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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갑자
서기 1708년 1월, 칼 12세가 폴란드 동부의 그로드노에 도착하자 표트르는 현지의 러시아 수비병력을 철수시켰다
1708년 교토의 대화재로 키쿠스이호코(菊水?) 등 많은 가마가 불에 타버렸다
1708년 대동법,전국적으로 시행
서인들 마지못해 오래 걸린듯
100년전 대동법은 1608년 영의정 이원익의 건의에 이은 광해군의 결단으로 경기도 일원에서 처음 시행되었죠
60년전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어 30년 전쟁이 막을 내렸다.
50년전 덴마크-노르웨이와 스웨덴 사이에 로스킬레 조약이 맺어졌다.
네덜란드가 실론에 거점을 마련하여, 포르투갈과 대결하게 되었다.
올리버 크롬웰 : 영국의 군인, 초대 호국경 사망.1년후 찰스2세왕정복고
40년전 봄베이에 영국령 동인도회사가 설립되었다.
스톡홀름에 유럽의 첫 국영은행이 설립되었다
30년전 조선에서 상평통보를 주조하였다
20년전 영국의 해적 윌리엄 댐피어가 서양인 중에선 최초로 오스트레일리아를 발견했다.
영국에서 명예 혁명이 시작되었다.
10년전 1698년(숙종 24)의 수교집록(受敎輯錄) 편찬
10년후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오스트리아가 위트레흐트 조약의 규정을 위반하는 에스파냐의 행동을 제지하기 위하여 사국동맹을 맺었다.
베네치아와 오스만 제국의 전쟁을 종결하기 위하여 오스만 제국, 오스트리아, 베네치아가 파사로비츠 조약을 맺었다.
20년후 덴마크 태생의 러시아 제국의 항해가 베링이 베링 해협을 항해하였다.
스코틀랜드 사람 체임버스가 체임버스백과사전을 간행하였다.
- 조선에서 이인좌의 난이 발생하였다
40년후 폼페이의 유적지가 재발굴되기 시작하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을 종결짓기 위한 엑스라샤펠 조약이 체결되면서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이 종결.
50년후 청나라가 유목제국 준가르를 멸망시켰다.
린네가 이명법을 고안하였다.
60년후 항해사 제임스 쿡이 호주대륙을 탐사하였다.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편찬되었다
1348년
원나라는 1348년 절강의 방국진이 해상에서 반란을 일으킨 것을 시작으로 기움
2월 - 고려, 진제도감(賑濟都監)을 설치하여 빈민을 구제하다.
고려 강융(姜融)이 경천사 십층석탑을 세우다.
프랑스에 유럽 최초의 종이공장이 세워지다.
60년전 쩐흥다오가 이끄는 베트남 군이 2차 백등강 전투에서 원나라 군대를 대파하여 후퇴시켰다
50년전 - 괼하임 전투에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알브레히트 1세가 독일의 왕인 나사우 가문의 아돌프를 전사시켰다. 본격적인 합스가문의 재패는 130년이후.
40년전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2세가 프랑스의 왕녀 이사벨과 결혼하였다
독일의 왕 하인리히 7세가 신성로마제국황제로 선출되었다.
헝가리 왕국의 앙주 - 카페 왕조가 시작되었다.
30년전 파우가르트 전투에서 노르만 - 잉글랜드군대가 에드워드 브루스를 전사시키며 스코틀랜드 - 아일랜드 군을 격파하였다.
고려에서 불법점유한 토지, 노비를 원 주인에게 환원시키기 위한 관청인 찰리변위도감이 설치되었다
20년전 천순제(원)를 지지하는 다울라트 샤의 상도파와 톡 테무르를 지지하는 엘 테무르의 킵차크 군단이 주축이 된 대도파 간의 양도 전쟁이 일어났다.
- 톡 테무르가 원문종으로 즉위하였다.
일본에서 안도 씨의 난이 끝났다
필리프 6세가 프랑스의 왕으로 즉위하며 발루아 왕조의 시작되었다. (백년전쟁의 단초)
10년후 소작농들이 자크리의 반란을 일으켰고 에티엔 마르켈의 파리 포위군과 동맹하였다.
