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회]
소문이 무성했던 화제의 [밀회] 1회가 방송됐습니다.
드라마를 보기 전에 얘기하는 것만큼 무모한 일은 없습니다. 대본을 아무리 읽어보고 잘 아는 배우들이 나와도, 편집을 마치고 방송되는 드라마를 보기 전엔 그 드라마가 어떤 드라마가 될 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 면에서 조마조마하게 기다렸던 '밀회'. 순산이었습니다.
'밀회' 첫회는 다양한 캐릭터들의 설명에 소요됐습니다. 일단 인물관계도는 이렇습니다.
물론 이 드라마가 본질적으로 혜원(김희애)-선재(유아인)의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둘의 관계가 한복판에 있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1회를 제대로 보신 분이라면, 그 주위를 둘러싼 인물들이 아직 살짝 감춰놓고 있는 이야기가 얼마나 흥미로운 것인지 금세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가장 흥미로운 관계는 혜원을 중심으로 한 성숙(심혜진)과 영우(김혜은)의 관계입니다. 혜원은 예고 동창인 영우와 명목상 친구로 되어 있지만 재벌 회장의 딸이자 자신의 고용주 뻘인 영우의 시녀 역할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물론 혜원은 연봉 1억인 '서한예술재단 기획실장' 자리에 그 시녀 역할까지 다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회장의 후처인 성숙이 있습니다. 교양미넘치는 포장에도 불구하고 고급 룸살롱의 마담 출신이라는 사실 때문에 영우로부터 절대 계모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실속을 차리려는 야심과 계략이 가슴에 가득하고, 총명하고 성실한 혜원을 자기 사람으로 곁에 두려 합니다.
하지만 그런 성숙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건 자신을 '한마담'이라고 부르는 영우의 목소리. 그 한마디에 성숙은 애써 지켜 온 교양미의 허울을 벗고 영우의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암늑대가 되어 버립니다. (1회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화장실 격투 신;;)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등장한 혜원의 '뺨 맞는 신'은 바로 이런 갈등이 표출된 결과입니다.
새파랗게 어린 남자 모델을 데리고 오피스텔에서 잠든 영우를 깨우러 간 혜원. 그 혜원이 "하려면 진짜 사랑을 하든가"라고 쓴소리를 하자 영우는 다짜고짜 뺨을 갈기며 쏟아붓습니다. "기집애야, 너는 진짜야? 너 정말 강준형 사랑해서 바람 안 펴? 니 남편 허당인거 누가 몰라?"
그리고 드라마는 서한예술재단이 운영하는 서한음대의 민학장(김창완)과 혜원의 남편인 교수 준형(박혁권)을 보여줍니다. 이 사회의 맨 꼭대기에서 여러 혜택을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그리 향기롭지 않은 일을 꾸미고 있음을, 그리고 이 드라마가 그 군상들이 얼마나 제정신이 아닌지를 보여줄 것이라는 예감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한때 기획 단계에서 이 드라마는 '음악판 하얀 거탑' 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하얀 거탑'이 한국 의학계의 후진성과 어두운 단면을 보여줬다면 '밀회'는 한국 고전음악계의 병폐와 환부를 백일하게 드러낼 겁니다.
제법 긴 1부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우연히 서한재단 아트센터의 공연 날, 택배 물건을 갖고 현장에 도착한 선재가 무대 뒤에서 커튼 너머로 혜원 일행을 바라보는 지점입니다. 협연을 앞둔 조인서 교수(박종훈)와 민우(신지호)가 피아노를 조율하며 혜원과 함께 잡담을 나누고 있습니다. 선재에게는 감히 꿈꿀수도, 도달할 수도 없는 곳입니다.
이 장면을 트친 하나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재능이 있어도 기회를 가질 수 없는 청년의 눈빛은 가늘게 떨리며 촉촉하고 몽환적이다. 근데 심지어 그게 유아인이란 거지." (@hsjeong)
더 이상 적절할 수 없습니다.
숨가쁘게 달린 1회는 사전 공개 영상에서 드러났던 장면, 즉 혜원이 선재를 불러 피아노 실력을 테스트 해 보는 장면 바로 앞에서 끝났습니다.
이 예고에 대한 내용은 이쪽: 밀회, 보는 이를 압도하는 20분 http://fivecard.joins.com/1240
그러니까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지만 - 두 주인공이 만난 것이 1회 끝나기 3분 전인 걸 보면 - 사실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머잖아 두 사람의 관계에선 불꽃이 튈 겁니다.
드라마가 나오기도 전에 설정만으로 이 드라마를 싸구려 불륜 드라마 취급했던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건 '1회를 보라'는 것 뿐입니다.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작품의 수준으로 이 드라마와 견줄 만한 작품은 올해엔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한마디 더 보탠다면, "이게 바로 드라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신있게.
혹시 1회를 보실 기회를 놓친 분들, 여기서 1회를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현재 가장 다행인 건, '이제 겨우 1회가 방송됐을 뿐'이란 겁니다. 아직도 15회나 더 남아 있습니다. 그만치 더 즐기실 수 있단 얘기죠.
P.S. '베토벤 바이러스' 까지만 해도 연주자의 손이 흘러나오는 음악과는 전혀 맞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만 해도 '누가 그런 데까지 신경을 쓰느냐'는 게 일반론이었기 때문입니다. '밀회'는 다릅니다. 진짜 피아니스트들인 박종훈, 신지호는 물론이고 김희애와 유아인도 정확하게 건반을 짚습니다. 사실 이 정도는 '밀회'가 얼마나 공들여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작은 예일 뿐입니다. 두고 보시면 더 놀랄 일이 많습니다.^^ 출처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밀회, 감히 "이것이 드라마"라고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