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최부자집 이야기
아들아,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iige)란 말을 들어보았느냐.
높은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 명성에 걸맞는 책임이란 뜻이란다.
사회지도층은 그 사회에서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며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있기에
그만큼 높은 도덕적인 의무와 책임을 져야한다는 뜻이지.
경주 최부자 가문 제1대 정무공 최진립 장군상(경주 내남면 이조리 충의공원)
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말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노블레스 말라드(noblesse malade) 즉, 병들고 부패한 귀족..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이 일명 졸부(猝富)근성. 천박한 천민자본주의에 찌든 자들.
더 쉽게 말하면 소위 '갑질(甲-질)'이란 형태로 나온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사례가 없었는가라면 그렇지 않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사회복지 측면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우리 역사에서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단다.
경주 최부자집 3대 최국선의 일생을 다룬 KBS드라마 명가
아들아, 너도 경주 내남면 이조리 충의당과 경주 교동의 최부자 고택에서 보았을
것이다. 경주 최부자집의 이야기를.
정무공 잠와 최진립(貞武公 潛窩 崔震立,1568~1636)선생에서 시작해 마지막
12대 문파 최준(汶坡 崔浚,1884~1970)선생에 이르기까지 3백 여년을 이어온
경주 최부자집 말이다.
경주 최부자집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 된 것은..
그 집안의 특별한 가풍에 주목해 보면 답이 나오지.
최부자집 육연과 육훈
경주 최부자집에서 전해져 오는 가르침, 6훈(六訓)이다.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進士)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말라.
- 양반의 지위를 이을 수 있을 정도의 벼슬이면 족하다.
그 이상을 욕심내어 화(禍)를 자초하지 말라는 뜻이다.
둘째,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 한 집안을 유지하는데는 1만석으로도 차고 넘친다.
1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여 이웃의 삶을 살찌워라.
최부자집은 그 1만석도 쪼개어, 가인을 먹여살리고, 과객을 대접하고
또 빈민구제로 베푸는데 적어도 반 이상을 썼단다.
셋째,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 흉년기에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헐값에 땅을 넘기는 일이 많다.
이 기회를 이용해서 땅을 넓힐 수 있고, 쉬운 길이겠으나 이는 이웃의 가슴에 못을
박는 행위이며 정당하게 쌓은 부(富)가 아니므로 이런 행위는 지양하라.
넷째, 과객을 후히 대접하라.
- 과객을 후히 대접하는 것은 이들을 통해 정보를 얻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정보는 중요한 자산이 된다.
다섯째, 주변 1백리 내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 적어도 사방 1백리 내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은, 가진 자로서
높은 사회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가지는 도덕적 책무라는 것을 강조했다.
여섯째, 시집 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 검소한 몸과 마음가짐을 가지게 하고, 어려운 자들의 마음을 느껴서 알게하여
스스로를 낮추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변 사람을 대하게 하기 위함이다.
경주 최부자집의 6훈이 나오게 된 배경과 어떻게 현실에 적용되었는가를 보면,
노블리제 오블리주가 사회복지 측면에서 어떻게 연결되고 사회에 공헌했는지
알 수 있다.
경주 최부자집의 시작은 정무공 잠와 최진립 선생이지만 만석군이자 영남최고의
부자가 된 것은 3대 최국선(崔國璿, 1631~1682)선생에서 시작하게 되지.
참봉 벼슬을 내려놓고 낙향해서 경주에 자리 잡게 된 최국선 선생은 땅을 매입하고
개간하는데 매진해서 큰 부를 쌓았는데, 여기에는 당시 농법의 주류였던 직파법 대신에
과감하게 현재 많이 하고 있는 이앙법으로 농법을 도입하여 농업 생산력을 크게 높일 수
있었던 것이 크게 작용한 것 같아.
당시 양반이 지주로서 부를 쌓아 올리는 방법은..