20년후 주원장이 중국 대륙에서 원을 축출하고 한족의 국가인 명나라를 건국하였다.
30년후 독일 카를4세 사망.벤체슬라스 등극
40년후 위화도 회군이 벌어졌다.
명나라 장수 남옥이 이끄는 15만 대군이 부이르 호수에서 원평종을 습격하였다. 이후 평종은 카라코룸으로 탈출하다 투울 강 근처에서 이수데르 조리그투에게 살해당하며 쿠빌라이 계열의 원 황실은 단절된다.
1388년에서야 샤를 6세는 친정에 나섬
50년후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났다.
조선의 최고교육기관 성균관의 기능을 한양으로 이전하였다
60년후 - 지기스문트가 헝가리-폴란드 연합군을 이끌고 보스니아를 공격하였고, 도보스 전투에서 보스니아의 왕 트브르트코 2세가 지기스문트에게 대패를 당하였다.
러시아는 서기 988년에 비잔틴으로부터 동방정교(비잔틴정교)를 수용해 국교로 정한 이후, 볼세비키 등을 겪으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온 러시아 정교를 믿고 있다서기 988년 키예프공국의 블라디미르 대공이 그리스정교를 국교로 수용
바르셀로나는 서기878년부터 자치를 인정받았고 988년엔 왕국으로 독립,중세 지중해의 무역중심지로 번영을 누렸다.
60년전 교황 요한 10세가 로마의 귀족부인 마로치아에 의해 강제 폐위되었다. 이후 레오 6세가 123대 로마 교황으로 즉위하였다
50년전 발해의 유민 열만화가 서경압록부에서 거란에 대항해 정안국을 건국했다.
거란이 현 베이징에 남경 석진부를 설치하였다.
탐라국이 고려에 합병되었다
40년전 나이지리아의 은리 왕국이 세워졌다
30년전 고려 전기의 학자 쌍기의 건의에 따라 최초의 과거제가 실시되었다.
10년후 후우마이야 왕조, 레온 왕국을 침공하여 자모라의 요새들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20년후 갈리시아 왕국, 다시 한번 레온 왕국의 왕위를 차지하며 동군연합이 결성된다. (포르투갈 - 갈리시아 - 레온 - 카스티야)
페샤와르 전투에서 마흐무드 지휘의 가즈니 왕조 군대가 힌두 연합군을 격파하였다
40년후
크누트 대왕이 노르웨이의 왕이 되었다.
나바라 왕국의 산초 대왕이 카스티야를 정복하며, 레콘키스타 세력은 갈리시아 왕국과 나바라 왕국으로 양분된다.
베트남 리태조가 죽고 리왕조의 태종이 즉위하였다
50년후 서하 (미냑)의 이원호가 스스로 황제국임을 칭했다.
사라고사 토후국을 통치하던 투지비 가문이 쫓겨나고 후드 왕조가 세워졌다
60년후 동 아나톨리아 고원에서의 카페트로우 전투에서 비잔티움 제국과 조지아 왕국의 연합군이 셀주크 제국군에게 패하였다.
잉글랜드를 침략한 바이킹 군대가 격퇴당하였고, 생존자들은 플랑드르로 달아났다. (잉글랜드에 대한 최후의 바이킹 침공)
잉글랜드 국왕 참회왕 에드워드가 켄트 지역의 샌드위치 기반의 함대로 도버 해협을 봉쇄하며 플랑드르 백작과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628년
신라에 627년 대상해(大霜害)의 영향으로 대기근이 닥쳐 백성들이 자기 자식을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다.
사산조 페르시아가 점령했던 동로마 제국의 모든 영토가 동로마 제국에 반환되다.
1월 - 동로마 제국의 군대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황궁을 점령하다.
3월 - 사산조 페르시아의 수도 크테시폰에서 반란이 일어나 호스로우 1세가 폐위되어 처형당하고 셰로에가 황위에 오르다.
4월 3일 - 사산조 페르시아가 동로마 제국에 정식으로 항복하다.
