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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거룩한 도성都城 예루살렘은 초토화되었습니다. 왕궁은 불탔습니다.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거룩하게 구별된 성전 역시 불에 탔습니다. 처참하게 무너진 성벽은 형체만 남았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 가운데 조금이라도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포로가 되어 여러 나라로 흩어졌습니다. 환난이 얼마나 컸었는지 성민 이스라엘은 혼이 완전히 나갔습니다.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두려움에 완전히 압도되고 말았습니다. 당장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 지,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알 수 없었습니다.
성민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다.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선지자의 경고를 들으면서도 설마하며 외면했던 일이었습니다. 하나님보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탐욕과 안위를 추구했던 절대 다수의 선지자들과 제사장들과 방백들이 결코 그럴 리 없다며 오히려 성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평화라고 외쳤기 때문에 모르는 척하며 넘겼던 일이었습니다. 지금 당장 돌아서지 않으면 철저히 진멸할 수밖에 없다고 쉬지 않고 외쳤던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심지어 죽이면서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던 일이었습니다.
막상 현실로 임하자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해졌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같이 의미 없는 행동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라와 민족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목숨을 내놓고 끝까지 투쟁했습니다. 새로운 질서에 빠르게 적응한 어떤 사람들은 정복자의 편에 섰습니다. 관리가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어떤 사람들은 지극히 절망적이었던 상황을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처참한 상황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애만 태웠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국방은 물론 성민 이스라엘이 그것들보다 훨씬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던 종교적으로도 희망은 그림자조차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여호와는 사지가 떨리는 두렵고 처참한 상황을 해결함에 있어서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바로 그때, 여호와께서 “야곱아, 내가 너를 창조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아, 내가 너를 만들었다. 내가 너를 구속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의 이름을 불렀으니 너는 내 것이다.”(사43:1),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너를 지었다. 내가 너를 창조하였다.”(사43:7b)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당신이 성민 이스라엘을 창조하셨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들을 만들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들을 구속하였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들을 불렀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당신의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들에 대한 주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에게 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당신이 친히 세워 주겠다고, 붙들어 주겠다고, 다스려 주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더 정확한 표현은 “내가 친히 너를 세우고 있다, 붙들고 있다, 다스리고 있다.”입니다.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구속גָּאַל(가알)”이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무엇인가를 살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뜬금없는 표현처럼 들립니다. 사실, 성민 이스라엘이 처참하게 진멸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들의 죄입니다. 실제로는 그들이 죄였습니다. 존재 자체가 죄였습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사43:8),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다.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다...내게 번제로 드릴 양을 가져오지 않았고, 제물을 바쳐서 나를 섬기지도 않았다.”(사43:22-23)라는 증거대로, 그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했습니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했습니다. 여호와를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귀찮게 여겼습니다. 제사에 쓰이는 기본적인 제물조차 드리기를 아까워했습니다. 쉬지 않고 여호와로부터 떠났습니다. 대적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증스럽게 여기는 우상에게 제사할 때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탐욕을 추구했습니다. 그 결과 나라와 민족이 멸망했습니다. 겨우 살아남은 백성은 여러 나라로 뿔뿔이 흩여졌습니다. 그들 스스로 죄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지불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와에 대한 불신앙의 죄는 어떤 행위를 통해서도 합당한 대가를 지불할 수 없습니다.
만에 하나, 행위를 통해서 여호와에 대한 불신앙의 죄를 해결할 수 있었다면 처음 사람들이 완벽한 조건을 갖춘 낙원이었던 에덴으로부터 쫓겨날 이유가 없었습니다. 인류가 노아의 홍수로 죽임을 당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어렵게 터를 잡은 바벨로부터 각처로 흩어져야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대가가 저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의 무엇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사53장에 따르면, 대가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성민 이스라엘의 역사가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의 그림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성민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 구원을 위한 당신의 창세전 작정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또 히브리어 원문에 따르면 “창조하다.”와 “만들다.”는 능동 분사 형입니다. 창조하는 행위와 만드는 행위가 쉬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여호와께서 나라와 민족 자체가 역사 속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 같은 현재도 여전히 사랑하는 성민 이스라엘을 당신의 창세전 작정에 따라서 쉬지 않고 조성하고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저와 여러분 역시 인생을 사는 동안 만나게 되는 모든 일들을 통해서 조성하고 계십니다.