춘궁기(春窮期)등 어려울 때 헐값에 농지를 매입하고, 고리대를 놓고..
갚지 못하면 노비로 삼아 그들을 부리는 형태로 이루어졌지.
또 그들의 땅을 경작하는 소작농에게는 생산량의 거의 7~8할 이상을 가져가는 식이니..
당시 소작농들, 빈농들의 고초가 대단했을 것이야.
이런 불합리한 세상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쌓여서 민란이나 화적떼의 형태로 나타났지.
물론 최국선 선생께서는 그래도 대다수 양반들처럼..부정한 방법까지 써가며 부를
쌓은 건 아니지만 그때 가난한 농민들에게 그도 좀 나은 정도겠지만 크게 다르지 않은
양반이었던 것 같아. 그도 소작료를 7~8할 정도 받고 있었으니까.
그러다 최국선 선생이 대오각성하고 새로 태어나는 계기를 맞게 되었단다.
아들아, 그것은 다름아닌 명화적(明火賊)이라고 해서 수십, 수백명이 떼를 지어
밤에 횃불을 밝히고 부잣집 들을 습격하던 도둑들이 있는데, 이 명화적이 최부자집을
습격해 왔을때였다.
명화적 비슷한 분들...영화 군도 中
명화적을 만나 최부자집도 상당한 피해를 봤단다.
그런데 특이한 것이 이들은 무기를 들고 위협은 했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해치진 않았고,
그들은 서류만 불태워 버렸지. 그것은 노비문서나 차용증 같은 것들이었어.
그리고 그 명화적 속에서 최국선 선생은 자기 집안의 땅을 경작하던 소작농도 봤고,
또 그들의 자식들이 섞여 있는 것도 보았지.
그것은 그분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이야.
그리고 그 스스로를 뒤돌아 보는 계기로 삼았지.
그분은 그래도 스스로 다른 양반들과는 달리 악질적이지 않았고, 나쁜 방법으로
부를 쌓아 올린 건 아니라 여겼는데..그럼에도 명화적의 표적이 된 현실과
그속에 그가 아는 얼굴이 섞여 있었던 것, 이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아들아, 아마도 보통의 대다수 양반들 같았으면 명화적이 물러난 후 곧바로
그 아는 얼굴들을 색출하고, 보복하려고 달려 들었을 것이야.
그런데..그래도 최국선 선생은 남달랐다.
그분은 그 명화적들이 당시 사회의 부조리와 백성의 고혈을 짜는데 혈안이 된 양반들,
지주들에 대한 백성들의 저항이 계속될거란 걸 깨달았지,
합법적으로 쌓은 부도 베풀줄 알고, 인덕을 쌓아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때 그분은 깨달았던 것이란다.
최국선 선생으로부터 시작한 경주 최부자집의 독특한 가풍과 인간 중심의
경영이 시작된 계기는 이러했다.
경주 내남면 이조리에 있는 충의당은 경주 최부자집의 시작점이 된 정무공
잠와 최진립 장군의 고택이었고, 관련 유적이 있는 곳이다.
그곳에는 또 활인당(活人堂) 상징물도 있다.
활인당 (경주 내남면 이조리 충의공원)
활인당은 경주 최부자집에서 사방 1백리내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그 가르침에 따라 흉년에 쌀을 나눠주고 죽을 쑤어 먹이려고 세운 집이다.
그리고 최부자집에서는 지주와 소작농 사이에서 농간을 부리는 마름이란 자들을
없애고 직접 소통했으며,
소작농의 생산물 7~8할을 취하던 것을 5할으로 낮추어 소작농의 몫을 늘려
그들의 살림을 보살폈다.
그리고 육훈의 가르침에서도 보듯이 1만석 만을 취하고 그 이상의 부는 그대로
소작농들의 몫으로 돌렸단다.
그러자 어떤 일이 생겼냐면, 경주 최부자집으로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와
다른 집보다는 경주 최부자집의 소작농이 되기를 원했고, 그들은 더 열심히 농사를 지었단다.
