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도다, 한자(漢字)여! 한문(漢文)이여!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던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님이 천자문을 사 와서 십리 쯤 떨어져 있는 서당으로 가서 공부하라고 하셔서 한 달간 한자 공부를 한 적 있었고, 중학교 2학년 때 한 달 동안 서당에서 동몽선습과 명심보감을 약간 공부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학교 다니는 기간에 한자 교육이 폐지되어 실질적으로 한자를 배울 기회는 없었으나 어려서 서당에 다닌 경험으로 한자에 대한 관심은 있어서 신문이나 광고 등에 나오는 한자를 익혀 두곤 하여 또래 중에서는 한자를 잘 아는 편에 속했다고 생각된다.
상업고등학교, 대학의 경영학과, 대학원 회계학 등을 공부하여 한자와는 먼 곳에서 공부하고 직장생활을 하였으나, 한자에 대한 관심은 변하지 않아서 불혹의 나이가 된 뒤에 큰 스승이신 대산(大山) 김석진(金碩鎭) 선생을 만나게 되어 사서삼경(四書三經)을 공부하여 어렴풋이 고전에 대한 상식을 깨우치게 되었다.
철이 없던 어린 시절에는 혹여나 남이 한자를 획 하나라도 잘못 쓰면 나서서 틀린 것을 지적하여 잘난 척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알면 알수록 정자, 이체자, 약자, 속자, 일본식 한자 등등이 조금씩 달라서 한자에 대하여 아는 체를 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었다. 또한 서예에서 사용하는 법첩에는 획을 더하기도 빼기도 하고, 행서, 초서에 오면서 변형이 되는 경우도 많아 남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아는 척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 대륙에서 한자가 만들어지면 오늘날과 같이 책자로 발간되거나 방송으로 공표할 수도 없으니 드넓은 대륙에서 똑같은 형태와 발음이 전파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지방마다 발음도 다르고 이체자(異體字, 음과 뜻은 같으나 다른 형태의 글자)가 생겨나기도 하였고, 또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일본식 한자가 우리나라의 한자처럼 자리 잡기도 하였다. 그러니 이를 모두 알기는 누구도 쉽지 않을 것이다.
향교에서 각종 향사(享祀)에 홀기를 읽는데, 홀기 중에 자주 나오는 문구로 ‘俯伏興平身(부복흥평신)’이 있다. 그런데 어떤 문중에서는 ‘俛伏興平身(면복흥평신)’이라고 된 곳이 있었다. 俛을 ‘면’으로 읽는지 아니면 ‘부’로 읽는지 아리송하였는데 ‘면복흥평신’으로 읽었다. 네이버 사전에는 俛이 ‘힘쓸 면’, ‘숙일 부’로 되어 있어서 ‘부’로 읽어야 할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싶었다. 그런 의심을 가지고 이런저런 사전을 찾아보다가 김혁제 씨가 편찬한 명문당의 ‘명문신옥편’을 찾아보니 ‘숙일 면’만 나와 있었다. 저 문중도 몰라서가 아니라 당시에 잘 아는 분이 저렇게 정한 것이니 후세 사람인 내가 얄팍한 지식으로 가타부타 따질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언젠가 사무를 보다가 ‘趙行九’라는 이름이 있어서 깊은 생각 없이 순간적으로 ‘조행구’라고 기록하였다. 뒤에 본인이 나타나서 누가 내 이름을 마음대로 바꾸는가 하고 강하게 항의하였다. 行이 ‘다닐 행’, ‘항렬 항’이니 본인은 ‘항구’라는 것이다. 같은 글자에 발음이 다를 때에는 본인이 쓰는 이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니 잘못한 것을 사과하고 정정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름자에서는 정자를 쓰던 속자를 쓰던 본인이나 본인의 부모가 선택한 글자이다. 이를 남이 시비를 걸 일이 아닐 것이다.
위와 같이 글자를 가지고 맞나 틀리나를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단순한 문제이다. 고전을 공부하고 한시 공부를 하면서 많은 한자가 정반대의 뜻을 갖고 있을 때가 있어 어려움은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예를 들어 化의 경우에 네이버사전에 17가지의 뜻이 열거되고 있는데, 그 중 몇 개만 소개하면 ‘되다’, ‘본받다’, ‘죽다’, ‘태어나다’와 같이 정반대의 뜻이 들어있다. 이중 문맥을 보지 않고 단순하게 번역하면 어떤 결과가 되겠는가?
향교에 출입하면서 장의라고 하니 남들은 실력있는 한학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부에는 끝이 없고, 10만이 넘는다는 한자를 내가 알면 몇자나 알겠는가? 더욱 공손하고 도를 닦는 마음으로 끝없이 정진할 수 밖에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