9월 14일 - 동로마 제국의 헤라클리우스가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개선식을 가지다.
60년전 랑고바르드족이 북부 이탈리아에 랑고바르드 왕국을 세웠다.
황초령, 마운령 진흥왕 순수비가 세워졌다.
양견부친 양충사망
50년전 신라가 백제의 알야산성을 공격하였다.
신라의 진지왕이 중국의 진(육조)에 사신을 보내 수교하였다.
40년전 바흐람 추빈이 이끄는 1만 2천명의 사산조 페르시아군이 돌궐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북부 이탈리아에서 랑고바르드족의 군대가 군트람이 이끄는 부르군트 왕국의 침략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30년전 고구려-수 전쟁 : 영양왕이 고구려군을 이끌고 수나라의 요서 지방을 공격하여 고구려-수 전쟁이 발발하였다. 이후 수문제가 수나라군 30만명을 동원하여 수륙양면으로 고구려를 공격하였으나 전염병과 장마, 태풍에 의한 피해 등에 의하여 고구려군에 대패한 뒤 퇴각하였다.
사산 제국이 예멘의 히미야르 왕국울 정복하였다
20년전 비잔티움 제국령 카르타고의 총독 헤라클리우스와 그의 아들이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포카스를 상대로 한 반란을 일으켰다.
호스로 2세가 이끄는 사산조 페르시아군이 아나톨리아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보스포루스 해협까지 진출하였다.
10년전 이연이 황제로 즉위하며 당나라가 건국되었다
10년후 이슬람 제국이 비잔티움 제국의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아나톨리아 지방과 아르메니아를 공격하였다
29년후 657년 당고종이 소정방, 임아상, 소사업 등을 시켜 보낸 원정군에 서돌궐의 수도 수야브가 함락당하고 마지막 왕 사발라가한은 생포당해 장안으로 압송당해 멸망했다.
40년후 평양성 전투(668년)가 시작되었다.
- 나당연합군이 평양성을 점령하면서 고구려가 28대 705년 만에 멸망하고 여당전쟁이 마무리되었다.
콘스탄티누스 4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50년후 신라의 승려 의상이 범어사. 운암사.한천사를 창건하였다
60년후 카롤루스 마르텔 : 프랑크 왕국의 군사지도자 탄생
268년 미추왕 신하들을 각지로 보내 민중들의 불만사항을 수렴했고
서기 268년에 제위에 오른 클라우디우스 2세(=고티쿠스) 때부터 일류리아군(軍) 출신의 황제들 시대가 시작되었다
60년전 볼로가세스 6세가 파르티아의 왕이 되었다.
왜가 신라를 공격했으나 이음(利音)이 이를 막아내었다.
10월 - 장판 전투 : 조조가 10만의 병사를 이끌고 장판파에서 유비를 공격하였으나 장비가 이를 막아내었다.
11월 - 적벽 대전 : 조조가 중국 통일을 위한 남정에 나서 형주를 점령하였으나,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이 양쯔강 남안에 자리잡고 있는 적벽에서 조조의 대군을 격파하였다. 적벽의 대패로 조조는 형주를 떠났으며, 조인에게 남군을 맡겼다.
50년전 - 유비에 맞서 조조가 군사를 이끌고 한중으로 향한다.
유비가 한중으로 진격해 양평관에 주둔한다.
백제군이 신라의 장산성을 공격하였으나 패하였다.
- 엘라가발루스가 할머니인 율리아 마이사에 의해 로마 제국의 황제로 추대되었다
40년전 상용에서 일어난 위나라 맹달의 반란이 사마의에게 진압당하였다. 맹달은 사로잡혀 참수되었으며, 그 머리는 낙양으로 보내져 불태워졌다.
:
위나라 서량 지방의 군인 남안, 안정, 천수의 호족들이 촉나라에 투항하였다.
