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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G, <AI 예술> 시대 개막
며칠 전 오덕렬 선생과 ‘휴대폰 글쓰기’ 문제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눈앞에 닥친 AI 신문명 시대 현상에 두 사람 다 크게 걱정하였지만 아무 해결 방도도 찾을 수 없었다.
최근 베스트셀러 <사피엔스> 서문에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인간은 역사상 가장 중대한 결정을 내리려 하고 있다.
이제 인간은 과학을 통해 자연선택을 지적설계로 대체하고, 유기체가 아닌 생명을 만들기 시작할지 모른다.’
나는 이 말을 <호모 사피엔스 시대 종말>로 이해한다. <사피엔스> 저자에 의하면 인류는 약 250만 년 전에 현생인류로 진화하였다고 한다. 필자는 진화론은 안 믿지만 <전혀 새로운 세상> 도래는 눈앞의 현실이다.
사피엔스 종말 현상의 대표적 사례가 휴대폰이다. 새는 땅에 내려앉자마자 곧장 모이를 쪼아 먹는다. 새와 동물은 몇억년 동안 땅만 내려다보며 살아왔다.
그러나 사람은 250만 년 동안 하늘을 올려다보며 살아왔다. 하늘을 올려다 보아야 비가 내렸고, 비가 내려야 밭의 곡식이 자라기 때문이다.
하늘에서는 비만 내린 것이 아니다. 이것이 중요하다. 하늘에서는 종교도 내리고, 철학도 내리고, 윤리 도덕, 각종 학문과 과학도 내렸다.
그러나 휴대폰이 등장하자마자 삽시간에 온 인류는 새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한 손 휴대폰이 등장한 것은 불과 20년밖에 안된다. 지난 20년 동안 지구촌 인류는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한 일이 없는 천지개벽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조선 5백 년 동안 우리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살던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왔다. 할아버지가 놀던 똑같은 술래잡기를 증,증,증 손자들도 하면서 자랐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고개를 가눌 수 있게 되자마자 휴대폰부터 들여다 보는 <신종 인간>으로 양육되고 있다. 휴대폰 속에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있는 것이다.
새는 몇십만 년을 땅만 내려다보며 살았지만 집 한 칸도 문화적으로 짓지 못한다. 몇십만 년 전 어미들이 짓던 똑같은 방식으로 집을 짓고 산다. 그러나 하늘을 올려다보고 산 인류는 눈에 안 보이는 미지의 별까지 비행기를 날려 보낼 정도로 문명이 발달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산 <호모 사피엔스>, 즉 우리들 시대까지 이야기이다. 새처럼 땅을 내려다보고 살기 시작한 AI 세대, 즉 <신생 인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 분명한 징조는 눈앞에 빠른 속도로 나타나고 있다.
땅을 내려다본다는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새가 땅을 내려다보는 까닭은 그곳에 이미 밥상이 차려져 있기 때문이다. 쪼아 먹기만 하면 된다. 신생 AI 인류도 꼭 마찬가지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휴대폰으로 대표되는 각종 AI 기기안에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 비둘기처럼 고개를 박고 주워 먹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현재의 휴대폰 기능은 아직 초보 단계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장차는, 방금 막 출시된 G5로도 비교가 안 되는, 인간이 욕망하는 모든 것, <완전한 모든 것>이 AI 기기 안에 <준비된 상태>가 될 것이다. 그 시대 휴대폰은 더 이상 손에 들고 다닐 필요도 없게 될 것이다. 각종 고급 디자인 반지나, 목걸이나, 마후라나, 손수건이나, 티셔츠나, 심지어 팬티로 대체 될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하늘을 올려다 본 까닭은 땅 위에는 새모이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호모 사피엔스는 하늘을 올려다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텅 빈 하늘에서 필요한 것을 찾는 행위는 곧 <생각 속>에서 필요한 것을 찾아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이것이 호모 사피엔스 문명 발달의 열쇠였다! <생각하는 기능>이야말로 인류 문명의 열쇠였던 것이다. 생각 속에서 먹을 것도 발견하고, 종교도 발견하고, 철학도 발견하고, 학문과 과학도 발견, 발명하였다.
문학은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를 쓰기 훨씬 전부터 문학의 발생을 원시종합예술에 있다고 진단하였다. 원시종합예술은 짐승 사냥을 감사하며 즐기는 축제였다. 원시인들은 잡아 온 짐승을 하늘이 주셨다고 믿은 것이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인간이 욕망하는 모든 밥상(정보)이 휴대폰 안에 이미 차려져 있는데 무엇 때문에 하늘을 올려다보며 ‘골치 아픈’ 생각을 할 것인가? 이미 길거리와 전철과 심지어 공부하는 교실에서도 선생은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데 학생은 휴대폰에 고개를 박고 있다.
인간이 생각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은 종교가 필요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교가 필요 없어진다는 것은 곧 철학 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철학이 필요 없는 세상은 윤리 도덕이 필요 없는 세상을 의미한다.
