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서는 구약의 계시록입니다. 에스겔은 예루살렘 성이 바벨론에 의해서 함락되고 포로로 잡혀간 선지자입니다. 예레미야와 다니엘도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예레미야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함으로 늘 울었습니다. 다니엘은 여호와 신앙을 고집하다가 사자굴에 갇혔습니다. 에스겔은 그발 하숫가로 붙잡혀갔습니다. 그는 거기서 하나님의 이상을 보게 됩니다. 그 이상을 기록한 것이 에스겔서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인자'는 에스겔을 말합니다.
1. 인자야! 일어나라
포로생활은 대단히 피곤합니다. 고난과 역경의 생활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비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고 바벨론으로 끌려감으로 인해서 상당히 지쳐있습니다. 꿈도 이상도 없습니다. 비젼을 상실했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습니다. 의욕도 없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받아야 할 상황입니다. 그런데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백성을 위로하기는커녕 오히려 책망을 합니다. 이로 인해서 동족들로부터 핍박을 받습니다. 하기 싫어도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순종해야 합니다. 가기 싫어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가야 합니다. 핍박이 있고, 고난이 있으며, 환난이 있어도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선지자의 사명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에스겔이 주저앉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인자야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1). 무관심, 포기, 실망, 낙심, 절망한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왜 주저앉았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을 보면 주저앉았습니다. 특히 경제가 주저앉았습니다. 사업이 계속해서 주저앉고 있습니다. 한 번 주저앉았다가 다시 일어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남미 브라질이나 필리핀은 한 때 발전한 나라입니다. 한 번 주저앉더니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넘어졌으면 일어나야 합니다. 일어서지 못하면 썩습니다. 벼가 바람에 쓰러져 있으면 썩고 맙니다. 고추대도 넘어져 있으면 말라 비틀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한 가닥이라도 남아 있어서 다시 일으켜 세우면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넘어진 것은 스스로 일어나기가 어렵습니다. 일으켜주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일으켜세워주신 것입니다(2). 저도 35년 전에 하나님께서 일으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으켜 주셔야만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까?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일어납니다. 무엇보다도 영적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영적으로 일어나면 모든 것이 일어납니다. 성전 미문 앞에 앉아있던 앉은뱅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었습니다(행3:1-10).
2.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일어나라
에스겔 당시의 환경은 어떻습니까? 패역한 세대입니다(3). 하나님을 배반한 세대요 마음이 강퍅한 세대입니다(4). 참으로 어둡고 혼탁한 세상입니다. 이런 속에서 선지자를 일으켜 세워서 말씀을 선포하게 하신 것입니다(5)
사람은 환경에 의해서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갈멜산에서 대 승리를 거둔 엘리야는 이세벨이 자기를 죽인다고 할 때에 브엘세바로 나아가 죽기를 구했습니다. 자기를 핍박하는 환경에 의해서 낙심하고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까마귀를 통해서 떡과 물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것을 먹고 일어났습니다. 일어나려면 떡을 먹어야 합니다. 육체적으로도 떡을 먹어야 힘을 얻고, 영적으로도 떡을 먹어야 힘을 얻습니다. 떡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산 떡입니다(요6:48). 또한 물을 마셔야 합니다. 물은 성령을 말합니다(요4:14). 우리 안에 성령이 역사할 때에 생수의 강이 터지게 됩니다.
나오미와 롯은 고난의 땅이었던 모압에서 일어나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와 복을 받게 됩니다. 만약 모압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고난의 자리에 계속해서 앉아있을지 모릅니다. 요셉은 고난의 자리에 앉아있지 않았습니다. 늘 일어나 있었습니다. 결국 그의 신앙은 오뚜기같이 고난 속에서도 늘 일어나는 신앙이었기 때문에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의 탕자는 고난의 자리에서 일어서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쥐염열매를 먹고 살았을 것입니다. 용기를 가지고 일어서서 돌아왔을 때에 큰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일어서야 하겠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축복받은 인물을 보면 어려운 환경 속에 일어서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 있든지 우리 모두 이번 집회를 통해서 은혜받고 일어섭시다.
3. 일어서야 산다.
기부스한 곳은 그대로 놔두면 굳어버립니다. 움직이지 않습니다. 움직여서 다시 펴야 합니다. 더 굳어지기 전에 움직여서 펴야 합니다. 우리도 우리의 상태가 지금 모습 그대로 굳기 전에 움직여야 하겠습니다. 굳은 것은 움직여 펴야 하고, 굽은 것도 펴고, 파인 곳은 메꿔야 하겠습니다. 굳은 상태로 그냥 내버려둔다든지, 주저앉은 상태로 있다든지 하면 안됩니다. 일어나야 삽니다. 펴야 합니다. 머리를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일어나 주님 앞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이런 일이 시작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눅21:28). 말세의 징조가 나타날 때에 일어나 머리를 들면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시험이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마26:41). 욥의 친구 엘리바스는 고난 중에 있는 욥에게 하는 말이 "전능자에게 머리를 들어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다시 흥할 것이요 그가 이루어주리라고 합니다(욥22:23-25). 우리가 일어나 하나님께 머리를 들 때에 축복을 받습니다. 어떤 환경에 있든지 일어납시다. 그리고 하나님께 머리를 듭시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입니다. 왜 주저앉아 있습니까? 왜 낙심하고 절망하십니까?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여호와의 새힘이 옵니다(사40:31). 이번 집회를 통하여 새 힘 받고 일어서는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