음참마속1차 북벌실패
촉나라의 승상 제갈량이 위나라를 치는 제 2차 북벌을 전개하였다(진창성 공성전)
사산 왕조의 아르다시르 1세가 이란 북부의 파르티아잔당을 일소하였다
30년전 연왕 공손연이 위나라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자 사마의가 이를 토벌하고 공손연을 처형하였다
20년전 중천왕이 고구려 제12대 왕이 되었다
10년전 오나라의 권신 손침이 오의 황제 손량을 폐위시키고 손휴를 오나라 4대 황제로 옹립시켰다.
- 손침이 역모를 꾀한다는 보고를 들은 손휴가 좌장군 장포, 정봉 등과 모의해 손침을 척살하고 그 일족을 멸했다.
10년후 백제가 미추왕의 신라를 공격하였다.
20년후 가르다 호에서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가 지휘하는 3만 5천명의 로마 제국군이 게르만족 군대를 격퇴하였다.
나이수스에서 로마 제국이 게르만족 군대를 격퇴하였다.
로마 황제 갈리에누스가 암살당하고,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가 로마 황제가 되었다.
30년후 백제가 미추왕의 신라를 공격하였다.
277년에 양호는 거평후에서 남성군후로 책봉되자 이를 사양했으며, 그 후 병들어 일어나지 못하게 되자 임종의 자리에서 사마염에게 두예를 천거하고 병사했다
40년후 유연이 전조의 황제로 즉위하고 연호를 영봉으로 개원하였다.
로마 제국의 황제 갈레리우스는 전,현직 황제들을 소집한 후, 그의 주도로 막센티우스의 무단 쿠데타와 발레리우스 세베루스에 대한 임의적 처형을 단죄, 그 아버지 전 황제 막시미아누스의 재퇴임, 리키니우스의 서방 정제 취임 등을 결정하여 공포했다. 그 결과로 11월 11일 리키니우스가 취임했다
50년후 전조 제 3대 황제인 유총이 사망하고 유찬이 제위를 이어받았으나, 주색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하였다가 외척인 근준에게 살해당하였다. 이후 유요가 전조 제 5대 황제가 된다. 유요는 석륵을 조공으로 임명하여 근준을 공격하게 하였다. 근준은 패배한 뒤 얼마 안 가 내분으로 인해 살해당하였다.
60년후 석호가 후조군을 이끌고 전조를 공격하였고, 전조 제5대 황제 유요가 이에 반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유요는 이 여세를 몰라 낙양을 포위하였으나 곧 석륵의 군대에 반격을 당해 크게 패배하여 포로가 된 뒤 처형당하였다. 이후 유희가 전조 6대 황제가 된다
BC 93년에 로마의 한 관리가 아시아로 임명되어 가는 길에 아테네에 잠시 들렀다. 겔리우스 푸블리콜라,동방삭 사망
BC 453년에 한강자(韓康子)가 조씨(趙氏)·위씨(魏氏)와 함께 진의 지백(知伯)을 멸하고 영토를 3분하여, BC 403년에 주(周)의 위열왕(威列王)으로부터 제후로 승인되어 독립국이 되었다.이후 전국시대가 된다
BC 813년(周武王 원년)에 기자(韓氏)는 후조선(後朝鮮)을 열었다.
상원갑자
1888년 조·러 육로통상조약의 체결
9월 19일 - 벨기에 스파에서 세계 최초의 미인대회 열림
10월 9일 - 그 당시 가장 높은 건물이었던 워싱턴 기념탑이 공개되다.
60년전 카스퍼 하우저가 뉘른베르크에서 최초로 발견되다.
시몬 볼리바르가 페루에 선전포고.
브라질 제국과 아르헨티나가 우루과이의 독립을 승인.
50년전 니카라과가 독립을 선언.
시베리아 영하76도 기록
보통선거를 요구하는 차티스트 운동이 영국에서 거세지다. 인민헌장이 발표되다.
- 미국 정부에 의해 체로키 족이 강제로 이주당하다. (눈물의 길)
6월 28일 - 빅토리아 여왕의 대관식이 거행되다
40년전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발표. 1848년 혁명 시작?
프랑스 7월 왕정에서 루이 필리프 왕정(王政)에 맞선 2월 혁명 발발. 루이 필리프 퇴임. 프랑스 제2공화국 수립.