종교, 철학, 윤리 도덕이 필요 없는 세상은 <타인과의 인간관계>가 필요 없는 세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물이 몇억만 년 동안 동물상태에서 한 발짝도 문명화되지 못한 이유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종교, 철학, 윤리 도덕적 관계가 아닌 동물적 관계만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동물들에게 다른 동물은 종교적 철학적 윤리 도덕적 관계 대상이 아닌 <본능적 욕망 관계> 대상일 뿐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짝짓기 철에만 암수가 본능적으로 만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짝짓기 철이 따로 없다. 오직 인간만이 짝짓기 철이 없다. 짝짓기 철이 따로 없다는 것은 365일 남녀가 같이 살 수밖에 없는 조건 속에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에게 첫 번째 타인은 남성이고, 남성에게 첫 번째 타인은 여성이다. 그러나 짝짓기 철이 따로 없는 인간은 처음부터 남녀가 짝을 맺어 사는 것을 삶의 근본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인간만이 가지는 사회가 산출 되었고, 사회 속에서 종교가 여물게 되었고, 철학도 발전하고, 윤리 도덕, 그리고 각종 예술도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이 새처럼 땅을 내려다보며 살기 시작하자마자 불어닥친 폭풍이 독신 가정 만연이다. 오늘날 휴대폰 세대는 혼자 사는 이유, 출산을 안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말한다. <직업이 없어서>, <집 장만이 어려워서>, <출산 후 부부 출근이 어려워서>, <자녀 양육이 어려워서>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돈이 없어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통 호모 사피엔스 인종 세대인 나의 젊은 날은 <그대가 곧 직업>이었고, <당신이 곧 집>이었고, <그대와 함께 사는 것이 곧 출근>이었고, <당신과 함께하는 것이 곧 자녀 양육>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과 함께라면> 문간방 살이도 좋았고, 실제로, 나 이관희가 그랬고, 나와 같은 세대 모두가 실제로 그랬던 대로 우리는 실제로 <그대>가 없는 세상은 ‘불 꺼진 항구요, 물 없는 사막’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우리는 불알이 여물기 무섭게 팬티 한 장 살 돈이 없어도 <그대, 당신>부터 찾았던 것이다. 이것이 호모 사피엔스 시대 인류 우리들의 삶과 사물에 대한 인식과 가치판단이었다.
그러나 휴대폰 신인류의 가치는 <당신>도 <그대>도 아니다. <돈>이다. 돈 먼저 있은 다음에, ‘만약 필요하다면’ ‘당신’도 있을 수 있고, ‘그대’도 선택할 수 있지만, 그나마도 설사 당신을 선택한다 해도, ‘필요한 동안만’일 뿐이다.
신생 인류란 귀가 넷 달리고, 눈이 열 개 달린 생물학적 새로운 종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피엔스> 저자가 말한 대로 과학에 의한 신종 인류 출현, 즉 마음의 귀가 넷 달리고, 이성의 눈이 열 개 달린 <AI 인종>을 의미한다. 그들은 호모 사피에스가 몇십만 년 동안 물려 받아온 <사람이면 사람이냐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는 사람다운 인식과 가치판단 DNA가 아닌 전혀 새로운 인식기능과 가치판단을 가진 인종이다.
우리는 이것이 미래가 아닌 오늘 당장 우리 목전의 현실이라는 사실을 날마다 TV와 신문 보도, 각종 영상물을 통해서 실제로 겪고 있지 않은가? 각 가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모와 자식 간의 불소통은 무엇을 말 해 주는가? 생물학적으로는 부모의 생물 DNA를 물려받았지만 <마음과 이성 DNA>는 지금까지 없었던 전혀 새로운 감정과 이성 DNA를 가진 신종 인류 출현을 의미한다.
휴대폰으로 대표되는 정보화 시대 대표적 특징은 ‘즉시성’에 있다. 클릭 즉시 욕망하는 모든 정보(밥상)가 눈앞에 차려지는 것이 AI 문화의 본질이다. ‘생각’ 하나로 살아온 호모 사피엔스 마지막 세대는 목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AI 신인종들의 ‘즉시성’ 문화에 어리둥절하고 있다.
‘즉시성 문화’의 절대조건은 <내 욕망의 즉시 충족>에 있다. ‘깊은 생각’에 빠져야 얻을 수 있는 종교적 가치, 철학적 가치, 윤리 도덕적 가치는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된 것이다. ‘생각하기’는 오히려 내 욕망의 ‘즉시 충족’에 방해만 될 뿐이다.
호모 사피에스 세대가 너무 늙고 낡았기 때문에 신생 AI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전통 호모 사피엔스와 신생 AI 인종 사이의 차이는 적응이나 조화로 해결될 수 있는 차이가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 DNA>와 <AI 인종 DNA>가 완전 다른 종 DNA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 차이는 적응이나 조화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는 문학은 호모 사피엔스 정신문화 DNA를 물려받은 전통 순수 문학이다. 전통 순수 문학의 본질과 특징은 ‘차분하게 앉아서 깊은 생각에 잠겨야 되는 문학’이다. 그러나 이제 그 종말이 가까이, 바로 내가 딛고 서 있는 현실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다. 5G 출시 즉시 신문에 보도된 내용이 AI 그림, AI 음악 이야기이다. AI 예술의 본질과 특징은 ‘즉시성’에 있다. <AI 창작프로그램>이 겸제 정선의 진경 산수화를 그려내는 데 걸린 시간이 0.1초밖에 안 된다고 한다.
