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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갑자
1711년 강희제 1711년(강희 50년)에 저술시작한 《강희자전》(康熙字典)인데, 이것은 박학홍유 수십 명과 대신 진정경(陳廷敬) 등이 수년 동안 공을 들여 만들었다. 4만 2천여 개의 한자가 수록된 《강희자전》의 출판은 현대 중국어의 어법과 단어를 확립시킨, 강희 시대 문화 사업의 완성이었다
60년전 독일의 해변에 대홍수가 몰아닥쳐 수천명이 익사하였다.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이 항해법을 공포하였다
50년전정성공이 네덜란드 세력을 몰아내고 타이완 남부를 점령하였다.
순치제죽고 강희제 61년통치 시작
40년전 이탈리아 출신의 프랑스 천문학자 조반니 도메니코 카시니가 토성의 위성인 이아페투스를 발견하였다.
10년후 핀란드에서 뉘스타드 조약이 체결되었다.
표트르 대제가 러시아 제국을 세웠다.(~1917년.)
20년후 청나라 중기의 건축서인 흠정공정주법칙례이 편찬되었다.
40년후 - 조선에서 균역법이 공포되었다
택리지가 저술되다
50년후 영국에서 조지 3세의 대관식이 거행되다.
7년 전쟁: 4달에 걸친 포위전끝에 러시아군이 프로이센의 요충지 콜베르크 요새를 함락시키다
60년후 - 스페인 제국이 대영제국에 포클랜드 제도를 양도하였다.
- 구스타브 3세가 스웨덴의 국왕으로 즉위하다.
- 제7차 러시아-튀르크 전쟁: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점령하다.
1351년 충정왕이 원에 의해 강제 폐위되고, 공민왕이 즉위함.
인주 왕조의 아부 이샤크가 무자파르 왕조의 야즈드를 공격했으나 실패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다.백련교도인 한산동주동
폴란드도 강성해지기 시작.
오스만 제국이 다르다넬스 해협을 넘어 발칸 반도로 진출하였다.
인도 제국 신드 지방에 삼마 왕조가 세워졌다.
1351년 탁발승으로 있던 주원장은 홍건적의 한 대장인 곽자흥(郭子興)의 휘하에 들어갔다.
60년전 십자군 국가의 소멸과 스위스의 성립.220년여 십자군전쟁 끝나다
- 제노바의 반디노와 우글리노 형제가 인도 제국를 향한 항해를 시작하였다. (대항해시대의 시초) 그들은 다시 기록되지 못하였다.
치악성 전투에서 원충갑이 이끈 고려 군민이 카다안의 침입을 격퇴하였다.
50년전 - 일 칸국 군대가 시리아로 진입, 알레포 일대를 약탈하였으나 곧 회군하였고 아르메니아 - 키프로스군대도 곧 철군하였다.
- 에드워드 1세의 아들 에드워드가 카나번에서 초대 웨일즈 공으로 즉위하였다
40년전 원인종이 4대 황제로 즉위하였다.
- 할미로스 전투에서 카탈로니아 용병단이 아테네 공작인 브리엔느 드 월터를 전사시키고 아테네 공국을 정복하였다.
10년후
홍건적이 고려의 수도 개경을 공격하였다
20년후 신돈사망
40년후 고려의 12개 사학인 사학 12도가 폐지되었다.
빈민과 병자를 구제하기 위해 광종 14년에 만들어진 기구인 제위보가 해체되었다.
토지 제도인 과전법이 만들어져 조선 전기 양반사회의 경제 기반을 이루게 된다
50년후 티무르가 바그다드를 정복하였다.
조선에서 신문고 제도를 실시하였다.
태종이 아버지 이성계를 모셔오기 위해서 성석린을 함흥차사로 보내었고, 4월에 이성계가 한양으로 환궁했으나 그해 11월 다시 한양을 떠난다.
60년후 프랑스 슈농소 성의 영주 장 마르케가 영국군에 동조한 죄로 고발당했고, 슈농소 성은 프랑스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조선에서 하천정비기구 개천도감을 설치하고 청계천 공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991년
고려는 송의 참전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991년 거란은 서여진을 정복하고 압록강 하류를 차지했다.
거란은 송과의 전쟁을 지속하는 한편 발해 멸망 후 발해 왕족이 압록강의 서경압록부에 세운 정안국과 여진 세력을 제압하여 고려와 압록강을 사이에 둔 접경국가가 되었다.몇개의 성을 쌓고 993년 1차 침입한다
60년전 라미로 2세가 레온 왕국의 왕이 되었다.