빈 체제의 아성인 빈에서 혁명 발발. 메테르니히 사임.
오스트리아 제국 치하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민중 봉기. 헝가리 독립 전쟁 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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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후 대한제국에서 독립협회가 주관한 만민공동회가 최초로 열렸다.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을 호시탐탐 노리는 와중에서 그나마 가장 자유로운 해였다.
20년후 미국에서 재미 한국인 전명운, 장인환 두 열사가 친일파 미국 정치인 더럼 스티븐스를 저격했던 해로 잘 알려져 있었다. 오스만 제국에선 청년 장교들의 혁명으로 헌법정치가 부활하였다.
50년후 아시아에서는 중일전쟁이 격화되는 중이었으나 유럽은 평온했다. 오스트리아 위기와 체코슬로바키아 위기 등으로 몇 차례 전운이 감돌긴 했으나 각국의 다양한 외교적 중재 노력으로 평화롭게 해결하여 전쟁을 피할 수 있었다
1528년 척계광 탄생 나중60세사망,용행검이라고 하는 검법의 개조자로도 전해진다.
60년전
세조죽고 성종즉위
50년전 줄리아노 데 메디치 : 이탈리아의 정치가, 로렌초 데 메디치의 동생사망
40년전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희망봉(폭풍의 곶 / 카포 다 보아 에스페라나)에 도달하였다.
30년전 무오사화가 일어났다.
이탈리아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완성하였다.
20년전 포르투갈과 이슬람 함대 간의 디우 해전이 벌어졌고, 포르투갈이 승리하여 인도 무역권을 확립하였다.
10년전 보나 스포르차가 폴란드의 여왕으로 즉위하였다.
- 런던 조약이 맺어져 서유럽에 일시적인 평화가 찾아왔다.
10년후 신성 동맹과 오스만 제국 사이에 프레베자 해전이 벌어져 오스만 함대가 승리하였고, 이로써 오스만 제국은 동 지중해의 제해권을 얻었다
20년후 지그문트 1세 : 폴란드의 국왕 사망
30년후 카를5세 사망.
칼레는 1558년 메리 1세 때 잃음으로서 결국 영국은 프랑스 내 모든 영토를 상실하고 만다
40년후 네덜란드 독립전쟁이 발발하였다.
50년후 모로코 vs 포르투갈의 크사르 엘케바르 전투에서 두 지휘관 군주들이 사망하였다
60년후 프랜시스 드레이크, 해적당을 이끌고 카리브 연안의 스페인 상선 / 도시들을 습격하였고, 파나마 지협을 통과하는 금,은 수송대를 약탈하였으며 마젤란 햐협을 거쳐 산티아고까지 습격하였다.
칼레 해전에서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이 이끄는 잉글랜드 (영국) 함대가 이베리아 연합 (스페인) 아르마다를 화공으로 격파하였다
1168년 이규보탄생
잉글랜드의 왕자 리처드가 아키텐 공작이 되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 수즈달 공국이 독립하였다
십자군에게 도시가 넘어갈 것을 염려한 파티마 왕조의 와지르 샤와르가 푸스타트에 방화하였다. 불은 54일간 꺼지지 않았다.
60년전 헝가리 왕국의 콜로만이 슬로바키아의 니트라 공국을 멸하고 합병하였다.
루이 6세가 프랑스의 왕이 되었다
윤관의 고려군이 동북9성을 개척하였다
50년전 보두앵 2세가 예루살렘 왕국의 왕이 되었다.
- 그레고리오 8세가 대립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금나라 군대가 거란의 동경 요양부를 함락, 요동을 정복하였다.
송나라와 금나라가 해상의 맹약을 맺고 요나라에 대한 연합 전선 구축을 합의하였다
40년전 금나라에게 수도 카이펑이 함락된 이후 송나라가 양저우에 임시 정부를 설립하였다.
포르투갈이 실질적인 독립을 얻었다.
대월 리왕조의 신종이 즉위하였다.
30년전 독일의 왕 콘라트 3세의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헝가리 왕국이 보스니아를 정복하였다.
금나라와 남송 당국이 일단 화의에 합의하였다.
