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6 주일- 인생의 행복과 불행
컴퓨터 자판기에 한글로 ‘행복’의 첫 글자 ‘행’을 치면 영문으로 무엇이라고 쓰일까요? 바로 ‘GOD’, 곧 ‘하느님’이라는 글자가 써집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 추구하는 참된 행복은 하느님으로부터 시작되고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의 화답송인 시편 1편은 인간이 추구해야 할 참된 행복에 대해 말하는 ‘행복 선언’, 곧 '아쉬레 시편'입니다.
1절에서는 인간이 행복에 이르는 길을 세 개의 부정문으로 표현합니다. “행복하여라!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그런데 이 문장은 처음에는 길을 함께 걸어가는 것, 둘째는 함께 이야기하기 위해 멈추어서는 것, 셋째는 같은 자리에 앉아서그들과 어울리게 되는 것(유유상종)으로 표현함으로써 악인들의 죄가 점점 더 악화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2절에서는 긍정문으로 의인들의 특성을 표현합니다.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성경」이 가르침으로 번역한 히브리어 명사 '토라'는 구약성경에서 ‘율법서’ 곧 ‘모세오경’,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율법’ 등을 뜻하지만, 본문에서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계시하신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밤낮으로’는 시간적 차원(‘항상, 언제나’)에서 뿐만 아니라 공간적 차원(‘언제 어디서든지’)에서도 한결같은 태도를 말합니다. ‘되새기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 ‘하가'는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다.’, ‘중얼거리다.’는 뜻을 지니며, 유다인들이 성경 말씀을 묵상(黙想)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3절에서 시편 저자는 주님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의인을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에 비유한다.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는 아무리 가물어도 생명을 위협받지 않기 때문에 가뭄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늘 잎이 푸르고 때가 되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시편 1,3)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이 시편 1장 1절에서 3절의 ‘행복 선언’은 오늘 제 1 독서에서 하느님께서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해 선포하신 말씀과 병행을 이룹니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예레 17,5-7)
바오로 사도 역시 이 점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1코린 15,19)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지 않고 세상 것이나 현세의 이익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찾는다면 그것이 저주의 삶이며 가장 큰 불행입니다.
마태오 복음이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8 가지의 길’, 곧 ‘진복팔단’(眞福八端: 마태 5,3-12)을 선포한다면,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네 가지 ‘행복 선언’과 네 가지 ‘불행 선언’을 선포하셨다고 전합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루카 6,20ㄴ-22)
‘가난한’이라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 ‘프토코스’는 경제적인 능력을 완전히 상실해 비참과 소외 속에 다른 사람에 의해 내버려진 상태를 표현합니다. 그들은 어느 누구도 그를 도와주지 않고 그의 삶에 무관심하기 때문에 오로지 하느님만을 의지하며, 하느님의 도우심과 보호에 자신을 온전히 봉헌한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그들은 항상 하느님과 함께 하며 그분의 나라를 차지하기에(20절), 그들의 삶은 진정으로 행복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듯이 불행과 저주는 자신의 부와 현세적인 기쁨에만 의지하는 것이며, 행복과 구원은 오로지 이 세상에서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온전히 내어 맡기며, 대 데레사 성녀가 권고하듯이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는 삶”(“Solo Dios basta!)입니다. 전자는 죽음이며, 후자는 생명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의 길만이 남았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여 생명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바오로 사도가 권고하듯이 ‘현세만’을 위하여 살아감으로써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될 것인지?
'행복'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그분이 주시는 행복을 찾는 참된 신앙인이 될 수 있는 은총과 용기, 지혜와 힘을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