후우마이야 왕조, 탕헤르와 세우타 일대 점령, 지브롤터 해협 통제권을 얻게 되었다.
에릭 블러드액스가 노르웨이의 왕이 되었다.
50년전 콘스탄티노플에서 비잔티움 제국과 키예프 대공국 간에 전쟁이 발발하였다
40년전 곽위가 카이펑에서 후주를 건국하였다.
오대십국시대의 북한이 건국되었다.
오대십국시대의 초나라가 남당의 공격으로 멸망하였다
10년전 제1차 불가리아 제국군이 비잔티움 제국을 공격하였다.
성종(고려)이 고려 6대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후우마이야 왕조의 실권자 알 만수르가 갈립을 아티엔자에서 전사시키고 권력자들에 대한 숙청을 단행하였다
10년후 올라프 1세가 이끄는 바이킹군이 앵글로 색슨족들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20년후 폴란드의 군주 볼레스와프 1세가 슬로바키아의 일부를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데인 (노르만/바이킹) 군대가 잉글랜드 군대를 패배시켰다. (1차 알톤 전투, 데본 전투)
아이슬란드 바이킹의 빈랜드 식민지가 형성되었다.
백두산이 분화하였다.
40년후 발렌시아 토후국마저 후우마이야 왕조로부터 독립하며, 1차 타이파 분열이 확실해지고, 칼리파 국의 운명이 결정된다.
마흐무드가 가즈니 제국의 수도를 라호르로 정하였다
50년후 - 오판토 강에서 노르만족과 랑고바르드족의 연합군이 비잔티움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몬테 마기오레 전투)
- 조이가 자신의 양자를 미하일 5세로써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로 옹립하였다.
60년후 이스파한이 셀주크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에스토니아 인들이 루스 인들을 몰아내고 타르투룰 회복하였다.
632년 불가리아가 건국된다. 마호메트사망
앵글로 색슨 바이킹 침입자 올라프 Tryggvason이 이끄는 나중에 올라프 1세:노르웨이 왕에게 패함
슬라브족이 프랑크 왕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칠숙·석품의 난이 발발하였으나 진압되었다
영류왕 631년에 시작한 부여성에서 발해에 달하는 천리장성 축조 시작
60년전 베네벤토가 랑고바르드 공작령의 수도가 되었다
50년전 사발략가한이 동돌궐 제5대 가한이 되었다.
양견이 그에게 대항하는 반대 세력을 제거한 뒤 9세인 정제에게 선양을 받아 수나라를 건국하고 황제의 자리에 즉위하면서 북주가 멸망하였다.
30년전아우구스티누스가 초대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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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후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헤라클리우스가 병에 걸려 죽고, 그를 이어서 콘스탄티노스 3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20년후 야즈데게르드 3세가 살해당하면서 사산조 페르시아가 멸망하였다.
40년후 신라가 나당전쟁중에 당나라로 부터 사비성을 탈환하여 소부리주를 설치하다.
50년후 김흠돌의 난 : 잡찬 김흠돌이 파진찬 흥원, 대아찬 진공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여 죽임을 당하였다.신문왕이 신라의 왕이 되었다.
60년후 바위 사원이 완공되었다.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 아브드 알 말리크가 이끄는 우마이야 왕조군이 메소포타미아의 반란을 진압하고 아라비아 반도를 재정복하였다.
클로비스 4세가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271년 촉마지막임금 유선 사망
피아첸차 근처에서 게르만족이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이끄는 로마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게르만족은 이곳에 있는 도시를 약탈하였다.
로마영역의 도시들 방벽을 세우기 시작
100년전 게르만 서로마 공격시작.
60년전 카라칼라, 게타가 로마 제국의 공동 황제가 되었다.
카라칼라가 게타를 살해하고 단독 황제가 되었다.
한수가 마초 등 서량의 군벌들과 함께 거병하여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조조를 공격했다
50년전 유비가 촉한을 건국하고 초대 황제가 되었다.
촉한과 후한의 군벌 손권 세력 사이에 이릉대전이 발발한다.
40년전 촉한의 제갈량이 위나라를 치는 4차 북벌에 나섰다.
북 메소포타미아에서 사산 제국과 로마 제국군이 대치하였다
20년전 251년 아브리투스에서 고트족이 로마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 전투에서 로마군을 지휘하던 황제 데키우스와 그의 아들이 전사하였다. 데키우스 사후 그의 아들인 호스틸리아누스와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가 로마의 공동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호스틸리아누스는 전염병에 의해서 곧 사망하였다.
로마 제국에 전염병이 창궐하였다.
