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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띠와 마인드풀니스는 다르지 않다"
마인드풀니스 & 사띠 논쟁-13 법보신문 | 2010-02-26 | 김정호 교수(덕성여대)
마음챙김은 사띠 의미 잘 반영한 용어
이어 자비선 명상센터 지도법사 지운 스님, 임승택 경북대 철학과 교수, 안양규 동국대(경주캠) 불교학부 교수, 이필원(청주대 강사) 박사, 부산대 인문학연구소 HK전임연구원 등이 이번 논쟁과 관련된 자신의 견해를 밝힌 가운데 이번에는 덕성여대 심리학전공 김정호<사진> 교수가 사띠와 마인드풀니스에 대한 기고문을 보내왔다.
김 교수는 한국건강심리학회장과 대한스트레스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마음챙김이란 무엇인가; 마음챙김의 임상적 및 일상적 적용을 위한 제언」 등 사띠와 관련된 다수의 논문이 있다.
우리가 감각하고(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촉감을 느끼고), 인지하고(생각, 기억, 판단 등), 동기(욕구)를 일으키고, 행동하는 등의 정보처리에는 모두 주의(attention)가 필요하다.
외부자극이 주어지더라도 주의를 주지 않으면 감각하지 못한다. 주의가 다른 곳에 있으면 외부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도 듣지 못하고 음식을 먹어도 맛을 알지 못한다.
외부로부터 표상된 정보는 작업기억에서 장기기억으로부터 인출된 여러 가지 관련된 정보와 상호작용하면서 새로운 정보를 형성하기도 하고 필요한 행동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작업기억의 처리내용은 장기기억으로 넘어가며 나중에 필요할 때 인출된다.
이러한 제한성으로 인해 우리는 많은 정보 중에 어떤 정보를 작업기억에 포함시켜야 할지 선택할 필요가 있다. 주의는 이러한 선택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선택과정이 없다면 우리는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자극의 홍수에 압도당할 것이며 막대한 양의 장기기억에서 어떤 정보를 동원해야 할지 혼란 상태에 빠질 것이다.
이러한 선택과정에 우리의 판단(인지체계)과 욕구(동기체계)가 동원된다. 따라서 우리의 경험은 외부자극의 특성을 반영하기도 하지만(‘자료 주도적 처리’ 혹은 ‘아래-위로의 처리’) 우리 자신의 내적 특성을 반영한다(‘개념 주도적 처리’ 혹은 ‘위-아래로의 처리’). 아래 그림들은 동일한 외부자극이 어떻게 다르게 인식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강의를 하는데 50명 중에 5명이 자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강사는 자고 있는 5명에게 선택적 주의를 한다. 여기서 아무리 졸려도 잠을 자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화가 난다. 자신의 강의가 재미없어서 자고 있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무능을 탓하며 우울해진다.
어떤 강사는 졸지 않고 강의를 잘 듣고 있는 45명의 학생에게 선택적 주의를 한다. 졸고 있는 학생에 대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강의한다. 더 깊이 분석하면 다른 사람이나 자신에게 바라는 바(욕구)가 지나치게 높은 것이 특정한 생각의 원인이기도 하다.
요컨대 우리의 경험은 외부자극 중 선택된 부분과 동원된 우리 자신의 욕구, 생각, 정서 등이 버무려진 총합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외부자극뿐만 아니라 우리의 욕구, 생각 등이 어떻게 동원되는가, 즉 어떻게 주의를 주느냐에 의해 행복과 불행이 달라진다고도 할 수 있다.
사띠는 일반적인 주의에 주의를 주는 것으로 일종의 초주의(meta-attention)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사띠는 동기체계나 인지체계를 동원하지 않고 작업기억에서 경험되는 다양한 현상들(감각, 정서, 생각, 욕구 등)을 바라보는 순수한 주의이다.
결과적으로 자신이 경험하는 감각, 정서, 생각, 욕구 등을 잘 알아차림(awareness)하게 된다. 주의 없이 알아차림은 불가능하다. 순수한 주의를 줄 때 그에 따른 순수한 알아차림이 수반한다. 또한 사띠를 계속 유지할 때 사띠의 대상은 작업기억 내에서 계속 파지된다.