20년전 잉글랜드 - 플랑드르의 십자군이 알제리의 오랑을 함락하였다.
무와히드 왕조가 세비야를 점령하였다.
10년후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가 아를에서 부르고뉴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조지아 국왕 게오르그 3세가 귀족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딸 타마르를 공동 통치자로 임명하였다.
피사의 사탑 3층이 완성되며, 탑이 기울기 시작하였다
남송의 유학자 주자가 백록동 서원을 재건하였다
20년후 알폰소 9세가 레온 왕국의 왕이 되었다.
잉글랜드의 리처드가 필리프 2세와 연합하여 아버지 헨리 2세를 공격하였다.
잉글랜드에서 살라딘 세가 부과되었다
30년후 브런즈윅의 오토가 웰프 가문에 의하여 독일의 왕으로 추대되었다.
독일 십자군 대부분이 레반트를 떠났다.
만적의 난이 발발하였다
40년후 서하 북부지방을 유린한 몽골제국군이 철수하였다.
칭기즈칸이 금나라 황제의 조서를 거부하였다.
오이라트가 몽골 제국에 복속하였다.
수부타이의 몽골 제국군이 메르키트 부족의 잔당을 평정하였다.
사미원이 금과의 화의를 이끈 공으로 남송의 재상으로 승진하였다.
50년후 무칼리의 몽골군이 태원과 평양을 함락하였다.
남송 군대가 수주를 공격해 온 금나라 군대를 격퇴하고, 반격을 가하여 사주를 점령하였다.
몽골의 장수 카치운이 몽골군 1만과 동진군 2만명을 이끌고 고려로 진군, 강동성 포위전에 참가하였다.
몽골 제국의 칭기즈칸이 호라즘 왕조의 무함마드 샤에게 사신을 보내 무역과 복종을 요구하였다.
60년후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아들 콘라트 4세가 예루살렘의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 프리드리히 2세가 이끄는 6차 십자군이 브린디시 항을 출발하였다.
808년 불가르의 크룸, 스트루마 강 어귀에서 동로마 제국군을 격파하다.
808년에 12도(道)에 사신을 파견하여 군(郡), 읍(邑)의 경계를 정하였다. 이것은 애장왕의 중앙과 지방제도에 대한 개혁조치라 할 수 있다
프랑크 왕국 군대가 카탈루냐의 토르토사를 공격하나 후우마이야 왕조 수비대의 항전으로 실패하였다.
이드리시 왕조의 이드리스 2세가 장성하여 볼루빌리스를 떠나 페스에 입성, 친정을 시작하였다
50년전 당나라에 귀순했던 사사명이 13만 병력을 모아 범양에서 당나라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다.
당나라의 하남 절도사 최광의 휘하의 병력이 사사명이 이끄는 반란군에게 격파당하였다
30년전 코르도바 토후국을 공격하기 위한 원정에서 돌아오던 프랑크 왕국군이 바스크족의 기습에 당하였고 이 전쟁 도중 군사지도자 롤랑이 전사하였다. (론소보 전투, 후에 롤랑의 노래의 배경이 됨)
20년후
시라쿠사에서 아글라브 왕조의 해군이 비잔티움 제국과 베네치아 공화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청해진이 설치되었다.
40년후 바이킹 습격자들이 아키텐의 수도인 보르도를 점령하였다.
사라센족이 라구사를 점령하였다.
60년후 포르투갈 왕국의 전신인 포르투갈 백작령이 성립되었다. (포르투 일대)
양성교리를 선포한 칼케돈 공의회 448년 콘스탄티노플에서 개최된 주교회의에서 단죄를 받았다.
저거안주는 448년 교주를 쟁취하고 거사전국을 포함한 투루판 분지 일대를 지배하기에 이른다.
아틸라는 더이상 유목지도자가 아니었다.
70년전 동로마황제 발렌시우스 고트족에게 패하고 죽음.
60년전 테오도시우스 1세가 발렌티니아누스가 사바 강변에서 마그누스 막시무스의 군대를 격퇴하였다. 이후 막시무스는 도망쳐서 아퀼레이아까지 퇴각한 뒤 항복하였다.