황제가 된 갈루스가 고트족과 평화 조약을 맺었다
10년후 로마 제국의 황제 프로부스의 승전을 축하하는 개선식이 로마에서 거행되었다.
서진의 농부가 위 양왕의 무덤을 도굴하여 죽서기년이 발견되다
14년후 로마 4두체제. 로마 43만으로 줄임
20년후 거질미왕이 가락국 4대 왕이 되었다.
사마염이 죽은 이후 팔왕의 난이 발발하였다.
30년후 사마륜이 서진의 황제인 사마충의 자리를 찬탈하여 제위에 올랐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사마경을 포함한 많은 황족들이 사마륜에 맞서 거병하였는데 이 와중에 사마륜의 조카 사마옹이 그를 배신하여 사마륜과 그의 가족은 목숨을 잃는다.
- 산마리노 공화국이 건국되었다
40년후
고구려가 요동 서안평을 정복하였다.
유총이 군대를 이끌고 서진의 도읍 낙양을 공격하여 함락시킨 뒤 서진의 황제 사마치를 사로잡았다. 황태자인 사마전을 포함한 3만명이 살해되었고, 낙양은 약탈과 방화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로마 황제 갈레리우스가 니코메디아에서 제국 내에서 기독교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는 칙령을 공포하였다.
41년후 콘스탄티누스 권력쟁취.군대개혁 기동군창설
50년후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면서 서기 321년 경 태양신 숭배하던 일요일을 예배드리는 날로 정했다.
59년 로마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이동
60년후 고국원왕이 고구려 제16대 국왕이 되었다
BC 90년10월에 율리우스 시민권법이 제출되어 통과되었다. 그 조항에 따라 로마에 충성했던 모든 이탈리아 공동체들은 즉시 로마 시민권을 부여받았고 반란자들은 무기를 내려놓기만 한다면 로마시만이 될수있다
bc450년 페르시아와 그리스전쟁 시작하여 120년만에 페르시아 멸망하다
BC 810년 페니키아인들은 오늘날의 튀니지에 카르타고(Carthago)라는 나라를 세웁니다
BC 810년부터 5년간 아시리아를 통치했던 세미라미스 여왕이 공중정원을 세웠다
BC 810년 아닷 니라리 Ⅲ세(Adadnirari Ⅲ)의 영도하에 앗수르는 다시 세력을 회복하여그와 동시에 바벨론은 갈대아인, 아람인의 압박으로 쇠퇴하여 앗수르의 원조를 청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상원갑자
1891년
고종의 요청을 받은 주 조선 미 공사인 허드가 수도 한성에 50여 명의 해병대원과 3척의 함선을 제물포로 보냈음. 59년후 인천상륙이 이루어짐.
이러한 미국의 함대 및 해병 파견은 청이 조선에 가하는 군사적 압박으로 인한 것에서 기인했었음. 청은 수시로 파병을 운운하며 조선을 위협하곤 했으며, 1891년에는 조선 북부의 국경지대에 다수의 군대를 배치하기 시작했었음.
60년전교황 그레고리오 16세에 의해 한국 가톨릭최초의 교구인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설정되다.
브라질 제국에서 노예 무역이 금지되다.
- 찰스 다윈이 비글호와 함께 여정을 시작하다.
- 마이클 패러데이가 전자유도의 법칙을 발견하다. 학회에 정식으로 발표하는 것은 8월 29일
50년전 아편전쟁: 영국군이 홍콩을 점령한다. 이후 1997년 반환까지 156년 동안 홍콩은 영국의 영토가 된다.
엘살바도르가 독립을 선언하다
40년전 안동 김씨가 다시 세도정치를 시작하다.
- 홍수전이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키다. 이 때부터 14년간 지속된 이 난은 무려 2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가게 된다.
프랑스 제2공화국의 대통령 루이 나폴레옹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다.
10년후에는 영일동맹
20년후 신해혁명이 일어났다. 이 혁명은 청나라의 마지막을 알리는 혁명이었다.
그리고 100년 넘게 우려먹고있는 M1911이 미군에 채용됐다.
미국엔 기록적인 한파가 왔다
40년후스페인 왕국에서 왕정이 폐지되고 제2공화정이 시작되었다.
미국 뉴욕에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완공되었다. 당시로선 세계 최고 높이의 마천루였다.
50년후 북아프리카와 발칸 반도까지 번진 제2차 세계대전이 마침내 동유럽 - 러시아 일대와 태평양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6월 22일, 나치 독일은 소비에트 연방을 침공하면서 역사상 최대, 최악의 전쟁이자 제2차 세계대전 최대의 전장이었던 독소전쟁이 시작되고 세계 각국은 총력전 상태로 돌입하다
60년후 1.4후퇴를 이끌 중공군이 투입된다.
