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다른 말로 인간(人間)이라고 부릅니다. '인'이 아니라 '인간'입니다. 인간의 삶은 여러 사람들의 걸음이 합쳐져 탄생합니다. 성경 가장 첫 번째 권인 창세기 2장에서 보면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내가 그에게 그를 도와줄 짝을 만들어 줄 것이다."라는 구절이 익히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관계를 통해 살아갑니다.
하지만 산업화와 도시화 등 인간의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 소외 현사 역시 일어났습니다. 공동체는 해체되고 관계는 파편화되었습니다. 그나마 가족이 관계성을 경험하는 유일한 공간이었는데, 이러한 공간 또한 무너진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현대사회에서 자유인은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임금을 얻는 것밖에 할 수 없습니다. 남아 있는 본능적인 욕구는 관계에 대한 욕구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욕구는 드라마나 예능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됩니다. 분명한 뜻이 없으면 그렇습니다.
또한 이해관계 없이는 관계를 맺기가 어렵습니다. 이해관계가 바뀌면 관계가 다 바뀌는 경험을 누구나 다 하게 됩니다. 이해관계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관계맺음을 해야 하기에 일상을 넘어서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롤모델이 될만한 관계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대표적인 예시가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다윗과 요나단입니다. 요나단의 아버지와 다윗은 원수였지만, 요나단이 죽은 걸 알고 다윗이 애도를 하고 이후 요나단의 아들을 거두었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이해관계에 따르면 다윗은 자신의 적수를 없애야 하지만,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외에도 바울과 디모데, 나오미롸 룻과 같은 관계가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세대를 넘어선 관계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스승이면서 친구가 되는, 진정한 관계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귐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이에 두고 사귀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귀는 것을 말합니다.
제가 강의를 들으면서 가장 좋았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쾌하지도 못하고 좋지도 못한 일들이 생겨서 몹시 환멸을 느끼게 할 때에 비로소 그 사귐은 하나님 앞에서 본연의 모습을 나타내게 되고, 주신 약속을 믿음으로 붙들게 된다. 그리고 지체에게 몹시 환멸을 느끼는 그때가 바로 나에게는 비할 수 없이 유익한 때가 된다."