- 마그누스 막시무스가 테오도시우스 1세의 부하들에 의해 처형당했다.
50년전 난한이 후연의 황제 모용보를 살해하고 후연 3대 황제가 되었다.
- 난한이 모용성을 따르는 군대에게 살해당하였고 이후 모용성이 후연 제4대 황제가 되었다.
모용덕이 남연을 세우고 남연의 초대 황제가 되었다
40년전 모용희를 죽이면서 후연을 멸망시킨 후 고구려 유민들의 지원으로 북연을 건설했고 408년에 모용희, 부황후를 휘평릉에 장사지내면서 모용희를 소문황제로 추증했으며,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사신을 보내자 고운도 고구려에 사신을 파견했다.
테오도시우스 2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자 고트족은 화친을 깨고
로마로 진군시작했다.
파비아에서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여 스틸리코파 군인과 관료들이 대거 살해당하였다.
서로마 제국의 황제 호노리우스가 스틸리코를 처형하였다.
20년후 서로마 제국의 황제 안테미우스가 군대를 보내 사르데냐를 탈환하고 시칠리아에서 반달족을 축출하였다.
튀니지의 캡본에서 가이세리크가 이끄는 반달족 군대가 서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의 연합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반달족의 함대가 로마에 상륙, 도시를 약탈하였다
40년후 테오도리쿠스 대왕이 이탈리아의 왕을 자칭한 오도아케르를 공격하라는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제노의 명을 받고 동고트군을 이끌고 북부 이탈리아로 진군하였다.
카바드 1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50년후 소보권이 남제 6대 황제가 되었다
60년후 클로비스 1세가 프랑크 왕국의 수도를 파리로 정하고 가톨릭교를 국교로 삼았다.
테오도리쿠스 대왕이 동고트 왕국군을 보내어 프로방스 지역의 프랑크족을 축출하고 서고트인들의 영토였던 셉티마니아를 탈환하였다
서기 88년에 한나라 왕위에 오른 화제 유조는 외척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근위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고, 그 근위세력의 중심엔 환관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60년전 다루왕이 백제 2대 왕이 되었다
50년전 알렉산드리아에서 반유대 폭동이 일어났다
40년전 모본왕이 고구려 제 5대 왕이 되었다.
30년전
허황옥이 배를 타고 금관국으로 도착하여 왕비가 되었다.
20년전 로마 황제 네로가 자살하고 갈바가 로마 제국의 새 황제가 되었다.
- 갈사국의 도두가 나라를 들어 고구려에 투항해 멸망하였다.
10년전 로마의 아그리콜라 장군이 웨일스 북쪽에 살던 오르도비치 족을 토벌하였다.
파코루스 2세가 파르티아의 왕이 되었다
10년후트라야누스가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20년후 신라가 비지국, 다벌국, 초팔국을 병합하였다
40년후 개루왕이 백제 4대 국왕이 되었다.
하드리아누스 성벽이 완공되었다
50년후 -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안토니누스 피우스를 후계자로 지목하였다
60년후 고구려의 차대왕이 태조왕의 맏아들 막근을 살해하였다
BC 273년 - 아쇼카 왕이 마우리아 왕조의 왕으로 즉위. 로마는 어떤 직접적인 군사적 관계가 있기 훨씬 전부터 그리스 세계와 어느 정도 외교적 접촉을 가져왔고 BC 273년에는 프톨레마이우스 2세와 우호관계를 맺었다. BC 273년 피로스 마케도니아의 새로운 움직임에 대항하여 펠로포네소스에 원정, 스파르타 공격에 실패한 뒤 아르고스에서 전사하였다.
BC 633년 북진해온 초를 성복(城? : 지금의 산둥 성 쥐안청[?城])에서 대파하고, 돌아오는 길에 천토(踐土:지금의 허난 성 정저우[鄭州] 동북쪽)에서 제후들을 모아 회맹했다
bc993년 이집트21왕조 4대왕 아메네모페 (기원전 993년 ~ 기원전 984년)즉위8ㅐ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