5월 20일 - 토마스 알바 에디슨이 최초의 등사기를 대중에 공개하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 착공
1531년 사라예보에 대학교가 세워짐.
중종 1531년에는 기묘사화 후 집권했던 심정(沈貞)·이항(李沆)·김극복(金克福) 등이 화를 당함
송인수 1531년 홍문관교리를 거쳐김안로의 등용을 반대하고 탄핵하여 그의 미움을 사 사천으로 유배되었다
60년전 세조실록이 완성되었다
헨리6세 1471년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 에드워드 4세와 맞서 싸웠으나, 튜크스베리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50년전 시스티나 성당 건축이 완료되었다.
오스만 제국과 나폴리 왕국 사이에서 일어난 오트란토 전투가 많은 사상자를 남기고 끝났다.
40년전 이언적탄생
30년전 .퇴계. 조식선생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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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후 독일의 레겐스부르크 종교 회의가 결렬되었다.
20년후오스만 제국이 합스부르크 측으로부터 트리폴리를 탈환하였다.
40년후 신성 동맹과 오스만 제국 사이에서 레판토 해전이 발발하여 오스만 해군이 패배한다.
이황사망
필리핀에 마닐라가 건설된다
60년후 일본의 무장 오다 노부나가가 이가 국을 공격하였다.
60년후 임란직전
1171년 살라흐 앗 딘이 파티마 왕조 칼리프를 무효로하고, 이집트를 수니파 지배로 회복시켰다.
알레포(Alepo)를 지배하던 장기왕조(Zengid dynasty)의 지배자 누르 알 딘(Nūr al-Dīn, 재위1147-1174)은 소아시아의 소란을 틈타 아인탑(Aintab)과 근교의 도시들을 점령한다.
명종은 1170년에 무신정변으로 의종이 폐위되고 무신들에게 추대되어 즉위하였다.
그러나 실권은 무신 정권의 지도자인 이고, 이의방, 정중부 등에게 있었다.
살라흐 앗 딘에 의하여 파티마 왕조가 멸망하였다. 이집트는 다시 수니파 국가로 돌아서게 된다.
비잔틴 제국이 달마티아의 지배권을 회복하였다
60년전 - 하인리히 5세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50년전 방랍의 난.
금나라가 요서 지방을 점령하고 요나라의 중경 대정부를 함락시켰다. 천조제가 몽골로 피신하자 한인 신하 이처온과 황족 야율대석은 남경 석진부에서 천조제의 숙부 아율순을 옹립, 북요 정권을 수립한다.
노구교 전투에서 요나라 (북요) 군대가 송의 환관 동관이 이끄는 20만 송나라 군대를 격파하였다
40년전 진회가 남송의 재상이 되었다.
야율대석이 에밀에 도착하였으나 동 카라한 왕조의 공격으로 서쪽으로 더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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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후아흐마드 알 시킬리가 이끄는 무와히드 왕조의 해군이 포르투갈 함대를 격파하고 제해권을 회복하였다.
프랑스 국왕 필리프 2세가 유대인에게 기독교도가 진 빚을 모두 무효화하였다.
20년후 프랑스 국왕 필리프 2세가 3차 십자군에서 이탈하여 귀국하였다.
리처드 1세가 무슬림 포로 2700명을 처형하였다
제3차 십자군 원정에서 잉글랜드의 왕 리처드 1세가 아르수프 전투에서 살라딘을 패퇴시켰다
40년후 칭기즈칸이 금나라 원정에 대한 쿠릴타이를 개최하였다.
몽골 제국의 금나라 침공이 시작되었다. (~ 1234년)
50년후 주치가 이끄는 몽골군이 호라즘의 우르겐치를 함락시키고 거주민들을 모두 죽였다.
징기스 칸의 몽골군이 인더스 강 유역에 도달하였다
메르브가 툴루이의 몽골군에게 함락당하였다. 무슬림 역사가는 백만이 학살되었다고 기록하였다
준토쿠 덴노가 막부와의 전쟁을 준비하며 주쿄 덴노에게 양위하였다.
60년후 살리타가 이끄는 몽골 제국군이 고려를 공격하였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시칠리아 왕국의 법을 집대성한 멜피 헌법과 의사와 약사의 직업분화를 명시한 살레르노 칙령을 반포하였다
811년
고닌의 한구. 20여 척의 배가 3척을 따라와 서로 싸움,헌덕왕이 애장왕 잔당을 치러 온셈.
