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후손이 살고있는 집성촌을 아시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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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3/03/27 작성자: 최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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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중동에서는 이라크전쟁이 발발하여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증가하고 있고 환경훼손도 심각한 상태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전세계가 전쟁으로 인해큰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고 평화로운 시대가 오길 기대합니다. 여행이란 더더욱 평화를 담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때 전쟁에 관련하여 색다른 지역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대구인근 지역에 일본인들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곳이 있는데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공한 왜군 중에 전쟁의 명분 없음과 조선 문화에 대한 동경으로 부하들을 데리고 조선에 투항한 "사야카 "라는 일본 장수가 그 주인공으로 투항한 후 조총기술 등을 조선 군에 전수하면서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 등에 공을 세워 삼란공신으로 불리고 있으며 호를 모하당이라 하였습니다. 조선의 군대에서 큰 활약을 하여 선조대왕께서 김해 김씨 성을 하사하고 이름을 충선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일본의 고등학교 일본사 교과서와 1998년 한국의 중학교 3학년 도덕교과서에 조선측에 투항한 평화주의자, 인도주의자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귀화한 후 정착한 곳이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로 청도로 넘어가는 팔조령 고개를 몸 미쳐 우측 골짜기에 위치한 비슬산(앞산) 뒷 능선 아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友鹿洞 사슴과 벗하며 사는 마을이라는 이곳 우록리에는 400여년간 그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오고 있는데 현재 650여명이 살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7,000여명의 후손이 스스로 조상이 일본인임을 밝히고 족보를 만들어 살아가는 유일한 가문입니다. 지금은 14대 후손이 종친회장을 맡아 2001년부터 1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양국교류의 장인 한일 우호촌 조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모하당 김충선 선생을 제향한 녹동서원을 중심으로 유품과 유물, 큰칼과 갑옷, 전쟁도구, 한일 양국의 역사, 문화 등의 전문서적과 교지 등의 고문서가 존시되어 있으며 한일 우호의 장으로서 특히 한일 청소년들의 교류의 장으로 활용되길 기대하며 1998년에 충절관이 건립되었습니다. 홍보책자와 함께 홍보용 비디오도 볼 수가 있으며 인근의 관광안내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곳이 한일 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곳으로 발전하길 기대합니다. 일본에서도 수학여행단을 비롯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어 문화 해설사가 안내를 맡고 있으며 주말에는 일본어 통역원을 배치하여 일본인관광객 맞이에 정성을 들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곳 마을은 일본의 유명한 역사소설가 시바료타로씨가 "한국을 가다"라는 한국 기행기 속에 소개하면서 일본에도 널리 알려졌는데 지금은 이앙기가 발달하여 비교하기가 어렵습니다만 80년대 모심기시기에 한국을 여행하면서 보니 다른 지역의 농촌에서는 모심기한 줄이 비뚤하거나 군데군데 빠져 있거나 한데 이곳 우록동 마을을 들어서니 심어 놓은 모가 전후 좌우로 일직선으로 질서 정연한 모습을 하고 있어 역시 일본인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마을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하였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교통편은 중앙고속도로를 거쳐 북대구IC에서 내려 신천을 끼고 난 대로를 타고 청도, 앞산 방면으로 달리다 가창을 지나 우측으로 우록리가 나타납니다. 대중교통으로는 일단 대구까지 가서 대구 봉덕시장에서 204번 시내버스를 타면 중동교 파동 냉천자연 랜드를 거쳐 우록리에 다다릅니다. 이곳은 최근 비슬산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마을 앞을 흐르는 맑은 석천 계곡, 마을이 가지는 특수한 상황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어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마을 진입로 주변은 온통 음식점과 숙박업소가 다투어 들어서 있는데 이제는 한일 우호의 교류장에서 웬지 음식의 거리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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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 0326.jpg (137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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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andong.kbs.co.kr/bbs/ezboard.cgi?action=read&db=k_andongcol4&dbf=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