경주 최부자집은 소작농들에게 더 큰 몫으로 돌려주는 선한 지주였으니까 말이다.
더 많이 수확할 수록 그들 스스로의 몫이 커지고, 자신에게 이득이 되니까.
그리고 주변에 좋은 땅이 있으면 최부자집에 알려서 그들이 땅을 취하도록 정보를
주었고, 세상의 여러 정보와 소식을 가져다주니..그렇게 얻는 유무형의 이득도 엄청났지.
그렇게 경주 최부자집의 땅은 더 넓어지고 만석군이 이만석, 삼만석 이런 식으로..
베풀어도 오히려 그 이상으로 살림이 더 불어났단다.
사람을 중히 여기고 상생의 경영을 추구한 효과가 이렇게 나타났어.
주변에 인덕을 쌓아, 국난과 위기상황이 그렇게 많았음에도 주변 사람들이 최부자집을
서로 보호하여 집안을 보전하는데도 크게 도움을 주었단다.
충의당 (경주 내남면 이조리, 최부자 가문의 원류이자 출발점)
아들아, 경주 최부자집의 사례는 한국형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이다.
그리고 빈부격차와 인간보다 오직 능률과 숫자에 집착하는 천민자본주의, 신자유주의의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한국형 자본주의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사례라 생각한다.
서양에서 발원한 자본주의에서는 오직 최대의 이윤추구와 능률이 선(善)이다.
그래서 경쟁이 필수이며 그것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당연시 한다.
그러나 경주 최부자집이 보여준 인간 중시 자본주의와 경영에서는 최대의 이윤추구가
미덕이 아니다. 경주 최부자집에서는 그 이윤에도 절제가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사람의 마음을 사고 함께 사는 길을 추구한다.
그러기 위해선 이윤도 적정선까지만 얻고 나머지는 아낌없이 베풀어야 한다고 했어.
인간이 동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것은 양심이 있고,
자제할 줄 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도 인간을 위해, 잘살게 하기 위해 나온 이데올로기라면
인간 중심의 철학이 가미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경주 최부자집 처럼 나도 살고, 너도 살고 우리가 함께 살고 성장하는 것이
가능하다. 경주 최부자집이 그것을 실제로 보여준 사례라 할 것이다.
아들아, 그래서 우리는 이제 경주 최부자집이 보여준 청부(淸富)의 길을
주목해야 한다.
원래 3대 가는 부자는 없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 초심을 유지하기 쉽지 않기에 방탕해지기 쉽고, 오만해지기 쉽기 때문에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몰락의 길을 걷는다는 것을 이름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알고 실천하는 부자,
사람을 귀히 여길줄 아는 부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졸부근성에 갑질, 사람 귀한 줄 모르고 천박한 자본주의에 찌든 부자를 존경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게 정의가 아니기 때문이야.
그러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아는 사람, 깨끗하게 부를 쌓고 그만큼 베풀어 인덕을
쌓을 줄 아는 그런 부자들은 오래도록 존경받고 만인이 그를 도울 것이다.
그리고..사회복지라 하면 보통 물품이나 경제적 지원만 떠올리는데..
큰 돈 안들이고 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배려말이다.
경주 교동 최부자 고택
교동의 경주 최부자집 고택에 가서 보면 굴뚝도 낮게 만들었다.
어렵게 살고, 밥 한끼 하기 어려운 이웃도 많은데..혼자 큰 어려움 없이 잘살고
잘먹고 하는 것도 미안한 마음에..그렇게 했다고 하는구나.
적어도 이런 마음이라도 가지고 행동하면 이웃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하고 어루어
만진다.
이웃이 느낄 위화감을 덜 수 있다.
이것도 사회복지란다.
경주 최부자집이 보여준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것은 다같이 함께 잘살수 있는 길을
보여준 이상적인 사회복지의 모습이다.
------작성자:방랑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