특히 현대인들은 너무 바쁘게 살다보니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도 모르고 상황에 휩쓸려 사는 경우가 많은데 ‘마음챙김’을 통해 좀 더 깨어있는 삶을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요컨대 마음챙김, 즉 순수한 주의를 통해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고 어떤 상태에 있는지 깨어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하버드 대학의 랭어(Langer) 교수도 자신의 연구에서 전문용어로 마인드풀니스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그녀가 사용하는 마인드풀니스는 주어진 상황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새롭게 혹은 다르게 처리한다는 점에서 사띠와 유사한 점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상당히 다른 개념이다. 그런데 영어권에서 마인드풀니스를 언급하는 책이나 논문을 보면 불교에서 받아들인 마인드풀니스와 랭어 교수의 마인드풀니스를 혼동해서 혹은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는 것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분명하고 객관적인 것을 좋아하는 심리학자들은 가급적 중요한 개념을 측정도구로 정의내리는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로 정의내리는 경향이 있다. 사띠에 대해서도 몇 가지 질문지 형태의 측정도구가 개발되었지만 사띠의 개념이 충분히 반영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위빠싸나는 사띠의 대상을 어떻게 사띠 하는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 점에 있어서 위빠싸나의 지도자들 사이에도 이견이 있다. 사념처의 관찰에서 관찰대상을 혼합하면 안된다는 주장도 있고, 사념처 중 한 번에 한 가지만 사띠를 할 수 있고, 신, 수, 심, 법의 순서로 사띠의 수행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며, 이러한 순서를 부정하는 주장도 있다. 또 사띠에 있어서 사념처 중 몇 가지 요소를 더 중점적으로 강조하는 주장도 있다. 위빠싸나는 사띠가 핵심이 되는 수행법이기 때문에 최근에는 마음챙김명상(영어권에서는 mindfulness meditation)으로 불리기도 한다.
욕구와 생각을 내려놓고 순수하게 주의를 주는 사띠를 통해 증상을 피하기보다는 수용하는 태도를 기르게 된다. 증상은 증상을 부정적인 것으로 보고 회피하려는 욕구(즉, 회피동기)와 그와 관련된 생각이나 행동에 의해 더 악화되는데 사띠를 통해 이러한 욕구, 생각, 행동을 내려놓게 됨으로써 오히려 증상의 경감이나 소멸을 가져오게 된다.
이렇게 순수한 주의를 통해 증상을 수용 하고 직면하는 방법은 부정적인 인지(생각)를 바꿔서 증상을 다스리려고 시도하는 전통적인 인지행동치료와는 다른 새로운 시도이다. 또한 사띠를 통해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됨으로써 좀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사띠를 자신들의 프로그램이나 치료법의 일부로 적용하는 사람들이 사띠에 대한 이해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거나 일부 오해가 있는 경우는 있어도 자신들이 번역어로 사용하는 마인드풀니스가 사띠와 다르다고 생각하거나 구분하려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필자는 사띠 수련의 방법의 하나로 ‘체계적 마음챙김’을 권장한다. 체계적 마음챙김에는 정서의 목록을 만들고 자신의 정서에 초점을 두고 사띠 하는 ‘정서마음챙김’, 스트레스의 주요원인에 속하는 비합리적 인지전략이나 웰빙에 기여하는 긍정인지전략의 목록에 초점을 두고 사띠 하는 ‘인지마음챙김’, 여러 가지 욕구의 목록을 만들고 자신의 욕구에 초점을 두고 사띠 하는 ‘동기마음챙김’ 등이 있다.
‘체계적 마음챙김’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분명하게 혹은 미세하게 작용하는 인지, 정서, 동기 등을 체계적 파악하여 자신의 마음을 좀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다스릴 수 있게 된다. 앞으로 불교에서 출발한 사띠는 이제 불교를 넘어서 모든 사람들이 자기이해와 건강 및 행복을 증진하기 위해 배우는 중요한 마음의 기술의 하나로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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