- 동로마 제국의 황제 니케포루스 1세가 이끄는 군대가 베르비차고갯길에서 크롬이 이끄는 불가르에게 완패하며 1년만에 앙갚음.
- 미카일 1세가 동로마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다.
60년전 로마 교황 자카리아의 지원으로 카롤루스 마르텔의 아들 피핀 3세가 메로빙거 왕조의 마지막 왕 힐데리히 3세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면서 카롤링거 왕조가 시작되었다.
불국사 3층 석탑과 다보탑이 제작되었다
탈라스 전투 : 아바스 왕조군이 탈라스에서 당나라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 전쟁 이후 제지술이 이슬람 문명으로 전파되고 실크로드 교역로를 포함한 중앙아시아가 이슬람 세력권에 넘어가게 된다.
50년전 사사명의 아들 사조의가 사사명을 살해하고 칭제하였다.
아바스 왕조군이 카이르완을 재정복하였다
30년전 카롤루스 대제가 자신의 두 아들 피피노와 루트비히에게 각각 롬바르드와 아키텐의 왕위를 수여하였다.
10년후 타히르 토후국이 건국되었다.
20년후 모라비아 왕국(현 체코)의 군주 모이미르 1세가 바이에른의 파사우로부터 그리스도교를 수용하였다
40년후팜플로나 공국, 나바라 왕국으로 독립.
50년후 경문왕이 신라 제 48대 왕이 되었다
60년후 애설레드 1세가 이끄는 웨식스군이 데인족바이킹들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 비잔틴 제국군이 사라센 세력의 무슬림 토후국이 지배하고 있던 이탈리아의 바리를 회복하였다
451년
앗틸라의 훈족은 라인강을 건너 갈리아를 공격해 메츠를 점령하고 오를레앙을 포위하는 등 공포의 진군을 계속했다. 이에 아에티우스는 여러 부족에게 도움 요청.
카탈라우눔 전투: 훈족 군대와 서로마 제국군, 서고트족, 프랑크족 연합군이 카탈라우눔 평원에서 맞붙었다. 아틸라는 이 전쟁 이후 카탈라우눔 평원에서 군대를 철수시켰다
453년 아틸라사망
가락국 질지왕 등극 451년부터 492년까지이다.
60년전 광개토대왕이 고구려 19대 왕이 되었다.
로마 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인정하였다
50년전 오호십육국시대 북량의 초대 군주인 단업이 저거몽손의 군대에 사로잡혀 살해당하였다. 이후 저거몽손이 스스로 양주목 장액공을 칭해 북량 2대 군주가 되었다.
후연 4대 황제 모용성이 용성 내에서 단기가 일으킨 반란으로 습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이후 모용희가 후연 제 5대 황제가 되었다.
알라리크 1세가 고트족 군대를 이끌고 서로마 제국이 지배하고 있는 북부 이탈리아를 공격하였고, 이에 호노리우스 황제는 라벤나로 수도를 옮겼다.
30년전 콘스탄티우스 3세가 호노리우스와 함께 서로마 제국의 공동 황제가 되었으나 바로 사망
- 비잔티움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 간에 전쟁이 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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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후 리키메르 장군의 추대로 리비우스 세베루스가 서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서고트족 군대가 셉티마니아를 재정복하고 히스파니아 지방을 공격하였다
20년후 효문제가 북위 7대 황제가 되었다
40년후 아나스타시우스 1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문자명왕이 고구려 21대 왕이 되었다
북위에 조공
클로비스 라인강의 지게베르트와 연합.
50년후 소보융이 남제 제 7대 황제가 되었다.
- 무령왕이 백제 제 25대 국왕이 되었다
60년후 프랑크 왕국의 군주 클로비스 1세가 사망한 이후 프랑크 왕국의 영토가 살리카 법에 입각하여 그의 네 아들들에게 분할 상속되었다
서기 91년 마침내 북흉노 선우가 참패를 당한 후 몽골 고원을 떠나 오손(烏孫)으로 이주
60년후 팔미라완성
요 遼(서기 91년~1125년)요는 중국 북방의 소수 민족인 거란족이 창건한 나라로, 오랫동안‘거란국’이라고 불렸다. 거란족은 동호 東胡에서 기원하여 요하 遼河 상류 일대에서 활동했으며, 당말 오대에 세력이 크게 번성
아소카의 계몽 군주BC 270년 가 나타남.
BC 270년 로마의 반도 통일
BC 630년에서 BC 553년까지 살았던 실존 인물이 바로 조로아스터교의 교조(敎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