을 삼척과 정선쪽에서는 삼베나 약초 등 특산물 봇짐을 지고 넘나들던 보부상길이기도 하다. 희망과 애환이 서린 이 길은 오래전 발길이 끊긴 상태다.
현재는 백두대간트레킹이나 백복령, 쾌병산 등을 오르는 등산객이 지나는 길로
최근 강원도와 동해시가 2019년까지 예산을 들여 옛길을 복원 중이며 앞으로 백봉령과 무릉계곡의 옛길도 이어 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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