앞으로 2,3년, 적어도 5년쯤 후에는, (이것은 내 개인의 지나친 위기감일지 모른다고 쓰고 싶지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고통이다.) 신춘문예나 순문학잡지 신인상 응모작품을 놓고 심사위원들이 큰 근심에 잠기게 될 것이다. 심사위원들이 정상적인 심사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 작품들 중에 어느 작품이 <AI 창작프로그램>으로 만든 작품인지 가려낼 수 없기 때문이다. 순수문학 잡지들은 신인상 응모 규정에 <AI 창작프로그램으로 만든 작품은 발견 즉시 당선 취소>라는 조항을 달게 될 것이다. 나는 이미 내가 발간하는 순문학 잡지 신인상 응모 규정에 그 같은 조항을 달 준비를 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앞으로 전통 호모 사피에스 순수예술은 급속도로 소멸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호모 사피엔스 인종이 남아 있는 동안 완전 소멸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동안 예술은 순수예술과 대중예술로 나뉘어 활동하였다. 그러나 앞으로는 <전통 순수예술>과 <AI 예술> 두 종류의 예술 활동으로 갈라지게 될 것이다. <AI 창작프로그램>에 의한 작가들은 <새로운 창작프로그램 개발>로 호모 사피엔스들이 하던 <개인적 창작>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즉 <AI 예술>은 개인적 예술창작이 아닌 <예술창작 프로그램 개발>을 새로운 예술활동으로 하게 될 것이다. 그들 시대의 예술에 대한 가치평가도 기술개발에 대한 평가가 될 것이다. 각종 스토리텔링 분야에서는 이미 <AI 창작프로그램>이 현실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살아남은 호모 사피엔스들은 인류의 전통예술을 자기 생애 마지막까지 지키다가 세상을 떠나겠다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결의>를 다지게 될 것이다. 그들 소수 작가, 시인들로 뭉친 문학단체들의 결속은 일찍이 없었던 혈연 같은 유대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들 소수 집단 중에는 컴퓨터 자판으로 글을 쓰던 작가들마저도 다시 손 글씨 작품 시대로 돌아가자는 운동까지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손 글씨 시대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펴도 밀려드는 <AI 예술작품>을 저항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희망을 가져본다. 출판을 앞 두고 있는 <산문의 시 홍보⋅교육용 작품집> 서문에 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
필자가 본 <산문의 시집>을 엮어내는 첫 번째 목적은 ‶산문의 시란 무엇인가?″묻는 독자에게 ‶완전한 산문문장 형식의 새로운 양식의 시입니다.‶라는 대답을 실물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두 번째 목적은 미래의 AI 신문명 시대 문학 지망생 여러분에게 다음과 같은 문학적 도전장을 내밀기 위해서다.
‶대한민국 문학을 짊어지고 갈 미래의 젊은 문학 지망생 여러분, <산문의 시>를 발견하고 그 이론을 창안한 이관희는 이 정도 작품밖에 창작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미래 AI 신문명 시대를 살아갈 문학 지망생 여러분이 <산문의 시>를 여러분 시대 문학으로 선택한다면 <AI 시대 ‵인간 문학‵ 양식>으로 발전, 변화시켜 가게 될 것입니다.‶
나는 진심으로 <산문의 시>가 <AI 시대 ‘인간 문학’ 양식>으로 발전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내가 이 같은 희망을 가지는 까닭은 <산문의 시>는 호모 사피엔스가 발명한 문학의 두 줄기, <운문(시)과 산문(이야기)>을 하나의 문학양식으로 융합한 문학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시>와 <소설> 형식의 예술을 발명해 왔다는 것은 그 두 형식 안에 인류의 ‘생각 DNA’를 담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문의 시>가 AI 문명 시대 <사람 문학> 중심 양식이 된다면 <호모 사피엔스 생각 DNA>를 그들에게도 전해주게 되지 않을까…….
컴퓨터
컴퓨터는 가축이다.
소 닭 돼지에 이어 나타난 신종 가축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소 닭 돼지를 잡아먹고도 소 닭 돼지가 되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나 21세기부터는 컴퓨터를 잡아먹지 않으면 살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이 컴퓨터를 잡아먹으면 머리는 하드웨어가 되고, 가슴은 소프트웨어가 되고, 손은 키보드가 된다.
그리고 똥은 VR(Virtual Reality) 똥을 싼다.
컴퓨터는 짐승이다.
사람이 그것을 잡아먹으면 VR 똥을 싸게 되는 신종 가축이다.
(필자 자작시 <컴퓨터> 전문)
첫댓글 많은 예감을 받아갑니다
이세돌이와 인공지능과 바둑대결에서 다섯판을 두어 한판밖에 이기지 못했습니다. AI시대에도 글짓기 프로그램이 등장한다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인공지능이 쓴 글과 사람이 쓴 글을 구분할 수 없는 때가 눈앞에 온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