특히, 여호와께서는 땅이 혼돈할 때, 공허할 때,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천지와 그 안의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습니다. 성민 이스라엘은 저와 여러분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습니다. 스스로는 구제가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가능성 자체가 없습니다. 0.000001%도 없습니다. 수고와 희생과 봉사와 섬김을 넘치도록 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성장과 건축에 지대한 공로를 세웠어도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 허물과 죄로 죽은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거룩한 희생 제물로 내놓으셨습니다. 모진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당신에 대한 불신앙이라는 죄의 대가를 완벽하게 지불해 주셨습니다. 당당하게 내놓을 것 하나 없는 지금도 여전히 저와 여러분을 세워주고 계십니다. 붙들어주고 계십니다. 다스려주고 계십니다. 창세전 작정대로 조성해주고 계십니다. 상황이 아무리 어렵다 할지라도, 존재 자체가 사라져버릴 것 같이 지극히 절망적일지라도,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희망은 그림자조차도 찾아볼 수 없을지라도,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얼마나 깊은지 한치 앞조차 내다 볼 수 없을지라도 낙심하거나 절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두려움에 완전히 압도되거나 떨어야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라는 약속대로, 전심全心으로 여호와께 집중해야합니다. 여호와 한 분만 구해야합니다. 여호와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탁월한 지식과 폭넓은 신학과 무수히 많은 경험을 통해서 획득한 지혜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평강이 마치 파수꾼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음과 생각을 완벽하게 지켜주시는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너는 내 것이다.”라는 여호와의 선포에 담겨 있는 실제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누리는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2025년을 시작하면서 이제까지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도전 앞에 서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과연 어떻습니까? 두렵고 떨리지는 않습니까?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혼돈과 공허와 흑암 속에서도 “내가 너를 창조하였다. 내가 너를 만들었다. 내가 너를 구속하였다. 너는 내 것이다. 내가 친히 너를 세워주겠다, 붙들어주겠다, 다스려주겠다.”라고 약속해 주신 여호와 한 분만 믿고 의지할 수 있겠습니까?
여호와께서는 당신 것이라고 선포하신 성민 이스라엘을 보배롭게 여겨주셨습니다. 존귀하게 여겨주셨습니다.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물 가운데로 지날 때 함께 해주셨습니다. 강을 건널 때 물이 침몰하지 못하도록 지켜주셨습니다. 불이 해치지 못하도록 막아주셨습니다. 온갖 환난과 시험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주셨습니다. 또 여호와는 그들의 구원자가 되어주셨습니다. 그들의 왕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들을 위해 바다에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거센 물결 사이에 길을 만들어주셨습니다. 메마른 사막에 강이 흐르게 만들어주셨습니다. 광야에 길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대략 세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해안길입니다. 가장 좋고 빠른 길이었습니다. 블레셋이 길목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도 원망과 불평을 쏟아놓았던 성민 이스라엘의 성정으로 볼 때, 스스로 포기하고 돌아설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수르길입니다. 상인들이 낙타에 짐을 싣고 다니던 길이었습니다. 별문제 없이 지날 수 있었습니다. 가장 무난한 길이었습니다. 마지막 하나는 광야길입니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 쬐이고, 저녁에는 살을 에는 것 같은 추위가 엄습해 오는 길이었습니다.
거기다 성민 이스라엘의 수는 최소 200만 명에서 최대 300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각종 도구들은 물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짐승 떼도 있었습니다. 길은 거칠고 메말랐습니다. 가장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피하고 싶은 길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가장 가깝고 쉬운 길을 버리고 가장 어려운 길로 당신 백성들을 인도해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 역시 가장 어렵다고 생각되는 길로 인도해주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신 한 분만 믿고 의지하며 바라보아야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어떤 길도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을 정도로 가장 유익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 영광이 돌아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문을 듣고 모였습니다. 날이 저물 때까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빠져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배부르게 먹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을 재촉해서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급히 보내셨습니다. 당신은 기도하기 위하여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저녁이 되었습니다. 호수에 거친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이 최선을 다해 노를 저어보았지만 소용이 전혀 없었습니다.
배는 호수 가운데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호수를 걸어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고 안심하라고 위로해주셨습니다. 베드로는 즉시 자신도 예수 그리스도처럼 호수 위를 걷고 싶다고 외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호수 위를 걸어서 당신께 걸어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때까지 거세게 불어오던 바람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파도도 여전히 널뛰듯 일렁거리고 있었습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칠흑같이 어두웠습니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호수 위를 걸어서 예수 그리스도께로 갈 수 있었습니다.
시선을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마14:30a)라는 증거에 따르면, 그는 곧 호수 밑으로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던 시선을 바람에게 돌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마14:31b)라는 증거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로 향하던 시선을 바람에게 돌린 것을 의심, 당신에 대한 불신으로 여기셨습니다. 시선을 돌렸을 뿐입니다. 순식간에 마음에 충만하게 자리를 잡았던 믿음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 자리를 불신이 차지했습니다.
동시에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시선을 집중시켜야하는 이유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성민 이스라엘보다 먼저 길을 가셨습니다. 장막 칠 곳을 찾으셨습니다.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그들이 가야할 길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길을 여는 자가 그들 앞에 올라가고 그들은 길을 열어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나갈 것이며 그들의 왕이 앞서 가며 여호와께서는 선두로 가시리라.”(미2:13)라는 증거대로, 여호와께서는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길을 열어주십니다. 앞 장 서십니다. 선두에 서서 걸어가십니다.
2025년, 너는 내 것이라고 선포해 주신 여호와 한 분만 온전히 믿고 의지하며 바라볼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것을 통해서 제아무리 어렵고 힘겨운 환경과 상황과 조건을 만나게 된다 할지라도 마치 파수꾼처럼 마음과 생각을 온전히 지켜주는 평강으로 충만한 복된 2025년, 친히 세워주시고 붙들어주시고 다스려주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순간순간 경험하는 복된 2025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께 벅찬 감사과 찬양과 영광을 돌려 드릴 수밖에 없는 복된 2025년을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