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세는 인간 사회, 즉 이 세상을 말한다.
그러니까 이 편은 세상을 살아나가는 처세 방법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장자는 비록 어지러운 세상을 초월하여 무위자연에서 유유히 소요하라고 했지만, 반드시 심산유곡에서 은거하라는 뜻은 아니며, 오히려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 생활을 인정했다.
장자는 비록 인간의 지식을 배척하였으나, 인간의 집단 생활까지 배척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집단 생활 속에 있으면서 각자가 어떻게 대처해 나가는가를 문제로 삼았다.
사실 이 탁세를 피해 홀로 지내기란 오히려 쉬운 일이며, 속진 속에 있으면서 세상을 초월하기는 어렵다.
공자와 안회의 문답에 나타난 심제, 공자와 자고의 문답에 나오는 命과 義, 장석과 제자의 문답에 나오는 無用의 用등이 모두 그러한 처세의 방법을 말하고 있다.
그 방법이란 허심과 무용의 두 가지이다.
허심하면 화를 멀리할 수 있고, 무용하게 되면 온전한 삶을 누리며 천수를 다할 수가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곽주는,
사람들과 무리를 이루는 자가 사람들을 떠날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에게 변고란 언제 닥칠지 모른다. 다만 무심하여 스스로를 무용하게 하는 자만이 능히 변화에 적응하여 아무 해도 입지 않게 된다.
고 했다.
또 집해는, 난세를 어떻게 하면 아무 화도 입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방법을 말했다고 보고 이렇게 덧붙인다.
인간세란 이 세상을 말한다. 폭군을 모시고 힘겨운 세상을 살며, 사람들과 사귈 때 명예를 다투지 않고 덕을 감추는 것이 곧 올바른 처세의 길이다.
그래서 편말에 접여의 노래를 인용하여 , 앞으로 올 평화스런 세상을 기다리지 말고 이미 흘러간 태평스런 세상을 좇지 말라고 했다.
장자가 개탄하며 인간세란 제목을 붙인 이유가 이상과 같은 데에 있다.
원문인 한자를 그대로 같이 실었으면 비교해 보면서 해석에 차이를 느끼게 되겠지만, 앞으로의 분량이 방대하므로 가능하면 한글 해석만 실을 예정이며,반드시 중요하다고 생각되면 한자 원문을 그대로 실어 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